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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죽음에) 좋은 점도 있긴 해. 몇달간 죽어라 일해야 버는 돈이 한번에 생기긴 하잖아. 밀린 대출금과 연체이자도 말끔히 사라지고.” 핏기가 사라진 자신의 사체, 장례식에서 조의금을 내는 사람들, 육개장에 밥을 말아먹는 전 직장상사의 모습을 훑는 시선에 담담한 내레이션이 겹친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원치 않은 선택을 강요당했던 변지숙(수애)의 목소리다. 그녀는 이제 자신과 도플갱어처럼 닮았던 서은하(수애)의 인생을 연기해야 한다. SBS <가면>은 제목처럼 신분이나 속마음을 감춘 인물 군상이 왈츠 테마에 맞춰 빙글빙글 춤을 추는 드라마다. 그리고 지숙은, 가면이 에티켓인 자리에서 거듭 맨 얼굴을 드러내고 만다. 자기 죽음마저 관조하는 경지에 이른 듯했으나, 알다시피 실감은 뒤늦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유사한 설정의 드라마들이 단기간에 습득한 스킬이나 재치로 신분이 노출될 위기를 돌파한다면, 이를 뒤집은 <가면>은 자기 본래 삶에서 벗어난 연기를 어색해
[유선주의 TVIEW] 가면무도회에 나타난 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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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복도에서 나는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다. 내 앞으로 일고여덟명이 선생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있었다. 내 차례는 마지막.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몽둥이 소리와 신음. 긴장과 공포가 극에 달한 바로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에 본 <고우영 삼국지>의 장비가 부하를 기합 주는 장면이 떠올랐다. 장비가 부하들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한다. 뻑! 뜨악! 비명이 난무한데 줄의 맨 마지막에 있던 병졸이 생각한다. ‘내 차례는 9783번째이니까 천하의 장비라도 나를 때릴 때쯤이면 지쳐 있겠지, 덜 아플 거야.’ 그의 차례가 왔다. 병졸은 장비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다고 흡족해하는데, 장비는 몽둥이를 고쳐 잡고 “유종의 미!” 하며 병사를 까무러치게 힘껏 팬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선생의 몽둥이가 내 엉덩이를 강타하는 순간, 나는 “유종의 미!”를 외칠 뻔했다. 큰일날 뻔했었다.
고교 시절. 교문 앞에서 도끼눈을 뜨고 버티고 서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캐릭터 창조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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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우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먼저 지난 6월19일 서울 성북구의 한 고시원에서는 연극배우 김운하가 안타깝게도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됐다. 뒤이어 또 다른 배우 판영진의 사망 소식도 전해졌다. 지난 23일 자신의 승용차에서 발견된 그는, 조수석에 타다 남은 번개탄이 있었고 지인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며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점으로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지난 2011년 최고은 시나리오작가가 생활고로 사망하면서, 국회에서 일명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고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 복지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애초 알려지길 배우 김운하의 경우 본명은 김창규이며, 대학 졸업 후 배우 생활을 하면서 역시 배우였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 ‘운하’를 예명으로 썼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뻘 되는 배우들 중에서 지금 세상을 뜨고 없는 배우로 분명 김운하가 있다. 김기영 감독이
[에디토리얼] 두 배우의 슬픈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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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바이닐스(Young Vinyls)는 러브 존스(Luv Jones) 레코드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3인조 힙합팀이다. 눈치 빠른 이라면 팀 이름에서 이미 이들의 음악을 예상했을 것이다. ‘젊은’과 ‘LP’라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은 일단 이들이 젊다는 사실, 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음악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실제로 이 앨범은 요즘 주류 힙합과는 다른 사운드로 가득 차 있다. 자극적인 미디 사운드 대신에 느릿하고 둔탁한 드럼 비트가 연이어지고 리리컬 스크래치가 작렬한다. 미국 힙합을 오랫동안 좇아오지 않았다면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이나 인용구도 대거 등장한다. 이 위에서 영 바이닐스가 내내 드러내는 건 ‘90년대 황금기 힙합’에 대한 존경심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의욕과 패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랩은 요즘의 수많은 래퍼-워너비가 간과하고 있는 ‘리듬’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으며, 간간이 구사하는 ‘팀플레이’는 흡사 ATCQ나 주라식 파이브(Jurassic
[마감인간의 music] 힙합에 대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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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배신. 돈과 성공에 대한 열망. 그리고 모든 것을 구원해줄 것 같은 한 아름다운 여성.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장면마다 조롱과 구역질을 동시에 유발하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를 그토록 좋아하는 걸 보면 확실히 나는 구제불능의 남성주의자인 게 분명하다. 맨 처음 국내에서 개봉했던 1985년 명보극장 상영에서부터 VHS, DVD를 거쳐 연말이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있었던 상영에 이르기까지, 양질의 새 영화들을 제쳐두고 이 영화를 계속 챙겨보는 것은 확실히 건강한 영화감상은 아닐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변명의 여지가 있긴 하다. 1984년 개봉 이후 이 영화에는 수많은 판본들이 지금껏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디렉터스 컷’으로 알려진 지난 2012년 판본에 이어서 최근에는 손실됐던 나머지 5분여의 러닝타임마저 복원됐는데(상영시간 251분) 이쯤 되면 이제 이걸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완결
