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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포터> 세계에서 사물을 날아오르게 하는 주문이 “윙가르디움 레비오사”다.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투모로우랜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성 캐릭터가 키를 잡은 영화들이 약진하는 초여름이다. 멜리사 매카시 주연의 <스파이>는 XL 사이즈 중년 여성들이 현실에서 마주치는 흔한 편견들을 첩보 모험 서사 안에서 신나게 격퇴한다. 폴 페이그 감독은 농담을 통해서도 현실의 성차별 패턴을 예리하게 짚는다. 수잔(멜리사 매카시)이 현장 스파이로 나서기 두려운 마음을 친구에게 고백하는 대사가 한 예다. “엄마의 충고가 항상 머릿속에 울려. 수잔, 절대 튀지 마라. 승리는 양보해라. 도시락에 그런 메모를 넣어줬어.” 여자는 똑똑함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조력자로 남는 ‘지혜’를 발휘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체념. 낯설지 않다.
05/18
내년 오스카에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윙가르디움 퓨리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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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 초반, 임수정의 대사는 압권이다. 특히 두 가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그럼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뭔가요?” 또 하나는 류승룡이 속옷 차림으로 우유통인지 가스통인지 메고 지나가자 이선균이 “저 남자 멋지지 않아?”라며 아내를 떠본다. 그녀 왈, “미친 거 아냐? 한겨울에 왜 옷 벗고 XX이야”. (정확한 대사는 아니다.) 얼마나 웃었던지 다음 장면을 놓쳤다. 그녀의 대사는 소통의 의미를 압축한다. 우리가 흔히 대화라고 생각하는 소통(疏/通)의 ‘소’는 ‘트다’는 뜻도 있지만, ‘거칠다’, ‘멀다’(소외)라는 의미도 ‘만만치 않은’ 글자다. 그러니 소통은 “안 통한다”는 뜻도 되고, 실제로 우리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산다. 언어를 만든 자의 권력이 그 이유 중 하나다.
새가 아침 일찍 일어나면 벌레를 더 잡아먹을지 모르지만, 벌레가 일찍 일어나면 그만큼 빨리 죽는다는 의미다. 벌레 입장에서 이른 기상은 재앙이다.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일찍 일어나는 새, 일찍 일어나는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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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캐릭터가 영 아니야. 착한 남자, 이걸 어디다 쓰니?” 대표가 실무자와 상의도 없이 계약한 웹툰 원작을 마지못해 검토하던 정인필름의 프로듀서 김수진(송지효)이 짜증을 섞어 원작에 타박을 놓는다. 하지만 ‘구여친’들과의 실제 연애사를 웹툰으로 그린 작가가 자신의 ‘구남친’인 방명수(변요한)란 사실을 알게 된 수진은 웹툰을 다시 읽으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흠뻑 빠져든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의 설렘과 흥분이 새삼스러워지는 현자타임이 찾아온다. 노트북을 탁 덮어버린 수진의 긴 한숨을 번역하면 ‘아이고, 의미 없다’ 정도가 될 테지. 그렇다. 대개는 의미 없다. 옛 남자의 연애 회고담에 언젠가 자신도 등장하리라 상상하는 달콤하고 씁쓸한 감정 따위가 먹고사는 데 무슨 영향을 미치겠나? tvN 드라마 <구여친클럽> 이야기다.
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대표의 사채 빚으로 회사는 망하게 생겼고 수진은 명수의 웹툰을 영화로 만들어 어떻게든 재기를 해야 한다. 게다가
[유선주의 TVIEW] 구여친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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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이 타계했다. 향년 106살. 참 기나긴 여정이셨다. 구로사와 아키라, 오슨 웰스, 한형모, 김기영 감독보다 형님이시니 말 다 했다. 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기자들은 “독특한 영상미학을 추구했던 최고령 감독”이라고 틀에 박힌 수사들을 퍼다나르지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바쁜 우리는 정작 그 ‘독특한 영상미학’이 뭔지 모른다. 기자들도 모른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그를 진정 노장으로 만든 그만의 ‘독특한 영상미학’이란 사실, 연극성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의 모든 영화는 한정된 공간에서, 역할을 겨우 연기해내는 배우들이 대사를 주고받는 연극영화다. 그것은 무대를 숨기지 않는 말들의 영화였고(<언어와 유토피아>), 배역극을 숨기지 않는 영화였다(<신곡>). 심지어 그는 아예 연극을 촬영했다(<식인> <제5제국> <나의 경우>). 고집이 조금 꺾인 후기에도 그는 여
[곡사의 아수라장] 삶은 이미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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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외딴 도로에 서 있다. 경찰이다. 차를 손보는 중이다. 옅은 하늘색 반팔 티셔츠에는 기름때가 요란하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무릎 바로 아래까지 꽉 찬 가죽 부츠의 주름이 보기 좋게 접혔다 펴지기를 반복한다. 차 안에서는 무선통신이 요란하다. 동료들이 폭주 범죄자 나이트라이더를 추격하는 중임을 알리는 경찰 통신이다. 남자가 가죽 재킷을 걸쳐 입고 차에 올라탄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백미러를 살짝 흘긴다. 동료들은 전멸했다. 경찰들을 따돌린 나이트라이더의 8기통 엔진이 괴성을 지르며 도로를 가른다. 마침내 남자의 차가 출발한다. 차체에 새겨진 인터셉터라는 글자가 크고 선명하다. 나이트라이더와 길 한가운데서 마주한다.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두대의 차. 충돌의 순간, 나이트라이더가 먼저 핸들을 틀어 아찔하게 피해나간다.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질주하는 나이트라이더. 그러나 그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이제 다 끝났다며 울부짖는다.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상대의 압도적인 무게감을 감지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삶이란 호락호락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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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계기로 내 인생의 자동차영화들을 추억하는 요즈음이다. 그중 <배니싱 포인트>(1971)는 극도로 단순하다 못해 곧장 승천할 기세의 괴작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자동차 탁송원 코왈스키(배리 뉴먼)는 콜로라도부터 샌프란시스코를 16시간에 주파한다는 미친 목표를 세우고 시속 257km까지 닷지 챌린저의 액셀을 밟는다. 이 자동차영화에는 카체이스도 노상 액션도 없다. 주인공은 장애물과 교통경찰을 무시하고 소실점까지 과속할 뿐이다. 운전 도중 문득, 영원히 달리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이 든 적이 있다면 <배니싱 포인트>는 당신을 위한 영화다.
