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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인어공주>(2004) 때부터 박흥식 감독은 무협액션물 <협녀, 칼의 기억>의 기초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인어공주>, <사랑해, 말순씨>(2005) 등 주로 드라마에 주력하던 그가 액션의 세계를 탐닉한다고 할 때 기대 한편으로 그의 낯선 선택에 의구심도 들었다. 무협에 심취하지 않았던 그가, 무협이라는 ‘칼’을 들고 마치 자신의 이전 필모그래피를 잘라내려는 느낌이었던 것. 그렇다면 그에게 지금 ‘무협’이라는 도구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협녀, 칼의 기억>은 고려 무인시대, 한 남자의 배신으로 18년의 세월을 보내고, 그를 향한 복수의 칼을 든 두 여자에 대한 운명적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풍진삼협으로 함께 의를 나눈 풍천(배수빈), 덕기(이병헌), 설랑(전도연)의 관계가 왕이 되고자 하는 덕기의 배신으로 와해되고, 덕기가 유백으로 이름을 바꾸고 출세를 꿈꾸
[박흥식] 무협의 액션과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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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핫한 뷰티 아이콘을 꼽으라면 단연 유승옥이다. 2013년 미스 충북 선발대회에 출전해 특별상을 수상한 뒤 모델로 활동한 그는 지난해 10월 머슬마니아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모델 부문 2위로 라스베이거스 대회 출전권을 얻었으며, 라스베이거스 세계 대회에서는 아시아인 최초로 ‘커머셜 모델 부문 톱5’에 올랐다. 불과 1년 반 만에 스타가 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이지만 아직 유승옥이 ‘뭐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얼마 전엔 운동법을 기록한 책 <유승옥의 발레이션>을 출간했고 지금은 니카라과에서 SBS <정글의 법칙> 촬영을 준비 중이다. 누군가는 그를 <놀라운 대회 스타킹> 출연자로, 또 다른 누군가는 드라마 <압구정 백야>에 출연한 신인 연기자로 기억할지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뷰티 프로그램 <더 바디쇼>를 진행하던 패널 중 하나로 기억할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그 모두가 유승옥인 것만
[trans × cross] 안젤리나 졸리처럼 연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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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시인의 흔들의자 위에서 한들한들 잠든 은교를 보는 순간 그 모습을 본 모두가 이 아이에게 지고 말리라는 것을 알았을 거다. <몬스터>(2014)의 복순이와 <차이나타운>(2014)의 일영은 어떤가. 누가 봐도 승패가 빤한 싸움에서 악바리 근성으로 기어이 절대자를 이겨먹고야 만다. <협녀, 칼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이병헌과 전도연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 같은 배우들 사이에서마저 김고은은 끝끝내 자기 자리를 지켜내지 않는가. 맹하고 순한 얼굴에 속아 금세 또 잊어버리겠지만, 김고은은 강하고 독한 배우다.