[황덕호의 시네마 애드리브] 상상 속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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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지나간다. 80마일의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저 모래 풍경들과 같이 다 지나갈 것이다. 첫사랑의 여자가 지나갔듯이, 청춘이 멍에 같은 가난한 고향을 둔 죄로 동생을 뒷바라지하는 사이 지나갔듯이, 그 멍에를 지나서 고생했던 3년이 고국의 불타오른 부동산 바람에 공허히 지나갔듯이, 앞날도 그렇게 지나가리라, 고 생각하니 못 견딜 일이 없었다”고 신경숙은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썼다. 그의 심경이 딱 저러할 것이다. 지금의 논란도 적당히 다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면, 창비가 지금보다 더한 변명을 둘러대건, 미시마 유키오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건, 결코 못 견딜 일이 없을 것이다. 같은 대목에서 이렇게도 덧붙였다. “다가와서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침묵하기로 했으므로….” 어쩌면 신경숙 작가야말로 ‘아몰랑’ 화법의 원조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헤밍웨이, 포크너, 샐린저 등 18인의 유명 작가들의 작법을 분석해 쓴 <거장처럼 써라>에서 저자 윌리엄 케인은 ‘모
[에디토리얼] 거장처럼 베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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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우연이다. 지난번 <쳐다보지 마라>에 관해 쓰면서 이 영화를 떠올렸었다. 로빈 하디의 <위커맨> 말이다. <쳐다보지 마라>와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 둘 다 영국산 컬트영화를 대변하다시피하는 작품이다. 미국 개봉 때에는 두 영화가 묶여서 동시상영으로 배급되었다. 두편 모두 해괴하고 불균질하며 상영 내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질감을 가진, 아무튼 도대체가 이상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쳐다보지 마라>에는 도널드 서덜런드가 나온다. <위커맨>에는 크리스토퍼 리가 나온다. 두 사람 공히 해괴한 취향을 가진 영화광들에게 어딘가 사연 있는 동네 국밥집 아저씨 같은 배우다. 그런데 지난주 갑자기, 그러니까 집에 돌아와 바지를 벗다가 다른 한쪽 다리가 채 빠져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너를 체포한다는 말을 듣는 것마냥 갑작스럽게
크리스토퍼 리가 죽었다.
크리스토퍼 리가 죽었다, 는 문장은 흡사 “오늘 우리 회사 구내식당 점심 메뉴는 김치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영원한 암흑의 군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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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당신을 기소했다. 당신은 무죄를 주장한다. 그런데 검찰은 당신이 범인인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검사가 손에 쥔 수사자료는 열람이 금지되었다. 법정에서 항변해보지만 판사는 검사에게 수사자료를 내놓으라는 명령을 내릴 생각이 전혀 없다. 당신의 무죄를 증명해줄 증거들은 현장에서 사라졌다. 국과수에서는 그 증거들이 ‘분실됐다’고 말한다. 청와대에서 경찰에 보낸 이메일이 발견된다. 흉악범죄 사건을 보도하여 당신에게 쏠린 시선을 분산시키라는 내용이다. 당신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죄가 결정되어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나는 지금 용산참사 사건(대법원 2010도7621)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당신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국가배상을 청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의도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고 전용철씨의 유족이 그랬다(서울중앙지법 2006가합100689). 물론 한때 집회시위법에 야간옥외집회를 경찰이 진압하도록 허용했었지만 그조차도 위헌판결(2008헌가25)이 났다. 하지만 국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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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송곳니를 목에 박아넣어 인간의 피를 빨아 생존한다. 하지만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흡혈 행동 전까지 우리는 그들을 구별해낼 수가 없다. 흡혈귀 또는 뱀파이어라고 불리는 그들. 피를 빨린 사람들 역시 뱀파이어가 된다는 상상 또한 피가 인간 생명력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훌륭하게 작동한다. 수많은 스핀오프를 가진 <드라큘라 백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 드라마, 소설, 음악…. 뱀파이어는 왜 그렇게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소재가 되었을까.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가 KBS2에서 매주 금요일 밤에 시청자를 찾아가고 있다. AOA의 설현이 여주인공 백마리 역을, 여진구가 남자주인공 정재민 역을 맡았다.
전교생의 우상인 정재민이 뱀파이어라는 정체를 감추고 있는 전학생 백마리에게 묘한 사랑을 느끼고,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곳곳에 배치된 아기자기한 구성과 사건의 우연성
[김호상의 TVIEW] 왜 뱀파이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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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만 셋인 집에서 태어나 남중과 남고를 나오고 인문대인데도 정원 30명 중에 여자는 한명뿐인 과에(그러니까 남대…에) 입학한 지지리 복도 없는 선배는 여자 후배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여자들은 왜 손톱에 때가 안 껴?” 20년 동안 여자 손톱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는 가엾은 청춘입니다. “여자들은 정말 머리채 잡고 싸워?” 취향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대걸레 잡는데요?” 파직, 20년을 품어온 소년의 환상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도 난 책상은 안 던졌어요, 기운이 달려서.” 파직, 파직, 파지직.
