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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한 마리 버거, 깐풍 장어, 꼬꼬뱅. 미각을 자극하는 요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방송으로 본다. 보면서 주문하고, 나에게 바로 그 요리가 배달된다. 쿡방은 또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올리브TV에서 방송되는 <주문을 걸어>는 현재로선 가장 진화된 형태의 쿡방으로 보인다. 전현무와 샤이니의 키가 더블 MC, 그리고 이들만으론 도저히 이뤄낼 수 없는 미션을 위해 스페셜 셰프가 한명 등장한다. 이들이 뭉쳐서 해내야 할 것은 물론 각자의 요리다.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요리만이 아니라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주문을 받는다는 것이다. 쌍방향으로 실시간 주문을 받고, 주문자와 전화연결을 하고, 요리하는 과정을 생중계하고, 배달까지 마친 후 리뷰를 받아 별점 심사도 한다. 요리하는 중간중간 배달 지역을 선정하고 때로는 간을 소금으로 할지 간장으로 할지에 대한 실시간 투표도 실시한다. ‘디포리’가 우리말로 무엇인지에 대해 실시간 지식도 펼쳐 보인다. 화면 구석구석 띄워내는 채팅창은
[김호상의 TVIEW] 쿡방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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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태어나 틴에이저로서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통과했던 세대에게 <터미네이터>는 각별하다. 특히 <터미네이터2>(1991)가 그렇다. 퍼스널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 콘솔 그리고 인터넷의 태동과 발전이 곧 자신의 성장사(史)였던 이들에게, 1985년생 존 코너는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1995년이 배경인 2편에서 존의 나이 10살, 미래 전쟁에서 인류를 구원하기로 되어 있는 또래의 주인공은 해킹 스킬을 지닌 오락실 겜돌이로 처음 등장했다. 방 청소나 하라는 (양)부모의 명령에 쿨하게 야유하며 친구와 달아나는 모습은 격한 친근감과 대리만족을 주었다. 새엄마가 이렇게 친절할 리 없어요, 라는 대사도 개인적으로 깊이 남았다.
그러나 존 코너는 <터미네이터3: 라이즈 오브 더 머신>(2003)에서 무기력한 청년 실업자가 되어 실망을 안긴다. 물론 어려서 겪은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느닷없진 않다. 거의 근본주의자가 된 홀어머니에게서 받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엄마, 나를 낳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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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기자들 사이에서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세모자 성폭행 사건의 진실-누가 그들을 폭로자로 만드나?’ 편이 화제였다. 세모자가 주장하길, 마치 이시이 데루오의 <포르노 시대극 망팔무사도>(1973)나 파솔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1976)을 연상시키는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네티즌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참사’라 부른 한 아저씨에게도 눈길이 갔다. 세모자가 이른바 ‘섹스촌’이라 명명한 한 마을에 제작진까지 동행했는데, 어머니 이씨와 아들 허모군은 한 마을 주민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안녕하세요, 우리 아들 강간하셨죠?” “아저씨가 저 성폭행하셨잖아요?”라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 아저씨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며 황당해하다가 결국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지나가던 행인이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은 이들을 성폭행한 성범죄자가 아니라고 해명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다. 프
[에디토리얼] <베테랑>과 <양화대교>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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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난번 기고문에 대한 열화와 같은 성원, 감사드립니다. 사태(?)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재빨리 요약해보자면- 지난번 나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이전 <매드맥스> 시리즈들과는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 아니고, <매드맥스> 시리즈의 마니아로서 “이건 내가 찾던 맛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기고했다가 악플 융단폭격을 맞았다. 사실 인터넷 숙맥인 데다가 SNS를 아예 안 하는 나로서는 생경한 경험이었으니….(오죽했으면 허지웅이 오랜만에 문자를 쳤다, 불쌍해 보였나봐.)
인터넷, 분노의 도로
열광적인 관심에 감격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좀 놀라고 의아한 구석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랑 2장짜리 글 하나에 악플이 300개씩 붙다니. 게다가 나는 전문 글쟁이도, 안티팬을 달고 사는 전문 논객도 아닌데. 무엇보다도 내가 먹던 김치찌개가 아니라는 말에 이렇게 다들 핏대를 세우시나 의아하기도 하고. 특히 신기했던 점은 그 엄청난 총량과 뜨거운 열기
[곡사의 아수라장] 이것은 <매드맥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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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가 티저를 발표했다. 제목은 ‘Wonder Girls Instrument Teaser Video 1. 선미’. 해석하면 ‘원더걸스 악기 티저 첫 번째 비디오 선미’쯤 되겠다. 이 비디오를 본 뒤에 찾아온 첫 번째 단상은 ‘여성 베이스 연주자’는 역시 멋지다는 것. 도입부를 보면 핀 조명이 내리쬐는 아래 선미가 백색 드레스를 입고 베이스 기타를 메고 있는데, 마치 <파이널 판타지>에 등장하는 라이트닝 캐릭터를 보는 것 같았다. 이후 선미는 본격적으로 베이스 연주를 시작하는데, 태핑 주법을 사용할 때는 화면이 전환되면서 레드 계열의 조명이 비처럼 내리쬔다. 다분히 섹시 코드를 의식한 연출이다. 그리고 다시 화이트로 변환된 후에는 어느새 정면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농염한 미소 한방 발사, 그리고 마무리. 캬.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 댓글을 살펴봤다. 칭찬이 대부분인 가운데 대립 구도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댓글들이 압도적이다. 그러니까 원더걸스는 이제 아이돌의 클래스를
[마감인간의 music] 진정성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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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가냘프고 나이가 매우 많은 교수님이 있었다. 그분 수업에 들어가면 뭐랄까,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곤 했는데, 아무리 월급 받고 하는 일이라지만 저렇게 힘들게 서 있는 노인을 두고 새파란 젊은이들은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왜 강의실엔 경로석이 없는 거지, 마음 불편하게.
