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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요체이자 전부라 할 수 있는 세 의형제 이야기는 19세기 말 중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로를 세워 양강총독에 임명된 마신이가 의형제로 지냈던 장문상에게 살해된 것이다. 마신이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데서 ‘자마’(刺馬)라 불리는 이 사건은 마신이가 또 다른 의형제의 아내를 탐해 그를 살해하면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철 감독의 1973년작 <자마> 또한 ‘형제애 대 치정’의 대립구도 속에 놓여 있다. 반면 <금지옥엽> <첨밀밀> 등 멜로영화의 달인 진가신 감독은 자신의 첫 액션영화 <명장>에서 같은 소재를 취하지만, 주제를 좀더 확장한다. 그는 마신이에 해당하는 방청운(이연걸)과 의형제들인 조이호(유덕화), 강오양(금성무)을 내세워 형제애란 도대체 무엇이고, 대의명분과 전쟁은 무엇이며, 정치와 권력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캐묻는다. 방청운과 눈이 맞은 조이호의 부인 연생(서정뢰
비극적 운명 속에 휘말린 세 남자의 표정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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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경성. 일제강점기지만 조선 유일의 라디오 방송국 경성방송국 스튜디오엔 나른한 분위기가 감돈다. 아버지의 힘으로 PD 자리를 꿰차고 있는 로이드(류승범)는 가끔씩 들려오는 뉴스나 짜투리 방송에 마이크 전원을 켤 뿐 방송 일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나운서 만섭(오정세)이나 가끔씩 스튜디오에 와 풍월을 읊는 기생 명월(황보라)이 이따금 방송국의 정적을 깨는 돌출 행동을 하지만 시대와 벽을 쌓은 듯 심심하게 굴러가는 방송국에 별일은 없다. 1930년대 경성, <라듸오 데이즈>는 역사의 아픔을 싹 거둬낸 뒤 남겨진 피곤함과 공허함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방향을 찾지 못한 인물들이 모두 한량이 되어 방송의 주파수를 돌리고 이야기는 나른한 리듬을 타고 천천히 흘러간다.
시작부터 끝까지 별다른 기복이 없는 영화 <라듸오 데이즈>의 사건은 로이드가 시나리오작가 노봉알(김뢰하)을 만나면서 벌어진다. 봉알의 글을 보고 라디오 드라마를 떠올린 로이드는 방송
경성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라듸오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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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와 모텔, 두채의 건물만이 덩그러니 자리잡은 어느 황량한 국도변. 아버지가 종적을 감춘 뒤 어머니와 단둘이 하늘주유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동아(강희)는 건너편 파파모텔의 콜걸 영자(고다미)를 남몰래 좋아한다. 포주인 아버지(김준배) 밑에서 몸을 파는 영자를 매일같이 망원경으로 훔쳐보던 동아는 그녀에게 ‘유리에’라는 이름을 붙이고 은밀한 판타지를 살찌운다. 영혼을 팔면 10년간 변치 않는 사랑을 주겠다는 악마의 말에 넘어간 그는 거래로 유리에를 얻지만, 이내 10년이 아닌 영원한 사랑을 갈구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사전제작 HD 장편 지원작인 <내 사랑 유리에>는 <뚫어야 산다> <풀밭 위의 식사>를 연출한 고은기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HD영화 특별전을 통해 관객을 찾았으며, 이번 작품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동아 역의 강희는 ‘정다빈의 남자친구’로 이미 수차례 인터넷 뉴스란을 장식했었다. 유리에, 나타샤, 실비아 등 영화의
사랑에 관한 일종의 우화 <내 사랑 유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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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줄리엣 비노쉬)은 일곱살짜리 아들 시몽과 함께 파리에서 살고 있다. 중국 정통 인형극의 제작자이자 목소리 연기자인 그녀는 아들 시몽(시몽 이테아뉴)의 베이비 시터로 중국 유학생 송팡(송팡)을 고용한다. 몸도 마음도 언제나 불안정하게 바쁜 수잔과 나이에 비해 성숙한 시몽, 차분하고 따뜻한 영화학도 송팡은 그렇게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 시몽의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거리, 카페, 집, 그리고 수잔의 일터를 오가며 단조롭게 반복되는 대화와 얼굴들과 일상. 유일한 ‘드라마’가 있다면, 때때로 그러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수잔이 터뜨리는 히스테리 혹은 우울증의 과민한 표정과 눈물이다.
