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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들기의 비밀> 니콜라스 T. 프로페레스 지음/ 한길아트 펴냄
영화연출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영화만들기의 비밀>은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원제 <영화 연출 기초>라는 말에 걸맞게 구체적인 사례와 이론적 접근의 균형을 맞춘 책이다. 저자 니콜라스 T. 프로페레스는 1969년 베니스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마침내 자유를>의 연출, 촬영, 편집을 했으며, 엘리아 카잔 감독의 <방문자>에서 촬영, 편집, 프로듀서로 일했고 컬럼비아대학 영화학과에서 20여년간 영화연출을 강의했다. <브로크백 마운틴> <와호장룡>의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제임스 샤무스는 이 책이 “영화를 어떻게 연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 영화를 만들 때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만들기의 비밀>에서는 연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 신 분석, 리허설
영화 연출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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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SF> 조남준 지음/ 청년사 펴냄
먼저, 시사주간지에 시사만화를 8년 동안 연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는 사람만 안다. 시사만화는 안팎의 검열에 시달리면서 통렬한 한방을 내장해야 하는, 칼로리가 꽤 많이 소비되는 작업이다. 상상력의 푸른 숲은 곧 쩍쩍 갈라지는 마른 논바닥이 된다. 매주 마감을 가리키는 시곗바늘이 면도날이 돼서 목 근처를 간질인다. <시사SF>는 그 8년의 결과물이다. <한겨레21>에 연재되었던 만화 중 시의성과 관계없는 작품들을 묶었다. 조남준씨는 <시사SF>의 시간을 “내 인생의 10분의 1”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게 홍보용 멘트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만 안다.
작품들은 주인의 모습을 쏙 빼닮았다. 그의 만화엔 잔재주가 없다. 그에겐 요리조리 치고 빠지면서 독자들을 시시덕거리게 만드는 말솜씨가 없다. 그는 우직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의 정면으로 파고들어가서 결정적 한방을 날린다. 따라서 그
현실을 향한 조용한 똥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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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공포> 파스칼 키냐르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섹스 토킹> 앙드레 브르통, 만 레이 외 지음/ 싸이북스 펴냄
섹스에 대한 두편의 논픽션이 출간되었다. 파스칼 키냐르의 <섹스와 공포>는 로마로 거슬러 올라가 섹스를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해석, 에이즈로 인해 섹스가 공포와 맞닿아 있는 현대인의 태도의 뿌리를 로마시대에서 찾는다. <섹스 토킹>은 앙드레 브르통과 만 레이를 위시한 초현실주의 그룹의 40명이 12회에 걸쳐 섹스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일종의 대담집이다. 전자는 섹스가 공포와 저주로 변하기 시작한 로마시대에 대한 일종의 주석서와 같은 구실을 하며, 후자는 해설이 아닌 섹스라는 행위에 대한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그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이다.
“욕망은 매혹한다. 파스키누스(fascinus)란 음경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돌이 하나 있다. 돌에는 음경이 거칠게 조각되어 있고,
섹스? 하거나 읽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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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김려실 지음/ 삼인 펴냄
최근 한국 영화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박찬욱, 봉준호 등 충무로의 젊은 감독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터뷰 지면 혹은 시네마테크 프로그램을 통해 김기영, 이만희 등에 대한 애정을 표하고 있다. 현상의 한축이 젊은 감독들의 ‘아버지 찾기’라면 다른 한축은 한국 영화사 연구에 대한 다양한 학계의 관심과 그로 인한 시각의 확장이다. 한국 영화사 연구가 더이상 영화학계만의 관심은 아닌데, 김려실의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가 바로 대표적인 성과이다.
저자의 교토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조선영화-내용은 친일 영상은 반일”(<경향신문>), “‘아리랑’ 애초에 민족영화는 아니었다”(<한겨레>), “‘웰메이드 친일영화’ 있는 그대로 봐야”(<조선일보>) 등 1월 첫주 주요 일간지의 책 코너를 통해 큰 관심을 받았는데, 기자들은 최근 인문사회과학에서
조선 영화사 연구,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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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블루스> 김보현 지음/ 허브 펴냄
높은 콘크리트 장벽에 가두어져 이제는 유대의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 되어버린 곳. 차별과 탄압, 유혈사태가 일상이 되어버린 곳. 바로 팔레스타인이다. <나블루스>는 팔레스타인 중부에 위치한 도시 나블루스를 배경으로 그곳의 젊음이 폭탄과 함께 사라져가는,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풍경을 보여준다.
