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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아주 재밌는 페스티벌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테크노 뮤지션 바가지 바이펙스써틴이 기획한 ‘열받아서내가만든페스티벌2015’다(이하 내만페). 지난 8월22일 이태원 클럽 놈코에서 열렸으며 클럽 신이 들썩거릴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물론 수만명이 몰렸기 때문에 대성황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날 놈코에 들렀던 사람들의 만족도와 클럽 신에 일었던 화제의 정도를 생각하면 커다란 파장이었다. 이태원에서 소규모로 열린 이 축제가 이만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축제 포스터와 함께 게시된 바가지 바이펙스써틴의 기획의 변 때문이었다. 바가지 바이펙스써틴은 이 페스티벌을 기획한 이유가 “너무 화가 나서”라면서, EDM 열풍에 편승해 우후죽순 생겨나는 수준 낮은 페스티벌이 너무 많아졌다고 비판했다. 또한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된 EDM 디제잉을 넘어 일렉트로닉 댄스의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는 “안티 커머셜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내만페에는 무려 40명의 디제이가 참가했고 3
[마감인간의 music] 메시지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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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한 사회가 짊어지고 있는 갈등의 양상은 다양하다. 그것은 단순한 의견 충돌일 수도 있고 위계에 의한 소통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이해관계에 따른 분쟁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혹은 역사적 상흔을 두고 남겨진 자들 사이에 처리해야 할 사과와 용서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사실 갈등이 없는 사회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중요한 건 어떠한 문제해결과정을 거쳐 이러한 갈등을 ‘다루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더불어 그런 문제해결과정이 사회 전반에 어떠한 학습치를 남기느냐가 중대하다. 거기서 한 사회의 수준과 격, 그리고 지속 가능성이 결정된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거기 갈등이 있는데 갈등이 없다고 치부되어버리는 사회에서 발생한다. 이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가해자가 지금도 여전히 힘 있는 가해자로 군림하고 있으며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침묵으로 지워내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지금 우리가 들여다볼 나라가 바로 그런 나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병든 자들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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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4>와 <오피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침묵의 시선>에서, 50년 전 인도네시아 민간인 학살로 형을 잃은 아디는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방문해 왜 그랬는지 묻는다. 누구 하나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죄하지 않는 가운데 유일하게 사과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잔혹 행위가 금시초문인 여인이다. 아버지를 평생 존경해온 효녀의 얼굴은 대화가 진행될수록 굳어가고, 아디가 피살자 유족임을 밝히는 순간 쩍 하고 금이 간다. 아버지의 체면을 지키려는 안간힘 와중에도 그녀의 눈은 충격과 연민을 감추지 못한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이제부터 우리 가족처럼 지내요.” 둘은 포옹하지만 떠나는 아디는 씁쓸해 보인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떤 부피의 고통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인은 아디가 좀더 머물길 바라지만 차마 붙들지 못한다.
08/17
<판타스틱4>에 대한 혹평은 일약 에스컬레이터를 올라탄 느낌이다. <뉴욕타임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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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은 영화 관객과의 대화(GV) 질문 중 하나. 지난해 학교폭력을 다룬 내 영화 <야간비행>을 베를린에서 상영할 때였다. 20대로 보이는 한국인 관객이 손을 들고 이런 질문을 했다.
“한국의 내부 문제를 이렇게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면 한국에 대한 인상이 나빠질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순간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지만, 입천장에 맴도는 문장은 이랬다. ‘맙소사, 국뽕이다.’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도 아니지만,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입시지옥과 학교폭력을 외면한 채 내세우는 국가 이미지란 대체 얼마나 위선적인가. 저 위선의 애국심을 다른 나라에 와서 20대 젊은 청년의 입을 통해 대면해야 하나 싶어, GV가 끝나고도 한참을 심란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반가량이 지난 오늘밤, 기이하게도 ‘헬조선’이라는 유행어와 마주앉아 있다. 1년 반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어느 순간 헬조선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SNS에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2030세대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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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지출하고 받는 영수증을 모아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영수증 일기는 개인 블로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제 받은 영수증만으로 자신을 패턴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혹은 2년간 받은 영수증을 모으고 체계적으로 분석한다면 그 종이 더미 속에서 미처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쇄쇼핑가족>. JTBC에서 토요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날그날 주제가 주어진다. 박명수, 이영자, 써니, 박지윤, 박원으로 이루어진 5명의 MC는 우리 사회 소비의 중심에 서 있는 2040세대로 특징지어 선별된 듯 보인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의견교환이 이어지기 전에 MC들이 그주에 소비한 영수증을 제출하고 서로 분석한다. 주제가 자리를 잡으면 섭외된 전문가 한 사람이 알짜지식을 풀어놓는다. 중간중간 동명의 타이틀을 가진 <연쇄쇼핑가족>이라는 시트콤을 배치해 시청자의 감정이입과 프로그램의 진행을 돕는다
[김호상의 TVIEW] 쇼핑으로 보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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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다시 보는 영화가 있다. 피서용 납량영화는 아니다. 늦여름 바람 불고 벼락 치고 비 쏟아지는 밤에 혼자 보는 영화다. 영화사에 남는 위대한 걸작은커녕 IMDb 평점 6점도 못 넘었지만 나의 오독과 편애와 어떤 슬픔으로 다시 찾게 되는 영화. 심지어 결말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눙쳐버린 영화. 분명한 실패작.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관객이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네이크 아이즈>(1998)다.
