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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역을 맡은 명사의 강연이나 감성 에세이의 상투적인 문구 중에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이 있다. 삶의 주도권을 잃지 말고 자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충고와 깨달음이 오가는 자리에서 잠시 이탈해, 어떻게 하면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내가 서술자이자 주인공이 되어 인생을 극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만의 느낌과 감정으로 사소한 일상의 파문을 증폭하다보면 어느새 친구가 등짝을 후려치며 ‘드라마퀸’ 같다고 놀린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지만, 쟤 인생의 나는 사소한 일에 호들갑 떨고 모든 화제를 자기 위주로 빨아들이는 대화의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을 드라마에 빗대야 한다면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배역을 품앗이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김인영 작가의 KBS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각자가 서술자가 되고 또 서술의 대상이 되는 촘촘한 관계망 속의 여성을 다룬다. 남편을 사이에 둔 연적 관계에서 시작해 모녀, 자매,
[유선주의 TVIEW] 타인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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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지 않았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길을 다니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이름을 불러댈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창피했다. 어색한 미소가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누군가 그를 이렇게 부르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브라이언이다!”
묘한 일이었다. 그 이름이 들려오면 모든 게 달라졌다. 그것은 그에게 많은 걸 환기시키는 이름이었다. 그는 그렇게 불리는 걸 좋아했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브라이언을 연기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이 역할로 최악의 배우에 노미네이트되었던 기억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브라이언 오코너를 사랑했다. 어쩌면 돔보다 더 말이다. 당장 닷지 차저와 나란히 질주하는 닛산 GT-R의 배기음이 들려올 것만 같다. 2013년 11월30일 토요일, 재능 있는 배우이자 훌륭한 레이서였던 폴 워커가 차에서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에게 <분노의 질주>는 그저 얄팍하고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시적으로 이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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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일본 <후지TV>에서 방송된 드라마가 있다. <오리엔트 급행 살인 사건>. 단출하게 2부작으로 기획되어 방영된 특집극이었지만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웃음의 대학>의 재기발랄한 각본가 미타니 고키가 각색했고 다마키 히로시, 마쓰시마 나나코 등 특급배우의 출연으로 일본 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을 일본의 실정에 맞게 각색한 이 드라마는 결국 16%를 상회하는 시청률로 관심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 전설적인 추리소설의 진정한 맛은, 밀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말하지만, 그 말이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들이 누구인지까지도.
‘음치도 최후의 1인이 될 수 있는 대국민 추리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시작한 음악 프로그램이 있다. 아니,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Mnet에서 방송되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가 그것이다. 목소리는 듣는 것이지 보는 것이
[김호상의 TVIEW] 영리한 포맷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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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눈사태가 스키장 레스토랑을 덮친다. 사상자는 없다. 깔려죽은 것은 위기의 순간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혼자 줄행랑을 쳤던 남자의 에고다. 가족의 공기엔 살얼음이 끼기 시작하고 이윽고 “나는 생존 본능의 희생자야!”라는 남자의 울부짖음이 쾌적한 호텔 복도에 울려퍼진다. 루벤 외스트룬드 감독은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의 배경인 스키 리조트를, 사나운 자연과 그것을 길들이려는 문명이 부딪치는 장소로 소개한다. 광막한 설산과 5성급 호텔의 편의시설, 동물적 본능과 문화적으로 구성된 셀프 이미지가 대조된다. 특히, 네 식구가 쓰는 같은 상표의 전동칫솔은 부유한 핵가족의 일체감과 잘 관리된 라이프 스타일을 함축한다. 그러나 청결한 침묵 가운데 울려 퍼지는 진동음은 기괴하게 위협적이다.
02/24
“꺼져! 이 흉악한 인간아. 나는 아빠랑 집에 가겠어.”
