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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포>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미 국가안보국 민간사찰 내부 고발 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사건의 일부다. 폭로 현장의 녹취록이다. 스노든은 고발자의 인격에 대한 왈가왈부가 폭로 내용의 본질을 흐릴 웹 문화의 속성을 경계해, 정보공개 시점과 범위를 신뢰하는 언론인에게 전적으로 일임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화 <시티즌포>는 스노든이라는 청년의 퍼스낼리티에 관객을 밀착시킨다. 일단 이 영화의 세팅 자체가 특정 감독과 기자를 지목해 접촉한 그의 작품이다. 스노든은 대학 동기 중 한명쯤 있을 법한 똑똑하고 수수한 청년이다. 강조하려고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으며 본인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지 과연 아는 걸까 의심할 만큼 덤덤하다. 감시 카메라로부터 키보드를 가리려는 ‘마법 망토’ 안에서도 스노든은 우리의 시선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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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는 짝짓기에 실패하거나 싱글로 복귀한 시민을 동물로 변신시켜 추방하는 사회의 이야기다. 인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가재와 금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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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에는 잠언집이 등장한다. 오랜 시간 동안 <이터널 선샤인>은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로 그 잠언집 같은 위력을 발휘해왔다. 수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은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에 위로받고 희망을 품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연인과 다시 시작한 커플은 몇이나 될까. 아마도 그 선택을 저주하며 다시 헤어지기를 반복한 연인들의 수와 얼추 비슷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지금은 당신의 모든 게 마음에 들어요”, “지금은 그렇겠죠. 그런데 곧 거슬려할 테고 나는 당신을 지루해할 거예요”, “괜찮아요”, “괜찮아요”로 이어지는 마술같이 낭만적인 화해의 끝에서 나는 늘 당혹스러웠다.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걸까? 저렇게 쉽게?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노릇이다. 그들은 기억을 지웠으니까. 결론은 알고 있지만 그 결론에 이르렀던 모든 괴로움을 잊었으니까. 그래서 실감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당장은 괜찮을 수 있다.
이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다시 시작하면 우리 과연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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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사실 이들의 직업은 공무원이다. 냉전시대는 물론 지금도 근무한다. 우리가 ‘간첩’, 스파이라고 불러서 그렇지, 자국에서는 엘리트 애국자들이다. <의형제>의 강동원이나 <7급 공무원>도 마찬가지. 정식 직급이 7급일 뿐 최고로 훈련된 비공식 외교관이다. 이처럼 동사무소(주민센터)에 근무하는 이들만 공무원이 아니다. 요즘은 특채, 별정직,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나 비상근 업무도 많고 다양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철밥통’, 안정성, 비교적 쉬운 업무라는 통념이 뿌리 깊다. 최근 일부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9급 공무원 시험에 지원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저녁이 있는 삶>. 한때 저항적 지식인이었던 손학규가 쓴 이 책의 제목은 우석훈의 주장대로 제목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군사 정권 시절 얘기지만 1970년대 중반에는 육사만 졸업해도 5급 공무원(사무관)으로 특채되기도 했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9급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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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인 쌍문동 골목길은 저녁마다 아이들을 시켜 반찬을 주고받고, 형편이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이상향으로 그려진다. 그리 멀지 않은 동네의 연립주택에서 십년 넘게 유년기를 보낸 나 역시 같은 심부름을 했던 기억이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끼리 음식을 나누고 살림살이를 공유하는 일이 일상이었지만, 가전제품 할부 외판원이 시연하는 녹즙기나 전기쿠커 따위는 집집마다 빠짐없이 구입했다고 한다(엄마 말에 따르면 그렇다). 일종의 경쟁이나 반드시 동참해야 하는 사교 활동이었을까? 이웃에서 음식이 오면 절대 빈 접시로 돌려보내지 않는 것도 아주머니들끼리의 교양이었고, 뭘 담아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엄마의 모습도 꽤 여러 번 보았다. 맞벌이가 많은 동네의 분위기는 또 달랐을 것이다. 동네마다 조건과 필요에 따라 교류의 범위나 형식이 달라질 뿐 이웃끼리 가까우면 가까운 만큼 불편한 점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이웃간의 정이라 말해지는 대부분이 정말 그
[유선주의 TVIEW] 좋기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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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의 첫 수업 시간. “아침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노래를 배우고 있을 때였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가 교실에 들어와 뭔가를 나누어주었다. 칫솔과 치약이었다. 학교 근처의 보건소에서 온 그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보건 위생에 대해 알려주러 온 것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그들이 나누어준 칫솔과 치약으로 이 닦는 방법을 설명해주었지만, 나는 내 책상 위에 놓인 치약을 보느라 그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앙증맞게 생긴 작은 치약의 하얀 바탕 표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호피와 차돌바위, 그리고 홍길동과 곱단이. 신동우가 그린 만화 <풍운아 홍길동>의 주인공들이었다. 