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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고향집의 화두는 단연‘책가방’이었다. 조카 두명이 올해 나란히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여동생들 미간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형편에 맞게 사주자니 따돌림당할 것 같고, 유행하는 명품 가방을 사주자니 적잖이 부담이 되고. 듣자하니 10만원짜리는 가난뱅이 취급이고, 70만원 이상의 명품 브랜드는 재고가 없을 지경이고, 30만, 40만원짜리는 돼야 간신히 중산층 흉내를 낼 수 있단다. 책가방에, 아이들 옷 브랜드까지 벌써부터 등골 부서지겠다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이른바 신(新)등골 브레이커. 노스페이스, 자전거, 화장품 등 중·고등학교를 휩쓸었던 고가품 유행이 이제는 초등학교에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입학 학용품의 평균 지출 비용이 63만8천원이란다. 14만원짜리 이탈리아제 지우개, 33만원짜리 프랑스제 필통, 28만원짜리 이탈리아제 공책이 70만원짜리 일제 책가방에 담겨 있어야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입학식 풍경. 인정욕망 자체가 창백하게 물신화돼버린 어떤 즉물의 세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조카의 입학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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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린드롬(Palindrome)은 회문, 즉 앞에서 읽으나 뒤에서 읽으나 같은 단어나 어구를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리효리, 오디오, 기러기 같은 단어가 있겠고 ‘여보 안경 안 보여’, ‘소주 만병만 주소’ 같은 문장도 있다.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1995)를 연출한 토드 솔론즈의 2004년작 <팰린드롬>의 주인공은 아비바(Aviva)라는 이름의 소녀이고, 그 역시 앞뒤로 읽어도 똑같은 팰린드롬식 이름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아비바 역은 완전히 다른 8명의 배우가 연기하는데, 이 때문에 처음 영화를 볼 때 주인공 아비바에게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백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비바의 첫 번째 모습은 흑인 소녀였는데(거기서부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혼란스럽고…) 이내 짙은 갈색 머리의 통통한 백인 소녀로 바뀌었다가, 빨간 머리의 교정기를 낀 마른 백인 소녀-통통한 금발의 백인 소녀-갈색 단발과 보통 체격의 백인 소녀-긴 머리의 엄청난 과체중 흑인 소녀-검
[내 인생의 영화] 이랑의 <팰린드롬> 반성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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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주류 유통업체의 장부를 조작해 세금 탈루를 돕고, 사장의 묵인하에 소소한 “삥땅”을 쳐온 남자. 뒤탈 없이 해먹는 쪽으로 무척 유능한 인재였던 김성룡(남궁민)의 말에 따르면 “인간관계의 가장 아름다운 속성은 노나먹는 관계”란다. 대기업 분식회계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를 융통성 없는 지질이라 비웃던 그는, 공석이 된 그룹 경리과장직에 지원한다.
회계범죄를 저지르는 대기업과 회사 내 말단 경리부가 맞서는 블랙코미디. KBS <김과장>을 보고 있자니 ‘최순실 게이트’의 내부 고발자 모씨를 취재한 기사가 떠올랐다. 실무로 일하던 그는 타국에서 급여도, 숙소 지원도 끊긴 채 토사구팽 당했고 배신이 거듭되자 폭로를 결심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궁금해졌다. 만약 최순실이 성룡처럼 ‘노나먹음’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면, 누구의 폭로도 없었을까?