<협녀, 칼의 기억>의 홍이가 그렇다. 옳다고 믿기에 행하는 아이. 복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홍이는 복수를 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뒤집힌 후에도 기어코 상대를 베러 가는 아이다. 그 길이 옳다고 여겼으니까. 마음이 찢기는 고통까지 싹 무시하고 끝내 ‘그 사람’의 등에 칼을 꽂아넣는다
[김고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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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요즘 안톤 후쿠아 감독의 서부극 <황야의 7인>에서 무법자를 처단하는 ‘빌리 록’ 역할을 연기하느라 바쁘다. 덴젤 워싱턴, 에단 호크, 크리스 프랫 등과 함께 출연 중이다. 벌써 한달이 넘도록 이어진, 한낮의 기온이 47℃에 달하는 루이지애나의 주도 배턴루지의 폭염에 맞선 강행군에서 잠깐 빠져나온 탓일까. 검게 탄 피부에 수염까지 기른 모습에 촬영장의 후끈한 열기가 그대로 달라붙어 온 듯하다. 그렇게 촬영 삼매경에 빠져 있던 그에게 <협녀, 칼의 기억>의 개봉은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을 터다. “최근에 안톤 후쿠아 감독 신작 <사우스포>(2015)가 LA에서 프리미어 시사를 하는데, 촬영하느라 정작 감독이 참석을 못해 시사회장으로 영상편지를 보내셨죠. 그런데 나는 내 영화 제작보고회 간다고 촬영을 빼달라고 했으니….” 그는 단 하루만이라도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감독과 PD에게 허락을 구했다. 그렇게 무리해서라도 <협녀, 칼의 기억>의 ‘
[이병헌]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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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드라마의 시작이자 끝이다. 힘 있는 내러티브는 인물이 장애를 돌파하고 욕망을 쟁취하는 과정을 충실히 따라간다. 하지만 가끔 이야기가 하나씩 조립하여 도달해야 할 결과물을 단 한 장면으로 완성하는 이들이 있다. 전도연이란 배우는 말하자면 내러티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모순의 들끓는 에너지를 담아내는 전가의 보도와 같다. 그가 등장한 장면이 곧 현상, 설명, 설득, 이윽고 결과가 된다. 관객이 목격하는 건 배우의 육체와 짧은 표정이 전부지만 우리는 그 텅 비어버린 표정 안에서 가슴속에 담긴, 영화가 미처 말하지 못한 사연들까지 들여다본다. 어떤 이야기를 만나건 그녀는 이야기 이상의 무언가를 품고 있다.
아마도 스스로 원한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배우로서 얻을 수 있는 칭찬은 대부분 들은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영화가 아니라 연기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예전에도 지금도 개인적인 영광을 목표로 한 적은 없어요. 배우 전도연보다는 작품이 먼저 보였으면
[전도연] 지독한 사랑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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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감독의 <협녀, 칼의 기억>은 고려 중기 ‘칼의 시대’, 왕이 되고자 하는 야욕에 눈이 멀어 의를 나눈 형제를 죽이고 사랑을 버린 남자(이병헌)와 그 남자의 배신으로 진짜 눈을 잃고 복수를 꿈꾸는 여자(전도연), 그리고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복수의 칼을 시행할 여자(김고은), 이 세 남녀의 어긋난 운명을 그린 무협영화다. 묵직한 스토리가 전하는 감정의 결을 모두 실어나르자면 그 어느 때보다 배우의 역할이 중요한 영화였고 그런 면에서 이병헌, 전도연, 김고은의 캐스팅은 시작부터 화제를 모았다. 제작 보고회가 있었던 지난 7월24일은 한창 할리우드영화를 촬영 중인 이병헌이 어렵게 한국에 들어온 날이기도 했다. 복수와 사랑, 배신과 애증으로 얽힌 세 남녀의 스토리를, 또 근 6개월간 진행된 촬영현장의 공기를 세 배우와 나눈 날, 그들이 함께 모인 유일무이한 인터뷰로 남을 그 특별한 시간을 여기 공유한다.