지금은 남녀공학이 대부분이어서 그럴 일이 별로 없겠지만 혈기 넘치는 여자애들만 수백명이 한데 모여 있다 보면 거칠 것 없는 난폭함이 솟아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더러움도. 내 고향 전주에선 누가 비빔밥의 고향 아니랄까봐 수십명이 싸온 도시락을 한데 비벼 숟가락을 한개 꽂은 다음 수업 시간에 돌려가며 퍼먹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그러고도 모두 법정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수습 기간만 15년, 허벅지에 바늘만 꽂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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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앗, 이것은 스웨덴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인가? 아니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미학의 영화적 번안인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돼 이번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상영된 단편 <쿵 퓨리>는 실없이 즐거운 30분을 보장한다. 1980년대 무술영화와 <리쎌 웨폰> 류의 경찰 액션물을 주물러 뭉친 이 코믹 활극의 영웅은, 코브라에 물려 쿵후의 최고수가 된 마이애미 경찰 쿵 퓨리. 그는 시간여행을 떠나 ‘쿵 퓌어러’(Kung Fuherer)를 자처하는 히틀러와 대결한다. <디스트릭트9> <위플래쉬>도 단편으로 투자자에게 가능성을 어필해 장편으로 완성됐음을 돌이켜보면 신인감독들의 새로운 데뷔 경로인가 싶다. 사진은 본인의 이두박근과 사랑에 빠진 북구의 신 토르. 바이킹 시대로 날아간 쿵 퓨리와 한편이 된다.
05/27
<스파이>를 보며 올해 들어 극장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화니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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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죠,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요. 우리 안에 큰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우리 밖에 사는 지인들로부터 아픈 편지들이 속속 도착하곤 합니다. 떠나 있는 만큼의 객관적인 ‘거리’가 절망과 한탄으로 가슴을 치게도 하지만 무엇보다 멀리 있음에서 오는 증폭된 그리움이 호주로 이민 간 친구의 안방에 매일같이 태극기를 걸게 하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은 지도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지겨워 죽겠다고 날을 세우는 이들도 있다지만 대꾸할 일말의 가치도 실은 못 느낍니다. 그 배 안에 내가 있었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내 가족이 있다 했을 때 이를 ‘가정’해볼 줄도 모르는 인정머리로 대체 누군들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겠나 싶으니까요. 내가 탄 배가 아니라서 지금의 나는 송구하게도 거리 위를 또각또각 소리내며 걸을 수 있다지만 보도블록 틈새로 하이힐의 굽이 끼는 낭패를 겪어야만 내 시선을 앞이 아닌 아래로 떨구니 고개를 숙여 나를 들여다보는
[김민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잊음’을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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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거리의 인파에 무심하게 섞여드는 연기자를 원경으로 잡은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극중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던 배우와 진짜 갑남을녀들이 한 화면에 잡힐 때의 이질감은 단지 양쪽의 외모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무방비한 표정이 카메라에 노출되거나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음을 깨닫고 흘끗거리는 일반인과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연기 중인 배우가 충돌할 때, 드라마 화면을 통해 자유자재로 시점이동을 하던 내쪽에선 불현듯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일반인쪽이 더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라. 그럼 반대는 어떨까? 다큐나 예능 프로그램의 카메라 속 진짜 시민 인터뷰와 일반인을 연기하는 배우가 카메라를 맞닥뜨렸을 때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어색해 보일까? 누가 더 카메라를 의식하게 할까?
궁금증에 대한 답은 KBS 예능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신입 PD 백승찬 역을 맡은 김수현이 내놓는다. 입사 첫날부터 그를 따라다니는 <다큐 3일> 카
[유선주의 TVIEW] 김수현이 살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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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부터 봐도 끝까지 봐야 하는 영화들이 있다. 나에겐 <이퀼리브리엄>이란 영화가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 크리스천 베일 흉아가 나오는 SF영화인데, 정부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가 그 배경이다.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마저 통제되는 조지 오웰적인 세상은 평온을 넘어서 평형적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그 세상의 이름도 평형상태, 즉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이다.
베일 흉아는 이퀼리브리엄의 평형상태를 지키는 경찰로 등장하는데, 아뿔싸, 미지의 여인을 만나면서 심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 예이츠의 시를 읽으며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반란군을 돕고 내란을 음모하기까지 한다(내란음모를 방조하는 영화라니. 제한상영가감이다). 베일 흉아는 본분을 잊고 점점 해서는 안 될 짓만 골라서 한다. 미지의 여인이 기어이 죽음을 맞이하고, 베일 흉아가 이를 막으려고 달려갈 때쯤이면 나 같은 <이퀼리브리엄빠>는 수십번 본 결말을
[곡사의 아수라장] 시대의 속살을 물파스로 벗겨내던 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