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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행아(정려원)와 리환(이동욱). 놀이터에는 그들의 이름처럼 예쁘장한 빨간 공중전화박스가 서 있다. 어릴 때 부모를 암으로 잃고 혼자가 된 행아는 리환의 집에서 그의 어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며 자랐다. 리환은 행아를 지켜달라는 행아 아빠의 유언을 지나칠 정도로 충실하게 지켜왔다. 남매처럼 자란 사이, 유년기의 트라우마, 위암과 알츠하이머 등 난치병의 그림자가 드리운 인연의 시작은 행아의 아버지와 리환의 어머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중 공공연하게 KBS <가을동화>(2000)와 <느낌>(1994)을 불러내는 tvN <풍선껌>은 그야말로 공중전화를 쓰던 즈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시효가 다했다고 생각한 이야기는 꽤 성공적으로 부활했다. 유사한 멜로드라마에서 가족은 버릴 수 없는 무거운 짐의 자리에 위치하고 <풍선껌> 역시 마찬가지다. 모성애나 효심을 인간의 본성으로 세팅하고, 그로 말미암은 집
[유선주의 TVIEW] 뻔해 보여서 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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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면, 시칠리아는 약간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비칠 것 같다. 양떼들이 거니는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얼굴들에 대한 인상 같은 거다. 시칠리아의 ‘신화’가 전세계로 확산된 데는 <대부>(1972)의 역할이 컸다. 주로 유럽인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시칠리아는 <대부>가 발표된 뒤, ‘지중해의 낭만’을 자극하는 데 있어서는 그리스와 맞먹는 세계적 명소로 격상된다. 알다시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탈리아 이주민의 아들이다. 그는 시칠리아를 신화의 공간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이클(알 파치노)이 전쟁 같은 경쟁을 벌이던 살벌한 도시 뉴욕을 벗어나자마자 도착한 곳이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코를레오네(Corleone)이다. 부친 비토 코를레오네(말론 브랜도)의 이름은 이 고향의 지명에서 비롯됐다. 이곳은 동시대의 공간이기보다는 그리스의 신화를 그린 풍경화처럼 제시된다. 니노 로타의 감성적인 음악은 그런 기분을 증폭시켰는데, 뉴욕에서 시칠리아로의 이동은 마치 비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고대 그리스의 목가적 이상향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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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송곳>은 <미생>이 되지 못했나. 드라마 <송곳>이 종영되자마자 가장 먼저 들려온 질문이었다. 그럴 만하다. 시작부터 <송곳>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이 드라마가 <미생>의 인기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이냐에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종영한 이 시점에서 돌아보건대 시청자들의 호감과 상찬에도 불구하고 <송곳>은 <미생>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 들려오는 이 질문. 왜 <송곳>은 <미생>이 되지 못했나.
그러나 이 질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왜 <송곳>이 <미생>이 되지 못했는지에 관한 질문이 성립하려면, 먼저 ‘<송곳>은 <미생>이 되려고 했는가’에 대한 해석상의 합의가 먼저 이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송곳>이 <미생>을, 아니 <미생>이 <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왜 <송곳>은 <미생>이 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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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1994)에서 대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누아레)가 망명생활을 위해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로 오게 된다(원작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무대인 칠레를 이탈리아로 옮겼다). 모든 인민이 사랑하는 위대한 시인이자 사회주의자인 그가 오면서 마을은 들썩거린다. 그에게 편지를 전해줄 우체부를 고용한다는 말을 들은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시)는, 마을 여자들이 흠뻑 빠져 있는 그가 도대체 누군가 싶어 담당 우체부가 됨과 동시에 처음으로 작품을 찾아 읽어본다. “난 시들고 멍한 느낌으로 영화 구경을 가고 양복점에 들른다. 독선과 주장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고 있는 덩치만 큰 백조처럼 이발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피투성이 살인을 외친다.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
우편배달부는 그 마지막 문장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깊은 인상을 받는다. 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지만 도저히 뭐라 표현할 수 없었던 그 기분을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라고 표현한 마지막 시구
[에디토리얼] 당신의 올해의 한국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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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비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2010년에 그는 <Baby>를 통해 사랑스런 꼬마 이미지로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잘해야 ‘악동’, 보통은 ‘비호감’으로 불리는 중이다. 저스틴 비버는 이런 시선에 대답을 내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11월에 발표한 신곡 <I’ll Show You>에서 그는 왜 자신이 철없는 행동들을 일삼았는지 털어놓고 있다. 그것도 변하겠다는 의지를 담고서.
