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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소피가 스크린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영화는 넘실대는 기억의 주인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애프터썬>은 기억에 대한 메타포로 가득 차 있지만 회상을 드러내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식인 플래시백의 관습적 표기만큼은 숨긴다. 물론 곳곳에 힌트가 산재해 있다. 영화는 서사의 주도적 인물이 11살 소피(프랭키 코리오)이며, 또한 기억의 주인이기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둔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며 성에 눈뜨기 시작한 소피의 여름은 선명한 성장담의 구조를 갖고 흐른다. 반면 31살의 젊은 아빠 캘럼(폴 메스칼)의 사연은 인과적으로 전개되기보다는 불안한 파편들로 조각나 있다. 심지어 영화의 오프닝에는 노골적으로 어른 소피(셀리아 롤슨 홀)의 실루엣과 얼굴이 등장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영화를 처음 대면한 관객에게는 아직 해석할 수 없는 주인 없는 정보들일 뿐이다.
다시 말해 <애프터썬>은 영화적인 기법으로 플래시백을 보여주는 것을 꽤나 오랫
[비평] ‘애프터썬’, 액체적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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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복수극과 로맨스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서사의 주요 동력이 대개는 불평등한 계급 관계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가장 사랑받는 복수극 유형은 가진 것 없는 약자가 부패한 거대 자본 권력을 응징하는 이야기이고, 제일 흔한 로맨스 서사는 가난한 여성이 부유한 남성과의 연애로 신분 상승을 실현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다. 요컨대 두 장르에는 사회적 약자의 계급 질서 흔들기라는 판타지가 반영되어 있다.
계급 격차가 한층 심화된 요즘에는 이같은 판타지도 변하는 추세다. 단순한 환상과 욕망의 차원이 아니라, 주인공이 다시 태어나는 본격 판타지 장치를 통해서만 복수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가 하면(<재벌집 막내아들>),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판타지에서나 신데렐라 스토리가 가능해진다(<금혼령, 조선 혼인 금지령>). 아예 판타지를 제거한 작품들도 등장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와 JTBC 금토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여기에 해당
[비평] ‘더 글로리’와 ‘사랑의 이해’가 그리는 격차 사회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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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오해하려 들지 않는 한, <유령>이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말은 농담으로 넘겨들을 일이다. 몇몇 실증적 역사의 지표들, 조선총독부 건물, 남산의 신사, 황군 군복과 일본어,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1933년과 비슷한 시기에 (하지만 정확하게는 1932년에) 조선에서 개봉했던, <상하이 익스프레스>를 홍보하는 영화관의 대형 간판 이미지 등이 일반적으로 훈련된 관객의 기억을 자극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여기에서 상기된 과거는 역사를 구성하는 시간의 한 단면이 아닌, 집단의 기억으로부터 몇 가지 요소들을 추출하고 새롭게 배치하여 만들어낸 추상적인 시간이다. 고증에 대한 열망과 그것의 오류에 대한 지적, 또는 인위적인 시간으로 인해 발생한 영화의 빈틈을 뛰어넘어 역사와 성급하게 대화하려는 시도가 때로는 영화에 대한 논의를 위태롭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역사가 마크 페로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과거를 다룬 영화의 이미지들이
[비평] ‘유령’, 한국영화의 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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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화는 도입부부터 실수를 저지른다. 설정 자막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설정 자막이나 내레이션 자체가 절대악인 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엔 최소한의 문장으로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하면서 관객을 새롭고 낯선 곳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오리지널 <스타워즈> 3부작의 도입부 자막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지만 그 설정이 지루하고 진부하다면 시청자들은 시작하자마자 탈출을 생각하게 된다.
설정에 확신이 서는 순간 결말까지 내용이 다 보인다
설정이라는 건 이렇다. 해수면 상승 기타 등등으로 지구는 끔찍한 곳이 됐다. 인류는 달과 지구 사이에 스페이스 콜로니들을 만들었고 그중 일부가 반란을 일으켜 전쟁이 난다. 이제 반쯤 지옥 같은 곳이 된 지구는 콜로니에 자원을 공급하는….
