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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조선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2017년 서울에서 눈을 뜬 사람을 기겁하게 하려면 무엇을 먼저 보여주는 게 좋을까? tvN <명불허전>은 어의 허준(엄효섭)의 추천으로 선조의 편두통을 치료할 기회를 얻었으나 실수를 하고 관군에 쫓기던 혜민서 의원 허임(김남길)을 현재의 서울로 불러들였다.
모전교에서 화살을 맞고 떨어진 허임이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정신을 차린 곳은 2017년의 청계천. 조선시대 사람이니까 종로의 빌딩과 자동차, 과거와 다른 옷차림을 보고 놀랄 줄 알았는데, 한복을 차려입은 흑인과 백인 관광객이 한국말로 “괜찮아요?” 하고 말을 거는 장면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터졌다. 처음부터 자극이 너무 세잖아!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워낙 많다보니 흥미도 떨어지고 이야기의 흐름도 짐작을 벗어나지 않지만 <명불허전>의 허임이 겪는 현대의 풍경은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막연한 고층 빌딩보다 서린동과 무교동의 낙지음식점 간판처럼 구체적인
[TVIEW] <명불허전> 신선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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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에피소드 중 하나는 2회 순천 편이었다. 유시민이 항소이유서에 얽힌 비화를 공개했는데 “보름 정도 쓸 시간이 있었다. 첫 문장부터 초고를 다 쓸 때까지 순수하게 쓴 시간은 14시간 정도다. 한번에 써야 해서 퇴고는 안 했다”라고 말해 출연자 모두 깜짝 놀랐다. 감옥에 누워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머릿속에서 다 구상했고, 한자도 오자가 나지 않게 미리 연습하여 일필휘지로 쓸 수 있었던 것. 초고와 수정고까지 이미 머릿속에서 작업을 끝냈던 것이다.
하지만 일행 중 김영하 작가만이 별로 놀라지 않았다. 작가들이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그것이 ‘글쓰기’의 일반적인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과거 펜과 종이가 비싸서 ‘썼다 없애는’ 일 자체가 큰맘 먹고 하는 일이었던 시절, 작가에게 마치 연극이나 뮤지컬 배우가 실수 없이 라이브 연기를 하듯 ‘단 한번’에 써내려갈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주성철 편집장] 영화 뇌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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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에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어느 고승(高僧)의 선문답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걱정을 안 하고 살 수가 있나. 날이 갈수록 번뇌만 가득 쌓이는 인생. 산다는 건 끝내 버티는 일인데, 버티다 보면 뭐라도 되거나 어딘가 가닿지 않으려나? 글쎄, 대체 언제? 아니면 할 수 없고, 라는 식으로 버텨보지만 특히 여름은 무더워서 버티기 짜증난다. 인생 자체를 어쩌다 받은 긴 휴가처럼 느끼는 사람은 피서를 못 떠난다. 하나도 이룬 일이 없으니 스스로 죄스러워 일상에서 도망가질 못한다. 내 경우 골방에 홀로 갇혀 한평생 치르는 벌을 여름 내내 또 받는다. 허튼 꿈을 꾼 죄, 한낱 기술을 몇푼 술값에 팔아치운 죄, 절대 사랑하면 안 될 인간들만 골라서 사랑한 죄. 모두 유죄! 꽝꽝꽝!!!