그렇다. <빨간풍선>은 이야기의 요약을 기다리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 즉각적으로 몇몇 영화의 공기가 떠오르는데, 우선은 허우샤오시엔이 오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찍었던 <카페 뤼미에르>다. 지하철이라는 도시의 풍경, 그 안의 쓸쓸한 개인들, 그들이 찾아가는 과거
도시의 고독한 산책자 <빨간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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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또 아무리 많이 배워도 그 안에만 들어가면 성숙한 자아를 발현하거나 지적인 합리성을 적용하기 힘들어지는 집단이 있다. 그게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때로는 험난한 세상을 뚫고 나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오이디푸스의 귀를 간질이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우리를 엉뚱한 곳에 주저앉히거나 좌초시키기도 한다. 안주하고 싶음과 벗어나고 싶음이라는 상반된 두개의 욕망을 잘 조절하고 자신을 세워나가는 것, 그것이 가족을 가진 이들이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이자 성공적으로 하나의 개체로 독립해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퀘벡영화 <크.레.이.지>는 요란한 음악과 패셔너블한 외장 아래 가족에 관한 잔잔하고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1960년 크리스마스이브 세명의 아들과 단란한 저녁시간을 보내던 부부 사이에 새로운 아들이 태어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부는 아기 예수와 생일이 같은 자크의 탄생을 축복으로 받아
퀴어 성장소설 <크.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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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조셉 고든 레빗)을 잡아 지하에서 폭행하던 핀(루카스 하스)과 터그(노아 플레이스)는 위에 올라가 이야기하자며 집의 주방으로 들어간다. 마약 조직의 아지트인 지하실이 평범한 주택의 주방으로 연결되고 미국 남부의 평온한 풍경을 창밖으로 한 주방에 인자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등장한다. 핀의 엄마인 그 여자는 마치 아들 친구에게 간식을 내주듯 브랜든에게 애플주스와 시리얼을 내민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여자의 죽음, 마약 조직의 얽히고설킨 배신을 따라가는 영화 <브릭>은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누아르다. 마약이 틀어놓은 학교의 질서가 출구없이 어둡게 이어지고, 징계와 체벌을 손에 쥔 교감은 경찰의 자리를 대신해 학생들의 숨통을 조인다. 로커에서 오고가는 비밀편지, 학교 연극과 파티를 무대로 이어지는 음탕한 인물간의 흐름 등 <브릭>은 치밀하지만 어딘가 귀여운 구석을 간직한 잿빛 영화다.