그런 교수님이 답사에 따라갈 차례가 되었다. 신입생들은 긴장했다. 도중에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누가 대표로 심폐소생술이라도 배워야 하는 거 아니야? 철모르는 병아리들이 오종종 모여 수군대는 것을 듣던 복학생은 웃었다. “너네, 최고령 교수님 안경이 왜 그렇게 두꺼운지 알아?” … 늙어서? “술 마시고 들어가다가 계단에서 구르면서 계단 모서리에 뒤통수를 부딪치는 바람에 안구에 충격이 와서 시력이 떨어졌거든.” 무슨 구어체 문장이 이렇게 길어.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근데 그날 교수님 혼자 마신 술이 고량주 대자로 네병.”
알고 보니 그분은 그런 일을 겪고도 술을 끊지 못한, 아니 끊지 않은 강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깨기 전에 다시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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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프로듀싱이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는 작업인지 <러브 앤 머시>만큼 생생하고 그럴 법하게 재현한 영화는 드물다.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폴 다노)은 무대보다 스튜디오에서 평화를 느끼는 뮤지션이다. 스튜디오를 하나의 ‘악기’로 쓴 선구적 프로듀서인 윌슨은, 우연한 소음도 곡의 요소로 더하고 빈 녹음실의 공명까지 감식한다. 그룹 멤버와 세션맨들이 작업 중인 스튜디오를 360도 팬으로 빙 둘러보는 숏은, 녹음실에서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유창하고 확신 넘치는 남자였던 윌슨을 보여준다. 한편 마음의 병이 깊어진 1980년대의 윌슨(존 쿠색)은 자주 홀로 방에 고립된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한다. <러브 앤 머시>는 고독한 남자와 방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07/14
<파스카>에서 가을(김소희)과 요셉(성호준)의 사랑을 양쪽 가족이 질색하며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이 차다. 지난 주말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안선경 감독은 여기에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선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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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 신문사 기자가 ‘이혐’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혐? 우리 사회에 그런 문제 제기가 있었던가? 나는 당연히 이성(理性)혐오인 줄 알고, 근대성 운운했다가 그의 표정을 보고 당황했다. 그가 말한 ‘이혐’은 여성혐오 vs 남성혐오를 합친 이성(異性)혐오였던 것이다!
이럴 땐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일단, 혐(嫌)자에 이미 ‘계집 녀’가 들어가 있잖아요.” “노/사, 흑/백, 이성애/동성애처럼 남성과 여성은 대칭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남성혐오는 가능하지 않아요.” “여혐은 여성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고요, 인류 문명의 전제는 남성 숭배(penis envy) 문화예요, 여아 낙태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보세요.” 나도 모르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근대 서구에서 페미니즘의 시작은 자유주의(“양성평등”)였다. 여성도 경제적 자립을, 참정권을, 성적 결정권을… 이것은 자유주의 페미니즘(liberal feminism)도 아니고 그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여혐, 남혐, 이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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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채널의 개국 이후 일반인 가족 문제 솔루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적이 있었다. 출연자들의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눈물을 흘리고 포옹하는 화해 장면은 드라마틱해진다. 그리고 선정적인 갈등을 반복해 소비하다보면 이에 따르는 피로나 감동을 가공된 TV쇼의 부산물이라 냉소하게 되고, 문제 상황에 순응하는 단계가 온다. 그렇게 문제 제기 능력과 신뢰를 잃은 솔루션 프로그램이 더이상 이목을 끌지 못하던 즈음, 전문가도 없고 이렇다 할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가 등장했다. 고민의 원인을 제공한 쪽이 방청석에 앉아 확신에 찬 궤변을 늘어놓다 방청객의 반응을 피부로 느끼고 한발 물러설 기회를 얻는 정도로 의미가 있다고 여겼던 이 프로그램은 전문가와 해결책이 반드시 필요한 고민, 즉 치료를 요하거나 범죄로 분류될 법한 사연을 끌어들이며 위태로워졌다.