드라마 <김과장>은 김성룡이 믿던 아름다운 ‘노나먹음’에 마찰이 생기는 지점들을 꼼꼼하게 짚어간다. 투명하
[유선주의 TVIEW] <김과장> 같이 노나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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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했더니 나와 고향이 같은 여자애가 있었다. 우리는 인사를 했다. “안녕? 난 정원이라고 해.” “안녕? 난 혜영이라고 해.” 옆에서 보고 있던 서울 출신 동기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너네 왜 인사해?” 그럼 서울 애들은 통성명도 안 하고 야자 트냐? 우리 고향에선 안 그런다. “아니, 그게 아니고, 너네 아는 사이 아니야? 전주에 여학교 한개잖아.” 하….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전주에는 여고가 8개, 남녀공학이 2개야. 여학생이 갈 수 있는 학교가 총 10개인 셈이지. 학교가 하도 많아서 나도 몇갠지 몰랐는데(으쓱), 하루는 교장이 3학년 전체를 강당에 모아놓고 우리 성적표 수백장을 던지면서 그러더라고, 이번 모의고사 결과 여고 8개 남녀공학 2개 중에서 우리 학교 이과가 9등 문과가 10등이다! 그리고 난 당연히 10등인 문과였지(다시 한번 으쓱).” 아이, 숨차.
서울 아이는 사과했다. “미안, 난 시골은 다 학교가 한개인 줄 알고.” 이 자식이! 나는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시골 사람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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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소 고지>에는 ‘삭제’와 ‘편집’이 없다, 는 게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지난호 국내뉴스로도 전했듯이, <얼라이드>를 비롯하여 최근 일부 수입영화들의 가위질 논란 탓인지 오리지널 본편 그대로 개봉하는 것도 화제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당연하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횡행했으면, 어쩌다가 당연한 것이 당연하다는 이유로 칭찬받는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괜히 나도 나라는 이유로, 너도 너라는 이유로 칭찬받고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핵소 고지>에는 전장에서의 모르핀 투약 장면이나 심각하게 훼손되는 육체 등 다소 엄격한 심의기준이 적용될 만한 장면들이 있었으나, 이에 15세 관람가 등급을 결정한 영상물등급위원회쪽은 “심의 결과 영상의 표현에 있어 폭력적인 부분이 정당화되거나 미화되지 않게 그려졌다. 그 밖에 대사와 공포 부분은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어쨌건 호불호를 넘어 ‘감독 멜 깁슨’이 언제나 추구해왔던 거의 집착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제목 바꾸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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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입에 침이 고이고 온몸이 근질거려 벌떡 일어나 술집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만화들이 있다. <술 한잔 인생 한입>이라든가 <술꾼도시처녀들> <와카코와 술> 같은 만화들이 그렇다. 만화에서 소개한 술집을 검색하고 주당 멤버를 모아 만화에서 보았던 군침 도는 안주와 술을 만화의 주인공 와카코처럼 “푸슈! 푸슈!” 입으로 소리를 내며 부어라 마셔라 하고는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기어들어오게 된다. 다음날 늦은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그 아름답던 만화책들은 다시는 펼쳐보기도 싫어져 구석에 처박아버리고 숙취 때문에 끙끙 앓으며 “술을 다시 마시면 난 개다!”라고 중얼거린다. 뭐, 2~3일 지나면 다시 개가 되어 멍멍 짖겠지만. 운이 좋아서 그날 저녁쯤 숙취가 좀 진정된다면 또 다른 종류의 술에 관한 만화 <음주가무연구소>나 약간 하드한 <알코올 중독 원더랜드>를 보면서 전날 술 마시고 저지른 만행과 추태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불 속에 숨
[오승욱의 뒷골목 만화방] 아즈마 히데오 <실종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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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누르질 못했다. 어서 빨리 저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고 싶었건만, 멍하니 소파에 앉은 채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쭉 들어버렸다. 나는 지금 ‘들었다’가 아니라 ‘들어버렸다’라고 썼다.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건 내가 이 음악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곡의 주인공은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제목은 <All Along The Watchtower>다. 밥 딜런이 쓰고 노래한 것을 지미 헨드릭스와 그의 밴드가 커버해 1968년 세상에 내놓았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이 곡을 다시 만나게 된 건 게임 <마피아3> 덕분이었다. 게임을 플레이하자마자 이 곡이 딱! 하고 흘러나오는데, (이미 익숙한 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어쨌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1장의 ‘앨범’을 끝까지 듣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어느새 우리는 1개의 ‘곡’마저도 온 신경을 집중해 청취하는 경험을 박탈당
