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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블의 팬이 아니다. 고로 마블 작품은 보지 않는다. 실은 마블,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DC,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를 모두 보지 않는다. 자랑은 아니지만 사실이다. 미안하다, 사실이 아니다. 어떤 마블 작품은 본다. 흑인 문화나 힙합과 관련 있는 마블 작품은 본다. 그래서 <블랙팬서>(2018)도 봤다.
얼마 전엔 <루크 케이지> 첫 번째 시즌을 넷플릭스에서 정주행했다. 사실 이 시리즈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지루하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난 재미있었다. 뉴욕 할렘을 배경으로 하고,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래퍼 맙 딥이나 힙합 그룹 우탱 클랜을 대사에 집어넣는 작품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게다가 에피소드 제목도 죄다 뉴욕 힙합의 상징인 갱스타의 노래 제목을 빌려왔다. 하! 이건 끝내주는 ‘힙합’ 드라마다.
사운드트랙도 훌륭하다
[마감인간의 music] 메소드 맨 <Bulletproof Love>, ‘힙합’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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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계속되었다면 한국의 예술은 어떻게 됐을까? 어떤 예술가들은 사라졌을 테고, 어떤 예술가들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예술을 바꿔야 했을 것이다. 훗날 진실의 전모가 드러난다면 그제야 사람들은 박근혜 정권의 예술 검열이 비밀리에 진행된 대규모의 예술 학살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태가 완전히 종결되었다 말할 수 있을까? 그 원인은 충분히 밝혀져 제거된 것일까?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의 책임규명 요구가 있은 지 두달이 넘은 시점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문제 인물들에 대한 “조치”를 담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자 68명에 대한 이행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진상조사위와 예술인들이 반발하자 문체부는 자신들의 조치는 사실 매우 강력한 것이며 예술계의 부정적 반응은 국민의 오해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고 공개 대응했다. 이러한 문체부의 일련의 행동에는 대내외적으로 조직을
문제는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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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베넷 밀러 / 출연 채닝 테이텀, 스티븐 카렐, 마크 러팔로 / 제작연도 2014년
만나온 영화들이 있다. 어디서 만나게 되었는지,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저마다 사연은 다르다. 어떤 영화는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 같아서 좋았고, 어떤 영화는 방향을 일러주는 좌표 같아서 좋았다. 물론 싫어했다 좋아하기도 하고, 좋아했다 싫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와 나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는 아니니까.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1976)는 내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내 인생의 영화다.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직접 통화하기엔 껄끄러운 상대다. 20대 초반에 이 영화에 열광했었고, 여기에 엉겨붙은 기억이 일상의 수위 너머로 범람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은 마땅히 문자 메시지 정도가 편하다.
베넷 밀러 감독의 <폭스캐처>는 언젠가 이런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신동석 감독의 <폭스캐처> 질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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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tvN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MBC <무한도전>에서 떨어져나온 조각 같은 유재석-조세호 콤비에 9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려는 듯한 제목까지, 너무 뻔한 기획 아닌가, 라는 속단을 반성한 것은 우연히 방송을 보고서였다.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진 반려견의 모습을 남기고 싶다며 카메라 앞에 앉은 세탁소 주인의 소박하면서도 품위 있는 태도에 눈길이 머물렀다.
5연속 퀴즈 정답을 맞히면 바로 뽑아주는 상금 100만원은, 인생을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로또 3등에 당첨된 정도의 기분은 낼 수 있는 액수다. 아기를 안고 나온 여성이 캐나다에 사는 동생을 만나러 가고 싶다거나, 40년째 한자리에서 열쇠노점상을 해온 노인이 한번쯤 와이키키 해변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내비치는 순간,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정들어버린 그들이 꼭 상금을 받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퀴즈와 상관없이 쭈르르 앉았다가 발차기 시범을 보여주는 초
[TVIEW] <유 퀴즈 온 더 블럭> 다른 이를 위한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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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씨네21>과 나이가 같다. 그리고 올해도 공식 데일리를 발행하기 위해 일찌감치 이화정, 이주현, 김성훈, 송경원, 임수연 기자가 부산으로 향했다. 개막일에 발행되는 1호를 시작으로 영화제 내내 부산의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주말경 태풍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는데, 영화제측은 해운대에서 치러지는 비프빌리지 행사를 센텀으로 옮겨오면서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저 무사히 뜨거운 축제의 주말을 보내길 기원하는 마음뿐이다. 무엇보다 한동안 영화제를 떠나 있던 이용관 이사장, 그리고 역시 지난 2년여 동안 ‘야인’으로 지냈던 전양준 집행위원장이 함께 복귀하며 치르는 첫번째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한목소리로 ‘화합과 정상화, 그리고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들 외에 기존의 김영우, 남동철, 박도신, 박진형 프로그래머에 더하여 남경희 월드영화 프로그래머, 성지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 허경 와이드앵글 프로