<위플래쉬>의 클라이맥스인 카네기홀 공연에서 플레처 선생(J. K. 시먼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앤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거저 얻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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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비극들이 폭죽처럼 매일 터지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살면서 누군가가 ‘한국이 싫다, 이민 가야겠다’고 말할 때마다 속으로 비겁한 회피라고 생각했다. 어디를 가나 문제는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발 딛고 있는 곳에서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게 그나마 슬기로운 삶의 해법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요즘 그 생각이 뒤집어졌다. 한국 땅을 도망치고 싶다는 간절함이 울컥울컥 목울대까지 차오르곤 한다. 바로 세월호 때문이다. 절망을 목격한 사건, 사고들이야 부지기수지만, 세월호 문제만큼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한국 현대사의 정당성을 통째로 익사시킨 저 검은 심연 앞에서,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운 부조리한 사회가 아이들을 집어삼킨 저 비명의 블랙홀 앞에서 우리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한 우리는 1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저 서서히 기억을 지우는 것뿐이었다. 피고석에는 책임질 그 누구도 소환하지 못했고, 선체는 바다 속에서 녹슬어가고, 실종자 9명은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41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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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 판에 박힌 표현이란 뜻이다. 누가 먼저 썼냐 할 거 없이, 너도나도 써먹어서 닳고 닳았기도 하거니와, 얼마나 닳고 닳았는고 하니 안 써주면 그 누군가에겐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막연한 죄책감마저 유발하는 그런 식상한 아이템. 어떤 장르에도 클리셰가 있다. 과감히 바꿔 말해보면 그 장르를 대표하는, 그래서 이게 빠지면 장르 자체의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는 클리셰가 있다는 말이렷다.
예를 드는 것도 무척이다 쉽다. 어떤 장르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상황, 사건, 설정이 바로 클리셰니깐. 예컨대 스릴러의 경우, 범인에게 추격당하던 주인공이 겁나 몸을 숨겼는데(대부분 화장실이나 침대 밑), 틈새를 통해서 범인의 발이 지나가는 것을 본 후, 안심하는 순간, 두눈딱 개심쿵. 더 간단한 클리셰도 있다. 범행현장 혹은 범인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금살금 걷는 발, 반대로 범행의 흔적을 모두 숨겼다고 생각하고 안심하는 순간 미처 놓치고 있었던 얼룩이나 흔적. 공포영화의 클리
[곡사의 아수라장]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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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X년을 살면서 한번도 연애편지를 써본 적이 없다. (연애는 했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던데 나는 웬일인지 상대가 시인이 되면 그나마 있던 사랑도 달아나곤 했다. 아직은 젊었던 30대 초반, 애인으로부터 “그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키스를”이라는 문자를 받고는 너무 부끄러워 아무도 없는데 이불 속에 숨었다가 오밤중에 뭐하냐, 빨리 자라고 답한 사람이 나다. (경상도 남자냐.) 이렇게 돌이켜보니 내가 지금껏 결혼을 못한 데엔 다 이유가 있었구나, 로맨틱이 성공적이지 않아.
하지만 한때 내게도 하루에 몇통씩 연애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남의 연애편지를. 한창 잘 먹(고 그게 몽땅 살로 가)던 중학교 2학년, 2교시가 끝나면 도시락을 까먹고 점심시간엔 기아에 허덕이던 나는 저울 좀 보고 살면서 작작 좀 먹으라며 용돈을 주지 않던 엄마에게 대항하여 스스로 식비를 벌기 시작했다. 연애편지 대필 한번에 사발면 한개, 가끔은 모아서 떡볶이 한번. “내 마음엔 의자가 한개 있어.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부끄럽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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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학대받은 개들의 반란을 그린 <화이트 갓>은 흔히 <혹성탈출> 시리즈에 비교되지만 판타지가 아니며 공간도 한 도시로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하면 갈등을 서사적으로 해소할 출구가 제한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은 이 난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미지와 음악을 통해 초월적으로 해결해버리는 몇 차례의 경이로운 순간을 창조했다. 몸을 낮추어 다른 종족과 눈높이를 맞추고 땅과 나란해진 인간과 동물의 이미지는 그중에서도 백미다.