누구보다 예술의 힘을 믿었지만 팍팍한 현실과 인티파다 도중 약혼자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교자가 되려는 하나딘, 분리장벽에 벽화를 그리며 세상과 사랑하는 하나딘을 위로하고 싶은 나세르 그리고 이스라엘의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형 때문에 이중첩자 노릇을 해야 하는 라자. 수용소와도 같은 나블루스의 생활에서 이들에게 남은 건 이스라엘을 향해 폭탄을 안고 몸을 던지는 목표뿐이다. 작가는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에, 평화를 그리는 페인트병에 날아드는 무심한 총탄을 보여주며 팔레스타인이 우리에겐 “잠깐이면 가봐도 괜찮은” 곳이지만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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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시키부 지음/ 한길사 펴냄
일본의 고전 <겐지 이야기>가 최초 완역되어 10권으로 출간되었다.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책을 세토우치 자쿠조가 현대 일본어로 옮기고, 김난주가 한국어로 번역한 이 책은 <겐지 이야기>와 관련된 옛 그림이 컬러로 삽입되어 있어, 읽는 즐거움만큼이나 보는 즐거움을 준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겐지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구조를 살려 구어체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어려운 고전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옛이야기를 듣는 듯 편하게 읽힌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기와 의복, 건물 구조, 탈것 등의 참고도판은 옛 삶의 방식의 이해를 돕는다.
<겐지 이야기>는 히카루 겐지라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연애소설이다.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는 헤이안 시대 사람으로 남편과 사별한 뒤 궁녀로 생활했는데, 화려한 귀족사회를 무대로 70여년간 펼쳐지는 남녀상열지사를 맛깔나게 그려냈다. 천황이 총애하던 여인의 아들로 태
일본 고전 소설의 진수, <겐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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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사랑의 갈증>
미시마 유키오의 <사랑의 갈증>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통속소설이다.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 그랬듯 단순히 도덕이라는 잣대로 재기 힘든 한 여자의 삶과 그 속내를 섬세하게 발라낸다. 그리고 묻는다. ‘편견이 아닌 도덕이 있을까?’ 거기에 대한 교과서적인 답안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미시마 유키오는 주인공 에쓰코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의 문제를 기가 찰 정도의 천연덕스러운 문장으로 풀어간다.
에쓰코는 시댁 식구들과 살고 있다. 에쓰코의 남편 료스케는 장티푸스로 죽었는데, 죽기 전에 이미 상당한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 그는 아내에게 여자 관계를 숨기는 정도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분한 마음이 든 에쓰코가 두 번째로 음독을 시도하려한 날 밤 남편은 병이 드는데, 며칠이 지나 장티푸스임이 밝혀져 병원에 갔을 때 남편은 이미 위독한 상태였다. 신혼 이후 처음으로 에쓰코는 행복을 맛보지만, 남편의 여자들이 하나씩
그녀의 스캔들 그리고 나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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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화> 전 2권 로저 에버트 지음/ 윤철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4년 전 번역 출간된 로저 에버트의 영화평론집 <위대한 영화>의 2권이 나왔다. “위대한 영화 베스트 100”이 아니라 “위대한 영화 중 100편”에 관한 글이라는, 머리말의 세심한 일러두기를 독자가 유념한다면 저자는 더욱 기뻐할 것이다. 엄지손가락과 별점의 ‘대마왕’처럼 간주되는 평론가지만 에버트는 랭킹과 리스트 작성을 “멍청한 짓”이라고 일축한다. 그럼 왜 하냐고? 글쎄. 어물전 주인이 비늘 다듬기 싫다고 안 할 수야 있나, 정도가 에버트의 입장이다. 이 책에 실린 100편의 영화 중 99편은 이른바 ‘데렉 말콤 테스트’를 거쳤다. 데렉 말콤은 <가디언>에 오랫동안 기고한 평론가인데 “이 영화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상상을 견딜 수 있을까, 없을까?”를 자문하며 영화를 분류했다고 한다. 테스트를 통과 못하고도 수록된 영화는 20세기 초 미국의 인종주의가 반점처럼 박혀
저널리즘 영화비평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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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아이> <이상한 소파> <윌로데일 핸드카> <쓸모 있는 조언>
에드워드 고리 지음 | 미메시스 펴냄
에드워드 고리는 그림책 작가다. 하지만 ‘그림책’이라고 쉽게 보면 안 된다. 주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내 그림과 글을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한 그의 섬세하고 단정해 보이는 그림체에 혹해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오그드레드 위어리의 재미있는 포르노’라는 부제가 붙은 <이상한 소파>의 예를 들어보자. 일단 ‘오그드레드 위어리’라는 이름은 저자 에드워드 고리의 영문 철자를 뒤섞어 만들어낸 것. 손바닥만한 크기의 책을 펼치면 용수철처럼 끝이 강하게 꼬부라진 영문 글씨 아래 한글 번역이 되어 있는 왼쪽 페이지와 간결하지만 필요한 요소를 단 하나도 빼놓지 않은 섬세한 그림이 실려 있다(고리는 책마다 글씨체를 달리 작업했다). 내용은 앨리스라는 여자가 공원에서 섹시하고 성기가 큰 사내를 만
광기어린 단정함이 숨쉬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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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관의 살인> 상, 하 아야쓰지 유키토 글/ 사사키 노리코 그림/ 삼양출판사 펴냄
<월관의 살인>은 추리소설가 아야쓰지 유키토가 이야기를 만들고, 만화가 사사키 노리코가 그림을 그린 추리물이다. 아야쓰지 유키토는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로, 밀실살인을 주제로 한 <십각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을 비롯한 ‘관’ 시리즈를 쓴 작가다. 집요하게 밀실 트릭을 파헤치는 그의 소설들은 <소년탐정 김전일>과 같은 추리만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월관의 살인>은 그의 소설을 각색한 게 아니라 만화의 스토리를 만화가와 함께 구상한 작품이다. 사사키 노리코는 <못말리는 간호사>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 등 코믹한 터치의 만화들을 그려왔다. 그래서 <월관의 살인>은 코믹한 터치의 미스터리물이 되었다.