영화는 브랜든의 여자친구 에밀리(에밀리 드 라빈)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고등학교 마약 누아르의 세계 <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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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일본의 모든 에너지와 우리의 바람, 인류의 미래, 살아남은 모든 생물의 생명을, 너에게 맡길게.” 두려움과 망설임을 뒤로하고 에바에 몸을 실은 신지에게 미사토가 말한다. ‘로봇만화영화란 어쩔 수 없어’라며 어깨를 으쓱할 만한, 실로 낯뜨거운 대사다. 그러나 장담건대, <에반게리온: 서(序)>의 클라이맥스에서 이 대사를 맞닥뜨린 관객 중 누구라도 울컥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만일 당신이 10여년 전 설레어 ‘복음’을 접했던 그들 중 한명이라면, 인류의 종말을 앞둔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고독을 곱씹던 신지의 여린 어깨가 안쓰러웠다면, 말할 것도 없다. 엔트리 플러그 안에서 홀로 분투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구하는 것과 동의어다. 관객에게도 그것은 변함없이 급박한 문제다. 12년 전 TV시리즈 1화부터 6화까지의 재구성 버전이자 극장판 4부작의 1편에 해당하는 <에반게리온: 서(序)>는 여전한 뜨거움으로, 어른
로봇애니메이션의 신화 <에반게리온 :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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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괴물이 뉴욕 맨해튼에 나타나고, 뉴요커 몇명이 아파트에 갇혀 있는 한 여성을 구출하기 위해 맨해튼 중심을 가로지른다. 요즘의 블록버스터치고 줄거리에 힘을 기울이는 영화가 어딨겠냐마는 <클로버필드>의 줄거리는 허무할 정도로 간략하다. 제작진의 의도를 최대한 고려한다면 ‘엄청난 재난에도 굴하지 않는 사랑의 용기’라는 <타이타닉>식의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영악하기 짝이 없는 <클로버필드>의 진정한 핵심은 ‘빌딩만한 괴수의 출현을 손바닥만한 비디오카메라로 담는다’는 기발함이다. 하지만 이 발상의 전환은 기대 이상의 파괴력을 선사한다. 비디오카메라의 영상은 특유의 역동성과 함께 괴물이 제대로 비쳐지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공포감마저 만들어낸다(물론 그 쉴새없이 출렁이는 영상 때문에 최고의 ‘구토유발자’로 기록되겠지만). 비디오카메라의 파괴력을 스크린에 옮긴다는 점에서 <클로버필드>는 그 어머니 격인 <블레어 윗치>와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맨해튼에 나타난 거대 괴물 <클로버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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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소설가 엔젤 데브럴(로몰라 가레이)이 사랑한 건 오직 자기 자신이다. 단 하나의 혈육인 어머니조차 있는 그대로 사랑한 적이 없으면서 운명적인 사랑을 소재로 삼고, 비루한 소도시에서 식료품집 딸로 태어나 영국을 벗어난 적도 없으면서 베니스를 배경으로 택하는 그녀는, 베갯머리에서 읽힌 뒤 바로 잊혀지는, 말하자면 하이틴 로맨스를 쓴다. 책을 읽은 적도 없고 현실에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이 상상의 세계에서만 글을 쓰는 엔젤은 자신의 저택 ‘파라다이스’를 세상의 유행과 전혀 무관한 빅토리아풍으로 꾸미고,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먼저 청혼하여 사랑을 쟁취하며, 온 세계가 자유수호의 대의를 내건 1차대전 와중에도 사랑하는 남편 에스메(마이클 파스빈더)를 앗아간 전쟁을 무조건 반대한다.
그런데 잠깐. 세계를 일주하는 엔젤 부부의 신혼여행을 고전적인 매트촬영으로 묘사하며 갑자기 타임머신에라도 올라탄 듯 시치미를 떼는 이 영화는 다름 아닌 오종의 신작이다. 한때 악취미로 무장한 천재로 불렸던,
미워할 수 없는 천사의 이야기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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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멕스>의 ‘드라마’는 이야기를, ‘멕스’는 멕시코를 뜻한다. ‘멕시코에서의 드라마’쯤의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휴양도시 아카풀코에 모인 다섯 남녀의 절박함을 재료로 만든 퀼트다. 먼저, 아름다운 페르난다(디아나 가르시아). 연락두절이던 전 남자친구 차노의 출현에 흔들려, 그가 억지로 범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차노(에밀리오 발데즈) 역시 달라진 것은 없다. 섹스 뒤 마음이 풀어진 페르난다가 종알거리는 사이 나쁜 손버릇은 그녀의 부유한 살림을 더듬는다. 페르난다의 ‘현재진행형’ 곤잘로(후안 파블로 카스타네다)는 애인이 변심할까 불안하다. 중년의 제이미(페르난도 베세릴)의 삶은 버겁다. 짐가방도 없이 가정과 회사를 떠나기까지 그를 위로한 것은 무감각한 생의 끝을 약속한 권총 한 자루뿐. 어린 창녀 티그릴로(미리아나 모로)가 지갑을 훔치려고 제이미에게 다가가서야 그가 자살하려는 것을 알아챈다.