02/20
내가 다닌 중학교는 예술 학교였다. 기억 속의 나는 3년 내내 음악부 연습실에서 흘러나오는 악기 소리를 들으며 등교했다. 주번이라서, 잠이 오지 않아서, 유별나게 일찍 집을 나선 어둑한 아침에도 음악부의 이름 모를 누군가는 반드시 나보다 먼저 학교에 와서 악기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래서 “좋아, 지지 않겠어! 나도 방과 후에 석고상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악마는 까만 쫄티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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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인간관계다. 인간관계는 모든 행불행의 원인. 영원한 제도인 가족이 ‘평생 원수’인 경우가 최악일 테고 직장 상사, 동료, 연인, 지나가다 부딪친 사람까지. 갈등을 피할 수 없다. 내 입장에서 너무나 억울할 때 상대방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도대체 왜 저럴까? 미친 걸까? 아픈 걸까? 나쁜 걸까?
인간의 본질은 없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얘기. 내가 경험한 그 순간이 상대의 본질이다. 나열하기 민망한 다양한 저질 행동이 일상인 사람들, ‘사회 지도층’의 탐욕과 갑질, 일부 ‘진보 인사’의 인간성 바닥에 직면할 때가 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하면 마음 편하다.
그런데 미친 사람이 아픈 사람이라면 다시 골치가 아파진다. 정신적 질병(mental disease)은 기분, 감정, 인식에 장애가 생기는 병이다. 정신 질환자는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폭력적이라는 편견이 강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암이나 당뇨병의 증상이 다 다르듯 정신적 질병도 마찬가지다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아픈 사람, 미친 사람,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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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팔한 10대나 자기관리가 철저한 20대가 아니고서야 ‘먹는 것이 곧 자신을 만든’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는 날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평범한 일주일 중에 하루였던 어제 먹은 것을 떠올려본다. 아침은 마트에서 1+1로 구입해온 두유로, 점심엔 자장면에 서비스 군만두 두개를 먹었다. 저녁은 회식이었다. 맥주를 마셨는데, 밥이 될 만한 안주랍시고 빨간 떡볶이와 돈가스를 먹었던 기억이 전부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들은 말이나, 하루 동안 했던 생각은, 행동은 어땠을까. 유기농적이고, 순수하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소위 ‘착한’ 것들이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악해지고 교묘해졌는데, 우리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착한 것을 찾는다. 그만큼 하루하루 나이를 쌓아가는 일이 괴롭다는 방증이기도 할 테다. 네모난 TV 화면 속에서만큼은 지지부진하고 속 터지는 나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지 않기를, 착한 마음으로 바랄 테니 말이다.
KBS2 수목드라마, <착하지
[김호상의 TVIEW] 라벨을 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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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년. 밤하늘에 유럽의 ‘첫 번째’ 혜성이 떴다. 기원전부터 혜성을 체계적으로 관측해온 아시아와 달리 유럽에서는 그런 역사가 없었다. 유럽인들은 하늘은 완전하므로 별들이 섭리에 따라 규칙적인 원을 그리며 지구를 돈다고 믿었고, 혜성을 땅 근처의 먼지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망원경으로 먼 우주를 관측해온 천문관측가 티코 브라헤의 눈에는 혜성이 대기권의 현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애초에 천체가 불완전한 운동을 하는 게 아닐까? 관심을 먼 우주에서 가까운 태양계로 돌린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행성의 움직임을 관측했다. 행성들은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완전히 규칙적이지는 않았고 그 궤도는 명백히 원과는 달랐다. 그러나 여전히 천동설에 사로잡혀 있었던 티코 브라헤는 규칙을 찾아내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남긴 방대한 관측 자료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의 손에 넘어간다.