“내 삶은 영화 같아. 모두가 지켜보지. 번개처럼 압박감이 찾아올 때 항상 옳은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아. 그건 마치 내가 완벽해지길 바라는 거야. 사람들은 내가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 삶이란 쉽지가 않더라고. 난 강철로 만들어지지 않았어. 내가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줘. 하지만 넌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지.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해. 내가 보여주겠어. 내가 보여주겠어.”그래서일까. <I’ll Show You>의 뮤직비디오는 예전처럼 파티 걸들로 가득한
[마감인간의 music] 비버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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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브릿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연말 결산을 대비해 놓친 수작을 따라잡는 이삭줍기철이 돌아왔다. VOD로 직행한 오스트레일리아 공포영화 <바바둑>은, 분만하러 가는 길에 사고로 남편을 잃고 7년째 싱글맘으로 과로하며 살고 있는 아멜리아의 이야기다. 엄마를 짓누르는 피로와 우울을 감지한 아들 사무엘은, 밤마다 동화 속 괴물 바바둑의 끔찍한 노크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호러에 과연 초자연적 현상이 있긴 한 걸까? <악마의 씨>나 <케빈에 대하여>와 동시상영해도 어울릴 영화지만 <바바둑>은 충분히 독창적이다. 아멜리아 역의 에시 데이비스는 발성부터 액션까지 모든 수단을 구사해, 여성 심리의 넓은 스펙트럼을 서슴없이 표현한다. 미술팀이 제작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팝업(pop-up) 동화책을 들춰보는 재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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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냉전시대 첩보영화 <스파이 브릿지>에는, 흔한 의미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둘, 그리고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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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의 동화 <황금 거위>에는 ‘웃지 않는 공주’가 등장한다. 걱정이 된 왕은 공주를 웃기는 사람에게 공주와의 결혼을 약속한다. 수많은 구애자들의 실패 끝에, 욕심을 부리느라 황금 거위에 줄지어 손이 붙은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야 공주의 봉인된 웃음이 터지게 된다.
웃지 않는 공주와 여왕에 관한 민담과 동화는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공주를 웃긴 것은 거지, 두꺼비, 때론 어떤 특정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어느 잔혹동화에서는 공주를 웃기려고 줄타기를 하던 광대가 발을 헛디뎌 목이 부러진다. 그제야 공주가 깔깔 웃는다.
짐작건대 ‘웃지 않는 공주’ 이야기는 웃음을 추방한 근엄한 중세 권력에 대한 민중의 풍자에서 비롯됐을 거다. “예수는 웃지 않았다”는 통설에 기반해 웃음을 금지한 중세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과 해학.
하지만 이 우화는 실제 역사에도 등장한다. 공주 대신 왕후다. 중국 주나라 유왕은 포나라를 정벌하고, 아름다운 ‘포사’를 얻게 된다. 포사에 빠진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공주를 웃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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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포크록 가수 시토 디아스 로드리게스는 1970년대 초 두장의 음반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 음반들은 대중의 무관심 속에 잊혀지고, 로드리게스 본인도 가수로서의 입신에는 실패한다. 스토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미국에서 묻힌 그의 노래는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고, 그 사실을 20여년 후에야 알게 된 그는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 드라마틱한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영화가 바로 2012년 개봉해 우리나라에서도 나름의 반향을 일으킨 말릭 벤젤룰 감독의 <서칭 포 슈가맨>이다.
우리나라에도, 아니 로드리게스가 유명해진 남아공에도 그들만의 슈가맨은 존재한다. 그리고 JTBC가 새로 만들어낸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은 그 영화의 모티브를 가지고 우리 마음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지만 현재는 잊힌 노래와 가수를 찾아내 재조명한다. 이지의 <응급실>, 최용준의 <아마도 그건>, 리치의 <사랑해
[김호상의 TVIEW] 우리나라의 슈가맨, 슈가송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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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가을이 사라져 긴 겨울로 접어드는 이 시기는 추위에 대한 육체의 감각이 마음으로 곧장 이어진다. 고독한 자든 그렇지 않은 자든 간에 홀로 혹은 둘이서 연애영화를 보기 좋은 때다. <이터널 선샤인>(2004)의 재개봉 흥행이 개봉 성적을 넘어섰다는 소식을 접하니, 누군가가 시기를 읽는 수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동안 시네마테크에 한두번 걸릴 때면 몇몇 관객이 마치 유적처럼 이 영화를 다시 찾곤 했다. 어떤 영화들은 개인의 유적이 되고, 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유적지가 된다. 이것은 현대 도시에서 우리가 떠날 수 있는 일종의 순례다.
순례자들의 영화에서 열성 팬의 프랜차이즈, 오타쿠의 컬트, 근본주의자의 클래식과 외골수의 외사랑을 받는 외로운 영화들을 빼고 나면 연애영화가 남는다. 극장 안은 대략 이런 모습이다. 자기 인생의 영화라며 당신도 감화, 감동받을 거라 동행에게 말하는 사람의 달뜬 미소와 외딴 자리에 홀로 앉아 침묵하며 그대도 언젠가 혼자서 이 영화를 다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순례자들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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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느슨하기만 했던 대학에 경쟁의 칼바람이 몰아치면서 수십년 동안 나태의 선두 주자였던 우리 과에도 공고가 붙었다. 졸업논문 심사를 3단계에 걸쳐 진행하게 되었으니 졸업 예정자들은 먼저 논문 목차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졸업논문이란 벼락치기로 며칠 만에 쓰는 거라 알고 지낸 세월이 4년 반인데, 원통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들처럼 4년 만에 졸업할걸 그랬지.
