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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한여름밤에 시간 맞춰 TV 앞에 바싹 다가가게 만든 공포물들이 있었다. <전설의 고향>을 비롯하여 <환상특급> <기묘한 이야기> 등은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게 지나가는 한 가닥 차가운 기운으로 아직도 몸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무서움 그 자체다.
‘KBS 드라마 스페셜 2015’의 이름으로 방송된 단막극 <붉은 달>은 사도세자와 그의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삼은 공포물이다. 일단 저주가 있다. 바로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장희빈의 저주다. 장희빈은 조선의 임금을 상징하는 ‘만천하를 비추는 달’을 저주어린 붉은 달로 만들겠다고 핏빛 외침을 토해내며 죽음을 맞았다.
그 저주에 자신을 옭아매 만들어지는 광기가 그 대척점에 존재한다. 매일 사람을 죽여 자신의 침상에 뉘여놓는 사도세자, 그 배경에 등장하는 저승전이라는 막다른 공간. 비단 찢는 소리의 상징성과 지하에 안치된 붉은 포장을 씌운 관들. 귀신과 주술에 빠져 살인과 기행을 일삼고
[김호상의 TVIEW] ‘무섭다’는 감정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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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여름날. 텍사스주 한 작은 마을에 자동차 판매원으로 들어온 해리(돈 존슨)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와 비슷한 사람이다. 우리가 그렇듯이 그도 자신을 꽤 괜찮은 사람으로 여긴다. 준수한 용모. 30대 중반에 아직까지는 유지하고 있는 젊은 육체. 그래서 그는 행운이 그에게 그냥 다가오길 기다리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직접 손에 넣어야 한다. 빨리 ‘한탕’을 쳐야 인생을 편히 살 수 있다. 그것이 그의 인생철학이다. 그런 해리의 눈에 그 시골 마을의 은행 보안이 매우 허술하다는 사실이 들어온다.
우린 이런 인물들에 대해 익숙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해왔다. <리피피>(감독 줄스 다신, 1955)의 토니가 그랬고 그래서 당연히 <암흑가의 세 사람>(감독 장 피에르 멜빌, 1970)의 코리가 그랬다. <우아한 세계>(감독 한재림, 2007)의 강인구도 그랬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한탕’하고 깨끗하게 손을 씻은 뒤 그
[황덕호의 시네마 애드리브] 죄인들의 블루스 잼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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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화가 강풀에게 벌어진 일로 인해 공분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카카오 만화 속 세상에 웹툰 <무빙>을 연재하고 있던 그는 지난 7월 말 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잠시 기한을 정하지 않고 휴재하겠다”는 요지의 공지를 올린 적 있는데, 잠시 가족 곁을 지키며 마음을 다스리고 돌아오겠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함께 안타까워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작가는 마음대로 쉴 수 있어 좋겠다’라는 식의 비아냥 섞인 댓글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었고, 만화가와 고인을 향해 도를 넘어선, 감히 입에 담기조차 거북스러운 댓글도 상당수 있었다.
이에 강풀은 SNS를 통해 “온라인에서 만화를 그려온 지난 십 몇년 동안 한번도 고소를 하거나 법적인 조치를 취한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밝힌 뒤 “더이상 참지 않습니다. 모든 악플들을 캡처해두었고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곧 봅시다”라는 글과 함께 악성댓글을 캡처한 한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그
[에디토리얼] 네놈을 살려두긴 쌀이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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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 정권이 기어이 파병 결정을 내렸다. 많은 시민이 반전시위를 했고 영화인들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독립영화인들은 시민과 함께 반전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하여 당시 독립영화협회 사무실에서 시민들과의 첫 회의를 열었는데, 그중 한분의 발언이 큰 파장을 낳고 말았다. 그분 왈, “<식스 센스>를 능가하는 반전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헉. 모두가 경악했다. 회의에 참가했던 지인의 말에 따르면 “거대한 돌덩어리가 뒤통수를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 반전(anti-war)의 기운을 상쇄시킬 만큼 당시의 반전(twist)의 인기는 대단했고, 그 인기는 아예 반전영화라는 장르를 만들 만큼 하나의 현상이었던 것이다.
