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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 화장기의 화면 밖 얼굴을 봤을 때는 대학생인 줄 알았다. 말수 적은 대학생 같은 느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마지막 표지 컷을 앞두고,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내맡긴 채 다리를 쭉 뻗어 화장대에 걸치고 있는 모습에서 장난기가 배어났다. 인터뷰를 시작할 즈음에는 벌써 두눈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뒤늦게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고민과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하고, 하루키 소설에 스파게티가 등장하면 식욕이 샘솟으며,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암리타>에 나오는 구절인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모호한 감정들’ 속에 파묻히는 것을 좋아하는 스물넷. <외출>의 금지된 사랑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단 한번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그래서 맑은 눈동자는 아직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는 듯이 반짝거리는 스물넷. 그는 그런 스물넷으로 <외출>의 여인 서영을 향해 외출을 떠났다가,
<외출>의 배용준+손예진 [3] - 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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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은 ‘사람의 벽’을 두르고 다닌다고 기자들은 말한다. 틀린 관찰은 아니다. <외출>의 삼척 현장에서도 개인 영어교사, 스타일리스트, 그를 위한 메이킹 필름 기사 등 여섯명가량의 스탭이 달무리처럼 그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씨네21>과 약속한 날 배용준은 손수 차를 몰고 왔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오늘은 혼자 있고 싶었다”고 설명하는 목소리가 가뭄의 풀처럼 버석거린다. 종일 추적인 비도 간밤에 한잠도 이루지 못한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스며들지 못한 것 같았다. 이제 막 완성됐으나 아직 관객의 세례를 받지 못한 영화 <외출>은, 이 중증 완벽주의자에게 불면부터 안겨주고 있었다.
“그 남자들 비겁하지 않았나요?”
-삼척 촬영현장에서 만났을 때, 제가 허진호 감독 영화 속 남자들이 한국영화에서는 희귀한 성격의 남성들이라고 평했더니 당신은 그들이 비겁한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남자
<외출>의 배용준+손예진 [2] - 배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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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옛날이 혹시 기억나나요? 나의 남편과 당신의 아내가 우리를 속이기 전, 아니 그들의 배신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때 말이에요. 나는 아직 노파도 아닌데 왜 백년도 넘은 일 같을까요. 그 시간들은 신의 음흉한 장난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우매한 자의 백일몽?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오늘은 우리 둘이서 함께 그 꿈을 다시 꾸기로 해요. 아뇨. 눈 감을 필요는 없어요. 당신의 아내인 척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내 남편인 척도 하지 마세요. 이 꿈속에서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과 함께 잠깨어 창을 열고 티격태격 하루를 계획하고 팔짱을 낀 채 외출하고 싶어요. 걱정 말아요. 이 꿈속에서는 눈도 비도 내리지 않을 거니까. 약속해요.”
그게 누구라도 슬플 때는 서로를 애무해서는 안 된다고, 날이 밝으면 더 비참해질 뿐이라고, 작가 한스 에리히 노삭은 썼다. “사랑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외출>의 서영과 인수라면 그렇게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의 역설이
<외출>의 배용준+손예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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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아는 요즘처럼 바빴던 때가 없다. 호러영화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신작 <애인>의 촬영 때문에 새벽 5시만 되면 헤이리로 가야 한다.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날도 <첼로…>의 VIP 시사가 열리는 강남의 한 극장에 들러 무대인사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밤 9시. 인터뷰와 사진 촬영은 11시나 되어야 겨우 끝날 참이다. 그렇게 바쁘게 달리다가는 넘어진다는 기자의 말에, 성현아는 어물쩍 웃어넘긴다. “그냥 꾸준히 계속 이렇게 하려고 한다. 영화 찍을 때가 제일 좋다. 나는 쉴 줄도 모른다. 쉬면 고민만 는다. 게다가 작품 출연할 때마다 출연작 DVD 하나씩 쌓이는 재미가 있으니까.” (웃음)
그러고보면 지금처럼 성현아의 이름 앞에 영화배우라는 명패가 자연스러웠을 때도 없었던 듯싶다. 그는 <보스상륙작전>과 <주글래 살래>의 자신을 영화배우라 여기지 않았고, 뒤이어 터진 스캔들은 성현아라는 이름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의 성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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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에프런이 돌아왔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작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의 작가 겸 감독으로서 리얼리티와 통찰이 돋보이는 모던 로맨스를 선보여왔던 그가 1960년대 TV시리즈 <아내는 요술쟁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 <그녀는 요술쟁이>를 내놓았다. 작가로서는 <지금은 통화중>, 감독으로서는 <럭키 넘버> 이후 5년 만의 ‘외출’이다. 이번엔 오랜 분신이었던 귀엽고 수다스러운 뉴요커 멕 라이언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서 온 여인’다운 비현실적인 아우라를 지닌 니콜 키드먼과 함께다.
