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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적수 위에 앉아서 똥을 싸고, 적수는 죽어가면서 그 똥을 먹고 기뻐 소리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누가 아무 저항도 못하는 연약한 사람을 매달고 사악한 개처럼 그의 정액을 입으로 받아먹는가? 점잖은 독자들이여, 나는 기꺼이 당신이 이 끔찍한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려 했으나, 내 펜이 마치 노수부(老水夫)처럼 자기의 뜻을 세우는구려.” 윌리엄 S.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는, 초자아의 장벽이 무너진 인간의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독자들의 의식을 발기된 성기처럼 유린한다. 노수부의 최면에 걸려 꼼짝없이 이야기를 듣고 마는 코울리지 시의 청자처럼, 우리, 위선적인 독자들은 버로스의 화려한 언어 향연에 홀려 죽음과 성과 환각을 한데 뒤섞어 시작도 끝도 없이 자아내는 이드(id)의 천일야화를 정신없이 읽어 내려간다. “반문화”의 대표주자이자, 전설적 반항아들의 문파인 “비트 제너레이션”의 일원인 버로스의 매혹은, 언어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와 질서를
벌거벗은 글쓰기의 정수, <네이키드 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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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뿐 아니라,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그 슬픔이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업보’까지 짊어진 자들이 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될 때, 그 자리에 있던 그 사람들이 그렇다. 원폭의 피해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자손들에게까지 계속된다.
<저녁뜸의 거리>는 10년 전 원폭을 경험한 히로시마의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저녁뜸의 거리>와 피폭자 엄마를 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중편 <벚꽃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멀리 떨어져있는 동생을 만나러 가기 위해 한푼 두푼 알뜰하게 살아가는 히라노는 평범한 아가씨처럼 보이지만, 시체가 떠다니던 강가와 죽은 여인에게서 나막신을 벗겨서 신어야 했던 지옥 같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저녁뜸의 거리>), 나기오는 단순한 천식도 피폭의 영향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엄마가 피폭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도 제대로 만나지 못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저녁뜸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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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찾아오는 빚쟁이를 퇴치하는 가장 훌륭한 대사는? “사장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요.” 부푼 꿈을 안고 사내 견학을 하고 있는 신입사원들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인사과장의 “나 로또 당첨됐거든. 뼈빠지게 일해봐요.” 일본에서 온 귀빈 야마도라 상을 접대하기 위해 추천하는 가장 한국적인 음식점은? “욕쟁이 할머니 집.” 몸매 8단, 성질 9단의 쭉빵 과격파 처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화제를 불러일으킨 웹 만화 <앙칼 처녀 도전기>가 엠파스에 <앙칼 처녀 시즌2>를 이어가며 우리 인생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교훈들을 더해가고 있다.
<앙칼 처녀 도전기>의 애초 주인공은 대재벌을 목표로 패션그룹 돈타에 지원하지만 지나치게 튀는 패션에 발끈하는 성질머리로 고난을 겪는 유니, 출중한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필살기를 넣기 전에 쓸데없는 세리머니를 하다 역전패당하기 일쑤인 프로레슬러 진경, 딱 보기에 ‘쾌활한 왕따’인 보모 희경 등 세명의 앙칼진 처녀.
웬만하면 발끈하는 성질파 처녀들, 스바르탄의 <앙칼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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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시를 처음 본 건 8년 전 모로코에서다. <인샬라> 촬영현장 취재로 찾아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소국이 알코올을 금해서였을까. 담배 한 보루를 들고 길가를 서성이는 청년들은 해시시도 팔았다. 하필 모두들 말보로 담뱃갑을 들고 섰는데 새빨간 브랜드 무늬가 자꾸 호기심을 자극했다. “담배 말고 해시시?”라고 말문을 열긴 했으나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는 상대방 표정에 왠지 겁먹어버렸다. 같은 대마에서 나오기는 했으나 일반 대마초보다 약용효과가 훨씬 강한 해시시(대마수지)의 거무틱틱한 색깔이 이성의 금지명령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고나 할까. 하물며 대마초조차 절대악의 유혹으로 주입받아온 터에 철통 이성의 규율에 익숙해진 몸이 얼마나 일탈할 수 있을까. <해시시 클럽>의 면면은 이런 조건반사를 무안하게 만든다.