하나도 안 맞는다.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기타 등등 온갖 재난을 다 합쳐도 지구인에게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지구다. 스페이스 콜로니 사람들이 부럽다고? 지구에 똑같은 시설을 만들면 된다
[비평] ‘정이’, 너무 오래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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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성공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두고 실패를 운운하는 게 의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인질 두명의 목숨이 희생되긴 했지만 <교섭>은 우여곡절 끝에 나머지 21명을 구출한 성공 이야기 아닌가.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만 본다면 영화는 이제껏 봐온 유사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교섭에 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요 인물이 한때 실패한 임무에 따른 트라우마를 극복한 뒤 기어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성공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대식의 경우에도 적용 가능하다. 이라크 인질 구출 작전에서 실패를 맛본 대식은 그때 생각이 때때로 밀려들어와 괴로운데, 비슷한 사건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면서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손에 쥔다. 비록 두명의 목숨을 잃었지만 나머지를 구출하면서 대식은 과거의 실패를 딛고 성공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에는 성공의 기쁨보다 실패에 짓눌린 무기력감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영화 후반부에 드러난 실패인지 성공인지 단정하기 애매한 순간만
[비평] ‘교섭’, 실패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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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의 기다림>은 이야기의 매혹에 대해 떠드는 적당한 범작으로 취급받다 잊히고 있는 것 같다. 내게는 이런 평가를 움직일 만한 힘도, 의욕도 없다. 다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본 뒤부터 자꾸만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 그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호흡하듯 이야기하는 정령의 마음으로. 그 장면은 최고의 장면 뒤에 나온다. 지니(이드리스 엘바)의 이야기에 감명한 알리테아(틸다 스윈튼)는 첫 번째 소원을 말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를 원해요. 둘은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확인하듯 하룻밤을 보낸다. 피어나는 붉은 증기. 반짝이는 검은 밤. 영화의 하이라이트임을 직감하게 하는 아름다운 이미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우리는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몽환적이었던 지난 밤과 다르게 지나치게 선명하고 또렷한 얼굴. 그것은 간밤의 열기와 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채로 티없이 투명한 아침을 맞이했을 때의 민망함을 상기시킨다. 환상에서 일상으로의 아
[비평] ‘3000년의 기다림’, 홈통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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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일까? 영화를 보고서 그간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고수하던 노아 바움백 감독이 돈 드릴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유가 궁금했다.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건강을 위협하는 재난을 배경으로 하고 공황에 빠진 군중의 좌충우돌을 담은 원작이 떠올랐을 수 있다. 또 유사한 시기 발달한 인터넷 기술에 따른 소셜 미디어의 확장과 함께 극단적인 우경화와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태가 원작이 묘사한 히틀러와 우중에 관한 내용을 생각나게 했을 수도 있다. 감독의 관심사인 부부나 가족의 풍경을 그린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특히 마지막 추정은,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와 그 사이에서 점증하는 감정을 포획한 블로킹으로 부부와 가족의 심정적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이 이번 작품에도 어김없이 이어진 데서 더욱 심증을 굳히게 한다. 다만 이러한 블로킹과 편집이 영화의 스펙터클과 관계한다는 점이 새롭게 눈에 띈다.
스펙터클이 관념에서 경험으로 내려오면
두 시퀀스를 예로 들어보자.
[비평] ‘화이트 노이즈’, 비극이지만 희극에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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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짓말이 나오는 동화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동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우리의 머릿속에 <피노키오>의 줄거리는 희미해져 있지만, 제페토가 피노키오에게 했던 거짓말만큼은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다. 바로 “거짓말을 하면 네 코가 길어질 거야”라는 거짓말이다. 그런데 사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짓말’이라는 말과 ‘가장 유명한 동화’라는 말은 같은 말일 수도 있다. 동화 혹은 넓게 봐서 픽션이라는 것은 결국엔 전부 거짓, 즉 가짜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짓말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특히 동화는 선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이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형제 자매들과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내게 하기 위해, 나쁜 일에는 벌이, 착한 일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비평]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제페토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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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란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담은 동명의 뮤지컬을 각색한 뮤지컬영화 <영웅> 덕분이다. 영상 예술인 영화는 소설, 연극, 만화, 웹툰,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른 많은 장르의 원작을 영화화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뮤지컬영화가 별로 제작되지 못하는 것은 뮤지컬(현장성)과 영화(스크린을 통해 전달)의 관람 형태 때문일 것이다. 이는 그만큼 영화에서 대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뮤지컬영화가 시도된 것은 2006년 뮤지컬과 호러를 접목한 <삼거리 극장>(감독 전계수)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참신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다 올해 이례적으로 ‘국내 최초’를 표방한 두편의 뮤지컬영화가 등장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영화인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 2022)와 ‘오리지널 원작’ 뮤지컬영화인
[비평] ‘영웅’, 영화적 상상력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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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연출 정대윤)이 14화에서 최고 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2022년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드라마는 1화에서 주인공의 억울한 죽음과 환생 설정을 공개한 후 ‘순양그룹 회장 되기’라는 목표를 향해 빠른 전개로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 동명의 원작 웹소설(2017년 문피아 연재, 산경)과 드라마의 줄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순양그룹이라는 재벌 기업에서 오너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40대 윤현우 팀장은 비자금 세탁 중 살해되고 순양 재벌가 막내 손자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난다. 1987년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살게 된 윤현우/진도준(송중기)은 자신을 용도폐기 가능한 머슴 취급했던 재벌 2세와 3세들을 하나씩 격파하고 회장 자리에 앉는다.