발랄하고 로맨틱한 코미디로 잘 알려져 있지만, 초창기에 노라 에프런은 <제2의 연인> <실크우드>처럼 냉소적이고 신랄한 사회드라마로 주목받았다. 그 작품들을 함께했던 마이크 니콜스의 영향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는 전반적인 공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여느 작가 출신 감독들처럼
<그녀는 요술쟁이>로 5년만에 컴백한 노라 에프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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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화난 목소리로 여자에게 사랑을 구걸한다. 여관방에서 자지러지듯이 웃으며 “사랑? 사랑?”이라고 조롱하는 여자. 이후 욕지거리와 난투극 끝에 남자에게 처참하게 교살당하는 그녀. 건조하고 차가운 롱테이크로 찍힌 <소름>의 선영(장진영)은 한국 영화사에 기억될 만한 기묘하고 강력한 팜므파탈로 남았다. 장진영은 네 번째 출연이며 첫 주연작인 <소름>에서 그렇게 배우로 다시 태어났다. 이 영화를 보면 그녀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렸다”고 말하는 대목이 실감나게 와닿는다.
운명처럼 그의 여덟 번째 출연작 <청연>에서 그 연출자 윤종찬 감독과 그 배우 장진영은 재회했다. 저예산영화에 스탭들은 컵라면으로 연명하고 마지막 촬영날까지 제작비 조달에 허덕였던 <소름>. 강행군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청연>은 4개국 로케이션, 3년의 제작준비 기간, 촬영만 1년이 걸린 대작이다. 호사가들이 ‘충무로 3대 재앙’이라고 씹
그리고 감독은 배우를 창조했다, <청연>의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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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은 전날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개봉을 앞둔 불안일까 짐작해 보았지만, 늦게까지 밑줄 쳐가면서 희곡을 읽다보니 그랬다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을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제작한 <웰컴 투 동막골>이 전국관객 200만명을 넘기면서 <박수칠 때 떠나라>의 앞길을 막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어쩌면 이렇게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걸까. “다들 별점을 잘 줬더라고. 나는 별 두개나 두개 반도 많을 것 같은데.” (웃음) 혹독한 자기 비판을 거쳤기 때문에 어떤 혹평이나 칭찬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장진 감독은 48시간 안에 살인범을 찾아내야 하는 미스터리 <박수칠 때 떠나라>를 두고 마치 남의 영화를 이야기하듯 장점과 결점을 찾아내곤 했다. 마지막이 정말 처연하잖아요, 그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 그렇게 하지 말걸. 그러나 그가 가장 생기를 보이는 순간은 다음 작품을 이야기할 때였다. 30회를 숨가쁘게 촬영하고 개봉까지 해치우고선 곧
<박수칠 때 떠나라>의 장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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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휴머니스트’ 오구리 고헤이 감독(56)이 한국을 찾았다. 영화를 찍기 위해서? 아니다. 영화를 취재하러 왔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취재하기 위해 특별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오구리 고헤이 감독은 리포터 자격으로 일행에 합류했다. NHK는 매년 5편의 아시아권 영화를 선정해 제작을 지원하고 있는데 <박하사탕>은 작년에 낙점받은 영화 중 한편이다. 평소 오구리 고헤이 감독은 어드바이스 자격으로 NHK의 제작 지원작 선정 작업에 참여해왔으며 이번에 <박하사탕>이 한국에서 개봉하자 감독과의 대담을 겸해 한국을 방문한 것.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잠자는 남자>를 출품하는 등 오구리 감독은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쌓아왔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 감독의 데뷔작 <진흙강>(81)은 재일한국인 가족의 빈곤하고 누추한 삶을 포착한 영화였으며 재일한국인 작가 이회성 원작의 <
NHK <박하사탕> 특집 취재차 방한한 오구리 고헤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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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축제 분위기의 새해 첫날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다고 개봉이 1주일 밀리긴 했지만, <행복한 장의사>는 웃음과 희망이 있는 영화다. 사는 게 별로 즐겁지 않은 세 사람이 노 장의사로부터 죽음을 경건하게 맞는 법을 배우면서 삶의 온기를 되찾는다는 이야기다. 연기와 음악을 오가며 양쪽에서 다 든든한 자리를 마련한 김창완과 임창정이 주연이라는 점이 또다른 관심거리. 까마득한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자살하려다 마음 고쳐먹고 장의사 일을 시작한 판철구, 장의사 자리에 오락실을 차리려는 철없는 청년 장재현 역을 각각 맡아, 새 천년 벽두의 관객을 찾았다.
