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백 투 더 퓨처>(1985)의 개봉 30주년이자 <백 투 더 퓨처2>(1989)에서 마티(마이클 J. 폭스)가 타임머신을 타고 착륙한 미래다. 작가 봅 게일과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가 그린 2015년 상상도 속 화상통화, 안경형 개인용 정보통신기는 현실화됐지만, 공중부양 스케이트보드는 아직 개발 중이라 한다. 영화 속에서 홀로그램판 <죠스19>를 연출한 스필버그 2세- 1985년생 맥스 스필버그- 는 감독을 직업으로 택하지 않았고, <USA투데이>(사진)가 보도한 ‘퀸 다이애나’는 영국 왕비가 되지 못했다. 마티가 도착한 날짜는 10월21일. 누군가 <백 투 더 퓨처> 3부작을 재개봉할 계획이라면 둘도 없는 길일이다.
12/12
다 이루었도다. 피터 잭슨 감독의 <호빗> 3부작(<뜻밖의 여정> <스마우그의 폐허> <다섯 군대 전투>)이 완결됐다. 빌보(마틴 프리먼)는 차가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미래로의 회귀
-
피렌체의 작가이자 화가이자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이던 새비지 랜도어는 일본을 거쳐 조선을 방문하고 난 뒤 발표한 기행문에서 우리를 일컬어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 칭한 바 있다. 그것이 1895년의 일이니 햇수로 120년 전의 일. 훗날 언제부터인가 우리 스스로 올림픽이니 월드컵이니 대대적인 국가 행사만 있다 하면 아나운서들이 마이크 들고 앵무새처럼 그 상투적인 표현을 반복해대기 일쑤였으니 아, 알다시피 하루라도 고요할 일 없는 이 나라에서 탓을 하자면 거스르고 거슬러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 본 이탈리아의 그 학자부터 과녁 삼아야 할까.
괜한 억지임을 알면서도 서두가 길었던 건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온갖 갑의 횡포를 보다 못해서다. 비행기에서 황당무계한 갑질을 자행한 대기업 총수의 딸이 구속된 이후 이런저런 ‘사건’이란 이름을 단 다양한 갑질의 사례가 쏟아져나오고 있는 바, 전 국민의 호들갑에 살짝 어깃장을 놓자면 뭐 사실 이게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지 않았던가.
새해맞이
[김민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병이나 정도 있잖은가
-
SBS 월화드라마 <펀치>의 첫회. 새벽기차가 지나가는 요란한 소리에도 곤히 잠든 사내가 보인다. 철도 건널목 옆의 세탁소 살림집을 두드리며 다급하게 그를 찾는 목소리가 기차 소음에 섞여든다. “정환아! 정환아!” 검찰총장직을 노리는 서울중앙지검장 이태준(조재현)이 다른 이가 유력 후보로 거론된 조간신문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 7년 전부터 이태준의 오른팔로 살아온 중앙지검 특수부 부부장인 박정환(김래원)은 바로 태준을 안심시키고 검찰 인맥을 동원, 후보를 협박해 사퇴를 받아낸다.
박경수 작가는 <추적자 THE CHASER>에서 사회 구석구석 불의한 거래가 성사되는 과정을 짚어가며 부조리의 내부를 들췄고, <황금의 제국>에선 위기마다 물러섬 없이 베팅하며 욕망을 확장하는 남자를 보여줬다. 거래와 대가의 면면을 집요하게 쫓을수록 이야기의 끝엔 필요를 만들고 대가를 지불할 수 있으며, 판돈을 크게 쥔 재벌 총수들이 혼자 남아 쓸쓸한 그림을 연출하곤 했다
[유선주의 TVIEW]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년 12월이면 이삭줍기에 바쁘다. 게을러서 제때를 놓친 주요 영화를 해 바뀌기 전에 보려는 노력인데 말하나마나 중과부적이다. 올해의 가장 굵은 이삭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였다. 스웨덴판 <렛미인> 이후 가장 아름다운 뱀파이어 영화, 올해의 제일 개성적인 코미디, 도시를 감식하는 고수의 안목, 덤으로 따라붙은 가장 멋진 소파와 최고의 디저트. 결정적으로 듀이 십진분류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독서광 이브(틸다 스윈튼)의 장서 더미는 <행복한 사전>의 편집실,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서가와 더불어 온 세상 애서가를 황홀하게 만들 이미지다. 여기서 더 바라면 도둑이다.
