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머소닉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한국에서도 많은 음악 팬이 해마다 방문하는 페스티벌이니 굳이 자랑할 의도는 없다. 이틀 동안 대략 10개 조금 넘는 무대를 본 것 같은데, 최고는 역시 푸 파이터스였다. 뭐랄까. 그들은 그야말로 순도 100%의 라이브 밴드였다. (사운드를 통해 추측해보건대) 흔히들 사용하는 반주 테이프도 쓰지 않는 것처럼 들렸다. 인간의 육체를 경유한 격정적인 연주를 통해 푸 파이터스는 관객을 뒤흔들고 이내 찢어버렸다. 거대한 공룡. 우리 시대의 레드 제플린. 그러나 가장 많은 관객이 모인 무대는 푸 파이터스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EDM계의 최고 갑부이자 히트곡 제조기 캘빈 해리스였다. 그 무대를 보면서 “정말 끝내준다”는 감탄을 계속 내뱉었다. 때로는 격렬한 비트로 관객을 움직이고, 때로는 팝적인 멜로디로 호응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과연 베테랑의 그것다웠다. 게다가 히트곡도 좀 많나. 이 아저씨, 영국 차트 톱10곡만 무려 21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무대가 먼
[마감인간의 music] 푸 파이터스,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지
-
결국,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걸 몰랐을까. 모를 리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뻔한 미래였으니까. 강자는 언제나 약자를 이겨왔다. 그들의 다른 이름은 승자였고, 약자는 패자였다. 번번이 그래왔다. 꾸준히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싸움은 왜 반복되는가. 왜 이어지는가. 왜 멈추지 않는가. 강자는 이김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데, 약자는 짐의 역사에서 왜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강자에겐 선택지가 있었다. 약자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강자가 골라 빼앗은 그것이, 약자에겐 고를 수 없는, 둘도 없는 무엇이었다. 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싸운 게 아니라, 지건 말건 싸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실낱같은 희망마저 없었겠는가. 그렇지는 않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구호는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면 저들도 탐욕을 멈추고 말 거라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구호, 허나 세상물정 모르는 그 외침. 강자는 질길 수 있었다. 약자는 질길 수 없었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그 말은 틀
[노순택의 사진의 털] 절망의 눈앞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리처드 드레퓌스, 프랑수아 트뤼포 / 제작연도 1977년
어릴 때 난 멀미가 심했다. 버스에 타기 위해서는 구토용 비닐봉지를 한손에 챙겨야 할 정도였다. 영화를 보러 가던 그날도 그랬다. 집이 종점 근처라 버스에 앉아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영화 광고가 나왔다. 어머니였던가 아버지였던가 “지금 저 영화를 보러 가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시흥동에서 광화문 국제극장까지 상당한 장거리 여정,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그날도 난 멀미를 심하게 했을 것이다. 잔뜩 지쳐서 극장으로 들어갔고 의자에 앉자 곧 주위가 어둑해졌다. 그리고 무슨 영화인지도 모를, 버스 라디오에서 광고로 들었던 그 영화가 시작됐다. 부모님이 내 멀미를 감수하고라도 꼭 보여줘야겠다고 했던 그 영화가.
