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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시선>은 <여섯 개의 시선>(2003),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2005)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해 개봉하는 옴니버스 인권영화다. 영화의 길이와 주제가 고정된 이 프로젝트에 관객은 두 가지 기대를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의제 설정 기능이다. 20분 남짓한 다섯편의 단편영화는 곧 한국사회가 인간의 존엄함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한 긴급한 문제 제기다. 한편 필름의 길이와 주제라는 조건이 통제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섯 개의 시선> 프로젝트는 제한된 질료를 다루는 감독 각자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어떤 특정한 이슈에 착목했는지부터, 다큐멘터리적 요소와 허구적 요소를 배합하는 전략, 20분의 ‘드라마’를 둘러싼 감수성에 이르기까지 <다섯 개의 시선>은 감독의 취향과 태도를 비춘다.
<남자니까 아시잖아요?>의 류승완 감독은 인간이 부당한 차별로 상처받는 상황이라면 멀리서 찾을 것
제한된 질료를 다루는 다섯 감독의 개성, <다섯 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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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는 여성들은 클리토리스가 성적인 만족을 줄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들은 틀렸다! 틀렸어!” <목구멍 깊숙이>를 외설죄로 선고한 판사의 부르짖음이 들려오면, 클리토리스, 클리토리스, 주문처럼 마술적 단어가 반복된다. 1972년, 목구멍 깊숙이 클리토리스를 지닌 여자에 대한 포르노 한편이 미국을 흔들어놓았다. 포르노는 예술이 되었고, 주연인 린다 러블레이스는 스타가 되었고, 미국은 검열철폐에 대한 논란으로 양분되었다. <인사이드 딥 스로트>는 바로 그 시절, 대다수의 미국인이 클리토리스의 기능조차 알지 못하던 시절로 관객을 데려간다.
<포르노 밸리>나 <게이 공화당원> 등 성에 관련된 TV용 다큐멘터리를 작업해온 펜튼 베일리와 랜디 바바토는 <목구멍 깊숙이>의 뒷이야기를 차근차근 꺼내놓는다. 존 워터스, 웨스 크레이븐, 래리 플랜트 등의 저명인사들과 <목구멍 깊숙이>의 제작진은 유쾌하게 과거를 증언하고,
도발적인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딥 스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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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예정되어 있다. 그들이 어떤 꿈을 품고 살아왔든, 어떤 미래를 바라건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그 꿈이 당연하고 그 미래가 소박할수록, 이들이 맞닥뜨릴 불행은 더욱 절절해질 뿐이다. 쫓는 형사인지, 쫓기는 범인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장도영(권상우)의 피투성이 얼굴로 영화의 결말을 화면 가득 담으며 시작하는 <야수>는 그렇게 선언한다. 대담무쌍한 스포일러성 문구를 처음부터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세 남자의 파국을 그저 지켜봐야 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저마다 뜨거웠던 그들이 가슴속에 품었던 바람이다. 그 바람은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고, 그 모든 행동은 다시 예정된 결말로 향하는 길의 빛깔을 의미할 것이다.