허리케인 제제벨이 불어닥친 애틀랜틱시티. 호텔 카지노 겸 실내 경기장에서 복싱 헤비급 타이틀전이 열리고 미 국방부 장관도 보러온다. 꽃무늬 셔츠에 가죽 재킷을 입고 자기 구역을 쏘다니는 릭(니콜라스 케이지)은 잔뜩 신이 나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 특유의 흥분한 액팅으로 보여지는 릭은 아내와 정부를 동시에 통화 대기시키며 승패 도박에 베팅하느라 바쁜 부패 형사다. 이 썩은 도시의 자칭 왕인 그는 나중에 시장으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폭풍과 안개의 존재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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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암살>은 1200만 관객을 돌파할 기세이고 <베테랑>은 대망의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불과 2주차의 시간을 두고 개봉한 두 한국영화가 나란히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범죄의 재구성>(2004)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라는 데뷔작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장르적 취향과 비전이 뚜렷한 두 감독의 영화라는 점에서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구나 여러 인터뷰를 통해 거론된 것처럼, 시대적 배경을 달리하면서도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 질문하는 영화들이라는 점에서 현재 천만 관객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게 된다. 무엇이 대중으로 하여금 뒤늦게 정의를 갈구하게 만들었을까.
<암살>과 <베테랑>의 흥행을 축하하며 이번 1020호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다른 여러 기사들도 꼼꼼한 일독을 부탁드린다. 먼저 위의 두 영화를 포함해, 공교롭게도 올해 한국영화에
[에디토리얼] 유족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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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미국, 일본, 중국, 북한, 러시아가 익숙한 우리로서는 너무나 생경한 나라다.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는가? 심지어 철자도 생소하다. C-Z-E-C-H. 중국 요리, 태국 요리, 프랑스 요리는 들어봤어도 체코 요리는 못 들어봤다. 폼 잡으려고 카프카 소설을 읽어봤고, 빨갱이 코스프레를 하려고 카렐 코시크(<구체성의 변증법>)를 읽어봤을 뿐이다. 체코영화는 어릴 때 예고편으로만 본 <프라하의 봄>이 전부다. 영화보다는 오히려 체코 데스메탈(멜랑콜리 페시미즘)과 개막장 고어 그라인드 밴드들(지그-아이, 스패즘)을 더 많이 알고 있으니 말 다했다. 그러나 체코는 의외로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지닌 나라다. 서유럽과 동유럽 강대국들 사이에서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시달리기만 했던 것도 비슷하고, 오스트리아 합병 이후 나치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것도 비슷하다.
체코 인형극은 바로 그 식민지배 시절의 문화적 자구책이었다고 한다. 식민통치가 시작되고 독일어 사용이 강요되자
[곡사의 아수라장] 괴뢰는 스스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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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키드’라는 뮤지션이 있다. 국적은 프랑스. 1983년생으로 2011년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해 2013년에야 데뷔작 하나를 냈다. 우드키드는 애니메이션 제작과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특히 뮤직비디오 분야에서 그의 성취는 도드라진다. 테일러 스위프트, 존 레전드, 라나 델 레이, 케이티 페리 등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가수들의 뮤직비디오가 바로 그의 손에서 빚어졌다. 이후 뮤지션 활동을 병행하면서 우드키드는 당연히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연출했다. 그중에서도 <Iron> <Run Boy Run>, 이렇게 두곡의 뮤직비디오를 꼭 찾아보기를 권한다. 항시 모노톤만을 고집하는 그의 뮤직비디오는 ‘연속적인 강렬한 이미지’를 그 특징으로 한다. 우드키드에 따르면 모노톤과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은 음악을 부각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에 맞춰 그의 음악도 대부분 웅장한 편곡을 강조하는 스타일을 지향한다. 언뜻 듣기에는 선율이 즉각적으로 다가올 것이지만, 자
[마감인간의 music] 보이는 음악, 들리는 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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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꿈을 먹고 자라던, 아니 그 나이에 새삼스럽게 자라기는 어려우니까 그냥 살만 찌던 스물다섯, 회사에서 야근하고 있는데 두살 많은 남자 동기가 애절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와서 나 좀 구해줘.” 선배들이 술 먹자니까 좋다고 나만 버리고 나가더니 꼴좋구나, 어디 한번 날이 새도록 아저씨들한테 고문과 농락을 당해보려무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 착했던 나는 날개를 달고 날아가 회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단란주점에 2분 만에 착륙했다. 동료가 “좀전에 몰래 (무척 맛있고 비쌌던 그 집의) 소고기 튀김 시켰어”라며 전화를 끊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도착하니 그곳의 광경은, 목불인견, 눈이 있는 자라면 차마 볼 수 없었지. 동료는 벌떡 일어나더니 내 어깨를 안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제 여자친구가 왔네요, … 누님.” 그랬다, 동료는 선배들로부터 구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누님들로부터 구해달라고 애원했던 거였다. 그렇다면 그 누님들은 어디에서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아무나 기러기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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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암살교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라클 벨리에>의 폴라(루안 에머라)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지만 선천성 청각장애자인 부모와 동생은 폴라의 노래가 얼마나 특별한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가장 사랑하는 이들과 나눌 수 없는 것만 해도 10대 소녀에게 이미 큰 짐이다. 더구나 폴라는 가족의 귀와 입이 되어 외부 세계와의 모든 접촉에 동석해야 한다. 폴라의 첫 생리 장면에서 관객은 다른 이유보다 초경도 치르지 않은 앳된 소녀가 지금까지 영화에서 목격한 그 많은 일을 했단 말인가 놀라게 된다. 다행히도 폴라의 희생은, 천사병이나 부채감이 아니라 건강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때가 오면 소녀는 가족을 향해 입술과 손가락으로 담담히 노래할 수 있다. 이제 떠난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조금씩 더 멀어질 거라고, 또한 사랑한다고.
