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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통해 배운다고 하지만 실패는 아무리 반복해도 이력이 나지 않는다. 실패할수록 실패할까 두렵다. 그보다는 사소한 성공의 경험이 훨씬 중요하다. 그게 다시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있게 하니까.” 드라마 <미생>(2014), <시그널>(2016)을 연출한 김원석 PD가 언젠가 했던 이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이 말은 그가 만들어온 드라마의 세계, 그 안의 인물들에 대한 정확한 은유로 들렸다. 김원석 PD는 허무맹랑한 성공 신화에는 관심이 없다. 실패를 애써 두둔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유난스럽지 않은 소박한 성취의 경험을 통해 다음 한발을 내디딜 용기를 얻는다. 김원석 PD의 작품에 보내는 시청자들의 응답은 바로 이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현재가 무전기를 통해 교신하며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해가는 <시그널> 역시도 이러한 연출자의 세계 안에서 움직이고 나아간다. 함께 호흡을 맞춘 김은희 작가는 김원석 PD가 “인물들의 감정을
[김원석] “미래를 얘기한다는 건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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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였다. 싱어송라이터 이아립은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읊조리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말 사이사이에는 들숨이 잦았고 곳곳에는 유머가 있었다. 그간 이아립의 음악들은 이 모든 특징들을 모아둔 것의 총체였다. 하지만 5집 《망명》은 어딘가 다른 분위기다. 곡조는 숨길 수 없이 어둑해졌고 가사는 보다 직설적이다. 1999년에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소속사에 들어가 앨범을 만든 것이 부른 변화 같았다. 이아립은 스웨터, 하와이 등의 팀으로 앨범을 내기도 했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 혼자 묵묵히 음악 작업을 해왔다. 그렇기에 새로운 둥지를 만나 만든 《망명》은 이아립에게 변곡점일 것이다. 이아립만의 색을 지키면서 동시에 이아립에게 낯설었던 것들을 취해본 결과물로서 말이다.
-지난 2월3일 3년 만에 《망명》을 발표했다. 이후 콘서트 등으로 팬들과 만나고 있는데 앨범에 대한 반응은 어떤 것 같나.
=아마도 이전의 팬들은 무겁지 않고 담백한 멜로디에 직설적이지 않은 가사, 이른바 이아립의
[trans x cross] “빛이 사라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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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여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거나, 이야기를 꼬아가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다.” 이런 캐릭터가 활약하는 장르를 찾자면, 스릴러가 적격이리라. 어릴 때부터 “공부가 가장 재미있었던” 학구파였으며,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과 <라이어 게임>을 탐독하며 범인 찾기에 몰두하던 “추리물 마니아”인 이상윤이 <날, 보러와요>에서 맡은 ‘나남수 PD’는 정확히 전자의 역할이다. 시사고발 프로그램 <추적24시>의 PD인 그는 정신병원에 갇혔던 살인사건 용의자 ‘강수아’를 둘러싼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과거의 명예를 회복하려 한다. 관객을 영화 속으로 안내하는 일종의 내레이터인 셈이다. 이상윤은 영화 외적으로도 사건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골격을 짜맞춰가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철하 감독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향후 방향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 뜻이 잘 통해 의기투합했다. (웃음)”
[이상윤] 외유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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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스릴러 도전.’ 많은 기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공통적인 제목을 달아 놀랐다. 그만큼 화제가 될 만한 도전인지 의아스럽다는 뜻으로 놀란 건 결코 아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강예원이 단 한편의 스릴러영화에도 출연하지 않았다니… 그게 정말인가. 재난 한가운데에서 가슴 아픈 사랑을 겪는 삼수생(<해운대>(2009)), 의붓아버지를 살해해 감옥에 들어온 음대생(<하모니>(2009)), 빵빵 터지는 폭탄 때문에 괴성을 질러야 했던 아이돌 가수 아롬(<퀵>(2011)), 고추가 들어간 음식을 먹은 남자와 키스하면 심각한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비뇨기과 의사(<연애의 맛>(2015)) 등 많은 영화에서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는 언제나 발랄하고, 귀엽고, 섹시했다. 하지만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배우의 습성을 고려해볼 때 강예원의 로맨틱 코미디 편식은 바라고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밝고 명랑한 모습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다
[강예원] 몰입의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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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러와요>는 보호자 2명과 의사 1명의 동의만 있다면 누구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영화다. 정신병원에 감금됐던 강수아(강예원)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자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인 나남수(이상윤)는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며 진실을 찾아나간다. 영화는 강수아가 정신병원에 감금된 과거와 나남수 PD가 사건을 파헤치는 현재를 교차하며, 의외의 진실에 도달할 때까지 숨가쁘게 달려간다. 감금 피해자인 동시에 살인사건 용의자 강수아와 외부인으로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나남수는 각각 영화의 정서적인 축과 이성적인 축을 담당한다. 캐릭터를 따라 배우들의 연기방법론도 정반대였다. 전자의 강예원은 “강수아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세상에서 격리”시키며 역할에 몰입했고, 후자의 이상윤은 “철저한 분석을 선행하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역할에 접근했다. 두 배우의 공통점은 여태까지의 이미지와는 다른 새로운 역할을 시도했다는 것. ‘엽기발랄섹시’ 강예원과
[강예원, 이상윤] 반전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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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가 개봉 4주차에 접어들며 한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다. 흥행 역주행과 더불어 <주토피아>는 (저연령층을 타깃으로 삼은 애니메이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빙판까지 주목받으면서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의 사랑을 증명하는 중이다. 성우 정재헌이 참여한 GV 상영은 티케팅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고, 정재헌 성우의 달달한 애드리브가 담긴 영상은 페이스북을 타고 조회수 100만을 기록했다. <주토피아>는 물론 애니메이션 <너에게 닿기를>, 미드 <CSI 마이애미>, 모바일 게임 <회색도시> 등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정재헌 성우를 만났다.