반전은 영어로 twist라고 한다. 뭘 일그러뜨리냐고? 바로 플롯의 방향을 일그러뜨린다. 영화 내내 캐릭터들과 상황, 분위기로 잘 축적하던 텐션을 단 한번의 twist로 방향 선회하며 새로운 텐션을 핵폭탄처럼 떨어뜨리는 것이
[곡사의 아수라장]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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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마감인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전히 마감에 쫓기며 산다. 좋은 의미로는 밥벌이가 (아직도) 끊기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마감 없는 삶이 과연 어땠는가 회상하며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자신이 가끔 처량하다.
푸념은 이 정도로 하고, 필자가 실제 마감 때 듣는 음악 얘기를 해볼까 한다. 여기에는 경험으로 터득한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먼저 ‘가사’가 들리지 않을 것. 기승전결을 알 수 있는 한국어 가사 노래들은 제외한다. 하도 많이 들어 귀에 익은 팝송들도 마찬가지로 뺀다. 그리고 처량하더라도 흥겨울 것. 늦은 장맛비가 내리고, 아직 써야 할 글이 태산일 때, 하지만 주말 기분만큼은 이어폰에서라도 느끼고 싶을 때는 재즈(Jazz)가 좋다.
세월을 담은 거장의 목소리 대신 손가락 마디의 움직임과 백 밴드의 연주와 수군대는 바(bar) 풍경이 느껴지는 라이브 음반이면 좋다. 매끈한 스튜디오 녹음보다 어느 정도 들리는 소음이 한층 더 집중하게 해주니까. 추
[마감인간의 music] 맥주유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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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한점 없는 시골길을 걷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다. 농담의 차이만 있을 뿐 천지가 어둡기는 매한가지여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내 그림자가 남의 그림자 같고, 혼자인데도 다른 이의 기척이 느껴진다(이게 제일 무섭다). 거기에 물안개까지 깔리면 그 자체로 <전설의 고향>이지. 농활 가서 제대로 씻지도 않고 일주일을 부대끼는 대학생들이 그 더러움을 극복하고 괜히 정분이 나는 게 아니다, 밤길 걷다 보면 옆에 있는 게 누가 됐든 손잡고 싶어지거든. 그런 밤길을 홀로 걷고 돌아온 후배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폐가에서 도란도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느니 헛소리를 하며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호소했지만, 그것 또한 헛소리로서 자리 깔고 5분 만에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후배는 여전히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누나, 여기 이상해요, 엉엉.” 간밤에 잠깐 눈을 떴는데 옆에 머리가 긴 사람이 누워 있었다는 거였다. 그러려니 하고 다시 잤는데 새벽녘에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머리 감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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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과 <베테랑>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여차하면 정말 죽을 참이야.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서도 여전한 톰 크루즈의 극한 스턴트를 지켜보다 생각했다. 언젠가 필히 굴복해야 하는 육체의 노쇠가 다가오는데도 감속을 고려하지 않는 인간. 그 모습이 불러오는 위태함이 이 스타가 계속 대중의 시선을 붙드는 이유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위험한 액션에 불나방처럼 끌리는 그의 행보에는 프로다움 외에도 심리적 문신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톰 크루즈는 네댓살 무렵 높은 나무에 기어오르며 ‘스턴트’를 시작했고 여덟살 때는 동네 공사장 고철더미를 향해 자전거를 날렸다가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07/27
<암살>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추억하게 만든다. 두 작품에는 처지와 성향은 달라도 식민지 상황에서 가해지는 일방적 폭력과 착취 앞에 한 시절 뜻을 모으고 상처를 나눈 사람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어처구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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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골’자도 잘 모르지만 곧잘 골프 프로를 보곤 한다. 골프 전문 채널이 여럿이니 작정하고 텔레비전을 켜면 재방송이든 생방송이든 하루 종일 골프 치는 남과 여를 골라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내가 클래식 음악 듣듯 골프 경기를 보게 된 건 필드 위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적막, 그 ‘침묵’이란 먹먹함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 후부터다. 공이 홀 안으로 완벽하게 빨려들기까지 요구되는 고도의 집중력이 어떤 힘인지 한 선수가 품어내 보이는 어떤 자세로부터 확실히 알아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문학적 화두로 자주 쓰이는 테마이니 그 침묵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쏟아져왔다.