05/06
“저희 마블이 생각하는 슈퍼히어로의 임무는 첫째도 둘째도 민간인 보호입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는 동안 이 슬로건이 도처에서 나부끼는 환각이 보였다. 조스 웨던 감독은 관객의 호흡을 절대적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영웅 동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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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진화 이론이 마지막까지 풀지 못한 수수께끼였다. 생명이 목표하는 모든 일의 대전제가 생존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동은 진화를 관장하는 생존 도그마에 완벽하게 어긋난다. 진화심리학자인 데니스 데 카탄사로는 개체로서의 번식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을 때 유전자를 공유하는 부양 친족에게 생존 자원을 몰아주는 옵션이 자살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서에 ‘섹스할 기회가 없어서’라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죽어서도 수치스러울 만큼 엄청난 고백이다. 무의식에 박아둬야만 한다. 카탄사로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 충동과 생활 변수의 상관관계는 지난달의 섹스 빈도, 성공적인 이성관계, 평생의 섹스 빈도, 안정적인 이성관계, 지난해의 섹스 빈도, 자녀 수 순서였다고 한다. 이 상관성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생식 잠재력이 낮은 사람들, 친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사람들, 그리고 여자보다 남자 사이에서 높게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자살이 생식 및 양육 능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이타적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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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 중에 적어도 한달에 한두번쯤은 선후배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있다. ‘다 정리하고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까봐….’ 그 문장에 길게 이어지는 말줄임표. 그 속에는 아마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꽤 많이 묻혀 있겠지만, 그 말줄임표 속의 상상과 고민들을 끄집어내 식후의 커피 테이블에 올리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상상 속에서만 떠올려보는 쪽이 피차 행복하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그 답을 스스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우리는 제주도와 그곳에서의 삶에 대해 쓰인 책들을 들춰보며, 인터넷 사이트를 띄워놓으며, 그렇게 그 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2015년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MBC에서 이제 막 시작한 수목드라마 <맨도롱 또똣>은 제목부터가 제주도 방언이다. 풀어놓으면 ‘기분 좋게 따뜻한’이란 뜻이라고 한다. <미생>의 안영이로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강소라가 여주인공 이정주 역을, 영화 <
[김호상의 TVIEW] 제주도와 연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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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다녔던 회사는 사옥을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된 곳이었다.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수십장의 통유리가 빛나는 사옥, 그래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던 지옥의 사옥. 하지만 그 건물엔 그것 말고도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 화장실 세면대가 비정상적으로 낮았다.
1970년대에 태어난 한국 여성의 평균 신장 160㎝를 자랑하는 데다 다리가 매우 짧은 나도 그걸 쓰다 보니 허리가 아팠다. 유명한 외국 건축가씨, 동양 여성의 키를 너무 낮잡아 봤어. 하지만 진짜 이유는 외국이 아닌 한국에 있었다. “아, 그거? 사장님 키에 맞춘 거라 그래. 한번 써봤더니 너무 높더래.” “… 여긴 여자 화장실인데?” “사옥을 많이 사랑하시거든.” 그날 이후 나는 야근을 하다 화장실에 갈 때면 사옥과 사랑에 빠진 사장이 거의 바닥에 붙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다행히 사장은 웬만해선 사옥에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랑을 만났기 때문이었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산은 산이요, 나는 안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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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와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자동차가 캣워크에 선 모델이라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차는 묘지에서 부활한 좀비, 시체 조각을 이어붙인 프랑켄슈타인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는 350대 폐차 부품을 재활용한 차량도 나온다. 오로지 불모지에서 생존하고 전투할 목표로 변태한 기형의 ‘슈퍼 카’들은 질긴 생명력의 유기체처럼 보인다. 키네틱 아티스트 최우람의 <URC-1>은 150여개의 자동차 전조등을 주재료로 조형된 구체 조각이다. 호흡하듯 명멸하는 이 작품은 별 작명법에 따라 붙여진 제목에서 보듯 항성 같기도 하고 세포분열에 들어간 수정란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 작가는 자동차의 ‘눈’을 구하러 간 폐차장 풍경을, 죽은 동물이 해체되는 공간에 비유했다.