한달에 한번, 파리의 피모당 호텔에 모여 정신의학을 공부한 자크 모로가 반죽해 건네는 해시시로 파티를 열었던 이들 중에 천재과에 가까운 예술가들의 이름을 쉽게
해시시를 아시나요, <해시시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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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미했던 힙합 그룹 ‘듀스’의 노래 가사 중에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멀리서 누군가 부르고 있어∼”라는 대목이 있다. 내 안에 다른 누군가의 인격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이 노래 가사가 뼛속 깊이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다중인격탐정 사이코>의 아마미야 카즈히코처럼.
코바야시 요스케는 토막살인을 수사하던 중 택배를 받는다.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토막난 채 목숨만 겨우 붙어 있는 여자친구였다. 범인을 찾아 죽이게 되는 코바야시 요스케. 그 과정에서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인격체 니시조노 신지와 아마미야 카즈히코의 인격이 드러나고, 코바야시 요스케의 인격은 사라지게 된다. 수사 중 과실치사로 징역을 살고 나온 코바야시, 즉 아마미야 카즈히코는 아소노의 탐정사무소에서 프로파일러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터지는 살인사건. 그 배후에는 아마미야 카즈히코에 여러 인격을 심어넣은 어떤 조직이 자리해 있다.
<다중인격탐정-사이코>에서 가
다중인격탐정-사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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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흔히 맞닥뜨리는 반응은 대개 한줄을 넘지 않기 일쑤다. “아, 골치 아파” 혹은 “지루해”. 하지만 이렇게 고루하고 화석화된 정전 작가의 죽은 이미지는 이 르네상스 영국 작가의 무한한 얼굴들 중 단 하나에 불과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은, 모든 경계와 범주를 무색하게 하는 모호하고 유동적인, 그러나 유례없이 강력한 문화적 리바이어던이 되었다. 그는 이제 더이상 영국 16세기에 살았던 한 개인이 아니며,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장담한 영국 아니 서구가 독점하는 고가의 상품만도 아니다. 일본에서, 리투아니아에서, 한국에서, 새로운 연출가들과 새로운 작가들이 서구 문화의 꽃을 상징하는 셰익스피어의 이름 속에 자국의 문화를 새겨넣는 작업에 나날이 몰두하고 있는 사실은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셰익스피어는 수많은 원형적 내러티브 그 자체이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 브랜드며, 사상 최대의 문화적 권위다.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권위가
가장 유쾌하게 셰익스피어를 읽는 법, <필름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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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보고에 따르면 도시의 그늘 여기저기에 새로운 ‘도회형 습지’가 형성되고 있어 별종 생명체들의 터전이 되고 있다고 한다. 곰팡이, 쥐며느리, 돈벌레 등이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생명체들이지만, 우리의 보고자는 더욱 주목해야 할 특이종을 가리킨다. 비가 새는 반지하 셋방에서 라면 한 그릇을 나눠 먹으면서도 방 한구석에 주인처럼 누워 있는 빈대에 수시로 뜯기는, 그러면서도 절대로 펜 마우스를 놓지 않는 지방대학의 그래픽아티스트 지망생들이다. 이들의 궁상맞으면서도 절절한 삶의 장면들이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라는 다소 괴팍한 카메라에 걸려들었다.
