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은 지나간다. 80마일의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저 모래 풍경들과 같이 다 지나갈 것이다. 첫사랑의 여자가 지나갔듯이, 청춘이 멍에 같은 가난한 고향을 둔 죄로 동생을 뒷바라지하는 사이 지나갔듯이, 그 멍에를 지나서 고생했던 3년이 고국의 불타오른 부동산 바람에 공허히 지나갔듯이, 앞날도 그렇게 지나가리라, 고 생각하니 못 견딜 일이 없었다”고 신경숙은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썼다. 그의 심경이 딱 저러할 것이다. 지금의 논란도 적당히 다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면, 창비가 지금보다 더한 변명을 둘러대건, 미시마 유키오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건, 결코 못 견딜 일이 없을 것이다. 같은 대목에서 이렇게도 덧붙였다. “다가와서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침묵하기로 했으므로….” 어쩌면 신경숙 작가야말로 ‘아몰랑’ 화법의 원조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헤밍웨이, 포크너, 샐린저 등 18인의 유명 작가들의 작법을 분석해 쓴 <거장처럼 써라>에서 저자 윌리엄 케인은 ‘모
[에디토리얼] 거장처럼 베껴라?
-
이상한 우연이다. 지난번 <쳐다보지 마라>에 관해 쓰면서 이 영화를 떠올렸었다. 로빈 하디의 <위커맨> 말이다. <쳐다보지 마라>와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 둘 다 영국산 컬트영화를 대변하다시피하는 작품이다. 미국 개봉 때에는 두 영화가 묶여서 동시상영으로 배급되었다. 두편 모두 해괴하고 불균질하며 상영 내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질감을 가진, 아무튼 도대체가 이상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쳐다보지 마라>에는 도널드 서덜런드가 나온다. <위커맨>에는 크리스토퍼 리가 나온다. 두 사람 공히 해괴한 취향을 가진 영화광들에게 어딘가 사연 있는 동네 국밥집 아저씨 같은 배우다. 그런데 지난주 갑자기, 그러니까 집에 돌아와 바지를 벗다가 다른 한쪽 다리가 채 빠져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너를 체포한다는 말을 듣는 것마냥 갑작스럽게
크리스토퍼 리가 죽었다.
크리스토퍼 리가 죽었다, 는 문장은 흡사 “오늘 우리 회사 구내식당 점심 메뉴는 김치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영원한 암흑의 군주여…
-
검사가 당신을 기소했다. 당신은 무죄를 주장한다. 그런데 검찰은 당신이 범인인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검사가 손에 쥔 수사자료는 열람이 금지되었다. 법정에서 항변해보지만 판사는 검사에게 수사자료를 내놓으라는 명령을 내릴 생각이 전혀 없다. 당신의 무죄를 증명해줄 증거들은 현장에서 사라졌다. 국과수에서는 그 증거들이 ‘분실됐다’고 말한다. 청와대에서 경찰에 보낸 이메일이 발견된다. 흉악범죄 사건을 보도하여 당신에게 쏠린 시선을 분산시키라는 내용이다. 당신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죄가 결정되어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나는 지금 용산참사 사건(대법원 2010도7621)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당신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국가배상을 청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의도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고 전용철씨의 유족이 그랬다(서울중앙지법 2006가합100689). 물론 한때 집회시위법에 야간옥외집회를 경찰이 진압하도록 허용했었지만 그조차도 위헌판결(2008헌가25)이 났다. 하지만 국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
날카로운 송곳니를 목에 박아넣어 인간의 피를 빨아 생존한다. 하지만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흡혈 행동 전까지 우리는 그들을 구별해낼 수가 없다. 흡혈귀 또는 뱀파이어라고 불리는 그들. 피를 빨린 사람들 역시 뱀파이어가 된다는 상상 또한 피가 인간 생명력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훌륭하게 작동한다. 수많은 스핀오프를 가진 <드라큘라 백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 드라마, 소설, 음악…. 뱀파이어는 왜 그렇게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소재가 되었을까.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가 KBS2에서 매주 금요일 밤에 시청자를 찾아가고 있다. AOA의 설현이 여주인공 백마리 역을, 여진구가 남자주인공 정재민 역을 맡았다.
전교생의 우상인 정재민이 뱀파이어라는 정체를 감추고 있는 전학생 백마리에게 묘한 사랑을 느끼고,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곳곳에 배치된 아기자기한 구성과 사건의 우연성
[김호상의 TVIEW] 왜 뱀파이어일까?
-
-
아들만 셋인 집에서 태어나 남중과 남고를 나오고 인문대인데도 정원 30명 중에 여자는 한명뿐인 과에(그러니까 남대…에) 입학한 지지리 복도 없는 선배는 여자 후배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여자들은 왜 손톱에 때가 안 껴?” 20년 동안 여자 손톱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는 가엾은 청춘입니다. “여자들은 정말 머리채 잡고 싸워?” 취향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대걸레 잡는데요?” 파직, 20년을 품어온 소년의 환상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도 난 책상은 안 던졌어요, 기운이 달려서.” 파직, 파직, 파지직.