노래 부를까, 영화할까
김창완
“록하기엔 너무 늙어버렸지”
“맞아. 이게 처음 주연 맡은 영화야. 소감? 누군가 ‘60, 70년대라면 당신 같은 사람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그러더군. 맞는 말이지 뭐. 난 영화 하는 거 자체가 좋아. 주연이라고 해봤자 멋있는 영웅도 아니고 그냥 허둥대는 초보장의사에 불과
<행복한 장의사>의 두 주연배우 김창완·임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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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배고프다고 풀 뜯어먹나? 최성국은 미니 홈피에 자신의 좌표를 이렇게 적었다. 선이 굵은 미남형 탤런트로 멜로드라마에서 자주 보아왔던 최성국이 어느 날부턴가 우릴 웃기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거슬러올라가보면, 시트콤 <대박가족>에서 미모와 저음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행동들을 자주 연출했다고 쳐도, 영화로 옮겨온 뒤의 변신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색즉시공> <낭만자객>에서 그는 폼생폼사하려다 망가지고 마는 캐릭터들을, 시침 뚝 떼고 진지하게 연기했더랬다. 신작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서는 강력반의 막내 형사로서, <투캅스>의 열혈 형사 김보성을 연상시키며 등장했다가, 자신의 선배인 이대로 형사(이범수)를 추종하면서, 한없이 최성국스러워지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작품 속에서나 오락 프로그램에서나, 그가 웃기는 순간은, 모든 표현이 너무 진지하고 솔직해서, 멜로스러운 외모와 부조화를 이룰 때다. 그는 그런 편견이 불만스
희극지왕을 꿈꾸며,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최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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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란,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가져가야 할 짐인가 보다. 인터뷰 전날 진행된 <가발>의 기자 시사회장에서도,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마주한 자리에서도 채민서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3년 전 그는, 300:1의 경쟁률을 뚫고 (곽경택 감독의 말에 따르면) “튀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챔피언>의 유일한 사랑으로 낙점됐다. 신인이 감당할 수 없었던 악의섞인 소문, 시청률에 의해 중요한 설정까지 좌지우지되던 드라마(<진주목걸이>), 평단의 악평이 유난히 신랄했던 코미디영화(<돈텔파파>), 근거없는 정보 때문에 우익영화로 먼저 알려졌던 일본영화(<망국의 이지스>)를 거쳐 그가 선택한 영화, <가발>. 억울한 영혼의 저주가 깃든 가발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을 다룬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주연배우의 고생이 훤했다.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눈빛과 분위기로 감정을 전달하려는 공포영화, 삭발에 특
삭발, 특수분장, 고행의 연기수업, <가발>의 채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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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일 저녁의 홍익대 앞. 클럽 ‘롤링홀’ 앞 거리에는 서성거리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옐로우나인에서 주최하는 ‘뉴 뮤직 긱’(New Music GIG)의 첫 번째 공연. 군데군데 붙은 포스터에는 5인조 펑크록 밴드 ‘줄리엣과 더 릭스’(Juliette & The Licks)의 사진이 선명하다. 여자보컬의 사진을 어디선가 본 듯하다면 줄리엣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아스라한 기억을 되짚어볼 요량이다. 악마에게 몸을 내맡기던 <케이프 피어>의 순결한 여고생, 살인을 예술로 여기던 <올리버 스톤의 킬러>의 살인마, 상처입은 소년들을 끌어안았던 <길버트 그레이프>의 소녀. 바로 그 줄리엣 루이스가 펑크록 밴드를 이끌고 한국을 찾아왔다.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줄리엣 루이스는 이미 2장의 앨범을 발표한 록가수다. 2003년에 밴드 ‘줄리엣과 더 릭스’를 결성한 그는 2003년에 EP <…Like A Bolt Of Lightni
5인조 펑크록 밴드 ‘줄리엣과 더 릭스’ 보컬로 내한한 줄리엣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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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박하사탕>을 선보인 후 제작사 이스트필름의 명계남 대표는 보는 사람마다 “<박하사탕>은 안보면 손해인 영화”라고 말하곤 했다. 또 “서울에서만 100만명이 볼 영화”라고 큰소리 치면서 “100만명이 들지 않으면 은퇴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녔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농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실없이 던지는 허풍은 아니었다. 지금도 ‘안보면 손해’라는 <박하사탕>에 대한 그의 신념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서울 100만’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박하사탕>은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받으면서도 안정적인 상영극장을 확보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이 불합리한 배급구조와 지나치게 상업논리에 따르는 극장들의 횡포 탓이라고 판단한 관객들이 <박하사탕> 두번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네티즌들을 중심이 돼 <박하사탕>을 한번씩 더 보고 주변 사람에게
<박하사탕> 제작자, 이스트필름 대표 명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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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삶이라도 거대한 진실을 껴앉고 있기 마련이지만, 눈에 띄게 유별난 인생 유별난 인물이 있다. 아직 그의 ‘한삶’을 다 산 건 아니지만 조디 포스터(38)를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배우이자 감독이며 제작자이고 영화 한편의 출연료로 1500만달러를 거두는 할리우드의 일급 여성스타이다. 여기까지라면 그도 하고많은 재주꾼의 한 사람일 따름이지만, 그는 레즈비언의 우상이자 연인이고 공공연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로부터 꺼내지는 이야깃거리도 유별나게 풍요롭다. 어느 사이엔가 조디 포스터는 결이 풍부한, ‘하나의 텍스트’가 돼버렸다.
지난해 서울여성영화제에 상영된 <조디 포스터 이야기>는 조디 포스터에게 꽂힌 레즈비언들의 달뜬 시선을 주메뉴로 한 다큐멘터리다. 영화에는 “이십대 후반의 레즈비언들은 조디를 보며 자랐어요. 여성들이 어릴 때 그의 스타 이미지에 자신을 투사했던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라든가, “부치(레즈비언 연인 사이에서 남성
그(녀), 주류 영화 최초의 여성영웅, 조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