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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한 2등신 몸매의 소유자 치킨 리틀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에게 머리를 강타당한다. 그는 이것이 하늘이 무너지고 있는 증거라고 믿고 호들갑 떨다가 근거없는 사건으로 밝혀져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한다. 믿었던 아버지마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자 그는 야구부에 지원해 명예회복을 꿈꾼다. 아버지에게 “저도 야구할래요” 했다가 “꿈을 너무 높게 잡지 말라”는 충고(?)를 들어야 했던 불쌍한 치킨 리틀. 하지만 그는 결국 안타를 날려 주변의 환호를 얻는다. 이제 과거의 수모에서 벗어났다고 위안하던 찰나, 하늘로부터 그의 방 안으로 뭔가가 날아든다. 앗, 이번엔 진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일까?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감의 샘물, 동화
픽사와 결별한 디즈니가 독자적인 기술력을 이용해 만든 첫 번째 3D애니메이션으로 <치킨 리틀>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치킨 리틀>이 아이들에게 친숙한 전래동화에서 변형됐기 때문이다. 1700년대 잉글랜드 지방의 시골
미워할 수 없는 또 한명의 루저, <치킨 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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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x2’다. 전편에선 누나의 남자친구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이젠 또 다른 대가족과 부대끼며 소동을 일으킨다. 여전히 자식 걱정에 여념이 없는 톰(스티브 마틴)은 어느 날 만삭이 된 큰딸 노라와 로레인이 가족의 품을 떠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자, 마지막 가족여행을 제안한다. 그러나 그들의 평화로운 휴식은 톰의 오랜 숙적이자 경쟁자인 지미 머타(유진 레비)의 가족과 만나면서 순식간에 깨져버린다. 지미의 가족 역시 대가족이긴 마찬가지. 아이들이 무려 8명이다. 두 집안을 합쳐 스무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기상천외한 말썽을 일으키고, 게다가 톰의 셋째딸 사라와 지미의 셋째아들 엘리어트 사이에 핑크빛 로맨스가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톰과 지미의 경쟁심은 더욱 거세진다.
웬수 같은 아이들
<패시파이어>/ 미 해군 특수부대의 최고요원 쉐인 울프(빈 디젤)는 자신의 실수로 암살된 과학자의 자녀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말이 좋아 보호지, 한창 반항기를 지나고 있는 큰딸에게
대가족x2 대소동, <열두명의 웬수들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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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고등학교에 들어가 학교를 뒤집어놓은 계두식(정준호)이 사범대학교 윤리 교생이 되어 돌아왔다. 계두식은 교생실습을 ‘장기수들이 출소하기 전에 쌓는 사회경험’쯤으로 여기고 실습 첫날부터 개구멍으로 출근한다. 그러나 두식은 뜻하지 않은 학생을 만난다. 후계자를 교육시킨 뒤 자신도 뒤늦게 배움의 필요성을 간절히 느낀 학구파 보스 오상중(김상중)이 바로 그다. 상중은 늦은 고등학교 생활하랴, 부하를 선생으로 모시랴, 수업 끝나면 조직 돌보랴 심신이 피곤하다. 보톡스 부작용이 생기는가 하면 고3 같은 반 친구들이 ‘늙다리’라고 놀리고 괴롭히는 통에 마음도 적지 않게 상한다. 한편 교생 도우미로 나선 엘리트 조폭 김상두(정웅인)는 기초 영어회화조차 되지 않는 자신의 무식이 폭로되면서 그간 쌓아온 거짓말이 들통날 위기에 처한다. 그러는 와중에 학교에서 뜻하지 않은 큰 사고가 발생한다.