저학년 초등학생이 보기에 그 영화는 무척 길었다. 웃긴 장면도 없었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었다. 되레 으스스했다. 밤 장면이 많았고 날아다니는 불빛이 많이
유성관의 <미지와의 조우> 경이로운 빛
-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는 1천장의 컨셉 비주얼 스케치를 일람하는 듯한 영화다. 공들인 디자인과 복잡한 플롯으로 갖춘 이 대작의 진짜 약점은 허약한 스토리라기보다, 이미지들이 그것이 품은 사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외형을 자유롭게 바꾸는 불법 이민자 댄서 버블(리애나) 정도가 예외다. 10살 때부터 정체성 없이 살아온 버블은 노예 신세지만 예술가의 영혼을 지녔다. 가죽과 망사옷, 간호사복, 교복 등 남성 섹스 판타지의 이미지들로 연거푸 변신하면서도 그녀가 추는 춤에는 긍지가 흐른다. 뤽 베송 감독은 분명 페티시즘의 연출자이지만 그의 시선을 지배하는 힘은 성적 착취의 욕망보다 ‘예쁜 것’에 대한 열광이다. 극적 기능만 수행하는 캐릭터가 대다수인 이 영화에서 버블은 유일하게 페이소스를 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08/16
집에서 가까운 멀티플렉스에서 박찬욱 헌정관이 개관한 기념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프렌치 커넥션
-
-
팟캐스트를 다수 만들고 출연도 하는 입장에서 아이튠즈와 팟빵, 팟티 등의 팟캐스트 순위는 민감하게 다가온다. 매일매일 보게 되는 순위 상위권에는 정치 프로그램들이 가득하다. 식상하기도 하다. 그런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물론이지만 최근 몇달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비정치 프로그램이 있다. 이른바 ‘통장요정’ 김생민이 이끌어가는 <김생민의 영수증>이 그것이다.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계속해서 화면에 오버랩된다. 구체적인 사연을 가진 시청자의 사례를 큰 그림에서 분석하고는 특유의 ‘그레잇’을 던진다. 그 이후 이어지는 것은 매우 섬세한 영수증 분석. ‘스튜핏!’과 ‘그레잇!’이 난무한다. 페디큐어를 하지 말고 발을 모래 속에 감추라든지, 소화제를 사지 말고 점프를 통해 소화시키라든지 하는 소위 빵 터지는 유머 속에 김생민이 강조하는 ‘절실함’이 묻어나온다. 그러고나서 15분이 흐르면, 우리는 더이상 웃기만 할 수는 없다.
욜로(you only
[TVIEW] <김생민의 영수증> 15분의 간결한 메시지, ‘돈은 안 쓰는 것이다’
-
이번호 특집은 9월 7일 개봉하는 <그것>에 맞춰, 영화가 사랑한 작가 스티븐 킹이다. 정정훈 촬영감독이 촬영을 맡은 작품으로 김성훈 기자가 그를 만나 자세한 현장 이야기도 들어봤다. 특집에서 영화평론가 듀나가 ‘왜 스티븐 킹의 소설은 자주 영화화되는가’를 썼고, 송경원 기자가 정말 어렵게 8편만 골라 ‘스티븐 킹 소설 원작 영화 연대기’도 썼다. <캐리> <샤이닝> <미져리> 등 수많은 원작 영화 중에서, 개인적으로 굳이 단 한편의 영화만 고르라면 단연 원작 <The Body>(시체)를 영화화한 1986년작 <스탠 바이 미>다. 미국의 ‘생얼’을 가장 잘 담아내는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이라면, 여기에는 그 작가 세계의 바탕을 이루게 되는, 어려서부터 작가의 꿈을 꿨던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짙게 녹아 있다. 특집에서 임수연 기자가 그에 관한 시시콜콜한 것들을 모아 쓴 트리비아를 보면, 스티븐 킹은 당시까지 자신의 영화화
[주성철 편집장] <스탠 바이 미>, 스티븐 킹과 리버 피닉스의 추억
-
오늘은 20여년 전부터 헌책방 순례자들이 술에 취하면 아련한 눈빛으로 파리똥이 달라붙어 있는 천장을 응시하며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만화 속의 동네 이노아타마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이노아타마 마을에는 서점이 두개 있다. 이노아타마역에서 남쪽을 향해 쭉 뻗은 시내 중심 상점가를 걸어가다보면 오른쪽에 서점이 하나 나온다. 신간 서적을 파는 서점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신간 잡지들과 베스트셀러 서적, 참고서들이 있는, 동네마다 하나씩 있을 법한 서점과 다를 바 없는 곳. 안경을 쓴 소설가 타입의 아저씨가 항상 카운터를 지키지만 간혹 에도 시대의 미인화에 등장하는 여자처럼 생긴 여고생이 카운터에 앉아 있을 때도 있다. 잡지 진열대에 가서 <소년 점프>를 꺼내 이번주 <은혼>을 대충 훑어보다가 도로 꽂아넣고 서점을 나와 남쪽으로 뻗은 상점가를 향해 가다가 사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든다. 30여 미터를 가면 오른쪽으로 난 골목길이 나오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서 좀 걷다보면 1
[뒷골목 만화방] 모로호시 다이지로 <시오리와 시미코의 밤의 물고기>
-
휴가 계획은 없다. 여름이면 어딜 다녀와야 한다는 강박이 싫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기도 싫다. 난 다르니까. 당신은 여행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럼 나에게 다가오지 말 것. 언젠가 당신은 내 곁도 떠나버릴 테니까. 아무튼 어디론가 휴가를 떠나는 대신 내가 여름을 나는 법은 거실 소파에 누워 92인치 스크린으로 옛날 애니메이션을 잔뜩 보는 것이다. 물론 에어컨과 에어서큘레이터를 동시에 틀어놓는다.