12/05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감독 자신이 별로 믿지 않는 이야기를- 정확히 말하면 그다지 개의치 않는 스토리를- 어쨌거나 장대하게 찍는 방법의 시범으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형제여, 그 물을
-
-
SK그룹 최철원은 야구방망이로 노동자를 두들겨팼지만, 재판부는 끝내 실형을 면제해줬다. 대신 검찰은 폭행 피해자를 업무방해죄 등으로 기소했고, 기소 검사는 이듬해 SK건설 전무급 임원으로 영입됐다고 한다.
재벌이라는 성부 아래, 그들을 모시는 법피아와 관피아가 끈끈한 상부상조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모양새랄까. 재벌 2세들이 대놓고 갑질할 만하겠다. 대한항공 조현아가 아무리 비행기를 돌려세워도, 음과 양으로 보필해줄 국토부가 버티고 있었을 테니 땅콩쯤이야 뭔 대수였겠는가. 심지어 저기 강남 아파트 부유층들은 경비원에게 빵을 집어던지고, 그가 분신자살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파트 경비들을 모조리 해고하는 세상이다.
바야흐로 중세의 귀환. 자본과 관료와 법이 씨줄, 날줄로 엮여 권력을 독점하면서 ‘슈퍼갑’들이 도래하고 있다. IMF를 경유하며 공고화된 신자유주의, 그리고 MB 정권부터 본격화된 친자본 정책들이 결과한 당연한 풍경. 노동자를 머슴으로 취급하며 인격을 박탈하고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착한 주인’이면 다 되는가
-
극히 보통의 여고생들이 무엇을 하고 여가시간을 보내는지(여대생에게도 없는 여가시간이 그들에게 만약 있다면 말이다)는 잘 모르겠다. 단지 빡빡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나서 입학한 대학에서도 과목만 바꾼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만이 언론을 통해 그나마 알려진 정보다. 왕따, 조기유학, 스마트폰 중독, 자살… 이런 자극적인 키워드가 그들의 가장 깊은 속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순수한 시기에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의 문제 앞에 자신을 반듯이 세워나가는지. 우리는 사실 잘 모른다.
JTBC에서 매주 화요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선암여고 탐정단>은 여고생들이 탐정단을 조직해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여러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해나간다는 기둥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하나같이 사회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서두에 언급한 조기유학이나 입시제도, 뇌물이나 학원폭력 등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상당히 깊고 묵직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 약간은 놀랍다.
[김호상의 TVIEW] 우리, 조금 더 상상하게 해주세요
-
일도 잘 안 풀리고(얼마 전엔 드디어 영화가 하나 더 고꾸라졌다, 도합 5연타인가… 싸블알), 눈은 추적추적 내리고, 또 비행기는 돌았고 헌법재판소도 돌았으니, 내가 도통 뭐하는 짓인가, 영화 그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고민이 많아지는 저녁이다. 물론 정답은 언제나 하나다. 영화는 정서, 느낌, 휠링, 이모션,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그대가 사랑하는 영화를 아무거나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장면을 떠올려보라, 바로 그게 정서, 느낌, 휠링, 이모션, 사랑은 창밖에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하지만 정서는 글로 옮기기 힘든 데다가 정서 타령만 하자니 지면이 너무 남을 듯하다. 그래서 준비했다(반말 죄송). 영화 그대는 누구인가에 대한 여섯 가지 대답.