교생 아니라 교장 아닐까
정준호는 자신이 경기도 홍보대사라는 점을 활용, 경기도지사에게 장소 지원을
전편에 대한 강박관념, <투사부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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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아서 골든의 동명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스티븐 스필버그는 몸소 나서서 판권을 구입했다. 서양 사람들에게 여전히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지는 게이샤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빠져든 것은 이 독특한 소설에 담긴 단 하나의 이야기 때문이다. ‘강렬한 (혹은 금지된) 러브 스토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영화 보기에 앞서 <게이샤의 추억>이 게이샤를 소재로 하는(게이샤의 삶을 재현하고, 역사를 탐구하는 식의) ‘일본’영화라는 오해는 거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 중국인이 일본인 연기를 하면서 영어로 대사하는 당황스러운 시추에이션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게이샤의 추억>이 영어권 팬들을 위해 나아가 전세계 영화팬들을 위해 만들어진 할리우드산 상업영화라는 점을 명심하자.
이야기는 신비로운 푸른 회색빛 눈동자의 소녀 치요(장쯔이)가 가난 때문에 언니와 함께 교토로 팔려가 하츠모모(공리)의 갖은 구박을 받
할리우드산 상업영화, <게이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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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니 911>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힘을 벗어난 악질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교화하기 위해 베테랑 ‘내니’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내니들은 한 가정에 며칠간 머무르며 부모의 잘못된 교육 방식부터 아이들의 행동 방식까지 집안 곳곳에 뿌리박힌 ‘나쁜’ 습관들을 지적한다. 엄격한 표정과 딱딱한 영국식 영어로 그녀들은 다양한 가정의 다양한 패턴을 철저히 무시하고 오직 규칙과 규율의 중요성만을 강조한다. 그녀들이 떠날 때쯤이면, 문제투성이였던 가정은 완벽하게 조용하고 평화로워진다. 아이들은 그 짧은 시간에 유순하게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로 재탄생하고 집안일에 무관심했던 남편은 자상해지고 신경증에 시달리던 아내는 여유를 찾는다. 외부에서 투입된 내니의 ‘법’이 벼랑 끝의 가정을 구하는 셈이다.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를 보면 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다만, 이 영화에는 아이들에게 하루
벼랑 끝의 가정을 구하는 마법,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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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부르카를 뒤집어쓴 여인 수십명이 카불 거리를 행진한다. 모두 과부인 그들은 “우리는 정치는 모른다”면서 다만 일을 하고 싶다고, 배가 고프다고 소리치지만, 최루탄과 물대포에 쫓겨 철망 안에 갇히고 만다. 눈동자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맨손의 여인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시위 장면은 탈레반 정권 치하 아프가니스탄이 문자 그대로 지옥일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의 처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그 지옥을 짊어진 한 소녀의 삶으로 넘어간다. <천상의 소녀>는 픽션이라 해도 픽션일 수가 없는 영화다. 여자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혼자서는 밖에 나갈 수도 없는 탈레반의 규율. 그것은 자유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열두살 소녀 레일라(마리나 골바하리)는 어머니(주바이다 사하르), 할머니와 살고 있다. 아버지는 카불 전쟁에서 죽었고 외삼촌은 러시아 전쟁에서 죽었기 때문에 집안엔 남자가 한명도 없다. 어머니가 몰래 일하던 병원이 넉달 밀린 월급도 주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굴러떨어지는 삶, <천상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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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를 창부라고 부르는 것이 못내 아쉽다면, 그것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고 한수 읊을 줄 알았던 그이의 기예와 자긍심 때문이다. 전통적인 게이샤(예자/藝者) 역시 기생과 마찬가지로 기예를 긍지삼아 살아가던 여인들이었다. 높은 값에 처녀성을 경매하고 권세가들 옆에서 웃음을 팔고 살았을지언정 그들은 당대의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안고 살았다. <게이샤의 추억>은 그처럼 몸과 예술을 하나로 엮어 팔았던 어느 게이샤의 회고록이다. 소녀 치요(오고 스즈카)는 가난 때문에 교토의 게이샤촌으로 팔려간다. 당대 최고의 게이샤 하츠모모(공리)의 미움을 사서 하녀로 전락한 치요는 우연히 만난 회장(와타나베 겐)에게 연정을 품고, 하츠모모의 라이벌인 마메하(양자경)의 도움을 받아 사유리(장쯔이)라는 이름의 게이샤로 거듭난다.