그러나 막 짜낸 젖소의 젖처럼 그 침묵이 바로 구현되는, 그 침묵의 생짜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은 터. 골프를 대표로 예를 들긴 했지만 인간들의 스포츠야말로 그 침묵의 다양한 민낯을 엿보게 해주는, 무수히 많은 그 침묵들의 바로미터가 아닐는지.
다이빙보드 위에 한 선수가 몹시도 신중히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 물속으로
[김민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말만 쓰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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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리조선소에서 정리해고당한 동료들과 3년 넘게 복직투쟁을 해온 진상필(정재영). 용접공이었던 그는 뇌물수수로 공석이 된 경제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과 야당연합 양쪽의 후보 제안을 받게 된다. 투쟁기간 내내 뜻을 함께하던 사회당쪽 후보로 나서 집권당인 국민당과 대결하는 쪽이 자연스러운 그림이겠으나, 진상필은 양쪽이 내미는 카드를 두고 명분과 실리를 저울질한다. ‘국민당 공천을 받으면 작대기도 당선된다’는 경제시에서 그저 출마에 의의를 두는 야당연합 후보로 나선다면 자신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당연하고 합리적인 질문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는 “어차피 죽을 목숨 비정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죽어야”한다며 국회로 돌진하던 사람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붉은 투쟁 조끼를 입은 이들은 울분을 토하는 약자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정현민 작가는 KBS2 <어셈블리>를 통해 진상필을 국회로, 그것도 집권여당 초선의원의 자리로 이끌었다.
당내 계파 싸
[유선주의 TVIEW] 진상필씨 여의도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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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리니에게 로마는 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동부 해변의 리미니 출신인 펠리니는 18살 때인 1938년 처음으로 로마에 도착했다. 뭘 할지, 어떻게 살지, 막막한 상태였다. 그림 그리기, 드라마 쓰기에서 제법 솜씨를 보였지만 그건 고향에서의 이야기이고, 대도시 로마에선 무슨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몰랐다. 이도저도 안 되면 로마대학에 진학한다는 막연한 계획만 세웠다. 초기작 <비텔로니>(1953)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는 주인공 모랄도(프랑코 인테를렌기)의 심정이 바로 펠리니의 마음일 것이다. 파시스트 정부 아래, 지방 소도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때우는 청춘(‘비텔로니’의 의미)으로는 살 수 없다는 자의식만 있었다. ‘어린’ 아들의 여행이 불안했던지 모친이 로마에 동행했다. 며칠 머물며 아들의 정착을 도왔다. 시도해보고 정 안 되면 고향으로 돌아오겠거니 했는데, 알다시피 펠리니는 일생 동안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카오스의 활력, 소멸의 멜랑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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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에 감독님들 연락처 정리한 파일 같은 것 있으시죠? 혹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몇해 전 모 인터넷 매체 기자라는 분께서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와 문의한 내용이다. 그런 파일도 없을뿐더러 설령 있다 해도 어떻게 보내드릴 수 있겠냐고 반문했더니, “필요할 때마다 연락드려서 한명씩 물어보는 게 더 귀찮지 않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적으로 ‘정말 그러네?’라고 0.1초간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보다 더 몇해 전에는 <씨네21>에 ‘박중훈 스토리’를 연재하던 중 역시 모 인터넷 매체 기자와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내용의 핵심과 무관하게 ‘박중훈이 욕설을 했다’는 식으로 자극적인 제목만 뽑아 따옴표도 제멋대로 달았고, 심지어 작성자가 쓰지 않은 표현까지 임의로 추가해서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자 또한 항의하는 내게 당당했다. 인용을 왜 마음대로 했냐, 최소한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내용이 그 내용 아닌가요?”라
