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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도 감정이 안 들어가면 안 되는 거더라”
하지원과 함께 그날로 세 번째 인터뷰를 치르는 강동원은 지친 기색없이 온몸으로 기분 좋은 온기를 풍겼다. 신기했다. <늑대의 유혹> 개봉 즈음인 1년 전, 그는 마주 앉은 사람 얼굴 위로 고드름 대여섯개는 금방 만들어 달아놓을 수 있을 것처럼 차가움을 숨기지 않았더랬다. “좋았어요?”라는 질문에 “좋았어요”라고밖에 더는 답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강동원은 이제 새로운 질문이 끼어들라쳐도 자기가 하려던 말은 (질문을 모른 척하면서까지) 하고야 마는 인터뷰이가 되어 있었다. “원래 슬로 스타터인데다가 현장이 타이트해서 10부쯤 지나고나서 감을 잡았다. 각본도 좋고 캐릭터도 좋았는데, 내가 연기를 못해서”라는 드라마 <매직>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는지, 꽤나 많이 쏟아놓았다. 고집스러운 성격은 여전하다. “내가 보기에는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계속 배우라고 하셔서” 시작한 선무도는 3시간짜
<형사 Duelist>의 하지원, 강동원 [3] -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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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는 말보다 멋있다는 말이 더 좋다”
저녁 8시 반쯤 시작된 사진 촬영과 인터뷰는 그날 하지원의 세 번째 스케줄이었다. 두건의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 지친 기색이 처음엔 짙었지만, 곧 특유의 밝은 기조를 되찾고 까르르 웃음소리를 섞어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실제 성격은 그리 전투적이지 못한 하지원이 처절하고 땀내 물씬 나는 액션연기에 두 차례(<다모> <형사 Duelist>)나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착실함이 뒷받침되어서일 것이다. 강동원은 “필요없을 것 같아서” 중도에 포기했다는 선무도를 “호랑이권법, 학권법, 원숭이권법”까지 참을성 있게 배웠고, “배운 걸 까먹지 않으려고” 열심히 연습하다 꿈에서까지 탱고를 춰 침대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한신, 한신이 고비였기 때문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는 그녀의 정감어린 목소리엔 촬영현장을 그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감독님이 테이크를 많이 간 편인가.
=리허설을 많이 하셨다. 근
<형사 Duelist>의 하지원, 강동원 [2] - 하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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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형사 Duelist>의 두 주인공 남순과 슬픈눈은 숙명적 대결을 해야하는 남녀다. 남순은 두손에 쥔 작은 단도들로 건장한 남자들의 칼 열 자루를 상대하는 여형사 Duelist이며, 슬픈눈은 이름처럼 슬픈 눈빛을 하고 친아버지 같은 대감 앞에서 아름다운 검무를 추는 자객. 남순의 하지원은 기합소리와 칼부림 속에서 땀냄새를 풍길 때 살아숨쉬는 여배우이고, 강동원은 단단한 근육보다 선 고운 이목구비로 관음의 욕구를 자극하는 오브제다. 남/녀라는 성별이 가진 본질에서 다소 비껴난 두 배우의 모던한 매력에 이끌려, 우리는 그들에게 까다로운 준비를 요구했다. 하지원에게는 당신의 강함을, 강동원에게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촬영은, 두 사람이 아무 치장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됐다. 민소매 셔츠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두 배우가 솜으로 가득 채워진 상자 안에 들어가 누웠다. 잠옷 같은 차림과 편안한 포즈 때문인지 그들의 눈동자 위에 눈꺼풀이 덮인다. 잠든 얼굴
<형사 Duelist>의 하지원, 강동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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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을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일하는 CF회사의 아담한 사무실 구석에는 1995년부터 즐겨 탔다는 스키 보드가 있었다. 야트막한 서가에는 일본 만화책, 로보트 태권V와 <은하철도 999>의 메텔 그리고 <슈퍼맨> 인형이 가족 사진과 함께 놓여 있고, 벽에는 김홍도가 일본에서 그렸을지도 모른다고 추정되는 그림 2점이 걸려 있었다. 칸을 비롯해 해외에서 CF로 수상한 메달과 상패들도 보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쉽고도 심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 CF 감독 출신에게, 혹시 그만의 독특한 창작의 비밀을 캘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빡빡한 인터뷰 스케줄로 점심도 거른 채였지만, 그는 활달하고 천진난만하게 그리고 막힘없이 질문에 응했다. 첫 단편 <내 나이키>의 배경인 1981년의 나이키 모델은 칼 루이스가 아니라 알베르토 살라자르이며, <웰컴 투 동막골>이 포스트모던적