실제 게이샤의 회고담을 토대로 한 원작을 영화화했다지만 <게이샤의 추억>은 일본 문화의 속살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할리우드식 동양화 화첩, <게이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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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일드>는 벨기에의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장 뤽 다르덴의 여섯 번째 장편 극영화다. 200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그들의 영화 <로제타> 이후 두 번째 수상이다. 다르덴 형제는 같은 동심원 안을 서성거리며 세계를 관찰하고 또 완성하는 연작형의 감독이다. 국내에서 개봉했던 <아들>을 비롯하여, <로제타> <약속>은 그들의 관심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직전’의 인간들이 있다.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의 전모가 있기보다 어쩌다보니 이미 휘말려들어가 있는 절박한 상황의 인간이 있고, 그 인간이 앞으로 나아갈 예측불가능한 상황의 직전만이 있다. 그 순간 그들을 구제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이들의 관심이다. 단, 신의 손에 기대지 않고, 사회의 철저한 구호에 묶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까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하늘이 열릴 만한 신의 은총도, 얼음장같이 냉철한 사유의
시선의 팽팽함으로 생기는 긴장, <더 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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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것은 운명이 지배하고, 확실한 것은 인간의 재주로 다스린다”는 라틴 경구가 있다. 누군가 운명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숲에서 맥베스를 홀리던 세 마녀처럼 <무극>에서도 강가에 여신(첸홍)이 등장해서 어린 칭청(장백지)에게 슬픈 미래를 예언한다. 칭청의 운명은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시간을 되돌리거나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않는 한 평생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불운한 칭청을 사랑하는 세 남자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의 가장 큰 불행은 ‘마음은 털어놓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연애의 상식을 망각한 점이다.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대장군, 쿤룬, 북공작은 무작정 기다리고 그녀를 가둬두거나 시키는 일만 수행할 뿐이다. 그런 몸짓을 사랑이나 의지라고 칭하기는 어렵다. 쿤룬의 빛보다 빠른 발놀림으로 뒤쫓아도 따라잡기 힘든 운명의 여신을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면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중국 시장에 고정된 시선, <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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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때 시골 역장을 꿈꾼다, 라고 하면 거짓말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잠깐 그들의 운명을 부러워하는 때가 있다, 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기차엔 어떤 서정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찻길은 인생의 시적인 비유처럼 보인다. 정말 그런 때 없는가. 철길을 한없이 걷고 싶은 때. 롭 라이너 감독의 <스탠 바이 미>에 나오는 장면처럼, 친구들과 철길을 따라 가는 여행을 하고 싶은 때. 또는 기차 맨 뒤칸에서 <박하사탕>처럼 지난 세월을 철길처럼 굽어보고 싶은 때. 아마 이 거부하기 어려운 철길의 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할 것 같다. <스테이션 에이전트>라는 영화 덕분이다.