남들처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였던 장도영은 물불 가리지 않고 목표물을 향해 질주한다. 그는 도심 한복판의 아찔한 역주행도 불사하고, 갑작스레 상대가 휘두르는 칼에도 물러서지 않는 열혈형사다. 홀어머니는 병석에서 삶을 마감 중이고,
거침없이 타락하는 누아르의 정신,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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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만큼 흔한 것이 또 있을까마는, 누가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울림이 다른 것이, 또 사랑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가신은 무작정 믿음이 가는 이름이다. 갱영화와 무협영화의 유행에 가려졌던 홍콩영화의 멜로적 감수성을 깨운 이가 바로 진가신이기 때문이다. 해묵은 영화가 된 <첨밀밀>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최고의 멜로’로 꼽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하늘이 정한 운명이었으나, 당시엔 서로 알아보지 못했고, 10년간 스치고 엇갈리기를 반복하다 거짓말처럼 이국 거리에서 다시 만났더라는, 글로 정리하고 보니 참으로 진부한 그 영화의 매력은, 인물의 관계와 감정이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졌다는 것이었다. 그 진가신이 이번엔 뮤지컬을 택했다고 하니, 거대한 화폭에 화려한 화풍으로 그려낼 사랑 이야기는 또 얼마나 특별할지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퍼햅스 러브>. ‘아마도 사랑’이라는 제목은 영화 속 노래 가사처럼 “돌아보면 더 뚜렷해지는” 사랑의 추억을 감싸
‘현실적인’ 혹은 ‘성숙한’ 멜로, <퍼햅스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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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밴드는 영화와 인연이 깊다. ‘윤도현’이라는 이름이 아직 낯설게 느껴지던 1996년 김홍준 감독의 <정글스토리>에서 가난한 록밴드 역을 맡아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기를 선보였던 그들이, 2005년 유럽투어 다큐멘터리로 되돌아왔다. 근 10년의 세월 동안 ‘윤도현’이라는 이름은 전혀 다른 위상과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콘서트를 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거처로 삼던 헝그리 정신의 록가수의 그림자는 사라진 지 오래다. 굳이 2002년 월드컵의 ‘오! 필승 코리아’를 상기하지 않아도, 이제는 몇 만명이 운집한 콘서트 장에서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방송국의 간판급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자리매김한 윤도현의 모습에서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로커’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인’의 냄새가 강하게 풍겨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윤도현밴드는 이제 대중적으로 가장 인지도 높은 록
윤도현밴드의 유럽투어 다큐멘터리, <온 더 로드,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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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한 변두리 화장실에서 두 남자가 오럴섹스를 벌인다. 숨어든 두 남자가 몰래 쾌락의 신음을 흘리는 동안 반대편 여자화장실에선 여고생의 비명이 새어나온다. 교복 입은 소녀는 하혈 끝에 아이를 낳고 사라지고, 두 남자는 여고생이 비닐봉지에 싸서 버린 아이를 보듬고 나선다(성기완의 <즐거운 나의 집/후진>). 8년 뒤. 스스로 예수라 자처하는 최만복은 꽃 장식을 파는 길거리 소녀를 만난다. 불쌍한 소녀의 꽃을 팔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최만복. 그러나 그 소녀가 실은 8년 전 화장실에서 주웠다가 6개월 만에 다시 거리에 내다버린 생명임을 알지 못한다(임승률의 <오! 마이 갓>).
<베리 코리안 콤푸렉스>는 미술, 음악, 문학, 사진, 디자인, 영화 등 서로 다른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참여한 독특한 형식의 ‘릴레이 영화’다. 말잇기게임처럼, 앞사람의 시나리오를 받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나중에 한데 붙였다고 한다. 제목이 일러주듯이, 영
한국사회가 지닌 병적 징후, <베리 코리안 콤푸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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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기술> 속 세계는 정글이다. 그것도 수컷만이 득시글거리는. 이 먹이사슬의 피라미드에서 꼭지점에 자리한 자와 바닥 가까이에 임한 자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은 힘이다. 약육강식이라는 이 세계의 경제 시스템은 힘있는 소수 포식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간다. 힘없는 자들은 가여운 가젤처럼 물어 뜯기거나, 참혹하게 널부러진 동료를 보며 그저 눈물 한방울만 흘리는 수밖에 없다.