최근 마크로스의 첫 극장판을 다시 봤다. 1984년에 나온 작품이니 나보다 약간 어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 울었다. 우는 내 모습을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중계하려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나를 멈춰 세웠다. 요즘은 남자가 울어도 괜찮아. 난 맨박스를 부순 남자지.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역시 마지막 장면이다. 일명 ‘민메이 어택’. 외계인과 우주 전쟁을 하는데 필살기가 ‘노래’라고…? 비트와 멜로디와 보컬의 힘으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찾는다고…? 만약 당신이 이 설정
[마감인간의 music]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노래로 평화를
-
거짓말을 한다고 감옥에 가지는 않는다. 거짓말의 법적 책임을 묻는 건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다. 거짓 소문을 내서 타인의 평판을 떨어뜨렸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고,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적시하면 사기죄가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공유하는 상식과 일치한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거짓말이 아닌 경우에는 어떨까. 진실을 말하는 것이 죄인가? 한국의 현행법에서는 그렇다. 진실일지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죄다. 공익목적의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를 두고 있지만, 아무런 사심 없이 오로지 공익만을 목적으로 했다는 걸 증명하도록 하고 있어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지곤 한다. 사회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 법으로 인해 부당하게 처벌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외치는 이유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는 어떨까. 과장이든 비하든 관계없이 당연히 사기다. 그렇다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거짓말과 소설적 진실의 세계
-
다섯달에 이르는 ‘박근혜퇴진 광화문 캠핑촌’의 험난했던 농성투쟁은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결의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블랙리스트 비정규직 노동자/해고노동자와 함께 도모한 일이었고, 장기농성에 ‘단련된’ 노동자들이 아니었다면 단 며칠을 버티기 힘든 투쟁이었다. 단련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 말은 틀렸다. 겪어보니 그것은 단련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뎃잠은, 심신을 흔들어대고 바스라뜨릴 뿐 단단하게 하지 않는다.
몇년 전부터 거리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의 연대쉼터를 짓자며 뜨겁게 벌였던 ‘꿀잠’ 운동은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행동 와중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집짓기 운동의 일꾼 모두가 겨울 광장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근혜씨가 큰집에서 쉬기 시작함과 동시에 누군가들은 작은집을 짓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한뎃잠 자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가, 인권운동가, 종교인, 법조인, 학생 등 숱한 이들이 ‘노가다’ 일꾼으로 뛰어들어 먼지를 뒤집어
[노순택의 사진의 털] 분노의 뼁끼칠
-
감독 데이미언 셔젤 / 출연 라이언 고슬링, 에마 스톤 / 제작연도 2016년
모든 것의 시작은 <캐롤>(2015)이었다. 개봉한 평일 이른 시간부터 매진 행렬을 이어가더니 관객으로부터 ‘캐롤마당’이란 별칭까지 얻었고, 몇주가 지나도 그 열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적은 수의 좌석을 가진 극장 중 하나일 이곳(KT&G 상상마당)에서 일하며 줄곧 해온 생각이 있다. 영화 한편의 개봉을 결정한 순간, 가능한 한 그 영화가 가장 오래 상영된 극장으로 남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그것이 극장이 영화와 관객에게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예의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여전히 뜨겁기만 한 <캐롤>의 마지막은 언제가 되어야 하지?’란 생각이 들었을 때 달력을 넘겨 크리스마스를 확인했다. 2016년의 크리스마스는 일요일이었고, 그 해의 남은 일요일 저녁마다 이 극장에선 매일 <캐롤>이 상영되었다.