[에디토리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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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해리스의 이 곡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자주 쓰던 장대한 빌드업과 전자음 폭격 대신 심플한 그루브와 피아노 연주가 전면에 나선 곡이었기 때문이다. 이 곡엔 소위 말하는 ‘EDM’적인 요소가 적었다. 박명수가 <무한도전>에서 그렇게 보여주려고 하는 ‘여기서 뛰어!’ 분위기의 댄스 편곡이 확연히 감소했다. 캘빈 해리스는 원래는 EDM의 제왕 격인 인물이었다. 그가 <포브스>에서 선정하는 가장 돈을 많이 번 디제이 1위에 오르는 이유도 그가 가장 대중적인 일렉트로닉 댄스 장르인 EDM을 하기 때문이다. 제일 커머셜한 음악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수입도 많다. 그런데 이번엔 페스티벌의 메인 룸에서 틀기 힘든 딥 하우스를 발표했다. ‘돈’으로 대표되던 캘빈 해리스가 ‘마니아’의 영역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요즘 이런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역시 EDM의 선봉장인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는 얼마 전 올드스쿨 하우스로만 가득 채운 색다른 믹스를 발
[마감인간의 music] 안티 E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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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밴크로프트가 침대에 앉아 셔츠를 벗었다. 더스틴 호프먼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기 위해 더스틴 호프먼은 안간힘을 다한다. 앤 밴크로프트는 거침이 없다. 촬영장이 후끈하다. 더스틴 호프먼은 앤 밴크로프트의 아들뻘이라는 설정이다. 심지어 극중에서 그녀는 그의 부모와 친구다. 정확히는 아빠 동업자의 아내다. 더스틴 호프먼이 남성적인 멀쩡함을 과시하기 위해 오른손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만진다. 그런데 이게 뭐랄까, 가슴을 만졌다, 라기보다 손을 가슴 위에 널어놨다고나 할까. 이 모든 걸 지켜보던 감독 마이크 니콜스는 빵 터졌다. 촬영장이 떠나가라고 웃기 시작했다. 무단 투기를 했다가 걸린 사람마냥 가슴에서 손을 뗀 더스틴 호프먼이 카메라를 등지고 방구석의 벽으로 향한다. 그리고 벽에 머리를 찧기 시작한다. “로빈슨 부인, 이건 옳지 못한 짓이에요.” “내가 매력이 없니?” “아니요, 로빈슨 부인, 부인은 제 부모님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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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집밥’은 아직도 폭력적이고 서글픈 이미지다. 순전히 엄마 당신 때문이리라. 대부분 시골에서 그랬듯 엄마는 남자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논밭에서 일하다가 밥을 지었다. 돌이 씹히는 날엔 집안 어른들이 밥상을 엎었다. 이렇게 애면글면 밥을 지어도 여자는 남자와 겸상을 하지 못했다. 겸상은 ‘쌍놈들이나 할 짓’. 할아버지 밥상, 남자들 밥상, 그리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밥을 먹었다. 집에서 겸상을 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밥 먹는 시간은 내게 지옥 같았다. 집안의 종손인 까닭에 밥 먹는 시간에 모든 예의범절을 점검받아야 했다. 밥 먹다 말고 할아버지한테 귀싸대기를 맞는 것도 다반사였다. 18살 때였던가, 머리 굵어지고 이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반기를 들었던 게. 일부러 부엌에서 밥을 먹었다. 집안 어른들은 잔소리를 퍼붓고 경멸했지만, 그냥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아마도 이렇게 내가 되바라지게 살게 된 건 엄마의 저 서러운 부엌 때문이었으리라.
엄마는 지금에 와서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집밥이 뭐 어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