[주성철 편집장] 이제 23살 부산국제영화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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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가 지난해 봄 발표한 열 번째 싱글 《분향》을 올여름 내내 들었다. 2007년 처음 이 밴드를 인지한 이유는 주변 입소문이었을까…?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오래된 일기를 뒤져보니 이런 구절도 있다. ‘브로콜리너마저, 장난 아니게 가슴을 후벼판다. 앨범에 든 모든 곡이 자연스레 요즘 오며가며 가장 자주 듣는 아이팟 노래가 되었다. 여자 보컬의 곡도 좋지만, 남자 보컬의 곡들- <끝> <청춘열차>- 도 좋다. 특히 <끝>은 정말, 들으면서 힘이 들 정도.’ 음악, 아니 노래는 주로 작업하는 패션 분야와 다르다. 유행과 시대상, 소위 무브먼트라고 하는 움직임에 신경 쓰거나 분석하며 듣지 않는다. 그래서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은 비슷한 시대를 겪은 또래 친구들과 나눈 넋두리와 닮았다. 고요한 밤, 집으로 돌아가는 ‘열두시 반의 거리’를 떠올린다. ‘이제 니를 몇번이나 더 보겠노’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너무나 얇은 손목과 발목
[마감인간의 music] 브로콜리너마저 《분향》, 여운남는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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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밀회>(2014)에서는 조선족 여성(서정연)이 재벌 회장의 구애를 단칼에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 이래봬도 모택동 주석이 대문호 루쉰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학교 다녔고, 만 인민이 다 평등하다, 내가 내 주인이다, 그렇게 배운 사람이요.” 내가 알기로 식당 일을 하는 ‘조선족’ 중년 여성을 사회주의 교육을 받은 배운 여성으로 재현한 건 이 드라마가 처음이었다. 계급-국적-젠더-나이로 켜켜이 쌓아올려진 스테레오타입이 한번에 부서지는 호쾌한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북한 여성들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지난 평창동계올림픽부터 남북정상회담에서 단연 화제는 북한 지도층 여성들의 거침없는 태도였다. 최고권력과 혈연과 가족의 연으로 이어져 있다고는 하나 그 당당한 태도로 미루어 짐작건대 북한 여성들은 남한의 정치인 부인이나 누이의 위치에서 허용되는 권력 이상을 누리고 있음에 분명했다.
하지만 한국영화에서 북한 여성들이 재현되는 방식은 구태, 그
남한영화의 북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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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으로 트라우마를 입은 다음 여생을 폭력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는 과거에 복수하는 중일까 아니면 생을 증오한 나머지 죽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일까?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조(호아킨 피닉스)는 가정폭력 희생자이자 퇴역군인으로 개인적 의뢰를 받아 성매매 조직에 납치된 미성년자들을 구조하는 일로 살아간다. 딸을 납치당한 어느 뉴욕 정치인의 의뢰가 조를 근본적 질문과 맞서도록 떠밀 때까지. 해결사로서 조가 일하는 방식은 피도 눈물도 없다. 그러나 본인은 거기에서 한점의 카타르시스도 얻지 못하고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린 램지 감독은 극도로 경제적인 연출로 영화가 설명을 배제할 때 다다를 수 있는 풍성함을 보여준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설정과 상징 등 여러 면에서 <택시 드라이버>(1976)와 어엿한 동시상영 프로그램으로 묶일 만하지만 변주라는 표현은 과소평가가 될 것이다.
09/02
<어른도감>(2017)에는 홀로 생활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길 밖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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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를렌 고리스 / 출연 빌레케 반 아메루이, 엘스 도터만스, 도라 반 더 그로엔, 비를레 반 오버로프 / 제작연도 1995년
20세기 말 한국 사회를 휩쓴 영화의 봄은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왔다. 소련이 몰락하자 사람들은 한때 꿈꾸었던 변혁의 길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화염병을 내려놓고, MBC FM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을 듣고, 시네마테크에 가서 예술영화를 보고, 으뜸과 버금 체인에서 비디오를 빌렸다. 때마침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개교했고, 친구들은 영화를 배우기 위해 영상원이나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영화저널이라는 타블로이드가 등장하여 영화잡지의 감수성을 혁신했고, <씨네21>이 창간되어 갑자기 사라진 영화저널의 뒤를 이었다. 전문성을 표방한 영화잡지 <키노>(KINO)가 등장하여 ‘보그체’(패션산업계나 관련 잡지에서 관행적으로 쓰인 외래어 남용 문체)와 쌍벽을 이룰 만한 현학적인 영화평론 문체를 유행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부산국제
김영민 교수의 <안토니아스 라인> 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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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오늘의 탐정>은 현재 한국에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직업인 ‘탐정’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행정사와 법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오늘의 탐정’이 처한 현실과 배경을 무척 꼼꼼하게 챙긴 드라마는 공권력 없이 의뢰인이 요구한 일을 조사하는 과정과 범주를 또렷하게 그려놓는 수고를 마치고, 주인공 이다일(최다니엘)을 죽여버렸다. 이후, 귀신이 된 다일은 연쇄자살사건을 일으키는 ‘생령’을 추적한다.
