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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팬이라면 <My Way>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영화 <친구>(2001)의 유오성을 떠올릴 것이다. 뭐, 이 곡의 명성이야 두말할 필요 있겠나. 프랭크 시내트라가 1969년 녹음한 뒤 팝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건 일종의 상식에 속하는 영역이다. 한데 이 곡은 프랭크 시내트라 오리지널이 아니다. 프랑스 가수 클로드 프랑수아가 발표한 샹송 <Comme D’habitude>를 영어로 번안해 발표한 것이다.
내가 갑자기 오래된 팝 클래식을 언급한 까닭은 이렇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프랭크 시내트라 버전을 감상하면서 ‘뭔가 좀 불편하다’ 싶었다. 그 이유를 곱씹어보다가 어느 순간 그만뒀는데 윌리 넬슨이 얼마 전 발표한 <My Way>를 감상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일단 <My Way>의 가사를 보라. 자신의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겨우 한 소절 부를 수 있을, 그런 내용 아닌가. 그럼에도 프랭크 시내트라
[마감인간의 music] 윌리 넬슨 <My Way>, 곡을 해석한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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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손등에 올라온 발진이 쉬이 가라앉지 않아 조금 겁을 먹고 병원을 찾았다.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은 대상포진을 걱정하며 호들갑을 떨던 나를 진정시키면서 그저 접촉성 피부염일 뿐이라고 약을 바르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며 웃어 보였다. 지난 몇주간 만진 거라곤 노트북과 외장하드 밖에 없는데 대체 어디에서 무엇에 감염된 건지 알 수 없던 나는 다시 한번 오랜 피로 누적을 들먹이며 대상포진 의심을 시도했다. 하지만 인내심까지 많은 상냥한 선생님은 손을 너무 자주 씻거나 심한 미세먼지에 노출되는 등 다양한 요소가 원인이 될 수 있다며 혹시 출퇴근길에 공사 중인 곳이 있냐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편집실 근처에 두개의 큰 빌딩이 한참 올라가는 중이었고, 며칠 전부터는 하수도 공사까지 시작해 가까운 길을 두고 한참을 돌아가고 있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버스 정류장에 내려 걸어가는 도중에도 신축 빌라와 상점들이 생겨나고 있었네. 정류장 앞도 무슨 일인지 잔뜩 파헤쳐지고 있었고. 가만있자
서울은 공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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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재개봉하는 <페르세폴리스>는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의 자전적 그래픽노블에 움직임을 부여한 핸드드로잉 애니메이션이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기에 유년을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유럽으로 이주한 마르잔(키아라 마스트로이안니)의 성장기는 독특한 ‘액자’에 담겨 있다. 영화는 안정에 도달한 현재의 주인공이 타인에게 들려주는 향수 어린 추억담이 아니라, 여전히 불안과 결핍을 안고 사는 마르잔이 담배를 피우며 빠지는 회상이다. 그의 부모와 할머니는, 젠더 불평등이 만연한 폐쇄 사회에서 딸이 행복할 수 없음을 확인하자, 딸을 변화시키는 대신 떠나보냈다.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라며. 그리움에 공항까지 온 마르잔은 차마 테헤란행 티켓을 사지 못하고 대합실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동시에 화면에서는 색채가 사라진다. 결말 즈음 영화가 다시 현재로 복귀하면 우리는 마르잔이 파리 공항에서 덧없이 보내는 하루가 이번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짐작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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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평생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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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기타노 다케시 / 출연 안도 마사노부, 가네코 겐 / 제작연도 1996년
시작에 관한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피를 흘리며 링 바닥에 쓰러진 안성기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계속 해볼랍니다!”라고 외치는 이장호의 <바람불어 좋은날>(1980)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연인을 뒤로하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려 길을 떠나는 주성치의 <서유기 선리기연>(1995)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이다. 목적 없이 부유하는 해파리 같은 고등학생 마사루와 신지. 수업은 흥미가 없어 학교에서는 노상 장난만 치고,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프라모델’이라고 답하는 둘. 주위의 시선은 당연히 따갑기만 하고 어른들은 기대를 버린 지 오래. 언제나처럼 시시껄렁한 짓을 일삼던 어느 날, 권투 선수에게 두들겨 맞은 마사루는 그 선수가 다니는 체육관에 등록을 해버린다. 복수를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따라 구경
김보통 작가의 <키즈 리턴> 아직 상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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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과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가 연이어 히트하던 시절, 친구들끼리 주고받던 농담이 있다. “살아 있나?” “노래는 부르네.” 여태 그러고 있으면 융통성 없단 소리를 들을 테지. SBS <흉부외과: 심장을 훔친 의사들>(이하 <흉부외과>)의 제목도 그저 (시청자의) 마음을 빼앗는다는 의미려니 했다. 정말로 첫회부터 의사가 심장을 훔쳐 달아날 줄이야.