관객 400만 돌파한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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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 화장기의 화면 밖 얼굴을 봤을 때는 대학생인 줄 알았다. 말수 적은 대학생 같은 느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마지막 표지 컷을 앞두고,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내맡긴 채 다리를 쭉 뻗어 화장대에 걸치고 있는 모습에서 장난기가 배어났다. 인터뷰를 시작할 즈음에는 벌써 두눈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뒤늦게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고민과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하고, 하루키 소설에 스파게티가 등장하면 식욕이 샘솟으며,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암리타>에 나오는 구절인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모호한 감정들’ 속에 파묻히는 것을 좋아하는 스물넷. <외출>의 금지된 사랑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단 한번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그래서 맑은 눈동자는 아직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는 듯이 반짝거리는 스물넷. 그는 그런 스물넷으로 <외출>의 여인 서영을 향해 외출을 떠났다가,
<외출>의 배용준+손예진 [3] - 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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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은 ‘사람의 벽’을 두르고 다닌다고 기자들은 말한다. 틀린 관찰은 아니다. <외출>의 삼척 현장에서도 개인 영어교사, 스타일리스트, 그를 위한 메이킹 필름 기사 등 여섯명가량의 스탭이 달무리처럼 그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씨네21>과 약속한 날 배용준은 손수 차를 몰고 왔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오늘은 혼자 있고 싶었다”고 설명하는 목소리가 가뭄의 풀처럼 버석거린다. 종일 추적인 비도 간밤에 한잠도 이루지 못한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스며들지 못한 것 같았다. 이제 막 완성됐으나 아직 관객의 세례를 받지 못한 영화 <외출>은, 이 중증 완벽주의자에게 불면부터 안겨주고 있었다.
“그 남자들 비겁하지 않았나요?”
-삼척 촬영현장에서 만났을 때, 제가 허진호 감독 영화 속 남자들이 한국영화에서는 희귀한 성격의 남성들이라고 평했더니 당신은 그들이 비겁한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남자
<외출>의 배용준+손예진 [2] - 배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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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옛날이 혹시 기억나나요? 나의 남편과 당신의 아내가 우리를 속이기 전, 아니 그들의 배신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때 말이에요. 나는 아직 노파도 아닌데 왜 백년도 넘은 일 같을까요. 그 시간들은 신의 음흉한 장난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우매한 자의 백일몽?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오늘은 우리 둘이서 함께 그 꿈을 다시 꾸기로 해요. 아뇨. 눈 감을 필요는 없어요. 당신의 아내인 척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내 남편인 척도 하지 마세요. 이 꿈속에서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과 함께 잠깨어 창을 열고 티격태격 하루를 계획하고 팔짱을 낀 채 외출하고 싶어요. 걱정 말아요. 이 꿈속에서는 눈도 비도 내리지 않을 거니까. 약속해요.”