최규석은 데뷔 직후부터 문제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만화가가 되어버렸지만, 이로 인해 그를 냉소적이고 암울한 언더 지향 작가의 틀에 가두어버릴 위험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그에게 주어진 일간신문 연재면은 여러 시각의 기대와 불안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
도회형 습지의 궁상맞은 청춘들,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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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사는 아내들이 종종 ‘아무리 그래도 맞을 만하니까 그랬겠지’ 하는 오해를 사는 것처럼, 우리는 은연중에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왕따를 당할 만하니까 왕따를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맞을 맞한 이유’나 ‘괴롭힘당해도 싼 이유’ 따위는 세상에 없다. <라이프>는 리스트커트(자신의 몸을 커터칼로 긋는 행위)와 이지메, 왕따라는 사회문제와 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정면돌파한다.
아유무와 시노즈카는 중학 시절 단짝 친구. 아유무는 우등생인 시노즈카를 좇아 같은 고등학교에 원서를 내고 시노즈카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그 학교에 합격한 것은 시노즈카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아유무. 이 일로 시노즈카는 아유무에게 심한 말을 하고, 아유무는 죄책감을 느끼며 리스트커트 증후군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의기소침하던 아유무에게도 새 친구가 생기지만, 왕따 만들기에 함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유무는 오히려 왕따를 당하게 된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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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추억 속을 걷고 싶다. <씨네21> 창간 초 다른 언론사에서 일하는 선배로서 처음 만난 저자는 이따금 먼산 보는 표정으로 내게 권하곤 했다. “미술 공부를 해보지 그래요?” 그리고 정작 본인은 이탈리아 볼로냐로 영화 유학을 갔다. 5년이 흐른 2002년 초가을, 나는 부들부들 떨며 베니스영화제 취재길에 올랐다(그해 여름 월드컵 16강전 이후 이탈리아 국민 정서를 상기하시라). 저자는 기차로 베니스를 찾았다. 영화제를 빌미로 만난 우리가 산책간 곳은 베니스 아카데미아 미술관이었다. 틴토레토와 베로네제를 보았다. 그 그림들은 정말이지 스크린만했다. 귀국을 앞둔 2004년 4월 초 저자는 <씨네21>에 ‘영화와 미술’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씨네21>은 즐겁게 들떴다. ‘영화와 미술’은 영화의 시각적 아름다움에 결코 닿을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종이 잡지에 그나마 허락된 최고치의 시도처럼 보였다.
<씨네21> 연재가 65회에 이른 지금,
책으로 만나는 ‘영화와 미술’,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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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나 잡지의 서평이 대부분 긍정적인 것은 우리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비판적인 평가는 지엽적인 오류나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정도에 그치며, 갈등을 피하기 위해 대체로 긍정적이고 온건한 서평을 쓴다. 서평이 아니라 사실상 책 소개 글인 경우가 많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이런 문장을 자주 쓴다. ‘옥에 티가 옥의 빛깔을 무색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법.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은 이 책의 미덕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옥의 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책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는 서평의 대상으로 적합한 책일까? 아니면 소개하는 글을 쓰기에 좋은 책일까? 16, 17세기의 고위 성직자 잠바티스타 팜필리는 다른 추기경이 소장한 귀중본 역사서 한권을 예복 속에 넣어 훔쳤다. 도난 사실을 알아차린 주인이 몸수색을 해야 한다고 우기면서 몸싸움이 벌어지던 순간, 예복 속 책이 바닥에 떨어졌다. 팜필리는 나중에 교황이 돼, 그 추기경의 재산을 몰수하고 로마에서 추방해버렸다.