08/12
메이킹 필름만 모아 상영하는 영화제 어디 없을까? 영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바쁜 손, 예쁜 손, 슬픈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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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2002)에는 명대사가 넘친다. 박해일의 “그 남자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소설가를 꿈꿨지만 출판인으로 살아가는 문성근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란 말야, 평생을 팔아먹을 수 있는 상처가 있어야 해. 근데 나는 너무 행복하거든. 그래서 포기했지.”
여성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니 상처의 영어 자막이 “wound”였다. 이 단어는 자상(刺傷), 베인 곳이 깊어서 뭔가 고여 있다는 느낌이다. 그 공간이 치료되지 않은 채 평생을 사는 것이다. 문학이 아니더라도, 모든 글쓰기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말이 되는 생각’이 계속 샘솟아야 한다. 인간에게 그런 생각은 원한, 분노, 억울함, 한(恨) 등 ‘범(汎)상처 계열’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창작자는 연애와 실연을 반복한다. 그만한 고통이 없으니까.
대학에서와는 반대로 인문학, 글쓰기 교실 열풍이다. 비싼 가격, 강사의 인지도, 장소의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만만한 듯 어려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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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리에 활동하는 국정원 요원(MBC <7급 공무원>)이었고,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 형사이자 각시탈을 쓴 독립투사(KBS2 <각시탈>)였던 주원이 이번엔 종합병원 외과 레지던트라는 신분을 숨기고 돈을 벌기 위해 조폭들을 출장 수술하는 ‘용한 돌팔이’가 되었다. 환자 보호자에게 노골적으로 생색을 내고 사례비를 뜯어내는 속물인 동시에 병원에 방치된 무연고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킬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하는 의사. SBS 드라마 <용팔이>의 공식 홈페이지는 주원이 맡은 김태현에 대해 ‘자신도 모르는 휴머니스트’라고 소개한다. 물론 태현의 주위에는 그가 휴머니스트인 것을 알아보는 조력자들이 있다. 속물로 오해받고 사는 게 억울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너스레를 떨며 빙긋 웃는다. 속물인 쪽이 돈을 벌기 수월하니까 목적에 맞게 위악의 껍데기를 선택한 그는 필요 이상의 자기연민을 흘리지 않는다. 위악은 태도의 전략이고 그 전략을 통해 편의를 취했음을 잊어버리지 않는 영
[유선주의 TVIEW] 이런 휴머니스트 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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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한여름 오후의 이발소 안. 콧수염 사내가 의자에 앉아 면도를 기다리고 대머리의 뚱뚱한 이발사가 면도칼을 가죽띠에 갈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한다. “옛날 만화들 얼마나 좋았어요? 박기정의 <오빠생각> <기러기> 아! 요샌 그런 만화가 없어요.” 이명세 감독의 영화 <개그맨>의 한 장면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어두컴컴한 만홧가게의 한구석에서 <오빠생각>을 읽으면서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던 초등학교 4학년 때를 생각하고 웃었다.
겨울방학이 되어 용두동으로 이사를 간 친할머니 집으로 놀러갔다. 밤늦게 사촌 형이 들어왔는데 그는 시멘트 포대로 둘둘 만 뭔가를 옆구리에 끼고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사촌 형이 시멘트 포대로 숨겨가지고 온 그것이 뭔가 대단한 것임을 눈치챘다.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취직도 못하고 낮 동안에는 빈둥빈둥 당구장과 극장을 배회하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백수건달 사촌 형은 어린 나를 소 닭 보듯 하거나 귀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그런 눈을 가진 만화 주인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