그게 누구라도 슬플 때는 서로를 애무해서는 안 된다고, 날이 밝으면 더 비참해질 뿐이라고, 작가 한스 에리히 노삭은 썼다. “사랑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외출>의 서영과 인수라면 그렇게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의 역설이
<외출>의 배용준+손예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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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아는 요즘처럼 바빴던 때가 없다. 호러영화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신작 <애인>의 촬영 때문에 새벽 5시만 되면 헤이리로 가야 한다.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날도 <첼로…>의 VIP 시사가 열리는 강남의 한 극장에 들러 무대인사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밤 9시. 인터뷰와 사진 촬영은 11시나 되어야 겨우 끝날 참이다. 그렇게 바쁘게 달리다가는 넘어진다는 기자의 말에, 성현아는 어물쩍 웃어넘긴다. “그냥 꾸준히 계속 이렇게 하려고 한다. 영화 찍을 때가 제일 좋다. 나는 쉴 줄도 모른다. 쉬면 고민만 는다. 게다가 작품 출연할 때마다 출연작 DVD 하나씩 쌓이는 재미가 있으니까.” (웃음)
그러고보면 지금처럼 성현아의 이름 앞에 영화배우라는 명패가 자연스러웠을 때도 없었던 듯싶다. 그는 <보스상륙작전>과 <주글래 살래>의 자신을 영화배우라 여기지 않았고, 뒤이어 터진 스캔들은 성현아라는 이름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의 성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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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에프런이 돌아왔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작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의 작가 겸 감독으로서 리얼리티와 통찰이 돋보이는 모던 로맨스를 선보여왔던 그가 1960년대 TV시리즈 <아내는 요술쟁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 <그녀는 요술쟁이>를 내놓았다. 작가로서는 <지금은 통화중>, 감독으로서는 <럭키 넘버> 이후 5년 만의 ‘외출’이다. 이번엔 오랜 분신이었던 귀엽고 수다스러운 뉴요커 멕 라이언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서 온 여인’다운 비현실적인 아우라를 지닌 니콜 키드먼과 함께다.
발랄하고 로맨틱한 코미디로 잘 알려져 있지만, 초창기에 노라 에프런은 <제2의 연인> <실크우드>처럼 냉소적이고 신랄한 사회드라마로 주목받았다. 그 작품들을 함께했던 마이크 니콜스의 영향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는 전반적인 공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여느 작가 출신 감독들처럼
<그녀는 요술쟁이>로 5년만에 컴백한 노라 에프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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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화난 목소리로 여자에게 사랑을 구걸한다. 여관방에서 자지러지듯이 웃으며 “사랑? 사랑?”이라고 조롱하는 여자. 이후 욕지거리와 난투극 끝에 남자에게 처참하게 교살당하는 그녀. 건조하고 차가운 롱테이크로 찍힌 <소름>의 선영(장진영)은 한국 영화사에 기억될 만한 기묘하고 강력한 팜므파탈로 남았다. 장진영은 네 번째 출연이며 첫 주연작인 <소름>에서 그렇게 배우로 다시 태어났다. 이 영화를 보면 그녀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렸다”고 말하는 대목이 실감나게 와닿는다.
