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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성인용 에로틱 로맨스로서 싱거운 실체를 드러낸 가운데, 때마침 시선을 유혹하는 영화가 있으니 피터 스트릭랜드 감독의 <듀크 오브 버건디>다. 몇몇 영화제에서 소개된 다음 올해 초 영미권 일부에서 개봉한 <듀크 오브 버건디>는, 겉으로 보이는 지배자-복종자 관계 뒤에 색색의 실크 커튼처럼 섬세하게 겹쳐진 두 여자의 사도마조히즘적 성애를 탐구하는 영화다. 화면은 나비 표본처럼 우아하지만, 고통부터 우스꽝스러움에 이르는 관능의 온갖 성분을 망라한 내막은 만만치 않다.
02/06
<폭스캐처>를 관람한 많은 사람들이 탁월한 몸 연기(physical acting)의 향연이라고 평한다. 나 역시 맨 앞줄에 서서 동의하는 바다. 연습용 인형과 묵묵히 섀도 레슬링을 벌이는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의 모습으로 테마를 암시하는 도입부부터 눈사태처럼 설명 없이 들이닥치는 결말까지 <폭스캐처>는 대사에 의존하지 않는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말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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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여섯살이 된 조카에게 물었다. 원휘는 꿈이 뭐야? 꿈이 뭐긴 꿈은 자다 깨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답에 순식간에 제 엄마인 내 동생을 바라봤다. 원휘야, 큰 이모가 너 커서 어떤 사람 되고 싶은지 묻는 거야. 조카는 배시시 웃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니 무슨 애가 꿈도 없니, 이거 큰 문제 아니니?
그래서 시작된 동생과의 한판 싸움. 제 자식 문제라면 언니인 내 머리털이라도 라이터로 지질 기세여서 결혼도 못하고 자식도 없는 내가 서러워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자다 오줌 마려 깰 때 미적지근하게 남아 있는 기억의 잔상 정도로 꿈을 생각한다는 건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 같았다. 되고픈 것도 하고픈 것도 많을 나이 아닌가, 여섯살이라면 그림책에서 나팔 한번 봤다 치면 나팔꽃도 그리고 싶고 나팔수처럼 트럼펫도 불고 싶고 팔랑팔랑 나팔바지도 입고 싶고 아줌마들 대화 끝에 나팔관이라는 생소함을 되묻기도 할 호기심의 나이 아닌가.
그러나 조카는 아직 어리고 그 어림에 부합되지
[김민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대학이 왜 대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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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자의 3대 취미로 흔히 언급되는 것들이 있다. 카메라, 오디오, 그리고 자동차. 이 취미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개개인의 취향을 강렬하게 반영하면서도 깊은 곳에는 논리적인 연결점이, 또한 지적인 허영이 있다는 것이다. 불요한 소비의 정점이라는 것은 오히려 덤이 된다. 예컨대 ‘사진’이 취미가 아니고 ‘카메라’가 취미라면, ‘음악’이 취미가 아니라 ‘소리’에 집착을 보인다면, 끊임없는 분석과 탐구는 이미 감성적인 영역이 아니라 지적인 페이지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해묵은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구체적인 취미에 지적인 허영과 탐구심을 결합해서 결국 감성적인 만족을 얻는다면, 이건 그냥 첫눈에 반하는 것과 종국에는 머리를 맞댄다. 50mm 단초점거리 렌즈 하나만으로 예술적인 사진을 만들어내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아니라, 초광각부터 초망원까지 렌즈를 갖추고 색수차와 주변부 해상도를 논하는 그 지점에서 그들은 또 다른 의미의 카타르시스를
[김호상의 TVIEW] 문화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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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일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광국 감독은 <꿈보다 해몽>에서도 <로맨스 조>에 이어 이야기 속 이야기, 이야기 옆 이야기를 연구한다. 당연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다시 인용된다. 단, 이번 영화에서 감독은 왜 타인들의 이야기가 연결되고, 연결되길 희구하는지까지 들여다본다. 그래서 불려나오는 또 다른 동화는 <성냥팔이 소녀>다. 꿈을 붙들 힘을 잃어가는 30대 배우 연신(신동미)은 겨울 놀이터에서 담배와 성냥을 꺼냈다가 문득 성냥을 통째로 쏟아 불을 붙인다. 팔려서 돈이 되지 못한 소녀의 성냥은 제 한몸을 잠깐 덥히는 땔감이 되었다. 어떤 예술가들에게 재능과 열정도 그렇다. 확실히 손에 잡히지만, 지금은 체온을 지켜주는 게 고작이고 몇 개비나 남았을까 가만히 생각하게 되는.