지동설을 어려서 수용했고 수학적 재능까지 갖췄던 케플러는 관측 자료를 손에 넣은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핼리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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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현대적이면서 가장 고전적인, 그랜드한 매너!” 마침 실내악이 흐르던 참이라 지역 케이블TV의 웨딩홀 광고가 떠올랐으나, 실은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거대 로펌 대표 한정호(유준상)가 아들 인상(이준)에게 법을 공부하면 체화되는 매너를 설교하던 중이다. 탈모 외엔 별 고민 없던 일상은 아들이 난데없이 산달이 가까운 소녀를 데려오면서 깨지고, 경위를 설명하던 서봄(고아성)은 정호네 거실에서 진통을 시작한다. 이 소동을 비공식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한 한정호는 오페라를 크게 틀어 산모의 비명을 감추고 구급대원 앞에서 그랜드한 매너를 선보인다. “이렇게 기민하게 와주시다니 정말 놀랍고, 감사합니다.” 한정호 부부가 전통과 격식, 의전에 집착할수록 상황은 꼬이고 봄이는 더 깊숙이 자리잡는다. 쉴 새 없이 웃다 보면, 정성주 작가의 전작이 겹쳐지며 기분이 묘해질 때가 있다.
한정호의 로펌은 JTBC <밀회>처럼 상스러운 재벌의 약점을 쥐고 거래할 수 있
[유선주의 TVIEW] 참으로 우스운, 하지만 아찔하게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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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보다가 빵 터지고 말았다. 그 트윗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뱀파이어가 못 사는 이유.’ 뭐지? 낚여서 클릭해보니, 헉! 사진이 한장 올라와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교회 숫자’라는 제목으로 남한 지도 위에 수천개의 점들이 빼곡히 찍혀 있었다. 물론 그 점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교회가 하도 많아서 뱀파이어가 우리나라에 서식할 수 없다는 농담에 빵 터지면서 한편으론 씁쓸해졌다. 종교가 우리나라에 와서 고생이 많구나. 역시 대한민국은 뱀파이어 살 곳이 못 되는구나.
우리나라에 뱀파이어가 없는 이유는 교회 때문만이 아니다. 외국에는 수없이 많은 뱀파이어 소설과 영화들, 코믹스가 있지만 우리나라엔 (뱀파이어 전통도 없을뿐더러) 뱀파이어를 환영해줄 매체가 적다. 그나마 뱀파이어에 우호적인 매체는 영화(혹은 웹툰)일 텐데, 할리우드영화 <트와일라잇> 등은 국내 흥행에 성공할지언정 정작 우리나라 뱀파이어영화는 <흡혈형사 나도열> <박쥐&g
[곡사의 아수라장] 서민의 피가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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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 마니아인 친구가 있었다. 체격은 작지만 험악하게 생긴 청년이 허름한 아저씨 점퍼를 입고 인사동과 황학동을 돌며 칼날을 살피고 있노라면 상인들은 저런 인간에게 칼을 팔아도 되는가, 돈 몇푼에 양심을 넘기는 거 아닌가, 고뇌하는 얼굴이 되곤 했다. 착하게 생긴 내가 거들어야 할 것 같았다. “아유, 아저씨, 괜찮아요. 이런 쪼끄만 칼로 사람 죽일 것도 아니고.” 그러자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죽일 수 있어.” 넌 눈치도 없냐. 감히 친구를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좌판을 정리하는 아저씨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오래전 그 애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작고 평범한 싸움이 일어났다. 맞은 아이는 분을 참지 못하고 마침 주머니에 있던 주머니칼을 꺼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때린 아이를 한번 찔렀는데…. “즉사했어.” 뭐라고. “엄청난 우연으로 어딘지도 모르면서 정확하게 급소를 찌른 거지. … 마치 킬러처럼.” 친구는 침통하게 말했다.
그랬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커터칼을 금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