관찰카메라를 통해 부모와 사춘기 자녀의 갈등을 들여다보고 의견대립을 조율하는 SBS
[유선주의 TVIEW] 진짜 괜찮은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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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친구도 없이 혼자 조용히 앉아 있던 나에게 한 소년이 다가와 수줍게 뭔가를 내밀었다. 갱지 여러 장을 실로 묶어서 만든 만화책이었다. 소년은 자신이 만든 만화책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연필로 촘촘히 그린 만화책의 표지에는 ‘아까끼의 새 외투’란 제목과 글, 그림으로 소년의 이름이 있었다. 소년은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유심히 보고 친구가 되고 싶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만화 그리기를 그림 낙서 수준으로 하던 나로서는 경천동지의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무수히 많은 그림 낙서계의 만화의 신들을 만났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스쿨버스의 뒷좌석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서 마음에 드는 아이들에게만 그림을 그려주던 6학년 형. 그 형 앞에는 많은 아이들이 아부의 탄성을 내뱉으며 자신의 공책 뒷장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줄을 서 있었다. 그 형은 아이들의 공책에 일필휘지. 요괴인간의 뱀, 베라, 베로와 타이거 마스크를 그려주고 있었다.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베트남은 패망했고 나는 만화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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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영화가 이렇게 됐단 말이냐!” 10년도 더 된 김상진 감독의 <신라의 달밤>(2001) 시사회가 끝난 다음 일부 평론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쏟아낸 말들이었다. 그보다 3개월 앞서 개봉한 <친구>(2001) 시사회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영화계에 ‘조폭’이라는 좀비들을 불러낼 주문이라도 된 것처럼 역시 ‘말세’를 외쳤다. 이른바 ‘저질 코미디’, ‘저질 깡패영화’의 양산체제가 시작된 것처럼 걱정들을 쏟아냈던 것. 그러다 몇해 전 우연히 케이블TV에서 시간차를 두고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을 연달아 본 적 있다. 예전에 본 그 영화가 맞나 싶었다. 뭐랄까, 요즘 한국영화들에 비하면 오히려 순진한 구석이 많은 영화였다. 당시 과하다고 느꼈던 코미디는 외려 소박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친구>도 이후 나온 여러 아류작들에 비하면 오히려 클래시컬한 향기를 풍긴다. 유난히 세월의 때를 깊이 타는 영화의 특성 때문
[에디토리얼] 반가운 옛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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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에이프(KEITH APE)의 공개 싱글 <잊지마>(It G Ma)의 성공은 올해 상반기 한국 힙합을 통틀어 가장 화제가 된 사건이었다. 다들 잊지 마. 키스 에이프는 이 노래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빌보드 차트 케이팝 영상 부문 순위에 들기도 했다. 이 노래의 인기 덕분에 그는 미국의 음악 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무대에 설 수 있었고, 현재는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위해 출국한 상태다.
<UNDERWATER REBELS>는 미국의 젊은 흑인 래퍼 켄 레벨(KEN REBEL)이 얼마 전 공개한 싱글이다. 그러나 곡의 주체가 켄 레벨로 표기되어 있는 것과 별개로 이 노래는 누가 들어도 키스 에이프의 <잊지마>의 연장선으로 들린다. 느릿한 트랩 비트와 동양적인 선율이 그렇고, <잊지마>의 주역(?)인 키스 에이프의 크루 ‘코홀트’(Cohort) 멤버들이 이번에도 참여한 것이 그렇다.
즉 <잊지마>
[마감인간의 music] 눈치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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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를 먹는다 생각하고 먹어라. 교수가 말했다. 교수가 내민 병에는 동료들의 인분이 들어 있었다. 인분을 먹고 인간이 되라는 게 교수의 주문이었다. 그는 먹어야 했다. 그가 당한 고통은 인분을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시로 동료들과 교수에게 얼차려를 받았고 얼굴에 비닐봉지가 씌워진 상태에서 호신용 스프레이를 맞아야 했으며 피부가 괴사할 지경에 이를 때까지 야구방망이로 구타당하기도 했다. 며칠 동안 벌어진 일이 아니다. 그는 이 일을 지난 2년 동안 당해왔다. 교수가 지시했고 두명의 동료가 동참한 일이었다. 교수는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게 악마가 씌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일을 마주했을 때 대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왜 당하고 있었을까. 동료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였다. 충분히 폭행을 제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우선 권위와 위계에 의한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교수는 해당 분야의 권위자였다. 과거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그들은 모두 평범한 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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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과 <숀더쉽>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인사이드 아웃>의 캐릭터 기쁨(Joy)과 슬픔(Sadness)은 일반명사와 구별하기 위해 ‘조이’와 ‘새드니스’로 표기합니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태희(배두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시키는 것”을 일괄 주문하는 아버지에게 “때리는 것만 폭력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파스카>의 가을(김소희)은 채식을 한 지 오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여전히 불고기를 들이민다. “비싼 거야, 먹어. 채식은 혼자 있을 때나 해!” 가을과 스무살 연하 요셉(성호준)의 관계는 멀쩡하다. 둘은 가난하지만 충분히 좋은 삶을 살고 있다. 성실히 일하고, 힘들어도 남에게 고통을 전가하지 않으며 더 약한 존재를 도울 ‘여력’마저 견지한다. 폐인과는 거리가 먼 이 평범한 커플을 위험한 국외자로, 비련의 주인공으로 몰아가는 건 “네게 뭐가 좋은지 내가 더 잘 안다”고 믿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슬픔이랑 사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