지금은 남녀공학이 대부분이어서 그럴 일이 별로 없겠지만 혈기 넘치는 여자애들만 수백명이 한데 모여 있다 보면 거칠 것 없는 난폭함이 솟아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더러움도. 내 고향 전주에선 누가 비빔밥의 고향 아니랄까봐 수십명이 싸온 도시락을 한데 비벼 숟가락을 한개 꽂은 다음 수업 시간에 돌려가며 퍼먹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그러고도 모두 법정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수습 기간만 15년, 허벅지에 바늘만 꽂았네
-
※ <스파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앗, 이것은 스웨덴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인가? 아니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미학의 영화적 번안인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돼 이번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상영된 단편 <쿵 퓨리>는 실없이 즐거운 30분을 보장한다. 1980년대 무술영화와 <리쎌 웨폰> 류의 경찰 액션물을 주물러 뭉친 이 코믹 활극의 영웅은, 코브라에 물려 쿵후의 최고수가 된 마이애미 경찰 쿵 퓨리. 그는 시간여행을 떠나 ‘쿵 퓌어러’(Kung Fuherer)를 자처하는 히틀러와 대결한다. <디스트릭트9> <위플래쉬>도 단편으로 투자자에게 가능성을 어필해 장편으로 완성됐음을 돌이켜보면 신인감독들의 새로운 데뷔 경로인가 싶다. 사진은 본인의 이두박근과 사랑에 빠진 북구의 신 토르. 바이킹 시대로 날아간 쿵 퓨리와 한편이 된다.
05/27
<스파이>를 보며 올해 들어 극장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화니 걸
-
이상하죠,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요. 우리 안에 큰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우리 밖에 사는 지인들로부터 아픈 편지들이 속속 도착하곤 합니다. 떠나 있는 만큼의 객관적인 ‘거리’가 절망과 한탄으로 가슴을 치게도 하지만 무엇보다 멀리 있음에서 오는 증폭된 그리움이 호주로 이민 간 친구의 안방에 매일같이 태극기를 걸게 하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은 지도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지겨워 죽겠다고 날을 세우는 이들도 있다지만 대꾸할 일말의 가치도 실은 못 느낍니다. 그 배 안에 내가 있었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내 가족이 있다 했을 때 이를 ‘가정’해볼 줄도 모르는 인정머리로 대체 누군들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겠나 싶으니까요. 내가 탄 배가 아니라서 지금의 나는 송구하게도 거리 위를 또각또각 소리내며 걸을 수 있다지만 보도블록 틈새로 하이힐의 굽이 끼는 낭패를 겪어야만 내 시선을 앞이 아닌 아래로 떨구니 고개를 숙여 나를 들여다보는
[김민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잊음’을 ‘있음’으로
-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거리의 인파에 무심하게 섞여드는 연기자를 원경으로 잡은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극중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던 배우와 진짜 갑남을녀들이 한 화면에 잡힐 때의 이질감은 단지 양쪽의 외모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무방비한 표정이 카메라에 노출되거나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음을 깨닫고 흘끗거리는 일반인과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연기 중인 배우가 충돌할 때, 드라마 화면을 통해 자유자재로 시점이동을 하던 내쪽에선 불현듯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일반인쪽이 더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라. 그럼 반대는 어떨까? 다큐나 예능 프로그램의 카메라 속 진짜 시민 인터뷰와 일반인을 연기하는 배우가 카메라를 맞닥뜨렸을 때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어색해 보일까? 누가 더 카메라를 의식하게 할까?
궁금증에 대한 답은 KBS 예능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신입 PD 백승찬 역을 맡은 김수현이 내놓는다. 입사 첫날부터 그를 따라다니는 <다큐 3일> 카
[유선주의 TVIEW] 김수현이 살렸네
-
중간부터 봐도 끝까지 봐야 하는 영화들이 있다. 나에겐 <이퀼리브리엄>이란 영화가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 크리스천 베일 흉아가 나오는 SF영화인데, 정부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가 그 배경이다.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마저 통제되는 조지 오웰적인 세상은 평온을 넘어서 평형적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그 세상의 이름도 평형상태, 즉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이다.
베일 흉아는 이퀼리브리엄의 평형상태를 지키는 경찰로 등장하는데, 아뿔싸, 미지의 여인을 만나면서 심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 예이츠의 시를 읽으며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반란군을 돕고 내란을 음모하기까지 한다(내란음모를 방조하는 영화라니. 제한상영가감이다). 베일 흉아는 본분을 잊고 점점 해서는 안 될 짓만 골라서 한다. 미지의 여인이 기어이 죽음을 맞이하고, 베일 흉아가 이를 막으려고 달려갈 때쯤이면 나 같은 <이퀼리브리엄빠>는 수십번 본 결말을
[곡사의 아수라장] 시대의 속살을 물파스로 벗겨내던 그 시절
-
커튼은 보기에도 언뜻 축축했고 나는 거기 손을 댈 만큼 젊고 거리낄 것이 없었다. 커튼을 걷자 10평 남짓한 방이 드러났다. 어둡고 습했다. 얼마나 어둡고 습했냐 하면 어느 누구 하나 손을 뻗어 전등불을 켤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불을 켜면 어둡고 습한 방의 구석에 그게 뭐가 됐든 아무튼 뭐라도 죽어 자빠져 있을 것만 같았다. 방 안 가득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대화는 거의 없었다. 이 방의 공기를 조금이라도 덜 마시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나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앉자마자 한쪽 벽이 밝아졌다. 프로젝터가 달구어지는 소리가 났다.
