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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재 감독은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2부를 시나리오 없이 찍었다. 테두리는 있었다. 가령 고조시 관광안내소에서 처음 마주친 혜정(김새벽)과 유스케(이와세 료)는 장면이 끌날 때 함께 그곳을 나서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과정을 밟아 그리 되는지는 배우와 감독을 포함한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 그리고 그날의 공기가 만들어간다. 감독은 두세 장면을 위해서는 대사 샘플도 준비했다. 완성된 영화의 해당 장면과 거꾸로 비교해보니 열린 촬영 현장에 흐른 화기애애한 긴장이 눈앞에 그려진다.
06/16
내일 명동에서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장건재 감독과 세 배우가 참석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다. 영화도 복습하고 보도 자료도 들춰본다. 이 영화의 홍보물은 유난히 팬시상품풍으로 디자인됐다. 예뻐서 갖고 싶어지는 영화, DVD와 관련 상품을 소유하고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영화. 이것이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포지션이다. <한여름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영원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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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말하건대, 이제는 ‘개독’이라 불리곤 하는 한국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안쓰럽고 측은하다. 그 처연한 결기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무식이 무슨 죄겠나. 지난 일요일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한답시고 기독교인들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맞춰 발레를 췄다. 더운 날 연습도 많이 했을 텐데, 차이콥스키가 러시아 대표 게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그리고 테러 당시 쾌유를 빌며 부채춤을 추고 개고기까지 진상했던 그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세상에,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곧장 시청광장을 가로질러 가서 성소수자들을 지지한다고 말했을 때 배신당한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심지어 그 상처들을 껴안고 혼신의 힘을 다해 태극기를 흔들며 북을 쳤는데 한글 모르는 외신기자들이 그들을 ‘퀴어 퍼레이드 축하공연단’으로 기사화했을 때 또 얼마나 허탈하고 무릎이 꺾였을까.
참으로 가련하다. 전날, 그들이 짝사랑하던 미국에서조차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힘을 내요, 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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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3시에 MBC 라디오에서 방송하는 <심야 라디오 DJ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름 있는 DJ를, 그것도 새벽 시간대에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제작 여건상 실현된 아이디어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선 DJ가 라디오를 사랑하는 청취자다. 그리고 매일 바뀐다. 라디오를 듣던 청취자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DJ로 역할 전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즘 방송가를 점령한 요리 프로그램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셰프들이 주문한 요리를 일반인이 만든다. 역할 전도란 고전적이지만, 매력적이고 유효한 포맷이다.
채널CGV에서 매주 목요일 방송되는 프로그램, <나도 영화감독이다>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역할 전도를 하겠다는 뜻을 천명하고 있다. 다만, 일반 영화 애호가가 영화를 찍지 않고 영화배우가 영화감독의 역할을 한다. 한 배우가 시나리오 작업부터 캐스팅, 섭외, 촬영, 편집에 O.S.T 녹음까지. 감독의 권한을 가지고 현장을 통솔한다. 제작비와 제작 기
[김호상의 TVIEW] 역할 전도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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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전 10권, 살림 펴냄, 1996)은 훌륭한 앤솔러지다. 과거 이문열에 대한 찬반 격론 중에도 이 단편선집의 우수성과 그가 선별해놓은 테마와 목록의 탁월함만큼은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 선집을 통해 귀중한 작가와 작품들을 만났고, 특히 2권 <죽음의 미학>과 7권 <사내들만의 미학>을 즐겁게 읽었다. 그런데 이 두권은 한권을 억지로 나눈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근사한 제목들에 비해 이들 테마에만 ‘미학’이란 알쏭달쏭한 말을 반복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남성=죽음’, ‘여성=생명’. 이런 식의 관념적 이분법을 좋아하는 내가 ‘미학’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남자(개)와 죽음(똥)의 개똥 같음을 생각할 때 꼭 떠올리는 작가와 작품이 있으니,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 1961)이다.
