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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하(25)와 약속을 하라. 그러면 그는 매니저먼트사에서 제공한 벤츠를 타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나와, 생수 아니면 당근쥬스를 시키고는, 예 쁜 눈을 빛내며 “내가 예쁘다구요? 그럴 리가!”라고 진짜 놀란 얼굴을 할 것이다. 아주 가끔은 직접 차를 몰고 오다가 배탈이 나서 길가 병원신 세를 지고, 설상가상으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두어시간을 넘긴 뒤에 탈진 한 얼굴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심은하처럼 예쁜 처녀가 정 말 미안한 얼굴로 “미안해요”를 열번쯤 되풀이하면 오랫동안 꽁한 척하 기가 실로 난감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심은하와 만나기 어려운 것은, 스크린에서도 마찬가지다. <8월의 크리스 마스> 전까지, 심은하는 1백여편의 시나리오를 거절했다. 그렇지 않았더 라면, 그는 진즉 ‘한석규의 여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영화 <인샬라 >도 애초엔 한석규, 심은하 짝을 캐스팅할 생각이었고, <접속> 또한 그랬 으니까. 영화
크리스마스의 천사,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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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이 진행 중인 한낮의 청담동 카페. 뜰이 내려다보이는 이층에서 창문을 고치던 아저씨가 유리창을 망치로 두드린다. 굉음과 함께 마당으로 떨어지는 커다란 유리 파편들. 촬영 중이던 여배우의 발치에 파편들이 떨어지고, 같이 있던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씩 웃으며 “이거 우리 영화 대박나려는 조짐이야”라고 말하는 간 큰 여배우. 김원희. 그가 MBC 21기 공채 탤런트로 입문하여 동기 장동건, 박주미와 함께 시작한 연기 생활도 벌써 14년이 흘렀다. <임꺽정> <꿈의 궁전> <은실이> <퀸>을 통해 활약한 드라마보다는 <헤이 헤이 헤이> <대한민국 1교시> <놀러와> 같은 오락프로그램으로 ‘예능의 퀸’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된 1972년생 여배우 김원희. 그래서인지 인터뷰 당일에도 카페 담벼락에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팬들이 몰려와 “언니 예뻐요”를 연발했다. 카메오 출연을 제외하면 2000년에 방영된 <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의 김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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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3
그는 푹신한 소파가 불편하다고 느꼈다.
푹신한 소파를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의 발끝으로 느끼는 나른함을 그의 어깨 끝까지 전달했다.
그녀가 속삭인다. “이런 관계가 나쁘지는 않잖아요.”
그가 대답한다. “쉽지도 않죠.”
전도연과 황정민은 “사람들이 오누이 같다 그러는” 사이다. 황정민은 “원래부터 친한 사이예요. 만날 같이 술마시고”라고, 전도연은 “그냥 어느 순간 친해져 있었어요”라고 할 뿐이다. 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HQ 연기3팀에 나란히 속한 두 배우는, 황정민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끝내고 대학로에서 <지하철 1호선>을 공연할 때 처음 만났다. “매니저(박성혜 이사)가 저한테 황정민씨 얘길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한번 같이 보러가자고. 다른 건 모르겠는데, 진짜 너무 열심히 하는 거예요. 너무 열심히. 치열해 보였던 거 같아요. 나랑 비슷하단 생각도 들고.”