-꾸준한 흥행과 함께 더빙판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 자막 버전을 선호하는 극장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흔한 현상은 아니다.
=개봉 4, 5주차에 오히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개싸라기 흥행’을 하고 있어 하루하루 놀랍다. 보통 큰 이슈가 된 애
[people] 목소리 이면의 다재다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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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작아 ‘마이크롭’이란 별명이 붙은 다니엘(앙주 다르장)은 그림을 잘 그리는 몽상가다. 어느 날 다니엘의 반에 테오(테오필 바케)가 전학 온다. 테오는 직접 개조한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괴짜로, 고물상에서 이것저것 주워다 엉뚱한 소품을 발명하는 일이 취미다. 다니엘과 테오는 금세 단짝이 되고, 무료한 생활에 지친 둘은 여름방학을 맞아 직접 만든 자동차로 프랑스 전역을 누비기로 한다. 둘은 긴 모험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영화화한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미셸 공드리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성장담이다. 현실적이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전작에 비해서일 뿐 귀엽고 사랑스러운 상상력은 여전하다.
-지금까지의 작품 중 가장 무난한 내용과 형식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자전적 이야기에 바탕했다는 점이 일종의 현실감을 부여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알다시피 그동안의 작품들에서 꿈과 환상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해
[people] 어른의 나를 꿈꾸게 한 어린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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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배우가 거장 감독의 영화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려낸 <대배우>에는 영화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녹아 있다. 굵직한 한국 영화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천만요정’이었던 오달수가 여기선 주인공이고, 박찬욱 감독을 오마주한 ‘깐느박’(이경영), 설경구와 송강호와 최민식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는 ‘설강식’(윤제문) 등 충무로의 영화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들이 속속 등장한다. <대배우>를 연출한 석민우 감독의 이력을 보면, 그 애정의 근원을 알 것 같다. <올드보이>(2003) 연출부로 시작해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2009) 등 박찬욱 감독의 영화 조감독을 맡아왔던 그는 첫 장편으로 무명배우의 이야기를 택했고, 감독으로 입봉하는 과정에서의 자신의 절실함을 투영해내며 영화를 완성했다. 오랜 조감독의 세월을 거쳐 첫 작품 <대배우>를 세상에 내놓은 석민우 감독의 소회를 들어봤다.
-조감독 생활을 오래 했는데,
[people] “절실함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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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배우>를 통해 요즘 조명받고 있는 ‘깐느박’의 실제 모델은 누구나 짐작하듯이 박찬욱 감독이다. 그래서 21년간 축적된 <씨네21>의 데이터뱅크를 뒤져서 박찬욱 감독과 오달수 배우가 한 프레임에 담긴 장면을 찾아냈다. 사진은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촬영현장에서 정정훈 촬영감독이 포착한 실제 깐느박과 배우 오달수의 모습. 훈훈한 분위기로 봐서는 오달수라는 ‘대배우’를 발굴한 예지력 있는 감독이라는 캡션을 달고 싶지만, 이 사진을 전달해준 정정훈 촬영감독의 코멘트는 좀 달랐다. “오달수씨와 함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짓고 있는 박찬욱 감독님의 이 표정은 여자 연기자 앞에선 180도 달라진다. 항상 웃으면서 부드럽게…. 감독님, 남자배우들과 대화할 때도 좀….” 그랬답니다.