영화라면 반드시 찾아오는 육형제
지금부터 폭로(?)할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술어 여섯 가지를- 영화 교과서에서 허풍 떠는 것처럼- 내러티브 공식인 것처럼 과장하고 싶진 않다. 미리 말하지만 그런 공식은 없
[곡사의 아수라장] 666
-
스물한살에 처음 비행기를 탔다. 학교에서 지원금이 나온 제주도 답사 덕분이었는데 가슴이 두근거려 뜬눈으로 밤을 새웠지만 비행기 안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 시절에도 일찍이 해외여행 갔다온 관록을 과시하던 강남 후배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누나, 비행기 타면 오렌지 주스가 나오는데 자는 사람한테는 안 줘요.” 그래서 나는 졸린 눈을 부릅뜨고 기다렸다가 주스를 받아 마셨다. 주스는 집에도 있지만 이건 비행기 주스니까. 그때는 몰랐다, 음료수는 주스만 있는 것이 아니며 자다 일어나서도 음료수를 받을 수 있고 비행기 안엔 땅콩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 뉴스를 보다가 왠지 그 땅콩이 먹고 싶었다. 대한항공을 타면 주는 땅콩, 견과류를 싫어하는 나도 꼬박꼬박 받아먹는 꿀 바른 땅콩, 고소하고 달콤한 대한 땅콩. 남들은 불합리한 기업의 소유 구조와 재벌의 행태를 비판하며 분노하는데, 나는 왜 땅콩이 먹고 싶었던 걸까. 30대 중반에 가난 귀신이 내리면서 먹을 것이 있으면 일단은 몽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땅콩이 먹고 싶어졌어
-
*<액트 오브 킬링>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우는 알겠는데 캐릭터 이름은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고, 영화제목만 기억날 수도 있다. 관객에게 분량을 아쉬워하게 만들었던, 때로는 배우의 이름을 확인하려고 엔딩 크레딧을 기다리도록 붙잡았던 조연들의 졸업앨범이다. 어느 영화 속 누구인지 열여섯 캐릭터를 빠짐없이 맞힌 독자에게는… 2015년 선택하는 영화 중 최소 8할이 기대 이상인 행운을!
11/28
얼굴에 모닥불을 확 끼얹는 영화가 간혹 있다. <액트 오브 킬링>을 보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하라 가즈오 감독의 다큐멘터리 <가자 가자 신군>(1987)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태평양전쟁으로부터 살아 돌아온 늙은 남자가, 은퇴한 일본의 전쟁 책임자들을 찾아가 추궁하고 멱살을 잡는다. 수십년이 흐른 후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피해자의 분노가 <가자 가자 신군>을 잊을 수 없는 다큐멘터리로 만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얼굴들
-
며칠 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다녀왔다. 보건복지부가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치유센터를 건립했는데 그곳에서 주최한 인문학 콘서트에서 민망한 ‘저자와의 대화’를 했다. 원래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강사료와 지역부터 확인하지만 이번 안산 강의는 강사료도 묻지 않고 무조건 한다고 했다. 의식했든 안 했든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째는 죄의식과 부채감을 덜고 싶었다. 나도 세월호를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는 자기위안이 필요했다. 두 번째는 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배우고 싶었다. 말할 것도 없이, 두 가지 모두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강의가 끝나자 어떤 시민이 말했다. “사고 이후 안산 시내에는 두 가지 플래카드가 넘쳐났어요. 하나는 잊지 않겠다, 행동하겠다 그런 거였고 또 하나는 온갖 강연 소개였어요. 평소에는 ‘인(in)서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유명한 분들이 우르르 몰려온 거예요. 예전에는 안 오시던 분들이…. 특강 오는 분들은 이렇게 한번 다녀가고 나면 면죄부를 얻어가는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위로
-
민방위 사이렌에 발이 묶인 18살 여고생과 28살 남자가 얼떨결에 분식집에 마주 앉았다. 부모에게 속아 병원에 끌려갔던 기억, 흔들리는 이를 뽑혔던 유년기 추억담을 주고받던 중, 남자는 입가에 떡볶이 국물을 묻히고 재잘대는 여고생의 말에 순간 얼이 빠졌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를 막 때렸잖아요. 그러고는 아빠랑 같이 뽑은 이를 지붕 위에 올렸더니 다음날 아무리 흔들어도 아버지가 안 일어나시는 거예요. 돌아가신 거죠.” 동생 몫으로 포장한 떡볶이를 챙긴 여고생은 말을 잇는다. “위암이었거든요. 난 또 내가 때려서 못 일어나시는 줄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훈련 해제 사이렌이 울리자 쏜살같이 사라진 그녀는 tvN 드라마 <일리 있는 사랑>의 주인공 김일리(이시영)다.