운명처럼 그의 여덟 번째 출연작 <청연>에서 그 연출자 윤종찬 감독과 그 배우 장진영은 재회했다. 저예산영화에 스탭들은 컵라면으로 연명하고 마지막 촬영날까지 제작비 조달에 허덕였던 <소름>. 강행군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청연>은 4개국 로케이션, 3년의 제작준비 기간, 촬영만 1년이 걸린 대작이다. 호사가들이 ‘충무로 3대 재앙’이라고 씹
그리고 감독은 배우를 창조했다, <청연>의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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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은 전날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개봉을 앞둔 불안일까 짐작해 보았지만, 늦게까지 밑줄 쳐가면서 희곡을 읽다보니 그랬다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을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제작한 <웰컴 투 동막골>이 전국관객 200만명을 넘기면서 <박수칠 때 떠나라>의 앞길을 막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어쩌면 이렇게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걸까. “다들 별점을 잘 줬더라고. 나는 별 두개나 두개 반도 많을 것 같은데.” (웃음) 혹독한 자기 비판을 거쳤기 때문에 어떤 혹평이나 칭찬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장진 감독은 48시간 안에 살인범을 찾아내야 하는 미스터리 <박수칠 때 떠나라>를 두고 마치 남의 영화를 이야기하듯 장점과 결점을 찾아내곤 했다. 마지막이 정말 처연하잖아요, 그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 그렇게 하지 말걸. 그러나 그가 가장 생기를 보이는 순간은 다음 작품을 이야기할 때였다. 30회를 숨가쁘게 촬영하고 개봉까지 해치우고선 곧
<박수칠 때 떠나라>의 장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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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휴머니스트’ 오구리 고헤이 감독(56)이 한국을 찾았다. 영화를 찍기 위해서? 아니다. 영화를 취재하러 왔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취재하기 위해 특별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오구리 고헤이 감독은 리포터 자격으로 일행에 합류했다. NHK는 매년 5편의 아시아권 영화를 선정해 제작을 지원하고 있는데 <박하사탕>은 작년에 낙점받은 영화 중 한편이다. 평소 오구리 고헤이 감독은 어드바이스 자격으로 NHK의 제작 지원작 선정 작업에 참여해왔으며 이번에 <박하사탕>이 한국에서 개봉하자 감독과의 대담을 겸해 한국을 방문한 것.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잠자는 남자>를 출품하는 등 오구리 감독은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쌓아왔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 감독의 데뷔작 <진흙강>(81)은 재일한국인 가족의 빈곤하고 누추한 삶을 포착한 영화였으며 재일한국인 작가 이회성 원작의 <
NHK <박하사탕> 특집 취재차 방한한 오구리 고헤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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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축제 분위기의 새해 첫날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다고 개봉이 1주일 밀리긴 했지만, <행복한 장의사>는 웃음과 희망이 있는 영화다. 사는 게 별로 즐겁지 않은 세 사람이 노 장의사로부터 죽음을 경건하게 맞는 법을 배우면서 삶의 온기를 되찾는다는 이야기다. 연기와 음악을 오가며 양쪽에서 다 든든한 자리를 마련한 김창완과 임창정이 주연이라는 점이 또다른 관심거리. 까마득한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자살하려다 마음 고쳐먹고 장의사 일을 시작한 판철구, 장의사 자리에 오락실을 차리려는 철없는 청년 장재현 역을 각각 맡아, 새 천년 벽두의 관객을 찾았다.
노래 부를까, 영화할까
김창완
“록하기엔 너무 늙어버렸지”
“맞아. 이게 처음 주연 맡은 영화야. 소감? 누군가 ‘60, 70년대라면 당신 같은 사람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그러더군. 맞는 말이지 뭐. 난 영화 하는 거 자체가 좋아. 주연이라고 해봤자 멋있는 영웅도 아니고 그냥 허둥대는 초보장의사에 불과
<행복한 장의사>의 두 주연배우 김창완·임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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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배고프다고 풀 뜯어먹나? 최성국은 미니 홈피에 자신의 좌표를 이렇게 적었다. 선이 굵은 미남형 탤런트로 멜로드라마에서 자주 보아왔던 최성국이 어느 날부턴가 우릴 웃기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거슬러올라가보면, 시트콤 <대박가족>에서 미모와 저음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행동들을 자주 연출했다고 쳐도, 영화로 옮겨온 뒤의 변신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색즉시공> <낭만자객>에서 그는 폼생폼사하려다 망가지고 마는 캐릭터들을, 시침 뚝 떼고 진지하게 연기했더랬다. 신작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서는 강력반의 막내 형사로서, <투캅스>의 열혈 형사 김보성을 연상시키며 등장했다가, 자신의 선배인 이대로 형사(이범수)를 추종하면서, 한없이 최성국스러워지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작품 속에서나 오락 프로그램에서나, 그가 웃기는 순간은, 모든 표현이 너무 진지하고 솔직해서, 멜로스러운 외모와 부조화를 이룰 때다. 그는 그런 편견이 불만스
희극지왕을 꿈꾸며,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최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