[마감인간의 music] 포로가 되다 -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All Along The Watch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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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12일, 나와 작업실 친구들은 난데없이 속초로 향했다. 누군가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그곳에서 <포켓몬 고>를 해볼 수 있다는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속초, 인제, 신남이라는 표지판을 거쳐 자정을 넘긴 시각에 속초에 도착했다. 어느 시점에 누군가가 “여기 있어, 있어!”라고 외쳤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포켓몬이라고는 피카츄 정도만 들어서 알고 있는 나였지만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귀여운, 지나치게 귀여운 생명체에 순간 넋이 나가고 말았다. 우리는 밤새도록 거리를 돌며 포켓몬을 포획했고, 해가 떴을 때도 멀리 보이는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눈길 한번 흘긋 던졌을 뿐 분주히 포켓스톱을 돌아다녔다. 작업실 바로 옆 편의점도 가기 귀찮아하는 친구들이 한없이 걸으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내가 처음 포획한 포켓몬은 이브이였다. 쾌청한 날씨였고, 속초 바다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의 잉어
[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지금은 포켓몬을 잡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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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의 스포츠 타임라인으로 시작하는 KBS의 <한눈에 스포츠>. 공영방송사와 닮은꼴인 제목이야 어쨌든, 새로운 시도임에는 분명하다. 기존의 심심하고 전형적인 카메라워크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메인 앵커의 상반신을 광각 카메라의 줌인으로, 그것도 핸드헬드 느낌으로 흔들어주며 스포츠의 다이내믹함을 전한다. 몇 대 몇의 스코어와 선수들 소식을 단신과 리포트로 전하던 스포츠 뉴스 형식에서 벗어나, 스포츠 쇼의 느낌을 예능에서 차용해 온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짧은 코너들은 모바일 콘텐츠를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시청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뉴스, 소트니코바와 김연아의 금메달 논쟁이나 프로야구 FA 100억원 시대의 명암 등에 대한 분석적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동사의 스포츠국에서 만든 <스포츠 이야기 운동화>가 새로운 형식의 스포츠 토크의 장을 열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스포츠 쇼의 새로운 포지셔닝을 노리고 있는 듯 보인다. 공중파는 지금 치열한 생존경쟁 중이다
[김호상의 TVIEW] <한눈에 스포츠> 스포츠 프로그램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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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기관지천식을 심하게 앓았으므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부유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내 방엔 다른 친구들 집엔 없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고, 조립해 만들 수 있는 장난감들이 가득했다. 매일 장난감을 조립하고 공상과학 소설들을 즐겨 읽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브이>나 <전격 Z작전>을 시청하던 어느 날, <주말의 명화>였는지 <토요명화>였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어디선가 방영한 <스타워즈>를 보게 되었다.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지구라는 별은 영화에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등장했다 치더라도 지구는 작은 변두리 행성 중 하나로 나왔을 것이다. 그 세계 안에선 우주의 다양한 종족들이 거대한 연합을 이루어 살고, 그 연합을 무너뜨리기 위해 제국이라는 또 하나의 집단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내 인생의 영화] 한성천의 <스타워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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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마디 충고하겠는데, 네가 앞으로 뭘 하든 하지 마라.” 한국영화계의 기념비적인 캐릭터 블랙코미디인 송능한 감독의 1997년작 <넘버.3>에서 극중 마동팔 검사(최민식)가, 그에게 ‘형님’이라 부르며 들러붙어보려는 조직의 넘버3 서태주(한석규)에게 “깡패 새끼는 동생으로 키우지 않는다”며 건네는 준엄한 충고다. 