‘회·빙·환’이 유행하는 이유
<재벌집 막내아들>의 서사 구조이자 서브 장르인 회귀·빙의·환생(회·빙·환)은 2010년대 초부터 웹소설의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았고, 최근
[비평] ‘재벌집 막내아들’, 회귀·빙의·환생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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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월드컵 기간 중에 언론에서 ‘할많하않’이란 문구를 접했다. ‘상대방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그것보다 ‘두려울 때’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왕조가 끝나고 일제강점기를 겪고 다시 군사정부를 통과하면서 사실을 말한다는 것의 두려움을 처절하게 느꼈을 터, 공포감은 터진 입을 막는 막대한 힘을 발휘한다. 왕조 사극이 스릴러 장르와 결합하는 것의 바탕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혁명이 부재했던 한국의 옛 역사에서 왕은 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올빼미>에도 그런 대사가 나온다. “왕을 갈아치울 수도 없고.” 잘못을 저지른 왕이 악한 마음을 먹으면 도무지 대적할 방법이 없다. 현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마다 ‘제왕적 권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괴상한 짓거리에 능한 현직 대통령을 막을 수가 없다. 버럭대며 안 하겠다고, 혹은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럴 때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는 상상. &
[비평] ‘올빼미’, 사실을 말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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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도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신형철은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를 두고 인디아(미아 바시코프스카)가 살인마로 각성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는 영화 안팎에서 모두가 인정한 것처럼 성장담이며, ‘성장은 살인이다’라는 은유로 정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디아가 타인에게 영향 받는 일을 타인이 지닌 걸 먹어 치운다고 표현한다. 유사한 맥락으로 <본즈 앤 올>을 본다면, 신형철의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사랑은 식인이다’라고. ‘성장은 살인이다’라는 은유 안에서 먹어 치운다는 표현이 비유라면 <본즈 앤 올>의 매런(테일러 러셀)과 리(티모시 샬라메)는 정말 사람을 먹어 치운다. 작품의 원작 소설도 성장담으로 볼 여지는 있다. 특히 소설에서 매런이 리를 먹어버리는 사건은 자립의 마침표를 찍는 일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영화는 성장이 아니라 사랑에 방점이 찍힌 게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비평] ‘본즈 앤 올’,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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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를 생각하면 올해 두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하나는 <실종>이다. 부녀는 탁구공 없이 탁구를 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리는 들린다. 부녀는 랠리를 이어가고 카메라는 네트를 줌인한다. 부재를 느끼게 하는 이 기묘한 영화의 마지막 숏은 네트를 통해 윤리의 경계를 형상화한다. 다른 하나는 <창밖은 겨울>이다. 선배 버스 기사들이 휴식 시간에 탁구를 친다. 심판을 보는 석우(곽민규)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그의 얼굴 위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 이내 석우는 선배들에게 심판을 제대로 안 보냐며 꾸중을 듣는다. 경계를 가르는 네트에 위치한 석우. 그는 시간의 경계에 멈춰 있다. 과거와 현재, 그 사이에서 석우는 잠시 길을 잃었다.
MP3가 촉발시킨 감정들
<창밖은 겨울>엔 두개의 인력이 석우에게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로, 다른 하나는 현재로 그를 이끈다. 이러한 움직임은 터미널에서 본 MP3로부터 시작된다. 석우는 영화
[비평] ‘창밖은 겨울’,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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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포로로 붙잡힌다. 포로가 된 아이는 살인을 저지른 열명의 삼촌에게 둘러싸이는데, 이들을 일컬어 빅토르 위고는 ‘그의 아버지의 끔찍한 형제들’이라 칭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그 상대를 ‘끔찍한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무튼 포로로 붙잡힌 아이의 이야기는 ‘구세주’를 만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다. 아이는 삼촌으로부터 도망치고, 그 과정에서 두려움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침내 ‘말하는 동물’과 만나게 된다. 이 신비로운 동물과의 조우 덕택에 아이는 자신이 태어났던 낙원으로 되돌아간다. 이상의 내용이 바로 위고의 서사시 <세기의 전설>에 등장하는 ‘삼촌과 대립하는 아이’ 이야기의 원형이다. 2018년 개봉했던 <블랙 팬서>에는 마치 <햄릿>과도 흡사한 아버지의 형제 이야기가 등장한다. 킬몽거(마이클 B. 조던) 캐릭터를 통해서다. 그리고 속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이하 <와칸다 포에버>)에서 다시, 킬몽
[비평]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세이렌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