돈을 받고 누군가를 대리해 사건을 조사하던 인물이, 죽음으로 피해 당사자가 되어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사건을 풀어가는 <오늘의 탐정>의 기이한 위치를 역전하면 형사가 연쇄살인범에게 아내나 연인을 잃고 피해자의 가족이 되어 복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몇년간 유행하던 범죄수사물이 이 패턴과 겹친다. 한국 드라마의 ‘오열’ 신에 경찰 주인공의 지분이 늘어난 것도 이즈막이다. 공권력을 가지고 수사하는 이들이
[TVIEW] <오늘의 탐정> 주인공부터 죽이고 시작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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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때 그대의 보디가드였습니다. 이제 하늘로 가는 길에는 천사들이 보디가드가 되어줄 것입니다.” 지난주 에디토리얼을 쓰면서 레너드 번스타인 100주년 기념으로 오랜만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를 보겠노라 했었는데, 느닷없는 향수가 일어 최근 재개봉한 <보디가드>(1992)와 <탑건>(1987)을 보았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이제는 고인이 된 두 사람, <보디가드>의 배우 휘트니 휴스턴(1963~2012)과 <탑건>의 감독 토니 스콧(1944~2012)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휘트니 휴스턴의 장례식장에는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가 유족들의 요청으로 참석해 위와 같은 감동적인 추모사를 들려주었다. 촬영 당시 불화설이 돌기도 했지만, <보디가드>는 제작자이기도 했던 케빈 코스트너가 당대 팝의 여왕이었던 그녀의 콘서트 일정까지 감안하여 촬영을 무려 1년이나 기다려준 영화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주성철 편집장] 추석에 <보디가드>와 <탑건>을 다시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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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K시 가족여성과 내 출산장려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우리 시 출산율이 너무 낮아서 지난해에 팀명도 출산다문화팀에서 출산장려팀으로 바뀌었어요. 최근엔 관련 행사도 했어요. 관내 13살 이하 막내를 둔 가정 중 가장 자녀가 많은 ‘다둥이’부모를 선발해 지원하는 행사요. 첫 번째 후보는 30대 싱글맘이었는데 조금 문제가 있었어요. 이혼했냐고요? 아뇨. 결혼한 적이 없대요. 미혼모예요. 요즘은 비혼모라고 한대요. 비혼부, 비혼모부요. 팀장님에게 말하니까 둘이 한 아이를 키우기도 힘든데, 한 사람이 여럿을 키우다니 어딘가 수상하대요. 전 그렇게 생각하는 팀장님이 더 수상한 거 같은데. 우리나라는 낙태가 불법이잖아요. 여성이 스스로 임신을 중단할 권리나 자유는 없는데. 법적으로 임신 중단이 금지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고요.
하지만 팀장님이 그러네요. 삶엔 순서가 있다고. 태어나 교육, 취업, 혼인을 거쳐 가족을 이루는 거요. 이를 돕는 게 나라가 하는 일이다, 그런
출산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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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샘 닐, 로라 던, 제프 골드블럼, 리처드 애튼버러, 새뮤얼 L. 잭슨 / 제작연도 1993년
초등학생 시절부터 만화를 그려오다가 이제는 어엿한 만화가가 된 나는 영화를 볼 때 관찰자적인 자세가 된다. 영화 속에 빠져들어 주인공과 함께 웃고 울며 감상에 젖는 일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어려서부터 영화 뒷얘기에 관심이 많아 각종 잡지와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보며 영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창작되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아주 감정적으로 격한 장면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 나와도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든지 화면 구도가 참 아름답다든지 조명이 근사하다든지 따위를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특수효과다. 지금이야 거의 모두 컴퓨터로 만들어지니 큰 감흥이 없다만 컴퓨터 이전 시절의 영화에는 특수효과맨들의 인장이 영화 곳곳에 아주 깊이 박혀 있었다. 톰 새비니가 고안해낸 좀비 분장, 크리스 월러스의
조경규 만화가의 <쥬라기 공원>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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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아이>와 <죄 많은 소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잉글랜드 도싯의 체실 비치는 해안 어디께냐에 따라 자갈의 마모 정도가 달라 캄캄한 밤에 닿아도 어부들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곳이다. 그러나 막 체실 비치에 도착한 1962년의 신혼부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과 에드워드(빌리 하울)는 경우가 다르다. 둘은 삶의 희망찬 출발점에 서 있다고 믿지만 하루도 못 돼 의심에 사로 잡힌다. 순진하고 자존심 강한 젊은이들은 한번의 어긋남에 너무 멀리 내다보고 성급한 결론을 낸다. 앞으로도 당신이 원하는 걸 나는 못 채워줄 거고 그러면 대화가 줄 거야. 우린 불행해질 테고 내가 그 원흉이 되겠지? 영화를 함축한 한숏에서, 플로렌스는 해변에 부려진 조각배에 올라 마치 떠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분노한 에드워드는 소금기둥이 된 양 우두커니 서 있다. 도미닉 쿡 감독은 영화 내내 두 인물의 거리와 배치 구도에 정성을 들였다. 이 장면에서 프레임 밖으로 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애도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