대선후보에게 이식할 심장을 운반하던 태산대학병원 흉부외과 펠로 박태수(고수)는 수술방에서 그를 기다리는 집도의 최석한 교수(엄기준)를 등진다. 아끼고 따르던 선후배이자 파트너였던 이들의 분열을 되짚어가는 <흉부외과>는 의문과 반전을 수술방 안팎으로 짜넣는다. 하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로 만들어내는 긴장은 윤리적인 거부감이 발생하기 쉬운 문제가 있다.
그 때문인지 드라마는 갈등이 빚어지는 응급과 이식수술 대부분을 의사들의 어머니, 형, 딸, 의사 본
[TVIEW] <흉부외과: 심장을 훔친 의사들> 심장이 정말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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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는 변동이 많았다. 무협 소설의 대가 김용 작가와 한국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 배우가 세상을 떠나면서 기존 편집안을 싹 바꿔야 했다. 송경원, 이다혜 기자가 김용에 대한 추억과 그의 작품들에 대한 헌사를 썼다. 나 또한 그로 인해 학창 시절 불면의 밤을 보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신성일 배우에 대해서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신성일 회고전과 야외특별전시를 준비하며 고인을 수차례 만났던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이 그 기억을 떠올렸다. 또한 기자들 저마다 <맨발의 청춘>(1964), <초우>(1966), <장군의 수염>(1968), <내시>(1968), <휴일>(1968), <별들의 고향>(1974), <길소뜸>(1985) 등 유독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들에 대해 썼다. 내가 더하고 싶은 작품은 이만희의 <원점>(1967)이다. 마치 장 피에르 멜빌 영화의 건조하고 쿨한 조직원처럼 근사하게 등
[주성철 편집장] 김용과 신성일, 그리고 남결영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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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시티팝을 종종 듣는다. 지금도 다케우치 마리야가 부르는 <Oh No, Oh Yes!>를 듣고 있다. 사실 이 곡은 시티팝이라는 장르를 통틀어 말하면 크게 유명한 노래는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매혹적인 시티팝 넘버로 남아 있다. 이 노래는 다케우치 마리야가 작사, 작곡했다. 시티팝의 아이콘 격인 <Plastic Love>의 주인공이자 위대한 뮤지션인 동시에 야마시타 다쓰로의 아내인 그분 말이다. <Oh No, Oh Yes!>는 그의 일곱 번째 앨범 《Request》에 수록돼 있다.
하지만 다케우치 마리야는 이 노래를 (1980년대 일본의 대표 아이돌) 나카모리 아키나에게 주기도 했다. 나카모리 아키나의 전성기 한가운데에 이 노래가 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다면 누구라도 그녀에게 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케우치 마리야의 버전은 서정적이지만 나카모리 아키나의 버전은 농밀하다.
<Oh No, O
[마감인간의 music] 다케우치 마리야 <Oh No, Oh Yes!>, 시티팝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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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5일, 내가 미누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다. 사무실 앞에서 연행당한 그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혔다. 말이 보호소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수감복을 입고 면회실의 아크릴 창 너머에서 친구들을 맞았다.
1992년 한국에 들어와 18년 동안 머물면서 그는 한국인과 이주민의 공존을 위해 노력했다.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리더였던 그는 한국말로 이주민의 권리를 노래했다. 그와 나는 정부가 주최하는 다문화주의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을 비판한 건 나였고 한국에 고마워한 건 그였다.
보호소 면회실에서 그가 말했다. “나의 18년 한국 삶은 처절했다. 네팔의 가족들과 18년 동안 떨어져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가보지도 못했다. 남북이산가족을 제외하고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았겠는가. 만약 나의 18년 한국 삶이 가차 없이 부정된다면 나는 불효자로 네팔에 돌아가 아버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의 말에 모두가 울었다.
그러나 그는 네팔에 돌아가
미노드 목탄, 미누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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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실제 엔딩은 따로 있지만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영화적 클라이맥스는 레이첼(콘스탄스 우)과 엘레노어(양자경)의 마작 게임이다. 전날 엘레노어의 아들 닉(헨리 골딩)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레이첼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엘레노어를 게임 룸으로 청한다. 관객은 청혼의 결과를 모른다. 엘레노어와 레이첼은 각각 동쪽과 서쪽에 앉고, 닉의 프러포즈에 대해 말을 주고받으며 동시에 손으로 안무하듯 마작의 수를 던진다. 마작은 화려한 손 움직임과 육면체의 패가 부딪혀 나오는 시청각과 촉각적 자극으로 영화에 자주 등장하지만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이 시퀀스는 각별히 효과적이다. 레이첼은 포커에서 카드를 노출하듯 패를 보이고 엘레노어가 그 기회를 잡는 순간 타일을 뒤집어 게임 전체가 처음부터 자기 손 안에 있었음을 드러낸다. 당신의 승리는 내가 허락한 것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이 클라이맥스는 경제학 교수인 레이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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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로버트 크레이머 / 출연 알베르트 필버 / 제작연도 1984년
로버트 크레이머 감독의 1984년 작품 <우리 모두의 나치>를 통해 약 40년이란 세월이 흘러 마주한 병약한 나치 전범은 꽤나 지적이며 친절하기까지 한 노인이다. 이 영화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불편한 깨달음을 넘어 노약자라는 사회적 관념의 카테고리 안에서, 이제는 보호 대상이 돼야 할 것 같은 가해자를 만나게 되는 혼란 속으로 관객을 소환한다. 끊임없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게끔 하는 이 영화를 위해서 우선 2명의 독일 감독 얘기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은 부자관계였던 베이트 할란과 토마스 할란이다. 베이트 할란은 나치정권 선전부 장관 괴벨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가장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 영화라 일컬어지는 <유대인 쥐스>를 만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 히틀러의 식탁에 초대받기도 했던 토마스 할란은 아버지와 그들 세대에 대한 증오를 품고 독일 극좌운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
조명진 프로그래머의 <우리 모두의 나치> 가해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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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진실을 담고 있는 명대사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넷플릭스 <김씨네 편의점>은 첫 에피소드부터 한방을 날린다. 캐나다에서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한국인 이민자 가정의 딸 재닛(앤드리아 방)은 교회에 나와 ‘멋진 기독교인 한국인 남자친구’(Cool Christian Korean Boyfriend)를 만나라는 엄마(진윤)에게,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며 조목조목 반박한다.