알루미늄 껍데기 위에 그려진 신동우의 그림이 얼마나 좋았던지, 이런 멋진 것을 나눠주는 학교란 정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그 치약을 애지중지 모셔두고 한동안은 쓰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내 주위에는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그는 왜 만화를 더 그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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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니무니다.” 뭐 새삼스런 얘기지만 요즘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의 미모가 화제다. 분명 같은 의상인데도 한번도 저런 ‘핏’을 본 적 없다는 성직자들의 농담 섞인 증언도 들려온다. 인터넷에는 영화에서 사제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데생한 이미지도 돌아다니고 있다. 그중에는 <씨네21> 1028호 <검은 사제들> 김윤석, 강동원 2인 표지를 데생한 것도 있었다. 표지 전체를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에 뒤에 서 있는 배우 김윤석을 대충 그릴 수밖에 없는 ‘지못미’의 고뇌가 느껴지는 컷이었다. 그처럼 1028호의 표지와 내지 이미지가 업데이트된 <씨네21> 페이스북과 포털 사이트 기사 아래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동원은 사람이 아니라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인터넷에 낚시성 제목으로 가득한 어뷰징 기사가 난무한다지만, 표지를 비롯한 인쇄된 사진들은 이른바 오프라인 잡지들의 자존심과도 같다. 여
[에디토리얼] 사람이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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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웨스 크레이븐 감독에 대한 애도를 표한다. 이제 그는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흉측한 몽마 프레디 크루거와 <스크림> 시리즈의 “헬로? 시드니?” 고스트 페이스의 창조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물론 나 같은 웨스 크레이븐 빠에겐 말도 안 되는 공포 액션 <영혼의 목걸이>와 익스플로이테이션 레이프필름의 원조 <왼편 마지막 집> <공포의 휴가길>, 그리고 존 카펜터 감독의 명작 단편 <Gas Station>의 성희롱 카메오로 기억될 테고. 그리고 영화사적으론 공포영화의 대가 같은 뻔한 문구로 기록되기보다는 익스플로이테이션-팝콘무비-슬래셔-SF-드라마-코미디-액션 등의 장르를 넘나드는 장르의 개척자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조 단테 감독이 애도사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RIP Wes Craven! A pioneer in the genre!”).
웨스 크레이븐까지 돌아가시고 보니까, 이제까지 참 많이도 죽었다. 내
[곡사의 아수라장] 위대한 무브(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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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M 탈퇴 후의 박재범은 늘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그가 자신의 힙합 레이블 ‘AOMG’를 설립한 까닭도 있겠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그가 보여주는 ‘태도’ 때문이었다. 트위터 등에서 보이는 그의 태도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한국의 연예인’이 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했다.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다. ‘좋아해주면 고맙지만 싫으면 어쩔 수 없어. 나의 행동을 싫어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미리 의식해 행동하지는 않겠어.’ 그리고 이런 그의 태도가 힙합이 장르적으로 고수해온 특유의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박재범의 새 앨범에는 무려 18곡이 들어 있다. 또 노래보다 랩에 중점을 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앨범과 관련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앨범을 통해 비로소 완전히 ‘힙합’ 뮤지션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이다. 박재범은 이 앨범에서 자신의 성공이 정당한 과정을 통해 명분 있게 이룬 ‘셀프메이드’(자수성가)임을 강조하는 한편, 끊임없이 결과물을 발표하는
[마감인간의 music] 뮤지션으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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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이 없는 땅에서 태어났기에 탐정은 될 수 없었지만 그의 꿈은 범인을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문기자가 되었다(경찰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기자가 탐문도 하고 추리도 하고 범인도 잡고 부업으로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노릇도 하며 악당을 물리치는 할리우드영화들을 보고 자란 탓이었다(기자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연애를 하다가 연애도 하고 연애만 하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자랐다면 뭐가 되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범인 한번 잡지 못한 채 경찰서 문고리만 잡고서 애타게 기사를 구걸하던 몇년, 그에게도 마침내 기회가 왔다. 살인사건 용의자 집 앞에서 혼자 잠복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언더커버, 누가 봐도 기자 티가 나는 트렌치코트를 차려입고 잠복하던 그는 저 멀리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어린 시절 꿈을 떠올렸다. 그래, 내가 범인을 잡는 거야.
그는 빈집에 들어가 증거를 찾겠다면서 한밤중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연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담을 넘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차라리 고양이를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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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7일 일기에 <더 홈즈맨>의 결정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 미술가 아이웨이웨이의 회고전(~12월13일). <스트레이트>(Straight, 2008∼2012)는 2008년 쓰촨대지진으로 무너진 학교의 잔해에서 휘어진 철근들을 뽑아내 하나하나 두들겨 신품처럼 곧게 편 다음 거대한 물결 모양으로 쌓아올린 작품이다. 참사 당시 아이웨이웨이는 5천명이 넘는 어린이의 생명을 앗아간 건물 붕괴에 공무원들의 부패가 관련됐다고 판단하고 희생자 규모를 은폐하는 정부에 항의하는 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이 작품에 착수했다. 그러므로 제목 <스트레이트>에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공명정대하다, 숨김없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전시실 양쪽 벽에는 시민들이 조사한 죽어간 아이들의 명단이 길이 15m, 높이 2.5m로 설치돼, 그들에게 바쳐진 예술가의 고요한 애도를 굽어보고 있었다.