[메모리] 나, 대감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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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2016 <시그널>
2016 <클릭 유어 하트>
2015 <화정>
2013 <여왕의 교실>
2012 <아름다운 그대에게>
2012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2011 <내 마음이 들리니?>
2011 <천상의 화원 곰배령>
2016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를 불러모은 드라마 <시그널>에서 주인공 박해영 경위(이제훈)가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바로 세상의 진실을 바로잡음과 동시에 자신의 형 선우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다. 파렴치한 범죄자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이재한 형사(조진웅)와 함께 끝까지 진실을 밝히길 포기하지 않았던 강직한 인물 박선우는 그래서 해영에게는 뿌리 깊은 나무와도 같은 존재다. “김혜수, 조진웅 등 하늘 같은 선배들 옆에서 많이 배우느라 정신없었던” 찬희는 이제 막 드라마 몇편을 마친 신인배우다. 그는 “선우가 또래 아이들과 비교
[who are you] “연기와 아이돌, 모두 포기하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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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프로듀서•출연 2015 <귀향>
320만 관객을 돌파한 시점에도 여전히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 중이다. 아무도 <귀향>이 이렇게 흥행할지 예상치 못했겠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마음을 비우고 있던 사람은 아마 임성철 PD였을 것이다. 이 솔직하다 못해 패기만만한 신입 PD는 투자자들을 설득할 때부터 아예 배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유튜브에 배포할 수도 있다고 밝힌 후 투자를 이끌어냈다. 설득의 비법은 단 하나, 진심이었다. 물론 진심은 통한다는 몇 마디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절박한 과정이 있었다. 일말의 과장 없이 그야말로 죽든 살든 둘 중 하나라는 심정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투자사들이 모두 거절한 프로젝트에 시민들의 힘이 모이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분들이 도움을 주며 이것밖에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때 이 일을 꼭 마쳐야겠다고 결심했다.” 제작 당시엔 난치성 희귀 질환인 쿠싱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갈비뼈도 부러진 상태였지만 육체적인 한계도 잊고
[STAFF 37.5] 선의에 답하려는 책임감을 동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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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들어선 황윤 감독이 두장의 명함을 건네줬다. 하나에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의 감독 황윤이, 다른 하나에는 녹색당 당원 황윤이 새겨져 있었다. 인터뷰 장소로 오기 직전에도 녹색당의 동물권선거운동본부가 진행한 동물권 정책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동물도 투표권이 있다면?’이라는 퍼포먼스를 하고 왔다고 했다. 불룩한 배낭을 열어 두툼한 녹색당 정책집과 자료들을 꺼내들고서야 비로소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다큐멘터리스트 황윤은 4월13일에 치러지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1번 예정자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이야기 <작별>(2001), 로드킬의 비참함을 추적한 <어느 날 그 길에서>(2006), 공장식 축산의 처참함을 보고 눈감을 수 없어 좋아하던 돈가스 반찬을 끊게 되는 자전적 이야기 <잡식가족의 딜레마>까지. 황윤은 자신의 삶의 화두를 영화 작업 안으로 끌고오는 생활밀착형, 실천가형 감독이다. 황윤이
[황윤] “여기에서, 함께, 잘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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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망은 딱 하나지 내 영감을 채워 만든 명반/ 열반 이건 일종의 우월감/ …난 지금 열반의 경지.” 딥플로우의 세 번째 앨범 《양화》는 “열반의 경지”에 오른 딥플로우의 묵직한 선포로 시작한다. 그 선포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고도, “유희열 면회증” 같은 것 없이도 “꿈을 이뤘다”는 자부심과 이유 있는 고집을 바탕으로 한다. 넉살, 던밀스, TK, ODEE 등이 소속된 VMC(비스메이저 컴퍼니) 레이블의 수장으로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을 10년 넘게 일구어온 딥플로우는 지난해 4월 발표한 《양화》로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과 ‘올해의 음악인상’을 수상했다. VMC의 합정동 작업실에서 딥플로우를 만나 지난해 최고의 힙합 앨범 중 하나로 손꼽혔던 《양화》에 대해, 그의 불가항력적 음악과 소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늦었지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을 축하한다.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과 올해의 음악인상을 받았는데, 특히 올해의 음
[trans x cross] “내 그라운드에서 오직 음악으로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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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에서 오대수(최민식)에게 생니를 뽑히며 음흉한 미소를 짓던 감금방의 괴남자. 기존에 보아온 악당이란 말로 단언하기에는 생소하고 기괴했던 이미지의 남자. 어디서 이런 독특한 배우가 나왔나 궁금해할 겨를도 없이,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2005)에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무기 밀매상으로 코믹과 악역의 줄타기를 하던 이 ‘괴물 같은’ 배우는 급기야 봉준호 감독의 기념비적인 작품 <괴물>(2006)에서 ‘괴물’ 목소리 연기로 관객의 뒤통수를 쳤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상적인 연기자로 자리매김한 이후, 오달수의 필모그래피에는 한국영화의 성공사가 함께 쓰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연작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괴물 같은’ 행보로 주목받고 있는 지금, 20년차 무명배우 장성필의 고군분투를 그린 <대배우>는 배우 오달수의 지난 행적을 곱씹게 만들어주는 의미
[오달수] 한국영화의 성공사와 함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