언제 밥이나 같이 먹자, 라는 말인 양 언제 영화나 같이 하자,
<너는 내 운명>의 전도연 & 황정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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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토요일 오후, 후끈한 6시였다. 연인들의 주말 데이트가 시작될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뜨거운 애정행각을 참아주기는 싫은 날씨였다. 전도연과 황정민에게 ‘서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남녀’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기자 왈, 애인이 없다는 것 빼고는 일상에 결핍이 없는 도시 남녀들입니다. 서로에게 마음은 있지만 쉽게 표현할 성격들은 아니고, 마음을 줄 듯 말 듯 고민하는 거죠.) 듣자마자 전도연이 낭랑하게 한마디 던진다. “<화양연화>네!” 맞다. <화양연화>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났던 때, (어떤 이들에 한해) 의미를 좁히면 인생에서 단 한번 있을 사랑을 할 때. 박진표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너는 내 운명>도 그런 러브스토리다. 순박한 시골 노총각 석중과 마음에 상처가 많은 다방 레지 은하는 맹세한다. 죽을 때까지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 시골 흙길을 밟으며 따뜻하고 순수한 사랑을 나눈 두 남녀가 대도시의 차가운 건물 안
<너는 내 운명>의 전도연 & 황정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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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의 표지를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결코 세상에 섞여들 것 같지 않은, 희망 같은 것은 존재한 적도 없다는 듯한 눈빛을 한 채 세상에서 떨어져 있다. 안젤리나 졸리(24)도 그런 부류이다. 어깨와 팔에 새긴 문신도, 나이프를 수집하는 취미도 그녀를 크리스털 그릇처럼 마냥 예쁘기만 한 여배우들과 구분짓는다. 비슷하게 삐딱한 이미지를 가진 <트레인스포팅>의 ‘식보이’ 자니 리 밀러와의 결혼식에서도 졸리는 자신의 피로 밀러의 이름을 휘갈긴 흰 셔츠를 입고 서로의 피를 교환하는 파괴적인 의식을 치렀다. 그러나 그처럼 요란한 행동이 아니더라도 졸리는 질서에 젖은 사람들이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배우가 아니다. 쉴새없이 요동치는 감정과 수그러들지 않는 오만함으로 무장한 채 자신의 이미지 그대로 험한 역들을 거쳤다. <미드나잇 카우보이>에 출연한 배우 존 보이트의 딸로 평가받고 싶지 않아 성을 버리고 나타난 그녀는 영화 속에서도 마치 홀로 존재하는 듯한 느
세상에 섞여들지 않는 눈빛, 안젤리나 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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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의 첫 만남/ 뮤지컬 <황구도>. 연극은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세기말> 끝나고 바로 섭외가 들어왔어요. 개들의 사랑을 그린 잔잔하고 따뜻한 뮤지컬이예요. 얌전하고 착하고, 천상 여자인 암캐 캐시로 출연해요. 예전에 출연한 역할과는 아주 달라요. 1월3일부터 방영되는 TV드라마 <나는 그녀가 좋다>에서는 못돼서 새침하기보다는 못돼서 귀여운 악녀로 나와요. 이미지 변신을 즐겨요. 꾸준히 자기를 가꾸지 않으면 배우로서의 생명력은 없다고 봐야죠.
1999년 20자평/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을, 내 생애 최고의 순간들이 많았던 한해. 그러나 새 천년엔 또 무엇을?
21세기, 나의 길/ 연기도 계속하고 싶지만, 교단에서 후배들에게 내 지식을 나눠주고 싶어요. 그래요, 교수가 꿈이예요. 중학교 때부터 그랬어요. 연기를 하는 것도 일종의 현장경험이죠. 아직 뭘 가르칠지는 정하지 못했어요. 남들이 많이 가는 미국말고 일본으로 유학가서 새로운 걸 배
21세기 스크린, 네개의 사자후 [4] -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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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의 첫 만남(첫 작품)/ 홍상수 감독님의 <오! 수정>이 될 거예요. 감독님이 참 특이하세요. 촬영 현장에서 음악을 틀어놔요.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도 않아요. 배우를 편하게 해주세요. 감독님을 만난 건 행운이예요. <오! 수정>은 2000년 한국영화 하면 떠오르는, 그런 영화가 될 거예요. 흑백영화라는 것만으로도. 홍 감독님 영화라서 기대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저는 ‘내 영화’라서 잘했다는 박수를 받고 싶어요.
1999년 20평/ 홍상수 감독님 식으로, 은주가 영화에 빠진 해!