군산의 한 공고에 다니는 병태(재희)는 가젤 같은 존재다. 불량하기 짝이 없는 ‘빠코’ 패거리는 시도 때도 없이 그에게 폭력을 가한다. 인문계에서 전학 왔다고, 아버지가 형사라고, 단체기합을 받다가 구령을 잘못 외쳤다고 등등,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는 매일같이 샌드백 신세가 된다. 병태가 가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틈틈이 학교 안의 맹수들에게 반격할 기회를 노린다는 사실이다. 그가 익힌 특공무술이나 형광등 검법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병태는 계속해서 공력을 쌓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인생에 필요한 ‘미적 기술’, <싸움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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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은 드물고 하얀 눈만 끊임없이 내리는 알래스카. 이곳만큼 이야기가 시작되기 좋은 장소도 없다. 설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감추고 있다. <인썸니아>나 <파고>를 떠올려보라. 드넓게 펼쳐진 설원은 숭고하지만,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그들은 줄곧 목숨을 걸고라도 이곳을 벗어날 상상을 멈추지 못한다. 그래서 인물들 사이, 인간과 설원 사이에는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 <빅 화이트> 역시 그런 영화지만, 여기에는 그러한 긴장감을 일순간 이완시키는 유머도 있다.
바넬(로빈 윌리엄스)은 알래스카에서 투렛증후군(무의식적 행동으로 특성화된 신경장애로 눈 깜박임, 얼굴 찡그림 등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게 되는 현상)을 앓는 아내 마가렛(홀리 헌터)과 산다. 그가 운영하는 여행사는 파산한 지 오래고, 아내의 치료비 때문에 경제적 부담감은 더해간다. 그는 마침 행방불명된 동생이 가입했던 생명보험을 떠올린다. 동생
다양한 캐릭터가 만드는 잡다한 이야기, <빅 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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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한 그릇만 더 주세요.” 찰스 디킨즈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말을 기억하고 또 기다린다. 소년원에서 피죽 한 그릇을 더 얻어먹기 위해 밥그릇을 내미는 올리버 트위스트, 그 소년의 운명적인 모험이 이때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마치 소공녀 세라가 아버지를 여의고 다락방의 어린 하녀로 전락하는 순간이고,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은 작가 쥘 베른이 무인도에 15섯명의 소년들을 한꺼번에 표류시키는 순간이다. 19세기 유럽 문학 속의 소년, 소녀들에게 운명의 격랑은 그때부터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소년, 소녀의 사회학으로서 으뜸가는 것은 역시 <올리버 트위스트>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수없이 많은 소년, 소녀들에게 감동적으로 읽힌 것은 우선 그가 겪는 이야기 자체가 결코 누구도 겪고 싶어하지 않는 불운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없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고달픈가? 평범한 아이들은 올리버의 이야기를 읽으며 상상
착취당하는 어린 노동자의 기나긴 여정의 공포, <올리버 트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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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상상의 세계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그 세계는 멀어지고, 실제적인 감각의 힘을 빌리지 않은 상상은 불가능한 것이 되어간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네 남매가 숨바꼭질 와중에 옷장 안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세상 속 모험은, 그러므로 동심을 잊지 않은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는 테마다. 이것을 즐기는 것 역시 진짜 아이이거나, 기꺼이 아이일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피터(윌리엄 모슬리), 수잔(안나 포플웰), 에드먼드(스캔더 케인즈), 루시(조지 헨리). 런던에 거주하던 네 남매는 2차대전의 포화를 피해 디고리 교수(짐 브로드벤트)의 시골별장으로 향한다. 거대한 성을 방불케 하는 디고리 교수의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루시는 옷장 속으로 숨어든다. 그곳에서 루시는 하얀 마녀(틸다 스윈튼)의 저주로 겨울만 계속되는 나니아를 발견하고,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염소인 파우누스족, 톰누스(제임스 매커보이)를 만나 친구가 된다. 현실이 못마땅한 장난꾸러기 에드먼
‘소박한’ 판타지,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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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록에 따르면 박경원은 168cm의 장신이었고, ‘조센진’이라는 말에 일본 병사의 뺨을 후려치는 여자였다. 그는 ‘여자는 엉덩이가 커서 비행기가 못 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드물게 여류비행사로 활동한 박경원의 삶을 그린 <청연>에서는 이런 장면을 볼 수 없다. 영화의 최종 각색자인 윤종찬 감독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여류비행사의 이야기를 익숙한 영웅담의 구도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독한 비행사 훈련의 몇 장면이 지나면 박경원은 처녀비행을 하고, 다시 학교간 대회에 출전하는 실력있는 비행사로 성장해 있다. 주독야경하며 비싼 수업비를 대느라 1년이면 수료할 비행사 이론과정을 4년 만에 마쳐야 했던 시절도, 단독비행시간 200시간의 기록을 수립했다는 것도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정보다.