자, 진정하려면 결국 또 영화를 봐야 한다. 산에 올라가 스님이 되기엔 늦었고 욕망덩어리 세속의 인간이 한여름 번뇌를 다스리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늦여름
왕가위 <아비정전>과 임권택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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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소닉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한국에서도 많은 음악 팬이 해마다 방문하는 페스티벌이니 굳이 자랑할 의도는 없다. 이틀 동안 대략 10개 조금 넘는 무대를 본 것 같은데, 최고는 역시 푸 파이터스였다. 뭐랄까. 그들은 그야말로 순도 100%의 라이브 밴드였다. (사운드를 통해 추측해보건대) 흔히들 사용하는 반주 테이프도 쓰지 않는 것처럼 들렸다. 인간의 육체를 경유한 격정적인 연주를 통해 푸 파이터스는 관객을 뒤흔들고 이내 찢어버렸다. 거대한 공룡. 우리 시대의 레드 제플린. 그러나 가장 많은 관객이 모인 무대는 푸 파이터스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EDM계의 최고 갑부이자 히트곡 제조기 캘빈 해리스였다. 그 무대를 보면서 “정말 끝내준다”는 감탄을 계속 내뱉었다. 때로는 격렬한 비트로 관객을 움직이고, 때로는 팝적인 멜로디로 호응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과연 베테랑의 그것다웠다. 게다가 히트곡도 좀 많나. 이 아저씨, 영국 차트 톱10곡만 무려 21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무대가 먼
[마감인간의 music] 푸 파이터스,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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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걸 몰랐을까. 모를 리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뻔한 미래였으니까. 강자는 언제나 약자를 이겨왔다. 그들의 다른 이름은 승자였고, 약자는 패자였다. 번번이 그래왔다. 꾸준히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싸움은 왜 반복되는가. 왜 이어지는가. 왜 멈추지 않는가. 강자는 이김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데, 약자는 짐의 역사에서 왜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강자에겐 선택지가 있었다. 약자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강자가 골라 빼앗은 그것이, 약자에겐 고를 수 없는, 둘도 없는 무엇이었다. 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싸운 게 아니라, 지건 말건 싸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실낱같은 희망마저 없었겠는가. 그렇지는 않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구호는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면 저들도 탐욕을 멈추고 말 거라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구호, 허나 세상물정 모르는 그 외침. 강자는 질길 수 있었다. 약자는 질길 수 없었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그 말은 틀
[노순택의 사진의 털] 절망의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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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리처드 드레퓌스, 프랑수아 트뤼포 / 제작연도 1977년
어릴 때 난 멀미가 심했다. 버스에 타기 위해서는 구토용 비닐봉지를 한손에 챙겨야 할 정도였다. 영화를 보러 가던 그날도 그랬다. 집이 종점 근처라 버스에 앉아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영화 광고가 나왔다. 어머니였던가 아버지였던가 “지금 저 영화를 보러 가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시흥동에서 광화문 국제극장까지 상당한 장거리 여정,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그날도 난 멀미를 심하게 했을 것이다. 잔뜩 지쳐서 극장으로 들어갔고 의자에 앉자 곧 주위가 어둑해졌다. 그리고 무슨 영화인지도 모를, 버스 라디오에서 광고로 들었던 그 영화가 시작됐다. 부모님이 내 멀미를 감수하고라도 꼭 보여줘야겠다고 했던 그 영화가.
저학년 초등학생이 보기에 그 영화는 무척 길었다. 웃긴 장면도 없었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었다. 되레 으스스했다. 밤 장면이 많았고 날아다니는 불빛이 많이
유성관의 <미지와의 조우> 경이로운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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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는 1천장의 컨셉 비주얼 스케치를 일람하는 듯한 영화다. 공들인 디자인과 복잡한 플롯으로 갖춘 이 대작의 진짜 약점은 허약한 스토리라기보다, 이미지들이 그것이 품은 사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외형을 자유롭게 바꾸는 불법 이민자 댄서 버블(리애나) 정도가 예외다. 10살 때부터 정체성 없이 살아온 버블은 노예 신세지만 예술가의 영혼을 지녔다. 가죽과 망사옷, 간호사복, 교복 등 남성 섹스 판타지의 이미지들로 연거푸 변신하면서도 그녀가 추는 춤에는 긍지가 흐른다. 뤽 베송 감독은 분명 페티시즘의 연출자이지만 그의 시선을 지배하는 힘은 성적 착취의 욕망보다 ‘예쁜 것’에 대한 열광이다. 극적 기능만 수행하는 캐릭터가 대다수인 이 영화에서 버블은 유일하게 페이소스를 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08/16