<우국>은 위의 책 2권 <죽음의 미학>의 첫 번째 작품으로 실려 있다(최근 신경숙 표절 건으로 알려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미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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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사태를 보면서, 한국영화계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충무로에서 ‘표절’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물론 ‘범죄’라는 자의식도 없이 대중문화계가 개봉 전의 일본 텍스트를 마구잡이로 베껴대던 오래전의 ‘흑역사’는 논외로 하고). 사소한 비리가 일상화된 두 경찰의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 클라우드 지디 감독의 프랑스영화 <마이 뉴 파트너>(1984)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한국적 변형’과 ‘창조적 모방’이라는 아슬아슬한 창작의 경계 위에서, 그래도 <투캅스>는 자신만의 고유한 지분을 획득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반 라이트만의 <데이브>(1993)와 비교되며 표절 논란에 휩싸였던 <광해, 왕이 된 남자>(2013)의 경우도, 추창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 이전에 최초 감독으로 내정됐던 이가 바로 강우석 감독이었다. 감독도, 제
[에디토리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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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컬트 수준의 열광이 들불처럼 번진 것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처음엔 국딩 때 비디오 가게에서 반납일자 늘려가며 비디오를 빌려보던 내 또래 마니아들부터 열광하더니(조지 밀러 칠순잔치 추진위원회 발족을 한다나 뭐라나),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며 취향이 아니고 입맛이 아니더라도 개봉 신작은 꼭 챙겨서 보는 딱딱한 영화인들까지도 열광하더니(이 영화는 속도감만으로도 이미 입체이기 때문에 굳이 3D로 볼 필요가 없다나 뭐라나), 끝내 외화치곤 흥행몰이를 하며 <매드맥스> 시리즈를 잘 모르는 관객층까지 함께 열광하기 시작했다(할리우드는 스케일이 다르다나 뭐라나.- 감독은 호주 사람인 게 함정). 나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드디어 지난주에! 이 역사적인 순간을 영접하러 새벽 1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상영관을 찾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지 밀러 감독님. 칠순잔치 때 춤이라도 추겠습니다요. 용서를 비는 또 한명의 <매드맥스> 마니아
[곡사의 아수라장] 이것은 <매드맥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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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순간, 필연적으로 다음 두 노래가 떠올랐다. 하나는 게스 후의 <American Woman>, 다른 하나는 지미 헨드릭스의 <Manic Depression>이다. 역사적으로 이 두곡은 이른바 오래전에 ‘클래식 록’의 지위에 오른 명곡들. 그런데 잠깐, 듣자마자 퍼뜩 떠올랐다니, 이거 참 위험한 상황 아니겠는가 말이다. 요즘 같은 하 수상한 시절이라면 더욱더. 지금까지 논한 곡의 주인공은 기타리스트 윤병주가 이끄는 록 밴드 로다운 30. 그들이 얼마 전 발표한 곡 <더 뜨겁게>는 위 두곡에 대한 오마주로 시작된다. 먼저 튀어나오는 리프가 <Manic Depression>, 뒤에 등장하는 차진 리프가 <American Woman>의 어떤 변형이라고 보면 된다. 이외에도 누군가는 제프 벡을, 또 다른 누군가는 에릭 클랩턴의 크림 시절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뜨겁게>에서 로다운 30은 빈티지한 악기 톤을 전면에
[마감인간의 music] 음악적 팔로십의 어떤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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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친절하고 마음 착하지만 눈치는 없는 우리 동네 동물병원 원장님에게 고민이 생겼다. 얼마 전에 부원장이 바뀐 후로 보호자들이 이상하게 그 사람만 찾는다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원장한테 진료받고 싶지 않아요? 마요 엄마는 안 그래요?” 네, 안 그래요.
그동안 원장님에게서 수입품이라 만원이 넘는, 고양이에게 알약 먹이는 기구(한번 써보세요, 신세계가 열립니다)와 새로 나온 처방 사료 등을 공짜로 받아온 죄가 있어 차마 부원장 진료를 요청하지 못하고 간호사가 부르는 대로 원장실에 들어갔던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기가 뭣해 말을 돌렸다. “그거야 보호자들이 대부분 여자니까, 싱글도 많고…. 근데 부원장님은 미혼이시고….” 원장님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니까요. 부원장이 여자한테 인기 있을 타입이 아니거든요. 우리 부원장은 뭐랄까… 나쁜 남자 스타일?” 네! 그러니까요!
환자가 없어 심심했던 원장님에게 붙들려 30분 넘게 수다를 떨다가 장모님 생신 기념 식당 선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강아지와 고양이, 작업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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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유토피아가 아니기 때문에 ‘악화’(惡貨)는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이 유통되기만 하면 문제가 덜한데, ‘양화’(良貨)를 괴롭히거나 파괴한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개운치 않은 말로 현실을 잊는다.
그러나 피할 수 있는 경우는 ‘내가’ 더러운 것을 밟았을 때다. 상대를 혼내줌, 비난,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밟아줬다”일 때는 외면할 수 있다. 문제는, 더러움이 ‘나를’ 밟았을 때다. 내가 피해자가 되거나 피해자와 동일시할 수밖에 없을 때는 더러운 기분이 아니라 무서워진다. 그냥 덮을까, 참을까. 분노-정의감, 복수 사이에서 갈등한다.