페르난다와 제이미가 중심인 두 가지 이야기는 주거니받거니 이어진다. 페르
멕시코에서의 드라마 <드라마/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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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장자나 슈니츨러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꿈과 현실을 본질적 차원에서 분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네스 팰트로의 남동생 제이크 팰트로가 처음 연출한 장편영화 <굿나잇>이 다루는 세계는 꿈같은 현실 또는 현실 같은 꿈이다. 영화음악감독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CF음악을 만들고 있는 개리(마틴 프리먼)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모자라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살고 있는 여자친구 도라(기네스 팰트로)가 미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큐레이터가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CF음악 ‘따위’나 만들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심드렁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개리는 꿈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 아나(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난다. 희한하게도 아나는 매일같이 꿈속에 등장할 뿐 아니라 개리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바친다. 이제 개리는 자신의 삶의 중심을 꿈으로 옮기게 되고 현실은 더욱 등한시한다. 게다가 개리는 아나와 똑같이 생긴 멜로디아라는 여성을 현실에서 만나
꿈과 현실의 경계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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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병을 외면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에이즈에 대한 말은 이제 지겹다며, 현실을 직시한다고 희망이 생기냐고 반문하는 동포들에게 노브(오언 세이야케)가 말한다. 노브 역시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아무 데서나 거리의 여자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사랑하는 부인이 콘돔 사용을 권하면 무작정 화만 내던 처지였다. 가족 모두와 마을 어른들을 조상의 저주 때문에 잃었다고 배웠던, 저주를 풀기 위해 희생된 소를 다시 살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향하다가 노브의 트럭에 올랐고, 이제는 그것이 에이즈라는 병 때문임을 알게 된 어린 소년 무사(주니어 싱고)가 그런 아저씨의 변화를 보며 미소짓는다. 무사는 에이즈 때문에 고아가 된, 남부 아프리카의 1억2천 고아 중 한명이다.
에이즈 퇴치라는 시급한 목표의식 아래 만들어진 <비트 더 드럼>은 천혜의 자연을 앞에 두고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운명을 감내하는 이들의 구원자로 나선 순수한 소년, 그리고 이들을 한데 묶는 음악의 힘
에이즈 퇴치 <비트 더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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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로 시작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가 지겹지 않아? 왜 공주는 매번 왕자와 결혼해야 하고, 악당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해? <엘라의 모험: 해피엔딩의 위기>는, 동화를 차용하되 그 전형성에 딴죽을 거는 애니메이션이다. “봐, 해피엔딩이면 재미없잖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극중 대사는 이 영화가 주장하는 바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건 이미 <슈렉>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우려먹은 내용이 아니던가. <슈렉>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존 H. 윌리엄스가 프로듀서 중 하나로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작품에서 뭔가 발칙한 유머를 맛보길 고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동화나라 마법왕국. 그곳 주민들의 삶은 대마법사가 소유한 저울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된다. 선악의 추가 균형을 이루는 동안 신데렐라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라푼젤도 언제나 해피엔딩을 맞게 마련. 그러나 대마법사가 휴가를 떠나고 그의 조수인 멍크(정
동화의 전형성에 딴죽 <엘라의 모험: 해피엔딩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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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충칭의 최고급 빌라에 사는 존(후준)은 가정적인 아내 로즈(유가령)와 어린 아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겉으로는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사실 존은 빌라 상가의 네일숍에서 일하는 섹시한 샤론(송지아)과 내연의 관계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로즈의 차가 피처럼 보이는 빨간 페인트 세례를 받으면서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꼬여간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경비원 펭듀(리아오판)는 침묵하고 있고, 이후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존과 샤론의 사이도 틀어지기 시작한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꽤 밀도있게 스릴러의 공식을 따른다. 영화에서 인물들의 비밀은 고스란히 빌라 상가의 사진숍에서 일하는 모모(린유안)의 휴대폰 카메라에 담기는데, 휴대폰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관찰자 모모는 영화 속의 말없는 화자다. 그렇게 사건의 열쇠가 모모에게 있을 거라고 짐작하게 될 무렵, 그러니까 그 휴대폰 카메라에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
새로운 중국영화의 한 단면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