집에서 가까운 멀티플렉스에서 박찬욱 헌정관이 개관한 기념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프렌치 커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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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를 다수 만들고 출연도 하는 입장에서 아이튠즈와 팟빵, 팟티 등의 팟캐스트 순위는 민감하게 다가온다. 매일매일 보게 되는 순위 상위권에는 정치 프로그램들이 가득하다. 식상하기도 하다. 그런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물론이지만 최근 몇달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비정치 프로그램이 있다. 이른바 ‘통장요정’ 김생민이 이끌어가는 <김생민의 영수증>이 그것이다.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계속해서 화면에 오버랩된다. 구체적인 사연을 가진 시청자의 사례를 큰 그림에서 분석하고는 특유의 ‘그레잇’을 던진다. 그 이후 이어지는 것은 매우 섬세한 영수증 분석. ‘스튜핏!’과 ‘그레잇!’이 난무한다. 페디큐어를 하지 말고 발을 모래 속에 감추라든지, 소화제를 사지 말고 점프를 통해 소화시키라든지 하는 소위 빵 터지는 유머 속에 김생민이 강조하는 ‘절실함’이 묻어나온다. 그러고나서 15분이 흐르면, 우리는 더이상 웃기만 할 수는 없다.
욜로(you only
[TVIEW] <김생민의 영수증> 15분의 간결한 메시지, ‘돈은 안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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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특집은 9월 7일 개봉하는 <그것>에 맞춰, 영화가 사랑한 작가 스티븐 킹이다. 정정훈 촬영감독이 촬영을 맡은 작품으로 김성훈 기자가 그를 만나 자세한 현장 이야기도 들어봤다. 특집에서 영화평론가 듀나가 ‘왜 스티븐 킹의 소설은 자주 영화화되는가’를 썼고, 송경원 기자가 정말 어렵게 8편만 골라 ‘스티븐 킹 소설 원작 영화 연대기’도 썼다. <캐리> <샤이닝> <미져리> 등 수많은 원작 영화 중에서, 개인적으로 굳이 단 한편의 영화만 고르라면 단연 원작 <The Body>(시체)를 영화화한 1986년작 <스탠 바이 미>다. 미국의 ‘생얼’을 가장 잘 담아내는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이라면, 여기에는 그 작가 세계의 바탕을 이루게 되는, 어려서부터 작가의 꿈을 꿨던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짙게 녹아 있다. 특집에서 임수연 기자가 그에 관한 시시콜콜한 것들을 모아 쓴 트리비아를 보면, 스티븐 킹은 당시까지 자신의 영화화
[주성철 편집장] <스탠 바이 미>, 스티븐 킹과 리버 피닉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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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여년 전부터 헌책방 순례자들이 술에 취하면 아련한 눈빛으로 파리똥이 달라붙어 있는 천장을 응시하며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만화 속의 동네 이노아타마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이노아타마 마을에는 서점이 두개 있다. 이노아타마역에서 남쪽을 향해 쭉 뻗은 시내 중심 상점가를 걸어가다보면 오른쪽에 서점이 하나 나온다. 신간 서적을 파는 서점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신간 잡지들과 베스트셀러 서적, 참고서들이 있는, 동네마다 하나씩 있을 법한 서점과 다를 바 없는 곳. 안경을 쓴 소설가 타입의 아저씨가 항상 카운터를 지키지만 간혹 에도 시대의 미인화에 등장하는 여자처럼 생긴 여고생이 카운터에 앉아 있을 때도 있다. 잡지 진열대에 가서 <소년 점프>를 꺼내 이번주 <은혼>을 대충 훑어보다가 도로 꽂아넣고 서점을 나와 남쪽으로 뻗은 상점가를 향해 가다가 사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든다. 30여 미터를 가면 오른쪽으로 난 골목길이 나오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서 좀 걷다보면 1
[뒷골목 만화방] 모로호시 다이지로 <시오리와 시미코의 밤의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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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계획은 없다. 여름이면 어딜 다녀와야 한다는 강박이 싫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기도 싫다. 난 다르니까. 당신은 여행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럼 나에게 다가오지 말 것. 언젠가 당신은 내 곁도 떠나버릴 테니까. 아무튼 어디론가 휴가를 떠나는 대신 내가 여름을 나는 법은 거실 소파에 누워 92인치 스크린으로 옛날 애니메이션을 잔뜩 보는 것이다. 물론 에어컨과 에어서큘레이터를 동시에 틀어놓는다.