21세기, 나의 길/ 계속 배우로 살아야죠. 아직 난 배우라기보다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죠. 아기배우예요.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내가 생각하는 배우는 특별한 사람이거든요. 오래 두고볼 수 있는 연기자, 세월이 흘러도 신비롭게 여겨지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2000년 1월1일 0시/ 계획대로라면 <카이스트>에 함께 출연하는 정민 선배가
21세기 스크린, 네개의 사자후 [3]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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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의 첫 만남/ 얼마 전 성재 오빠(이성재)랑 <플란다스의 개> 촬영을 마쳤어요.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현남이가 제 역할인데, 순수하고 정의로워서 동네 강아지 실종사건을 접하고 추적해요. 상황은 웃긴데, 사람이 진지해서 더 웃길 거예요. 감독님 말씀처럼 현남이랑 나랑 많이 닮아서, 연기하기 아주 편했어요. 현장 분위기도 화기애애했구요. 시나리오 읽고 무조건 하겠다고 달려들었는데, 시사회날은 꼭 울어버릴 것 같아요.
1999년 20자평/ 연기의 맛을 알아버린, 그래서 연기를 택하는 대신 다른 한편을 포기한 한해(배두나는 <플란더스의 개>를 만나면서, 드라마, 쇼프로 MC, 라디오 DJ를 모두 그만뒀다).
21세기, 나의 길/ 난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거든요. 과거에 얽매이지도, 미래에 부담을 느끼지도 않아요. 재밌고 즐거우니까 하는 것뿐이예요. 한동안 몰두하다가 놓아버리는 버릇도 있구요. 뭔가 이뤘다 생각하면 놓는 거죠. 깨는 걸 좋아하나봐요. 그런
21세기 스크린, 네개의 사자후 [2] - 배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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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의 첫 만남/ 1월중에 촬영 들어갈 호러영화 <가위>. 배우의 힘으로 끌고 가는 영화는 아직 내게 무리라 생각하는데, <가위>는 장르적으로 다 같이 가는 영화라 맘이 놓였어요. 그리고 호러영화는… 묘한 매력이 있잖아요. 튀지 않는 캐릭터인데, 어떻게 표현해낼지 요즘 구상중이예요.
1999년 20자평/ 그저 그렇게, 그러나 그렇게, 언제나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럴 거야. (‘다시’를 외치자) 이해가 안 가요. 너무 갑자기 떠서. 왜들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 요즘 출연섭외가 너무 많아져서 정신없어요.
21세기, 나의 길/ 배우는 배우일 뿐이예요. 왕도 제작자도 감독도 아니죠. 연기나 품행에 있어 지난해는 배우로서의 과도기였다고 생각해요. 21세기는 한발 더 나아갈 시점이죠. 할 수 있는 걸 할 거예요. 그간 맡은 역할들 때문인지, 사람들이 날 답답하거나 비관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눌하고, 권태롭고, 뭔가에 눌려 있는… 지금보다 연기를 더 잘
21세기 스크린, 네개의 사자후 [1] - 유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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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이상한 선물 하나가 우리에게 배달되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라는 글씨가 총총 박힌 붉은 포장지 안에서 어떤 이는 ‘못생긴’ 공포영화 한편을 꺼내들고 투덜거렸지만, 어떤 이는 생경한 광채를 발하는 작은 보석을 발견하고 가슴을 두근거렸다. 이 묘한 선물을 보내 온 산타클로스는 영화아카데미 13기 동기생인 김태용(30) 감독과 민규동(29) 감독. <여고괴담…>은 16mm 단편영화 <열일곱>(1997), <창백한 푸른 점>(1998)에 이은 그들의 세 번째 공동 연출작이자 첫 번째 상업영화다.