[이병헌, 전도연, 김고은] 애증의 삼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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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4)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차지한 안국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27기로 장편제작연구과정을 거쳐 2년간 공들인 시나리오로 영화를 완성했다. 촬영 전 각본을 읽은 박찬욱 감독은 “근래 읽은 가장 재밌는 시나리오”라고 말했고, 전주국제영화제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한국 독립영화계의 지형도 안에서 B급영화적 분위기로,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끝까지 밀어붙인 흔치 않은 경우”라고 평했다. 영화는 엘리트가 되고 싶었지만 공장에 취직하는 데 만족해야 했던, 사랑을 꿈꿨지만 남편의 자살 시도 이후 계속되는 시련에 허덕여야 했던 수남(이정현)이라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수남이 어찌하여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이정현을 캐스팅하는 데 박찬욱 감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수남 역의 캐스팅 1순위가 이정현씨였다. 그런데 정현씨 소속사에 시나리오를
[people] 현실의 답답함을 코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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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4)
<명량>(2014)
<범죄소년>(2012)
<파란만장>(2010)
<하피>(2000)
<침향>(1999)
<마리아와 여인숙>(1997)
<꽃잎>(1996) 외
종달새처럼 사뿐사뿐 옮기는 걸음, 높은 톤에 비음이 섞인 맑은 웃음소리,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 이정현은 말간 기운을 뿜으며 상대방의 말에 귀를 세운다. 그런 그녀와 마주앉아 그녀가 걸어온 영화의 길을 훑어본다. 그리고 곧바로 떠오르는 아주 강렬한 궁금증 하나. ‘어떻게 이토록 해사하고 가냘픈 사람이 그토록 지독하고 강단 있는 인물들을 연기할 수 있었을까.’ 1980년 광주항쟁으로 어머니와 오빠를 잃고 고통 속에서 실성했던 <꽃잎>의 소녀부터였다. 무려 3000 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그녀가 <꽃잎>에 캐스팅됐다는 사실보다도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광기어린
[이정현] 항상 연기에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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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5 <은하>
2015 <그리울 련>
2014 <상의원>
2014 <신의 한 수>
2013 <사이코메트리>
2012 <박수건달>
드라마
2015 <디데이>
2014 <갑동이>
2013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
2008 <리틀맘 스캔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 이야기. 흔한 유행가 가사 같지만 <그리울 련>의 두 남녀에게는 곧 불어닥칠 현실이다. 배우 정윤선이 연기하는 주인공 희연은 불치병 선고를 받아 애인 태우(정경호)를 두고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여자다.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던 한철수 감독은 길학미의 뮤직비디오 <텅 빈 방>을 작업하면서 정윤선과 처음 만났다. “감독님 말로는 뮤직비디오 촬영 때 정말 아파 보였다고 하시더라. 그 모습이 누가 봐도 희연이었다면서. (웃음)” 그녀가 처음 받아본 시나리오는 완성된 영화보다 훨씬 서사가
[who are you] 천천히 때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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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꿈꿨지만 아무도 실행하지 못했던 것. CGV가 매트리스 브랜드 템퍼와 합작한 세계 최초의 리클라이닝 침대극장, 템퍼시네마를 오픈했다. 씨네드쉐프의 고급스런 이미지와 엮어 “관객이 호텔에 온 것처럼 느끼도록” 기획했다. 이 과감한 기획의 중심에 CGV 컨세션기획팀 김진평 과장이 있다. “지난해 가을쯤 <라이프 오브 파이>를 물에 보트를 띄워 관람하게 하는 영화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재밌는 아이디어더라. 평소 여러 브랜드의 마케터들과 자주 만나는데 함께 밥을 먹다 그 얘기가 나왔다. 그 자리에 템퍼 관계자를 안다는 분이 있어 중매 아닌 중매를 받게 돼 10월부터 적극적으로 기획했다.”