난감한 화제를 어린애처럼 두서없이 늘어놓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일리는 친구가 없다.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자신을 안드로메다로 데려다줄 UFO를 기다리는 모습이 그다지 외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여기가 아닌
[유선주의 TVIEW] 일리 있는 한눈팔이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순간순간 예측하기 어렵지만 크게 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소녀와 중년 여성의 러브 스토리에서 어린 유혹자 역할로 스타덤에 올랐던 배우 마리아(줄리엣 비노쉬)는, 20년이 흐른 이제 버림받은 상대 여성을 연기하게 됐다. 연습 중인 마리아는 구름의 움직임을 바라보기 위해 거듭 언덕에 오른다. 거기 해답이라도 있는 것처럼. 많은 화가들도 일찍이 그랬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반 고흐의 <올리브 나무>,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드레스덴 인근의 큰 목초지>,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의 <헤라클레스의 숭배>, 콘스터블의 <봄 구름 습작>(모두 부분).
11/19
“긍정의 힘”이라는 표현을, 이해하지만 좋아하지는 못했다.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는 외재하는 문제들을 내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려 동일한 문제의 영향권에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오로지 긍정의 힘에만 의존해야 하는 고역을 재생산하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내가 그릴 구름 그림은
-
홍콩영화로 퍼즐을 맞추어보자. <타락천사>에서 하지무(금성무)의 집은 홍콩의 슬럼화된 거주지로 유명한 ‘청킹맨션’이다. 이곳에서 그의 아버지는 밀려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숙박시설을 운영한다. 영어 제목부터 ‘청킹 익스프레스’인 <중경삼림>의 무대는 청킹맨션 1층의 패스트푸드 가게다. 금성무가 연기한 경찰223은 이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청킹맨션의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해 마약을 밀매한다. <첨밀밀>의 이요(장만옥)도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일한다. 그녀는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돈을 벌려고 건너온 촌뜨기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증권 투자와 환투기 시장에 입문한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즈음 그녀가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을 때, 한 부유한 중국인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엔 다들 중국으로 돌아가려고 난리지. 돈 벌 기회는 그곳에 다 있으니까.” 또 다른 영화 <2046>은 홍콩 반환 50년 후가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홍콩 퍼즐
-
공중파에서 시간 맞춰 방송되는 외화가 낙인 시절도 있었다. 주제가도 많이 흥얼거렸고, 심지어는 <제시카의 추리극장> <전격 Z작전> 그리고 그 유명한 <맥가이버>등의 주제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둔감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자극으로 뭉쳐진 현재의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이것도 봐야 하고, 그 집의 음식도 먹어봐야 하는 데다가 음악마저 ‘1분 미리 듣기’로 판단되는 2014년이니까.
그 2014년에 이 고색창연한 탐정 드라마를 보게 된 계기기 바로 주제가였다. 랜디 뉴먼의 <It’s a jungle out there>. 이봐요, 바깥은 정글이에요… 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이 주제가가 흐르는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골든 게이트 브리지를 줌인하는 오프닝이 펼쳐진다. 제법 감성적인 도시의 풍경이 흐른다. 그리고 연이어 등장하는 우리의 무표정한 주인공, 탐정 몽크. 오프닝 화면만으론 정글과의 연계성을 찾기가 힘들다. 하
[김호상의 TVIEW] 세상은 정글, 음악은 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