최근 마크로스의 첫 극장판을 다시 봤다. 1984년에 나온 작품이니 나보다 약간 어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 울었다. 우는 내 모습을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중계하려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나를 멈춰 세웠다. 요즘은 남자가 울어도 괜찮아. 난 맨박스를 부순 남자지.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역시 마지막 장면이다. 일명 ‘민메이 어택’. 외계인과 우주 전쟁을 하는데 필살기가 ‘노래’라고…? 비트와 멜로디와 보컬의 힘으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찾는다고…? 만약 당신이 이 설정
[마감인간의 music]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노래로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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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한다고 감옥에 가지는 않는다. 거짓말의 법적 책임을 묻는 건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다. 거짓 소문을 내서 타인의 평판을 떨어뜨렸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고,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적시하면 사기죄가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공유하는 상식과 일치한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거짓말이 아닌 경우에는 어떨까. 진실을 말하는 것이 죄인가? 한국의 현행법에서는 그렇다. 진실일지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죄다. 공익목적의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를 두고 있지만, 아무런 사심 없이 오로지 공익만을 목적으로 했다는 걸 증명하도록 하고 있어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지곤 한다. 사회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 법으로 인해 부당하게 처벌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외치는 이유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는 어떨까. 과장이든 비하든 관계없이 당연히 사기다. 그렇다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거짓말과 소설적 진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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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달에 이르는 ‘박근혜퇴진 광화문 캠핑촌’의 험난했던 농성투쟁은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결의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블랙리스트 비정규직 노동자/해고노동자와 함께 도모한 일이었고, 장기농성에 ‘단련된’ 노동자들이 아니었다면 단 며칠을 버티기 힘든 투쟁이었다. 단련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 말은 틀렸다. 겪어보니 그것은 단련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뎃잠은, 심신을 흔들어대고 바스라뜨릴 뿐 단단하게 하지 않는다.
몇년 전부터 거리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의 연대쉼터를 짓자며 뜨겁게 벌였던 ‘꿀잠’ 운동은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행동 와중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집짓기 운동의 일꾼 모두가 겨울 광장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근혜씨가 큰집에서 쉬기 시작함과 동시에 누군가들은 작은집을 짓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한뎃잠 자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가, 인권운동가, 종교인, 법조인, 학생 등 숱한 이들이 ‘노가다’ 일꾼으로 뛰어들어 먼지를 뒤집어
[노순택의 사진의 털] 분노의 뼁끼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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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이미언 셔젤 / 출연 라이언 고슬링, 에마 스톤 / 제작연도 2016년
모든 것의 시작은 <캐롤>(2015)이었다. 개봉한 평일 이른 시간부터 매진 행렬을 이어가더니 관객으로부터 ‘캐롤마당’이란 별칭까지 얻었고, 몇주가 지나도 그 열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적은 수의 좌석을 가진 극장 중 하나일 이곳(KT&G 상상마당)에서 일하며 줄곧 해온 생각이 있다. 영화 한편의 개봉을 결정한 순간, 가능한 한 그 영화가 가장 오래 상영된 극장으로 남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그것이 극장이 영화와 관객에게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예의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여전히 뜨겁기만 한 <캐롤>의 마지막은 언제가 되어야 하지?’란 생각이 들었을 때 달력을 넘겨 크리스마스를 확인했다. 2016년의 크리스마스는 일요일이었고, 그 해의 남은 일요일 저녁마다 이 극장에선 매일 <캐롤>이 상영되었다.
사실 일요일 저녁은 그런 시간이
김신형의 <라라랜드> 일요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