나는 ‘해방 이후 전남 지역 인민위원회의 현황과 한계’라는 거창한 주제로 목차를 만들어 교수님 연구실로 갔다(진짜 엄격하게 하려면 미리 제출해야 했겠지만 어차피 우리 과 나온 분들, 교수들이라고 나태하지 않을 리가 없다). 15분에 걸쳐 목차를 검토한 교수님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정말 이렇게 쓸 수 있겠나?” 나는 긴장했다. “이건 논문이라기보다 단행본 목차에 가까운데?” 그렇겠지요, 단행본 목차처럼 보이겠지요, ‘해방 이후 전남 지역 인민위원회’가 주제인 단행본 한권을 가져다가 그냥 베꼈거든요. 나는 정교수가 되어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저임금 외계인 노동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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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문득 개인적인 ‘응답하라 1988’ 기억이 떠올랐다. 먼저 세상을 뜬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동구에서 출마하여 허삼수를 꺾고 화려하게 정치권에 데뷔한 1988년 13대 총선 얘기다. 당시 ‘변호인’ 노무현을 ‘정치인’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김영삼이었다. 당시 나는 부산진구 거주민이었지만, 동구에 있는 학교를 다녔고 친구들도 많았기에 그 기억이 꽤 선명하다. 결정적으로 허삼수가 중학교 선배였다. 그가 아침 조회 때 교장의 소개로 단상에 올라 만세 삼창을 했던 기억도 난다. 생전 처음 보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힘차게 만세를 외쳤던 이유는, 그가 전교생에게 단팥빵을 돌렸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불의를 보면 잘 참는 성격이었던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단팥빵을 꼭 쥐고는 목 놓아 허삼수를 외쳤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과거 언론 통폐합을 총괄한 5공화국의 실세였던 허삼수는 투표권도 없는 ‘얼라’들에게 빵을 돌렸기 때문일까, 무명의 인권변호사 출신
[에디토리얼] 김영삼과 변호인 노무현, 응답하라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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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이 지칠 때마다 찾게 되는 건 당연히 음악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익숙하지 않은 음악이 고파질 때가 있다. 대중음악과는 상이한 영역에서 파생한 음악 말이다. 게임 음악이 바로 그렇다. 요즘 게임 음악의 수준은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어떤 게임에서는 클래식 뺨칠 만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흘러나오고, 어떤 게임에서는 화끈한 록 음악이 화면을 가득 수놓으며, 또 어떤 게임에서는 ‘전설’ 폴 매카트니가 참여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수많은 게임 음악 명곡 중에서 내가 꼽는 최고가 하나 있다. 바로 <파이널 판타지6>(1994)의 오프닝 곡인 <Terra’s Theme>다. 일단 <파이널 판타지6>는 게임 역사 전체에서도 클래식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게임의 더욱 위대한 성취는 그 영향력이 비단 게임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다름 아닌 게임 ‘음악’의 역사에서도 이 작품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사운드
[마감인간의 music] 음악이라는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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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포>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미 국가안보국 민간사찰 내부 고발 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사건의 일부다. 폭로 현장의 녹취록이다. 스노든은 고발자의 인격에 대한 왈가왈부가 폭로 내용의 본질을 흐릴 웹 문화의 속성을 경계해, 정보공개 시점과 범위를 신뢰하는 언론인에게 전적으로 일임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화 <시티즌포>는 스노든이라는 청년의 퍼스낼리티에 관객을 밀착시킨다. 일단 이 영화의 세팅 자체가 특정 감독과 기자를 지목해 접촉한 그의 작품이다. 스노든은 대학 동기 중 한명쯤 있을 법한 똑똑하고 수수한 청년이다. 강조하려고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으며 본인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지 과연 아는 걸까 의심할 만큼 덤덤하다. 감시 카메라로부터 키보드를 가리려는 ‘마법 망토’ 안에서도 스노든은 우리의 시선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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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는 짝짓기에 실패하거나 싱글로 복귀한 시민을 동물로 변신시켜 추방하는 사회의 이야기다. 인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가재와 금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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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에는 잠언집이 등장한다. 오랜 시간 동안 <이터널 선샤인>은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로 그 잠언집 같은 위력을 발휘해왔다. 수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은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에 위로받고 희망을 품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연인과 다시 시작한 커플은 몇이나 될까. 아마도 그 선택을 저주하며 다시 헤어지기를 반복한 연인들의 수와 얼추 비슷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지금은 당신의 모든 게 마음에 들어요”, “지금은 그렇겠죠. 그런데 곧 거슬려할 테고 나는 당신을 지루해할 거예요”, “괜찮아요”, “괜찮아요”로 이어지는 마술같이 낭만적인 화해의 끝에서 나는 늘 당혹스러웠다.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걸까? 저렇게 쉽게?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노릇이다. 그들은 기억을 지웠으니까. 결론은 알고 있지만 그 결론에 이르렀던 모든 괴로움을 잊었으니까. 그래서 실감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당장은 괜찮을 수 있다.
이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다시 시작하면 우리 과연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