01/07
여행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영화를 덥석 믿지 못한다. 이 주저에는 내가 여행을 힘들어하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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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열풍. 얼마 전 ‘나는 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 캠페인이 SNS를 휩쓸었다. 연이어 서점가에 페미니즘 관련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단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2%, 2주 전 대비 131%가 증가. 이뿐만 아니라 페미니즘과 관련한 세미나와 독서회가 곳곳에서 열리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 잠깐 페니미즘 광풍이 분 이후 페미니즘이 화두가 돼 이번처럼 이렇게 들불처럼 번진 적이 있었던가.
뭐니 뭐니 해도 소년과 중년남성, 두 남자의 선언에 빚진 바가 크다. “페미니스트가 싫다”라며 시리아 이슬람국가(IS)로 떠난 김모군과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라는 김모씨의 칼럼이 이 들불의 부싯돌. 희한한 건 그동안 ‘남성연대’와 ‘일간베스트’(일베)로 상징되는 여성혐오의 공세가 지겹도록 펼쳐졌음에도 좀체 불붙을 기미가 없던 페미니즘 담론이 두 김씨의 선언에 화들짝 불을 댕기게 됐다는 것이다.
기묘하다. 발터 베냐민은 위기의 시대에 진보적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마녀가 있기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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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감금, 폭발, 난폭운전, 자살예고 등 여주인공이 휘말리는 사건사고만 나열하면 로맨틱 코미디보다 막장으로 기우는 드라마. 우연히 채널을 돌렸다면 검은 아이라인을 그린 지성이나 여장한 지성, 비명을 지르거나 통곡하는 황정음을 만날 확률이 높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 무슨 괴작인가 했는데, MBC 드라마 <킬미 힐미>는 ‘해리성 주체장애’(다중인격장애)를 앓는 재벌 3세 차도현(지성)과 그의 비밀 주치의가 된 정신과 레지던트 오리진(황정음)의 힐링 로맨스란다. 파괴적이고 자기애가 강한 인격인 신세기, 밥솥을 분해해서 사제폭탄을 만드는 페리박, 자살 지원자로 불리는 안요섭 등 차도현의 인격들은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고, 이들을 케어하는 리진은 돌발 상황을 겪을 때마다 비명과 안도의 눈물을 오간다. 여주인공을 이렇게 계속 공포와 위험에 빠뜨리는 로맨틱 코미디가 또 있었나 싶다.
잠시 드라마에 숱하게 반복되는 장면 하나를 떠올려보자.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남자들의 원시적인
[유선주의 TVIEW] 다행스러운 폭력의 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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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장은 엄청나게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회사에 다닌 적이 있다. (물론 예감은 불길했다. 무슨 좋은 사장이 등산복을 차려입고 너희는 일해라 나는 이따 놀러간다는 자세로 출근을 한단 말인가.) 몇주 뒤, 사표를 냈다는 동료가 고백했다, 사실 우린 전부 노비야. (몰랐던 사실도 아니지만.)