05/04
“나요? 대장은 아닌데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돈을 대고 모두를 더 쿨하게 보이도록 하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대단한 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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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산과 들은 꽃 천지일 터이나 5월의 주머니 사정은 빚 천지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고 스승의 날이 있고 여러 지인들의 생일에 날이 좋아 주말마다의 결혼식은 흔히 말해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애교. 물론 가장 쉬운 건 돈이다. 빠르고 간편하며 뒤끝도 없다. 그러나 그만큼 쉽게 잊고 잊힌다. 발품을 팔아가며 선물을 사러 돌아다녔던 이유는 단 하나, 그 순간만이라도 정을 나눈 이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와의 추억을 되새김하기 위해서다. 레고 블록보다 퍼즐 조각을 즐겨 만진다는 것, 콩나물보다 숙주를 즐겨 먹는다는 것, 장미보다 백합을 즐겨 꽂는다는 것, 라운드 티셔츠보다 브이넥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는 것처럼 누군가가 좋아하는 그 무엇을 안다는 일은 사실 얼마나 귀한가.
고민 끝에 올해 5월의 각종 기념일 선물을 ‘책’으로 통일했다. 편집자가 업이니 책이면 거저인 줄 아는 이들이 꽤 되는데 천만에, 내가 만든 책이라 해도 나 역시 서점에서 제값을 주고 산다. 책을 대하
[김민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5월은 ‘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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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대형마트가 생긴 즈음 잡다한 물건들 사이 생리대가 비치는 큰 비닐봉투를 들고 무심한 척 귀가하던 때의 작은 해방감을 기억한다. 새삼스럽지만, 내가 초경을 하던 무렵엔 생리대를 약국에서 팔았고 맞춤사이즈의 검은 비닐에 따로 담아주곤 했다. 되짚어보면, 검은색으로 생리대를 감추게 하고 흰색으로 생리 중인 여성이 체험하는 불편을 가리는 등 숨김과 은유로 가득한 여성용품 광고보다 의외로 진통제 TV 광고의 역사에서 생리 중인 여성과 일상의 통증을 가시화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격무에 지친 샐러리맨의 두통을 타깃으로 삼은 70년대 말의 사리돈 광고 이후, 80년대 중반부터는 홈드라마 형식과 연예인의 유명세를 빌린 진통제 광고들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의 진통제 광고들이 두통, 치통, 생리통을 적용증으로 고지하고 있으나 펜잘이 빠르게 녹아 흡수되는 약효를 강조했다면 게보린은 통증의 부위를 세분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현재까지 이어오는 유명한 삼분할 화면, ‘두통, 치통, 생리통에 맞
[유선주의 TVIEW] 조롱은 멈출 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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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5일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다. 그래서 뭘 할까 궁리하다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로보트태권브이>를 상영한다기에 갔다. 예상했던 대로 젊은 부모들과 아이들이 많이 왔고, 한편으론 1976년 개봉 당시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을 중장년층도 상당수 극장을 찾았다. 상영 분위기는 예상보단 진지했지만 <로보트태권브이>가 발차기나 정권 찌르기를 할 때면 누군가는 환호성을 질렀고, 인조인간 메리가 시샘하거나 삐뚤어질 때 누군가는 탄식했다. 그만큼 <로보트태권브이>는 대한민국 영화 팬이라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슴 한구석에 모셔놓은, 좀 과장해서 말해보면 <인터스텔라>와 유일하게 맞짱 뜰 수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애니메이션이다(누군가는 표절 어찌고저찌고하지만 깡통로봇 고춧가루 공격이나 맞고 다 꺼지라고 해).
초대박 히트작 <외계에서 온 우뢰매>와 <영구와 땡칠이>
정말이지 1970년대와 80년대는 극장용 애니메이
[곡사의 아수라장] 부활하라! <초합금로보트 쏠라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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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고.
다시 봐도 너무 근사한 첫 문장이 아닌가. 변형되거나 강화된 신체 이야기를 유독 좋아했던 청소년 시절. <기생수>는 언제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가운데 하나였다. <암스>나 <가이버>도 좋지만 <기생수>에 견주기에는 너무 길고 장황했다. <기생수>만큼 스스로 제기한 화두로부터 시종일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굵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맺는 작품은 드물었다. 사실 <기생수>의 첫인상은 당시로서도 새롭지 않았다. <신체강탈자의 침입>과 같은 고전이나 <악마의 손> <이블 데드>, 특히 존 카펜터의 <괴물>의 잔상이 겹쳤다. 그럼에도 달랐다. <기생수>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인간, 임을 상기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 속으로 몰아넣었다(그렇게 우리는 중2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모두의 미래가 지켜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