“우선, 멋진 한국인 기독교인 남자란 건 없어요. 멋지고 기독교인이면 한국인이 아니고, 멋진 한국 남자면 기독교인이 아니에요. 멋진 기독교인 한국인은 전부 여자라고요!” 아들 정(시무 리우)을 끔찍이 사랑하는 엄마는 “그럼 멋진 기독교인 한국인인 네 오빠는 여자니?”라고 우겨보지만 소용없다. 내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없는 장점을 모두 갖춘 (그리고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는) 남자를 어느 날 떡하니 대령할 것을 기대하는 엄마와 살아본 딸이라면 이 장면에서 수많은 기억이 떠올
[TVIEW] <김씨네 편의점> 어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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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종종 사소하게 탄생한다. 존 카펜터가 처음에 떠올린 제목은 <베이비시터 살인>이었다. 애초 <블랙 크리스마스>의 속편으로 고안한 이야기였지만 각본 작업을 하면서 독립된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제작비 조달에 난항을 겪으면서 이야기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모든 사건이 하루 동안 벌어지도록 이야기를 수정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특정한 하루가 선택되었다. 핼러윈이었다. 영화 <할로윈>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히치콕의 <싸이코>가 슬래셔 무비 장르의 태조 이성계라면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와 <블랙 크리스마스>는 태종 이방원이었으며, <할로윈>은 세종 이도였다. <할로윈>은 슬래서 무비의 모든 규칙을 집대성했으며, 이러한 규칙은 이후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를 비롯한 슬래셔 무비뿐만 아니라 대개의 호러영화에 의해 계승되었다. 1978년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할로윈>의 전설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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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생, 대학생일 때 방송가, 영화판, 가요 바닥이라는 단어를 썼다.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채로 규모가 작은 시장이었기 때문에 ‘판’이나 ‘바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지난 10월 26일, CJ문화재단과 <씨네21>이 함께하는, 미래의 스토리텔러를 육성하기 위해 진행하는 ‘스토리업’ 특강에서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그처럼 열악했던 과거의 ‘대중문화판’을 회고했다. ‘판’과 ‘계’가 어떻게 다르냐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이후 산업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영화는 물론 음악까지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가고 있다. 물론 그 둘을 합해도 이제는 게임시장 하나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영화판이나 가요 바닥이 아닌 ‘음악계’와 ‘영화계’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는 서글픈 현실이다.
그날 임진모 평론가의 특강 내용 중 흥미로운 대목은, 세대가 완전히 분리된 음악과 달리 ‘손에 손잡고’ 볼 수 있는 영화를 향한 부러움이었다. 요즘 남녀노소 다
[주성철 편집장] 영화와 음악 그리고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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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여름 헤라 서울패션위크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에서 막을 내렸다. 패션 디자이너 이한철은 젊은 남성복 브랜드로 고심한 흔적이 묻어났다. 헨델이 작곡한 오페라 <세르세>의 주인공이 부르는 <Ombra mai fu>가 불이 들어온 무대를 채웠다. 경건한 음악을 미성으로 부르는 고전 오페라는 거세 가수를 염두에 둔 음역으로 작곡했다. 그래서 현대에는 카운터테너와 남성을 연기하는 여성 성악가가 부른다. 안드레아스 숄의 1999년 음반이 떠오른다. 검정 테일러드 재킷과 카무플라주 MA-1 재킷, 짧은 메시지를 휘갈긴 크롭 상의와 과장되게 커다란 민소매 데님 재킷과 청바지를 입은 모델들이 무대를 점령했을 때는 노래가 마릴린 맨슨의 <Killing Strangers>로 바뀌었다. 옷깃과 헝클어트린 소매가 인상적인 라이더 재킷은 딱 지금 젊은이들의 옷이다. 고전 남성복과 워크웨어에서 영향을 받은 아이템이 가득하지만 간결한 디자인과 공식을 따르지 않은
[마감인간의 music] 안드레아스 숄 《Handel: Ombra mai fu》 (1999), 음악으로 패션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