핀이라는 사람이 있다. 사색적이며 책을 보기를 좋아하고 눈이 맑고 목소리가 굵은 남자다. 장난감 기차를 수리하는 것으로 봐서 손기술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고, 술과 담배와 산책을 즐긴다는 점에서 조용한 쾌락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카페 뤼미에르>에 캐스팅
우정의 발생학, <스테이션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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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펜 아닌 컴퓨터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 적이 없다. 폭스가 <아이스 에이지>를, 드림웍스가 <슈렉>을 만들어 디지털 장편애니메이션 시장 공략에 나설 때 디즈니한테는 존 래세터가 이끄는 아이디어 집단 픽사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러나 픽사가 느끼는 디즈니와의 계약 내용은 불합리했고, 마침 애플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픽사 스튜디오의 CEO 자리에 앉으면서 적극적인 투자 전략으로 사세 확장에 성공하자 픽사는 완전하게 디즈니와 이별을 고한다. 스티브 잡스는 올 여름 존 래세터의 <자동차>가 디즈니를 통해 배급되는 픽사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치킨 리틀>은 디즈니 최초의 자체 제작 CG 장편애니메이션(혹은 흔히 말하는 3D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순수 디지털 영화를 디즈니가 드디어 내놓는 까닭은, 픽사와의 협업으로 갱신할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 왕국의 이미지를 지속, 발전시키려는 뜻과 무관하지 않
픽사 없는 디즈니의 잠재력, <치킨 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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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독 이누도 잇신과 각본가 와타나베 아야는 참 영리하다. 매번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건드리면서도 ‘정치적 올바름’과 동화적인 낭만성을 적절하게 버무릴 줄 알기 때문이다.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장애인 소녀와 미남 청년의 러브스토리로 심금을 울렸던 그들이 게이 실버타운에 관한 영화 <메종 드 히미코>로 돌아왔다. 그들은 전작에서 장애인을 다루면서도 사회적 불평등을 교조적으로 설파하거나 동정심에 호소하여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고, 단순히 소년 소녀의 미묘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깊은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번 작품에서 그들은 ‘메종 드 히미코’라는, 황혼기에 접어든 게이들의 정서적·육체적 보금자리를 통해 동성애자 커뮤니티와 그들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중소 페인트 회사의 그렇고 그런 여직원인 사오리는 한 남자의 집요한 접촉 시도를 따돌리는 중이다. 그의 전화도, 그의 방문도 그녀는 전혀 반갑지 않다. 이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화합과 이해, <메종 드 히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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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깨다’ 혹은 ‘사랑을 떠나보내다’ 혹은 ‘사랑을 잃다’가 아니다. ‘사랑을 놓치다’라는 문장은 결과가 비슷할지언정 원인이 많이 다름을 가리킨다. 가장 비슷한 표현인 ‘사랑을 잃다’조차 결과를 초래한 원인에 자기 판단과 의지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 의문스럽다. ‘사랑을 (붙잡으려 했으나) 놓치다’에는 자기 탓이 명백히 내포돼 있다. <마파도>의 코미디 활극에서 아스라한 멜로로 선을 달리한 추창민 감독의 <사랑을 놓치다>는 ‘자기 탓’에 대한 탐구 로맨스다.
자기 탓인 까닭은 사랑을 놓친 원인의 절반이 망설임에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조정코치로 생계를 꾸리는 우재(설경구)는 10년 만에 만난 대학친구 연수(송윤아)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 남자의 본능과 운동선수다운 맷집으로 일단 돌격을 감행한다. 깃발은 꽂았는데 우재는 기어코 망설인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닐까. 들떴던 연수가 우재의 그 틈을 보고야 만다. 더욱이 우재가 스스로에게 확신을 입히는
‘설경구스러운 이미지’의 멜로 버전, <사랑을 놓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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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둘이나 되는 아이들 치다꺼리에 한숨 쉴 시간도 없었던 부모의 좌충우돌 자녀양육기 <열두명의 웬수들>이 업그레이드 버전 <열두명의 웬수들x2>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2년 사이 훌쩍 자랐고, 베이커 부부는 잠잠할 날 없던 둥지가 점점 비어가는 게 안타깝다. 맏딸 노라(파이퍼 페라보)는 성실한 남자와 결혼해 어느새 만삭의 몸이 되어 있다. 노라 부부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간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할 틈도 없이, 톰(스티브 마틴)과 케이트(보니 헌트) 부부는 갓 졸업한 딸 로레인(힐러리 더프)이 뉴욕의 잡지 사에 취직이 되어 집을 떠난다는 얘기를 듣는다. 다른 아이들마저 일을 하거나 놀기 위해 아버지 톰과 시간을 보내는 데 소홀해지자, 톰은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한다. 하지만 옛날 베이커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호숫가에는 톰의 천적, 지미 머타(유진 레비)가 여덟명의 아이들과 포진하고 있다.
스티브 마틴과 보니 헌트는 물론, 열두명의 아이들이 전편에 이어 그
더없이 견고하고 이상적인 가족애, <열두명의 웬수들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