여고생 소라미는 단둘이 살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 대학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어느
코믹 미스터리! 철도’관’ 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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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손가락> 피터 앳킨스 지음/ 이레 펴냄
<갈릴레오의 손가락>은 유머러스한 과학교양서다. 옥스퍼드대학교 화학과 교수인 피터 앳킨스가 쓴 이 책은 부제 그대로 ‘과학의 10가지 위대한 착상들’을 다룬다. 수학과 과학 과목들에 능숙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면 ‘과학’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질려버릴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전문적인 설명과 유머를 적절하게 혼합했다. 응용이라는 거대한 참나무로 자라는 착상의 도토리 10알을 모아 책으로 써낸 것이다. 진화·DNA·에너지·엔트로피·원자·대칭성·양자·우주론·시공간·산술은 각기 분리된 장으로도 읽히지만 생물학에서 수학까지의 순서는 산등성이를 오르듯 점진적인 이해를 돕는다. “시공간을 가로질러, 추상화의 극치인 수학이라는 산마루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과학자들 이름에서 시작, 익숙한 개념, 그리고 개념들간의 상호관계에 이르는 설명은 전문적이지만 또한 이해하기 쉽다. 앳킨스가 비유에
낄낄 웃다 보니 과학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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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맨> 안노 모요코 지음/ 학산문화사 펴냄
잡지쟁이로 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야근이나 밤샘 마감이 일상적이기 때문에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는 일도 있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문제들을 발빠르게 따라잡는 기획거리를 찾아내는 일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워킹맨>은 일본어로 ‘시대’라는 뜻의 주간지 <JIDAI>에서 일하는 스물여덟살 여기자 히로코를 주인공으로 그 정신없는 세계를 그려낸다. 히로코는 상사에게는 인정받지만 동료들에게는 경원시되는 일중독이다. 자신이 맡은 일을 똑 부러지게 해내는 게 다가 아니라 남들이 흐리멍텅하게 일하는 꼴을 참지도 못한다. 동료나 후배들은 히로코가 일할 때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 같다며 ‘워킹맨’이라고 부를 정도다.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한 지 3개월이나 지났지만 일하느라 지쳐서 신경쓸 여력도 없다. “워킹맨이 되면 혈액 속의 남성호르몬이 증가해서 평소의 3배 빠르기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침
바쁘다 바빠, 잡지사 워커홀릭의 좌충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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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요네하라 마리 지음/ 마음산책 펴냄
베를린의 벽은 무너졌고, 프라하에는 봄이 왔다. 게다가 그 모든 게 지난 세기의 일이다. TV 오락프로에서는 ‘반공’이라는 말을 몰라서 그 뜻을 문의하는 학생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이런 시대에, 1960년대 초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던 초등학생 소녀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유고슬라비아라는 국가명이 존재하고, 중국 공산당과 소련 공산당은 부분적 핵실험 정지조약을 두고 삐걱거린다. 유럽 각국의, 혹은 모국의 공산주의에 관련한 화제들은 마치 새로 나온 초콜릿 이름처럼 소녀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저자 요네하라 마리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논픽션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열 살이던 1960년부터 64년까지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다. 일본인이던 그녀가 프라하에 살게 된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공산주의 운동 이론지인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
찬란했던 공산주의의 마지막, 소녀들의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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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의 고양이> 조안 스파르 지음/ 세미콜론 펴냄
<랍비의 고양이>는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말하는 고양이에 관한 만화다. 말하는 고양이가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는 주인인 랍비의 딸 즐라비야 아가씨를 사랑하기 때문. 유대인이 되면 아가씨와의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이 말하는 고양이는 유대의 율법을 배우고 유대식 의식을 치르고자 하지만 주인 랍비의 반대에 부딪힌다. 랍비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를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마치 <탈무드>를 만화로 읽는 듯한 끝없는 문답과 문제제기가 이어지는데, 고양이가 주인공이자 화자이기 때문에 느슨한 듯하면서도 함축적인 대사들이 <랍비의 고양이>를 상징적인 이야기로 만든다. 말하는 고양이는 율법을 따른다고 자처하는 자들의 허위의식을 알고 있지만, 즐라비야 아가씨 곁에 있기 위해서는 절대 아가씨 앞에서 말을 하지 말라는 주인의 말을 충실히 따르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생
인생이, 삶이 뭘까?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