이번호 <더 킹> 비평기획에서 송형국 평론가가 이른바 ‘검사 영화’를 한국영화계 특유의 장르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적극 동의하면서,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에서 검사와 깡패의 앙상블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영화가 바로 <넘버.3>였던 것 같다. 첫 장면부터 최민식이 샌드백을 치며 복싱을 하고 있기에 ‘어디 조폭인가?’ 싶지만 그의 옆으로 ‘檢事’라는 팻말이 보인다. 법을 다루지만 주먹이 더 빠른 그는 이후 한국영화계에 등장하는 검사 캐릭터의 전범이 됐다. 더불어 공격적인 풍자로 대중문화와 현실정치를 넘나드는 코미디 전략은 <넘버.3>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검사 영화 <넘버.3>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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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매켄지의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2016)는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서부시대에 인디언을 밀어내고 땅을 차지한 사람들의 후손이고, 이제는 반대로 그들이 대기업과 금융 시스템에 의해서 자신의 땅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해 있다. 태너(벤 포스터)와 토비(크리스 파인) 형제는 함께 은행털이로 돈을 모으고 있다. 소도시 은행을 대상으로 소액권 현금만을 강탈하고, 모은 돈은 인디언 보호구역의 카지노에서 자금세탁을 한다. 텍사스 지역은행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들의 계획은, 동일한 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을 갚지 못하면 은행으로 소유권이 넘어가는 농장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시도이다. 그래서 <로스트 인 더스트>가 왜 땅에 관한 영화인지를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국 서부 개발의 역사
미국의 서부시대는 토지 분할의 역사라 말할 수 있다. 독립전쟁 후 영국으로부터 서부의 광대한 토지를 양도받은 동부 13개 주정부는 미개척지, 서부 개
[윤웅원의 영화와 건축] <로스트 인 더스트>는 왜 땅에 관한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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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음악, 영화, 농구, 애니메이션, 만화, 비디오게임 등 갖가지 취미를 즐긴다. 그중에서도 비디오게임은 특별한 존재다. 지금도 10종류가 넘는 콘솔/휴대용 게임기를 소장하고 있고, 내 방에는 오락실 게임기도 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늘 똑같은 말을 한다. “집에 오락실 게임기 있는 사람 처음 봤어요.”
만약 누군가 내게 인생 최고의 게임을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파이널 판타지6>이다. 1994년 4월2일, 용산전자상가에서 14만원 주고 구입했다. 물론 엄마 돈이다. 이 게임은 당시 여러모로 혁명적이었다. 슈퍼패미콤의 한계를 극복한 그래픽, 감동적인 스토리, 마음을 빼앗는 캐릭터. 무엇보다도 나는 이 게임의 ‘사운드트랙’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다. 이등신 캐릭터와 2D 화면이 뭐라고 그렇게 감격에 젖었던 걸까. 확실한 것은 사운드트랙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점이다. 특
[마감인간의 music] 나를 꿈꾸게 하는 - <파이널 판타지6>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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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이라는 제목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개봉한다고 할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진부한 제목은 곧 잊었다. 그런데 볼만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안 보면 저만 손해인 형편이 되었다. 내러티브의 비약과 판타지는 심리적 경계를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했으나, 아름다운 그림과 이야기의 힘찬 전개는 내 마음속의 낭만을 충분히 뒤흔들었다. 영화관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름도 생소했던 감독의 전작인 <언어의 정원>을 다운로드해서 보았고, 한국 관객의 호응에 고무된 감독의 트윗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했다. 시효를 다한 줄 알았던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로 이렇게 호소력 있는 작품을 만든 것을 보니 꺼진 불도 정말 다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자유로이 가로지르는 영화와 달리 시간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 경험은 틀에 박혀 있다. 강물이 유유히 바다로 흘러가듯 시간은 무심히 그리고 도도하게 흘러갈 따름이다. 이런 시간에 대해 두려움에 휩싸인
[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얼어붙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