철학자 사라 러딕의 말대로 비판은 “개입하는 실천”이다. 그래서 비판은 그 자체로 선(善)이 된다. 선함의 핵심은 성실성과 끈기. 부정(不/正)에 문제의식을 갖고 바로잡으려면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다. 마음의 준비와 법적 문제는 기본, 인생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실증 자료를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악을 건드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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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죽음에) 좋은 점도 있긴 해. 몇달간 죽어라 일해야 버는 돈이 한번에 생기긴 하잖아. 밀린 대출금과 연체이자도 말끔히 사라지고.” 핏기가 사라진 자신의 사체, 장례식에서 조의금을 내는 사람들, 육개장에 밥을 말아먹는 전 직장상사의 모습을 훑는 시선에 담담한 내레이션이 겹친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원치 않은 선택을 강요당했던 변지숙(수애)의 목소리다. 그녀는 이제 자신과 도플갱어처럼 닮았던 서은하(수애)의 인생을 연기해야 한다. SBS <가면>은 제목처럼 신분이나 속마음을 감춘 인물 군상이 왈츠 테마에 맞춰 빙글빙글 춤을 추는 드라마다. 그리고 지숙은, 가면이 에티켓인 자리에서 거듭 맨 얼굴을 드러내고 만다. 자기 죽음마저 관조하는 경지에 이른 듯했으나, 알다시피 실감은 뒤늦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유사한 설정의 드라마들이 단기간에 습득한 스킬이나 재치로 신분이 노출될 위기를 돌파한다면, 이를 뒤집은 <가면>은 자기 본래 삶에서 벗어난 연기를 어색해
[유선주의 TVIEW] 가면무도회에 나타난 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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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복도에서 나는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다. 내 앞으로 일고여덟명이 선생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있었다. 내 차례는 마지막.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몽둥이 소리와 신음. 긴장과 공포가 극에 달한 바로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에 본 <고우영 삼국지>의 장비가 부하를 기합 주는 장면이 떠올랐다. 장비가 부하들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한다. 뻑! 뜨악! 비명이 난무한데 줄의 맨 마지막에 있던 병졸이 생각한다. ‘내 차례는 9783번째이니까 천하의 장비라도 나를 때릴 때쯤이면 지쳐 있겠지, 덜 아플 거야.’ 그의 차례가 왔다. 병졸은 장비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다고 흡족해하는데, 장비는 몽둥이를 고쳐 잡고 “유종의 미!” 하며 병사를 까무러치게 힘껏 팬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선생의 몽둥이가 내 엉덩이를 강타하는 순간, 나는 “유종의 미!”를 외칠 뻔했다. 큰일날 뻔했었다.
고교 시절. 교문 앞에서 도끼눈을 뜨고 버티고 서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캐릭터 창조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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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우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먼저 지난 6월19일 서울 성북구의 한 고시원에서는 연극배우 김운하가 안타깝게도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됐다. 뒤이어 또 다른 배우 판영진의 사망 소식도 전해졌다. 지난 23일 자신의 승용차에서 발견된 그는, 조수석에 타다 남은 번개탄이 있었고 지인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며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점으로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지난 2011년 최고은 시나리오작가가 생활고로 사망하면서, 국회에서 일명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고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 복지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애초 알려지길 배우 김운하의 경우 본명은 김창규이며, 대학 졸업 후 배우 생활을 하면서 역시 배우였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 ‘운하’를 예명으로 썼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뻘 되는 배우들 중에서 지금 세상을 뜨고 없는 배우로 분명 김운하가 있다. 김기영 감독이
[에디토리얼] 두 배우의 슬픈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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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바이닐스(Young Vinyls)는 러브 존스(Luv Jones) 레코드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3인조 힙합팀이다. 눈치 빠른 이라면 팀 이름에서 이미 이들의 음악을 예상했을 것이다. ‘젊은’과 ‘LP’라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은 일단 이들이 젊다는 사실, 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음악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실제로 이 앨범은 요즘 주류 힙합과는 다른 사운드로 가득 차 있다. 자극적인 미디 사운드 대신에 느릿하고 둔탁한 드럼 비트가 연이어지고 리리컬 스크래치가 작렬한다. 미국 힙합을 오랫동안 좇아오지 않았다면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이나 인용구도 대거 등장한다. 이 위에서 영 바이닐스가 내내 드러내는 건 ‘90년대 황금기 힙합’에 대한 존경심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의욕과 패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랩은 요즘의 수많은 래퍼-워너비가 간과하고 있는 ‘리듬’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으며, 간간이 구사하는 ‘팀플레이’는 흡사 ATCQ나 주라식 파이브(Jurassic
[마감인간의 music] 힙합에 대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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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배신. 돈과 성공에 대한 열망. 그리고 모든 것을 구원해줄 것 같은 한 아름다운 여성.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장면마다 조롱과 구역질을 동시에 유발하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를 그토록 좋아하는 걸 보면 확실히 나는 구제불능의 남성주의자인 게 분명하다. 맨 처음 국내에서 개봉했던 1985년 명보극장 상영에서부터 VHS, DVD를 거쳐 연말이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있었던 상영에 이르기까지, 양질의 새 영화들을 제쳐두고 이 영화를 계속 챙겨보는 것은 확실히 건강한 영화감상은 아닐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변명의 여지가 있긴 하다. 1984년 개봉 이후 이 영화에는 수많은 판본들이 지금껏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디렉터스 컷’으로 알려진 지난 2012년 판본에 이어서 최근에는 손실됐던 나머지 5분여의 러닝타임마저 복원됐는데(상영시간 251분) 이쯤 되면 이제 이걸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완결
[황덕호의 시네마 애드리브] 상상 속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