컬트영화 정기 상영회였다. 90년대 말에는 그런 게 많았다. 누군가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보물 다루듯 꺼내더니 데크에 집어넣었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이 방의 공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경이 펼쳐졌다. 차갑게 젖어 있는 영국의 전원이었다. 빨간 우비를 뒤집어쓰고 있는 소녀가 뛰어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가 물에 빠졌다. 이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공포의 빨간 우비
-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태훈(임형국)과 미정(김새벽)은, 점점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일본 나라현의 소도시 고조를 찾아, 그곳에 괸 삶의 이야기를 영화로 찍고자 한다. 영화를 여는 42년 된 동네 식당의 실내 전경숏은,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주인공이 특정 인물이 아니라 장소임을 말한다. 동시에 그 장소의 특질도 요약한다. 이 장면에서 손님들은 테이블 맞은편의 동행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주인을 포함해 가게 전체가 특정 상대 없이 고즈넉이 말을 주고받는다. 안주인은 아예 손님 사이에 섞여 있다. 자막도 없어서 우리가 듣는 것은 오직 부드러운 웅성임이다. 얼핏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듯, 영화의 요체를 암시하는 서두다.
05/24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의 ‘Fury Road’에는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레볼루셔너리 로드
-
지난해 4월 미국에 첫 메르스 환자가 유입됐을 때 미국 검역 당국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단다. “메르스가 언젠가는 미국에 도착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는 2번이나 최초 메르스 감염자의 확진 검사 요구를 거부했단다. 심지어 “만약 메르스가 아니면 해당 병원이 책임져라”라고 신경질적으로 단서를 붙이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출장자 김모씨 역시, 출국 전 감염이 의심된다며 보건소에 검진을 요청했지만 당국의 조처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초기 대응’이란 안전 시스템의 경고 알람과 같다. 경고 알람이 이렇게 먹통인데, 방역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리가 있겠나. 정신줄 놓은 보건당국이 초기 대응이랍시고 ‘괴담 유포자 처벌’을 외치며 으름장을 놓는 사이, 메르스 감염자는 속수무책으로 증가했고, 급기야 사망자들과 3차 감염자도 생겨났다. 현재 격리자는 1300명 이상 급증했다. 시민들은 영화 <감기>의 상황으로 치닫는 건 아니냐며 공포에 휩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국가는 없다, 여전히
-
준비할 재료는 간단하다. 계란 1, 2개, 그리고 전기밥통의 묵은밥, 진간장, 식용유. 굳이 더하자면 양파 반개 정도일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볶고, 계란을 풀어 볶은 후 밥을 투하해 잘 버무려주면 완성이다. 잘만 보관하면 두끼도 먹을 수 있다. 일명 ‘계란밥’. 어머님은 집 떠난 아들딸을 위해 바리바리 반찬을 싸다 나르시겠지만, 결국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가 우리에게 허락하는 것은 계란밥이거나 그 변종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매일 진화하는 각종 배달음식과 냉동음식의 촘촘한 사이를 뚫고 ‘집밥’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다.
최근 프랜차이즈 요식업계 최선두에 서 있는 셰프이자 기업인인 백종원이 집밥 전선에 나섰다. tvN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집밥 백선생>. 예전부터 요리 프로그램 또는 식당 개조 프로그램에 간간이 모습을 보이며 존재감을 알렸던 그인데, 최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예능감까지 장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김호상의 TVIEW] 집밥으로 가는 머나먼 여정
-
약자는 약자를 알아본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최연소이자 유일한 싱글 여자로 가평에 끌려갔던 그 밤, 꼬마들은 열명이 넘는 어른 중에서 누가 가장 약한지를 대번에 눈치채고는 배드민턴 라켓을 들고 왔다. “이모, 우리랑 놀아요.” 누가 네 이모라는 거니, 그건 그렇고, 너 이름이 뭐니. 부모들이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생면부지 꼬마 무리를 거느리고 두 시간 동안 배드민턴을 쳤다. “이모, 왜 이렇게 못 쳐요, 깔깔깔.” 그래, 나 배드민턴으로 체육 실기 시험 봐서 C 맞은 사람이다! 그래서 20년 넘게 라켓을 꺾었는데 너네 때문에 이러고 있다! 야외에 나온 꼬마들이 흥분해 좀처럼 잠들지 않았던 그날 밤은 매우 길었다.
내가 전전한 다양한 직업과 아르바이트 중에서 절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코 애 보기다. (돈 받고 한 일도 아니고 일하던 가게 주인 아줌마가 가끔 떠맡겼다.) 뽀로로가 없던 암흑의 1990년대, 세평 가게에 갇힌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태엽 장치 여섯살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