박경원(장진영)의 삶은 여류비행사로 성장하는 과정이 과감히 압축된 뒤에야 구체적으로 만들어진다. “조선인, 일본인, 남자, 여자를 구분하지 않는 하늘이 가장
민족주의를 배제한 여류비행사의 솔직한 삶, <청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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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낱 회고조거나 복고풍의 이야기에 불과한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은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한 방향으로 왜곡된 결을 다른 쪽으로 솔질하여 현재와 대면하고 싶어한다. 현재와의 접점이 없다면 사극은 한가한 회고지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전작 <황산벌>에 이어 <왕의 남자>로 기존의 사관을 뒤집어보는 낯선 시도를 펼치고 있다. <황산벌>이 왕과 장군의 시각에서 평민 ‘거시기’의 시각으로 역사를 새로 쓴다면, <왕의 남자>는 왕과 광대를 대비하며 왕의 존재론을 다시 바라본다.
굳이 연산군을 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연산군은 사도세자와 더불어 조선시대 왕족 가운데 가장 비운의 주인공으로 꼽히며 거듭하여 사극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 중 하나다. 사도세자는 동정의 눈물을 자아낸다. 연산군은 황음과 패악, 장녹수와의 인연,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 따위로 축소되어 기껏 관음증의 대상으로 떨어진다. 이준익은 기득
기존의 사관을 뒤집어보는 낯선 시도, <왕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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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작업녀’ 한지원(손예진)은 타깃 안으로 들어온 남자를 놓치는 법이 없다. 상대의 자동차를 받은 뒤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어대는 그녀의 수작에 안 넘어오는 남자는 별로 없다. 서민준(송일국)의 실력 또한 만만치 않다. 자신이 찍은 여자에 대한 풍부한 사전조사와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점집 등을 활용해 안다리, 밭다리를 걸어대니 상대 여성 쓰러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리고 마침내 프로 중의 프로라 할 만한 이 두 ‘선수’가 서로를 작업 상대로 골랐으니 이제 남은 건 진검승부뿐이다.
<작업의 정석>에서 묘사하는 작업의 세계에는 두 가지 모드가 있다. 공격 모드와 수비 모드가 그것. 상대방을 자신에게 홀딱 빠지게 하기 위한 공격도 중요하지만, 극중 지원의 말처럼 상대방의 공세에 쉽게 넘어가지 않으면서 “나를 간절하게 원하게 만드는 것” 또한 작업 남녀가 항상 염두에 둬야 할 필수 덕목이다. 민준이 자동차 사고를 낸 지원에게 무심하게 “내일 병원에서 보자”고 말하거나 지
작업 세계의 진검승부, <작업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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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차태현)는 어리숙하고 순진한 고등학생이다. 같은 반의 수은(송혜교)은 공부 잘하고 얼굴 예쁘고 성격 밝은 교내 퀸카. “나 크로켓 하나만 사줘.” 어느 날 수은은 대뜸 수호에게 다가오고, 둘은 손 한번 잡지 못하면서도 귀엽게 사랑을 키워간다. 안타깝게도 이 사랑의 끝은 예정돼 있다. 이 사실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영화 <파랑주의보>의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하는 수호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동창모임 중 “오늘이 수은이 죽은 날이잖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10년 뒤 현재에서 과거를 추억해 들어가는 영화 <파랑주의보>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기억’으로서의 첫사랑을 이야기한다. 그 첫사랑은 죽음도 떼놓을 수 없다. 장의사인 수호네 할아버지의 첫사랑 이야기가 영화의 믿음을 뒷받침한다.
<파랑주의보>는 가타야마 교이치의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영화화 판권을 사서 만들어졌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 멜로영화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첫사랑의 기억, <파랑주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