10/17
“페미니스트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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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다 거짓말이다. 거짓말일 때 설득력을 가진다. 충격적인 사실 앞에서 즉각적인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무의식은 거짓말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야기는 우리를 고통과 대면시킨다. 세계를 부정하는 으슥한 그늘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 이중부정의 윤리학을 펼친다. 그늘의 경계를 더듬어 빛의 자리를 만들어낸다. “다 거짓말이야!” 누구도 그렇게 반박할 권리가 없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진실의 자격은 그렇게 해체된다. 이야기가 비난받는 때는 거짓말이 충분히 숙련되지 못한 경우다. 도저히 속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때. 우리는 이렇게 혀를 찬다. 이 작가는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거짓말은 통찰력의 산물이다. 거짓말이 불가능한 우주의 인간이라면 그 어떤 것도 통찰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세계는 겹을 이룬다. 세계는 세계를 부정하는 요소들로 구성된다. 거짓말은 거짓말 위에 세워진다. 에셔의 <그리는 손>처럼. 영화에서 벤츠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다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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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면 안 된다. 둘째,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단,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되는 경우는 예외다. 셋째, 로봇은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되는 경우 역시 예외다. 러시아 태생 미국 작가이자 SF소설 대가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1942년 단편 <런어라운드>에서 제시한 로봇의 3원칙이다. 2015년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로봇들에겐 이 3원칙이 유용할까.
tvN에서 ‘하이테크 시골 예능’, <할매네 로봇>이 방송 중이다. 사투리로 봐선 전라도의 한 시골에, 어느 날 로보-트 센타가 만들어지고, 장동민, B1A4 바로, 배우 이희준이 각자의 로봇과 함께 나타난다. 지정된 세 집으로 분산된 이들은 ‘할매’가 계신 그곳에서, 할매의 일손을 돕게 된다. 하이테크의 산물인 세 로봇은 호삐, 머슴이, 토깽이라는 극단적으로 아날로그스러운 이름을 받아들고 할머니의 다리를 주무르고, 마을
[김호상의 TVIEW] 로봇이 마늘을 빻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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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이 사랑하는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지요!
(중략)
너희, 사랑의 불꽃들아, 밝은 곳으로 향하자!
스스로 저주하는 자
진리는 구원해주리라.
(중략)
참으로 허망한 것
모조리 쓸어버리고,
영원한 사랑의 핵심
구원의 별이 빛나게 하라.”
-괴테, <파우스트> 비극 제2부 5막 중에서(강조는 인용자)
언젠가 과음으로 떡이 되어 뻗은 다음날. 홀로 있는 조용한 집에 나를 위해 끓여놓은 북엇국 한 수저를 간신히 떴다. 뜨끈한 국물이 내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 난 살았다는 안도의 신음을 뱉었다. 참회의 맛. 구원의 맛. 그 따뜻한 북엇국 한 그릇은 ‘여전한’ 사랑의 징표였다. 내 눈엔 눈물이 맺혔다.
누구나 용서받길 원한다. 누구나 위로받길 원한다. 구원받길 원한다. 다시 말해 사랑받길 원한다. 사랑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불가능하고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이 공허하다. 평생을 갈구한 지식들을 내팽개치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은 뒤 젊음을 획득한 파우스트 박사.
[황덕호의 시네마 애드리브] 사랑과 구원을 위한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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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엄마>와 <친구 엄마> 등 이른바 ‘엄마’ 시리즈의 공자관 감독을, 그쪽 세계(?)를 모르고 살아온(확인할 방법은 없다) 정지혜 기자가 만났다. 지난주 뒤늦은 여름휴가로 런던에서 애비로드를 걸으며 비틀스의 추억에 젖고, 파리의 시네마테크에서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다시 한번 감상하며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했던 그로서는, 자신이 진행해야 할 차주 기획 기사 소식을 히드로공항에서 문자메시지로 접하고는 차라리 <데스티네이션>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건 인터뷰가 끝난 뒤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별일 없으신지 안부를 묻기도 했다는 정지혜 기자는 흥미롭고 즐거운 인터뷰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에로영화는 1980년대 한국 영화산업을 굳건히 지탱해온 장르였다. 그해 흥행 1위였던 안소영 주연 <애마부인>(1982)과 이대근 주연 <변강쇠>(1986)로 대표되는 선 굵은 시리즈의 계보는 당대 최
[에디토리얼] 헨젤과 그랬대, 싸보이지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