“민선이(민아 역)가 잠깐 자리 비운 동안 심심해서 예진이(효신 역)랑 영진이(시은 역)랑 우리 둘이서 누가 많이 관객 끌어오나 경쟁했어요.” 개봉날 극장 앞에서 보낸 즐거운 하루를 천진한 말투로 들려주는 두 감독은, 맑되 가볍지 않았고 열정적이되 그 열정에 대해 담담했다. 마치 동급생 친구라도 되는 양 영화 속 소녀들에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공동감독 김태용ㆍ민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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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도 감정이 안 들어가면 안 되는 거더라”
하지원과 함께 그날로 세 번째 인터뷰를 치르는 강동원은 지친 기색없이 온몸으로 기분 좋은 온기를 풍겼다. 신기했다. <늑대의 유혹> 개봉 즈음인 1년 전, 그는 마주 앉은 사람 얼굴 위로 고드름 대여섯개는 금방 만들어 달아놓을 수 있을 것처럼 차가움을 숨기지 않았더랬다. “좋았어요?”라는 질문에 “좋았어요”라고밖에 더는 답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강동원은 이제 새로운 질문이 끼어들라쳐도 자기가 하려던 말은 (질문을 모른 척하면서까지) 하고야 마는 인터뷰이가 되어 있었다. “원래 슬로 스타터인데다가 현장이 타이트해서 10부쯤 지나고나서 감을 잡았다. 각본도 좋고 캐릭터도 좋았는데, 내가 연기를 못해서”라는 드라마 <매직>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는지, 꽤나 많이 쏟아놓았다. 고집스러운 성격은 여전하다. “내가 보기에는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계속 배우라고 하셔서” 시작한 선무도는 3시간짜
<형사 Duelist>의 하지원, 강동원 [3] -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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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는 말보다 멋있다는 말이 더 좋다”
저녁 8시 반쯤 시작된 사진 촬영과 인터뷰는 그날 하지원의 세 번째 스케줄이었다. 두건의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 지친 기색이 처음엔 짙었지만, 곧 특유의 밝은 기조를 되찾고 까르르 웃음소리를 섞어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실제 성격은 그리 전투적이지 못한 하지원이 처절하고 땀내 물씬 나는 액션연기에 두 차례(<다모> <형사 Duelist>)나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착실함이 뒷받침되어서일 것이다. 강동원은 “필요없을 것 같아서” 중도에 포기했다는 선무도를 “호랑이권법, 학권법, 원숭이권법”까지 참을성 있게 배웠고, “배운 걸 까먹지 않으려고” 열심히 연습하다 꿈에서까지 탱고를 춰 침대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한신, 한신이 고비였기 때문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는 그녀의 정감어린 목소리엔 촬영현장을 그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감독님이 테이크를 많이 간 편인가.
=리허설을 많이 하셨다. 근
<형사 Duelist>의 하지원, 강동원 [2] - 하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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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형사 Duelist>의 두 주인공 남순과 슬픈눈은 숙명적 대결을 해야하는 남녀다. 남순은 두손에 쥔 작은 단도들로 건장한 남자들의 칼 열 자루를 상대하는 여형사 Duelist이며, 슬픈눈은 이름처럼 슬픈 눈빛을 하고 친아버지 같은 대감 앞에서 아름다운 검무를 추는 자객. 남순의 하지원은 기합소리와 칼부림 속에서 땀냄새를 풍길 때 살아숨쉬는 여배우이고, 강동원은 단단한 근육보다 선 고운 이목구비로 관음의 욕구를 자극하는 오브제다. 남/녀라는 성별이 가진 본질에서 다소 비껴난 두 배우의 모던한 매력에 이끌려, 우리는 그들에게 까다로운 준비를 요구했다. 하지원에게는 당신의 강함을, 강동원에게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촬영은, 두 사람이 아무 치장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됐다. 민소매 셔츠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두 배우가 솜으로 가득 채워진 상자 안에 들어가 누웠다. 잠옷 같은 차림과 편안한 포즈 때문인지 그들의 눈동자 위에 눈꺼풀이 덮인다. 잠든 얼굴
<형사 Duelist>의 하지원, 강동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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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을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일하는 CF회사의 아담한 사무실 구석에는 1995년부터 즐겨 탔다는 스키 보드가 있었다. 야트막한 서가에는 일본 만화책, 로보트 태권V와 <은하철도 999>의 메텔 그리고 <슈퍼맨> 인형이 가족 사진과 함께 놓여 있고, 벽에는 김홍도가 일본에서 그렸을지도 모른다고 추정되는 그림 2점이 걸려 있었다. 칸을 비롯해 해외에서 CF로 수상한 메달과 상패들도 보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쉽고도 심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 CF 감독 출신에게, 혹시 그만의 독특한 창작의 비밀을 캘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빡빡한 인터뷰 스케줄로 점심도 거른 채였지만, 그는 활달하고 천진난만하게 그리고 막힘없이 질문에 응했다. 첫 단편 <내 나이키>의 배경인 1981년의 나이키 모델은 칼 루이스가 아니라 알베르토 살라자르이며, <웰컴 투 동막골>이 포스트모던적
관객 400만 돌파한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