30대 후반이었던 그녀는 미국 사는 사장 친척이 서울에 왔다가 짐이 무거워 일단 호텔에 들어갔으니 그 짐을 사장 집으로 옮겨놓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바퀴 달린 가방도 무겁다며 호텔로 직행한 친척이라면 그 옛날 아메리칸드림 시절에 이민 떠난 어르신이라도 되는 건가. 그녀는 기분이 나빴지만 노인 공경의 마음을 다잡으며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웃통을 벗고 젖은 머리를 탈탈 터는 스무살 정도의 건장한 젊은이. 오, 이게 무슨 횡재인가! 사장님,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아니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친척은 조기 유학을 떠난 사장의 조카였다. 내일모레가 불혹인 노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복종만이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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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은 연소와 다르다. 폭발은 존나 급격한 연소다. 대비할 틈을 허용하는 연소와 달리, 폭발은 대비할 틈을 주지 않는다. 불이 나면 도망갈 시간이라도 있지만, 가스 폭발은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다. 폭발은 순간의 미학이고, 순간의 한방을 위해서 몇날 며칠이고 숨어 기다리는 미학이다. 마치 당신의 퇴근시간을 끈질기게 기다리고, 도망칠 겨를도 주지 않은 채 순식간에 당신을 급습하는 가스불꽃처럼. 대부분의 영화들이- 관객이 다음 장면을 대비할 겨를을 허용하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서서히 태워나가는 연소 영화라고 한다면, 그에 반해 폭탄처럼 작동하는 영화들이 있다. 구분하기는 매우 쉽다. 전자의 반응이 “음, 그럴 줄 알았어”, “오 상당히 교훈적이군”이라면, 후자의 반응은 “아 띠발, 이게 뭐야”, “옴마야 개심쿵 썅”일 테니깐. 폭탄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하고 예측할 겨를을 주면서 주제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다. 폭탄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하고 도망갈 겨를조차 빼앗으며, 안구와 시
[곡사의 아수라장] 카운트다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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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의 시대다. 지난 2월1일 폐막한 제4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는 14개 비디오아트와 실험영화 독립배급사로부터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Me, Myself and I)라는 주제에 맞는 작품 한편씩을 출품받아 흥미진진한 컬렉션을 완성했다. 마르그리트 란츠 감독의 <진주>(La Perle, 2007)는 휴대폰카메라 앞에서 한 여성이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주인공으로 치장하는 과정을 5분의 비디오에 담았다. 베르메르의 모델이 지은 오묘한 표정을 포착하려는 마지막의 말없는 집중이 백미. 창조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나(me), 자기도취(myself), 주체(I)가 고루 들어 있다.
01/05
열에 일곱쯤 확률로, 영화의 첫 5분 동안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될지 아닐지 맞히곤 한다. 오프닝 5분에는 꽤 많은 단서가 포함돼 있다. 숏과 신을 배열하는 고유한 호흡, 음악 쓰는 패턴, 감독의 유머 취향과 선호하는 이미지, 연출자가 상정한 관객의 이해력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조용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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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 <쎄시봉>을 봤다. 송창식이 부른 유명한 노래, 스페인어가 원곡인 <사랑이야>(작사 한성숙)가 흘렀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새 촛불 하나 이렇게 밝혀 놓으셨나요… 밤이면 밤마다 이렇게 타오를 수 있나요… 단 한번 눈길에 부서진 내 영혼….” 순간, 나는 “당신”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때부터 눈물과 소리내지 못한 콧물까지 범벅이 되어 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사랑이야>에서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삶을 ‘그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트라우마, 그것이 “당신”이다. 상실과 완전한 절망, 호소할 수 없는 통증, 좌절, 버려진 경험, 모욕과 차별.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그런 “당신”이 있을 것이다. 어젯밤까지 가장 믿었던 사람이 오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을 때의 느낌은 배신감이라기보다 혼란이다. 현실을 인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후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당신은 누구시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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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최근엔 종류도 다양해지고 마니아도 생겨서 꽤 깊어진 모양인데, 초등학교 시절 보드게임은 지존만 존재했었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볼 수 있는 그 이름, <부루마블>. 스무살이 넘은 뒤에야 <모노폴리>를 접하고 나서는 무언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었지만, 초등학생 때의 그 열기는, 분위기는, 심지어는 공기의 냄새까지도 이미 박제되어버린 기억이었다. 우대권을 가지고 무인도를 탈출하며 뉴욕과 홍콩에 호텔 3채씩을 소유한 부자가 되는 기억. 스톡홀름에 별장 하나 짓고 두알의 주사위를 다시 힘껏 던지던 기억. 세계의 다양한 나라와 그 수도들을 거기서 배웠다고 하면 과장일까 싶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가 그 보드 위에서 꿈을 꾸었다는 것 말이다.