책
책에 관한 적나라한 이야기들,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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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군들. 만약 당신의 집에 외계인 병사가 침입해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케로로 중사는 지구 침략을 목적으로 케론 성에서 파견한 소대의 지휘 책임자로, 투명 배리어와 전기충격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외계 흡착 괴물과 심해 잠수함까지 불러들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물론 오랜 방첩 교육과 민방위 훈련을 받은 제군들이 즉각 가까운 경찰서나 군부대에 그를 신고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잠깐. 혹시나 방심과 호기심을 섞어 적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행동은 금하도록. 자칫 케로로 중사의 귀여운 얼굴과 찡긋하는 눈빛을 보았다간, 당신은 신고는커녕 그에게 지구 침략의 전초 기지를 제공하는 이적 행위를 벌일지 모른다. 그래봤자 별 손해는 없겠지만 말이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인기가 일본시장을 휘감더니 서서히 국내에도 상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 먼저 소개된 출판 만화의 파괴력은 예상보다 미흡했지만, 최근 투니버스에 TV애니메이션판이 방영되기 시작했고 내년
지구 정복 따위는 관둬버릴까, <개구리 중사 케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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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영화의 원작이 아닌 ‘영화소설’이라 하면, 영화스틸로 삽화를 대신하고 장면들을 곧이곧대로 받아쓰기한 조악한 책이 대부분이었다. 동명영화 시나리오를 골격으로 삼아 태어난 김형경의 장편 <외출>은 중견 문인이 쓰고, 한국 순수문학의 둥지로 여겨지는 출판사에서 펴낸 영화소설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허진호 감독도 집필을 결심한 김형경 작가를 촬영현장에서 만났을 때 “대단한 용기이십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김형경의 <외출>은 불륜의 피해자에서 당사자로 옮아가는 인수와 서영의 내면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하면서 유난히 과묵한 허진호의 영화가 비워둔 ‘행간’을 세세히 메운다. 이를테면 서영이 도로변에 주저앉아 울먹이는 장면에 소설은 이렇게 주석을 단다. “그 자세가 더 나쁘다는 것을 서영은 웅크리고 앉은 다음에야 알았다. 그 자세는 오래도록, 깊이 울게 되기 좋은 자세였다.” 키스없이 섹스로 직진한 영화의 흐름이 느닷없다고 느끼는 관객이라면, 두
영화의 행간을 메운 소설,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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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시간의 너머를 바라보는 작가다. 그녀는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걸이 소녀>와 태피스트리 <여인과 일각수>의 시대로 거슬러올라가, 여인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헝클어져 있던 감정과 사연을 걸작 미술품으로 응축한다. 소실점을 처음 발견한 화가의 시선이 그녀와 같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푸른 바탕 붉은 머리 소녀의 그림이 표지인 <버진 블루>를 보는 이들은 대부분 또 하나의 걸작 아래에서 감정의 그물을 건져올리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슈발리에의 데뷔작인 <버진 블루>는 무명의 성모상과 한장의 푸른 천에 얽힌 이야기다. 또한 불가해한 교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버진 블루>는 중세와 현대가 한장(章)씩 교차하는 소설이다. 어느 날 머리가 붉은색으로 변해버린 이자벨은 종교개혁 시기 프랑스 남부 세벤느에 살았던 위그노 교도다. 그녀는 성모를 부정하는 교리를 믿지만, 청금석을 녹인 성모의 푸른색 옷자락을 볼 때마
그림이 들려주는 두 여자 이야기, <버진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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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물꼬물 지렁이 기어가듯하는 글씨체, 단조로운 배경처리, 어쩐지 당연하게 “내가 그려도 이만큼은 그리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PAPER>의 다른 기사를 다 읽은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꼭지가 바로 <PAPER>의 김양수의 카툰판타지였다. 그 만화들이 모여 한권의 책이 되어 <생활의 참견>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카툰은 내용에 따라 몇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는데, 각장의 도입부에 있는 작가 김양수의 사진에서부터 그의 유머 공력을 실감할 수 있다. <스타워즈>의 로봇 C3PO의 몸에 자신을 얼굴을 갖다붙이는가 하면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 몸에 얼굴을 콜라주한다(배경의 학생들 얼굴도 모두 김양수 자신이다). <일상의 참견>이라는 제목은 ‘일상이 인생에 태클 걸어올 때’쯤으로 해석하면 될 텐데,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김양수 자신이나 주변 사람의 경험담이다. 학창 시절, 야설을 프린트(씩이나)해서 보던
소소한 일상의 난리블루스, 김양수의 카툰판타지 <생활의 참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