사실 일요일 저녁은 그런 시간이
김신형의 <라라랜드> 일요일에 만나요
-
※<레이디 맥베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레이디 맥베스>의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은 미장센으로 우선 주인공을 감금한다. 캐서린(플로렌스 퓨)은 코르셋과 크리놀린에 한번 갇히고 채도 낮은 가구와 계단, 창틀이 그리는 네모 안에 다시 담긴다. 집 안에는 책 한권, 오락거리 하나 없다. 영화 후반 캐서린의 뒷모습은 실내에 홀로 있는 여성과 인테리어를 즐겨 그린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1864~1916)의 그림을 그대로 가져온 것만 같다. 그러나 얼굴 없이 뒤돌아선 여성의 침묵을 묘사한 함메르쇼이의 작품과 반대로 캐서린은 수시로 장의자 중앙에 앉아 정면을 쏘아보며 다음 행보를 궁리한다. 함메르쇼이의 그림 속 여성을 돌려세우고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레이디 맥베스>에 만족할 것이다.
08/10
이것은 유혈극 버전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일까? <레이디 맥베스>의 야심은 그보다 복잡해 보인다. 영화를 여는 결혼식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라스트 우먼 스탠딩
-
서울 동부의 소문난 중국집 팔팔반점에는 두명의 배달 실력자가 있다. 한 가게에서 두달만 일하고 다음 가게로 뜨는 최강수(고경표)는 정착하지 못하는 인물이고, 이단아(채수빈)는 한국을 떠나려 이민자금을 모은다. 이들이 이른바 ‘흙수저’라면, ‘금수저’도 있다. 재벌 집 둘째 아들로 태어나 경쟁도 성취도 모르고 살아온 오진규(김선호)는 새벽에 도로를 막고 즐기는 레이싱 경주에서 짜릿함을 구하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살다가 대책 없이 독립한 이지윤(고원희)은 세상의 위험을 실감해본 적이 없다.
KBS2 <최강 배달꾼>은 접점 없이 살아가던 이들 네명이 사회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인과를 따져간다. 오진규의 레이싱이 있던 날, 강수의 후배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막힌 도로를 우회하다 제때 병원에 도착하지 못해 사경을 헤매게 된다. 후에 강수를 통해 이 일을 알게 된 진규는 다만 여흥이었을 뿐 “그런 일 생기라고 벌인 일은 아닌데”라고 말한다.
상가를 사들이고 임대료를 올려
[TVIEW] <최강 배달꾼> 인과관계
-
한편의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 결과적으로 영화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예술이라는 데서 발생하는 것 같다. 촬영에 들어가면 최소 3, 4개월 이상, 후반작업까지 감안하면 거의 1년 가까이 절대적 작업 기간 또한 필요로 한다. 문학이나 음악처럼 순간의 영감으로 하룻밤에 완성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고, 혼자 고독과 싸워가며 만들어내는 개인적인 작업도 아니다. 배우의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고, 이런저런 장비를 대여해야 하며, 교통과 날씨 등 고려해야 할 변수도 너무 많다. 또한 그것은 ‘촬영현장’을 통해 스탭 모두에게 오픈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트북이나 작업실을 공개하지 않으면 전혀 노출되지 않는 여타 예술의 작업과정과 달리 영화는 그 제작과정을 감독 외의 많은 이들이 아낌없이 공유한다. 그러니 영화가 완성되기도 전에 스탭들이 그 제작과정의 기록을 무턱대고 SNS에 올려버리기도 한다. 스탭의 별것 아닌 SNS 불평도 ‘모 영화현장의 불합리한 처우’로 둔갑해버리는 세상이
[주성철 편집장] 결국 영화를 지킨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