템퍼시네마는 현재 씨네드쉐프가 있는 CGV압구정과 CGV센텀시티 두 군데에만 있다. 리모컨으로 등받이와 발판의 각도를 조정할 수 있는 템퍼의 전동침대를 설치했는데 관객이 자세를 바꾸거나 앉아서 영화를 봐도 뒷사람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넉넉한 시야각까지 확보했다. 매트리스는
[STAFF 37.5] “관객이 호텔에 온 것처럼 느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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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 감독의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2002)가 보여줬던 개성 강한 사운드트랙 실험은 당시 활동 중이던 영화음악 작곡가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감독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각본가로 시작해 연기와 연출은 물론 방송 진행자, 라디오 DJ 등 여러 매체에서도 활동했고 두편의 소설까지 냈던 버라이어티한 이력의 소유자 이무영 감독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역시 음악이다. 그는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수많은 도구 가운데 음악을 가장 사랑한다. 그가 최근 펴낸 팝송 해설서 <명곡의 재발견: 영어 해석으로 보는 팝송이야기 100>(이하 <명곡의 재발견>)은 어쩌면 이무영 감독이 평생을 사랑해 마지않았던 음악이라는 도구의 사용설명서 같다. 20세기 이후 세계음악사에서 중요하게 등장했던 팝송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실체, 나아가 국제 정세까지도 읽어내려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이무영] 바보 같은 대중문화를 향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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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9와 숫자들’을 만나기에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데뷔 앨범 《9와 숫자들》(2009) 이후 5년 만에 만든 2집 《보물섬》은 지난해 11월에, 또 하나의 싱글 《빙글빙글》은 올해 4월에 발표됐으니까. 그럼 또 어떤가 싶기도 했다. 9와 숫자들의 음악은 지금도, 여전히 좋은데. 2집 타이틀곡 <숨바꼭질>이 ‘2015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로 선정됐을 때, 선정위원들은 입모아 말했다. ‘혹시나 이들의 음악을 쓱 들어보고 별로 맘에 드는 구석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선택을 믿고 차근차근 열만 더 세어줬으면 좋겠다. 거기서 한 걸음만 더 가면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만날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이들을 만나야 할 때는 중요하지 않았다. 팀의 리더이자 보컬인 9(송재경)가 7월에 첫 번째 솔로 싱글 《문학소년》을 낸 걸 계기 삼아 멤버 전원과의 만남을 청했다. 습하고 무더운 7월의 밤, 9와 숫자들을 만나 선선한 바람을 기다리게
[trans × cross] “친숙한 듯해도 우리와 비슷한 밴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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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무녀굴>은 퇴마사로 활동 중인 정신과 전문의 진명(김성균)과 그를 돕는 조력자이자 영매인 지광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승을 떠도는 원혼을 찾아나선 퇴마사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즉, 탐정영화의 틀을 쓴 공포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오랜만에 여고생이 등장하지 않는 한국 공포영화라는 신선함은 여름을 기다리는 장르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이다. 그만큼 진명과 지광은 영화 전체의 톤 앤드 매너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중에서도 극중 유일하게 혼령과 인간을 만나게 하는 신묘한 능력을 지닌 영매 지광은 특히 중요한 인물이다.
데뷔작 <제니, 주노>(2005)의 주노와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2006)의 민호로 기억되는 배우 김혜성은 그동안 군복무로 인해 잠깐 동안의 공백기를 가졌다. 그가 제대 후 첫 스크린 복귀작으로 맡은 영매 지광은 시나리오상에서의 캐릭터의 비중뿐만 아니라 연기 형태에 있어서도 굉장한 도전과제였다. 지광은 생전에 씻을
[김혜성] 자전거 탄 기분으로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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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무녀굴>에서 차예련이 연기한 미스터리 다큐 PD 혜인은 매사에 털털하지만 궁금한 것은 절대로 못 참는 집요함을 지닌 캐릭터다. 그녀는 취재를 통해서 퇴마사이자 정신과 전문의 진명(김성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의 이면을 관객 앞에 펼쳐 보인다. 그러니까 혜인은 직접 원혼을 상대하거나 혹은 빙의되는 등 전면에 나서는 역할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반전을 담당하는 캐릭터는 더더욱 아니다. 호러퀸 차예련이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공포영화에 주연이 아닌 “리액션이 중심인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사실 차예련은 ‘한국의 호러퀸’이란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귀한 여배우다. 그건 아마도 데뷔작 <여고괴담4: 목소리>(2005)와 <므이>(2007)로 이어지는 동안, 그러니까 지금보다 한국 공포영화가 좀더 활발하게 제작되던 시기에 그녀가 대중에게 남긴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후 스크
[차예련] 호러퀸의 여유를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