어느샌가 <JTBC 뉴스룸>과 함께 JTBC의 대표 프로그램이 된 <비정상회담>. 그 <비정상회담>의 외전 격인 프로그램이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다. 제목은 <내 친구의
[김호상의 TVIEW] 안정감에 우연성을 끼얹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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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의 라우만 박물관에는 유럽 최대 자동차 수입업자이자 자동차 애호가인 라우만가가 2대에 걸쳐 수집한 역사적인 자동차 230여대가 있다. <007 골드핑거>에서 Q가 제임스 본드에게 선사한 오리지널 애스턴 마틴 DB5도 컬렉션의 일부. 차체에 은닉된 비밀병기도 병기지만, 고고하면서도 은은하게 한 단계 숨죽인 광채가 잘난 비밀첩보원과 딱 어울린다. DB5는 <카지노 로얄>(2006)과 <스카이폴>(2012)에도 출연했다. 라우만 박물관에서 깨달은 두 가지. 첫째, 자동차는 사진에 잘 담기 엄청나게 까다로운 피사체다. 둘째, 모든 자동차는 궁극적으로는 타임머신이다.
01/03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노동자 산드라(마리옹 코티야르)의 휴직 사유는 우울증이다. 복직을 앞둔 그녀는 회사가 일인당 1천유로의 보너스와 산드라의 복직 중 하나를 투표로 선택하라고 동료들에게 통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 다르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조심(操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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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는 후각이 발달한다. 멀리 떨어진 사냥감의 위치를 탐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어나 갯과와 고양잇과 동물이 그 예다. 반면 초식동물은 근접 포식자를 정확히 식별해야 하므로 시각이 발달한다. 대표적으로 기린, 타조, 얼룩말 같은 초원의 초식동물은 특출난 시각을 지녔다. 인간의 시각 역시 뛰어난 축에 속한다. 인간의 조상이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잡아먹혔던 초식동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포유류를 통틀어 영장류는 가장 많은 색깔을 구별하고, 가장 뛰어난 공간 지각력을 가지는데, 이는 풀보다는 나무에 달린 색깔 있는 과육을 주로 섭취해왔다는 뜻이다. 인류의 조상이 나무 위로 올라가 유배 생활을 자처한 이유는 뭘까? 운동 능력이 떨어져 육상에서는 포식자로부터 뛰어 도망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즉, 진화생물학적 기준에서 볼 때 인류는 한때 열등한 생태학적 지위를 지닌 종이었다. 그 결과로 밟아야 했던 진화의 경로는 잘 알려져 있다. 나뭇가지 사이를 이동하다보니 손가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약자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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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비밀을 숨기고 있을 땐 평화롭던 가정이 가족의 안전을 위해 서로의 비밀을 염탐하면서 첩보극의 주 무대가 되는 드라마가 있다. KBS 금요 드라마 <스파이>의 원작인 이스라엘 드라마 <The Gordin Cell>은 이스라엘에 정착한 전 KGB 요원 부부가 공군 소속인 아들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자, 아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스파이 업무에 뛰어들고 아들 역시 국가에 대한 충성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다. 이를 리메이크한 <스파이>에선 한국 과학자 김우석(정원중)을 납북하려다 그와 사랑에 빠진 간첩 박혜림(배종옥)이 동료를 배신하고 신분을 세탁해 한국에 자리잡았고, 그들의 아들 김선우(김재중)는 국정원 요원이 되었다. 혜림 부부는 아들이 그저 평범한 공무원인 줄 알았고, 늘 예민하던 엄마를 안심시키려 진짜 직업을 숨겼던 아들은 엄마가 간첩이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리메이크 소식을 듣고 유튜브에서 원작의 트레일러를 찾아보던 중 제일
[유선주의 TVIEW] 시어머니와 스파이, 닮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