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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마취는 빨간불, 근육 마취는 파란불 상태로 수술에 들어가면 환자는 ‘수술 중 각성’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뼈를 가르고 내장을 주무르는 고통을 고스란히 겪지만 손끝조차 움직일 수 없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고문 아닌 고문이다. 의학적 실제에서 가져온 소재를 10살 소년 상우가 겪는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봉인’해버리는 편법을 써버렸다. 25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네명의 상우 용의자가 나타난다. 억압의 귀환인 셈인데 피바람이 동반하게 마련이다. 외과의 재우(김명민)는 의료 사고로 자신이 수술하던 환자가 숨져 그 가족에게 위협당한다. 마취의 석호(정유석)는 재우와 긴밀한 수술 파트너이지만 최면 치료에 탁월한 정신과 전문의 치훈(김태우)이 끼어들면서 갈등의 틈이 조금씩 벌어진다. 그 사이 옛날 상우의 수술에 관여했던 이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한다. 재우의 죽마고우 욱환(유준상)은 수상쩍은 모습으로 미국에서 갑자기 나타난다. 캐릭터로 미스터리의 분위
피가 적은 신선한 스릴러 <리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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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아직 사춘기를 헤어나오지 못한 엄마, 양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두 모녀 사이에 의사 직업을 가졌다는 근사한 남자가 등장한다. 뽀글이 파마를 한데다 목덜미엔 언제나 땟국물이 흐르는 청년회장 성칠(임형준)만이 남자 행세를 하는 물건리. 오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도시의 수혜를 받는 것도 아닌 물건리에 등장한 덕근(정준호)이야말로 혜주(김원희)와 옥희(고은아), 두 모녀에게는 백마 탄 왕자다. 고작 15살 차이밖에 안 나는 두 모녀는 사랑방에 불러들인 덕근을 상대로 각자의 로맨스를 완성하기 위해 사사건건 부딪친다. 그러나 모녀 앞에 나타난 덕근은 고상한 ‘손님’이 아니라 양아치 ‘선수’. 아버지가 진 1억원의 빚을 갚지 못해 조폭한테 시달리던 덕근은 혈육을 찾아주면 거액을 내놓겠다는 한 노파의 부탁으로 물건리에 흘러들지만, 사람 찾는 일이 여의치 않자 혜주가 지닌 통장의 거액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소설과 영화로 알려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한국 변종 코미디의 이상한 공식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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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속으로>는 느릿느릿한 판타지멜로다. 또한 실제 197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황규덕 감독의 자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얘기에 따르면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광주민주화운동의 물결이 몰아치던, 그리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교련복을 입고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영화는 한 40대 대학교수 수영(정진영)이 꿈결 속의 나비를 쫓아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이어진 수업시간, 그는 첫사랑 얘기를 들려달라는 학생들의 아우성에 못 이겨 옛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렇게 수영은 최루탄 연기가 매캐한 70년대의 캠퍼스로 돌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격렬한 운동권 청년의 투쟁기 혹은 회상기가 아니다. 대학교수 수영이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나비가 자신의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헷갈려하는 것처럼, 한 가난한 학생의 지극히 사적이고 모호한 일상으로 들어간다. 수영 자취방의 낡은 벽지와 식어가는 아궁이를 타고 흐르는 현경과 영애의 노래 <그리워라>
느릿느릿한 판타지멜로 <별빛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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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들)의 이름은 ‘지나’다. 지나는 미국에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동양인 여자다. 20대의 지나는 갱단으로부터 도망쳐 로스앤젤레스를 유랑하고(첫 번째 에피소드), 30대의 지나는 꿈을 잃고 라스베이거스의 밤거리를 헤매며(두 번째 에피소드), 40대의 지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알래스카의 혹독하게 추운 벌판에 뛰어든다(세 번째 에피소드). 이처럼 세개의 에피소드는 동일한 이름과 동일한 일로 삶을 버티는 세 여자를 다루고 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는 겹치지 않는다. 이것은 낯선 땅에서 동양인 여자가 매매춘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세대별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한 내면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허스>는 그녀(들)의 삶을 성, 인종, 계급적으로 분석하는 대신, 그녀들을 관통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세 에피소드를 이어주는 끈은 이 여자들의 비루한 삶을 지탱해주는 동시에 그 삶에
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 <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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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하나에 남자 둘이 벌이는 삼각관계라면 무엇이 상상될까? 당연히 두 남자 사이의 승강이가 연상되겠지만 한 남자가 게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색다른 삼각형이 등장하는 <영원한 여름>은 퀴어영화이기도 하지만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는 동안 우정과 사랑 사이를 고통스럽게 넘나드는 미묘한 관계가 세 남녀 사이에서 펼쳐진다.
감독은 전반부에서 대만의 권위주의적 정치 분위기를 연애 관계에 숨겨진 비극적 씨앗과 결부한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은 반장인 캉쩡씽(장예가)에게 문제 학생인 위쇼우헝(장효전)의 ‘특별수호천사’가 되어 바른길로 인도하라고 제안한다. 두 남학생 사이의 관계는 “선생님이 정해준 것”이다. 고등학생 캉쩡싱과 여학생 훼이지아(양기)가 가까워지게 된 계기 또한 경직된 학교 처벌 문화이다.
줄거리는 캉쩡씽이 친구 위쇼우형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아픔에 못 이겨 피폐해지는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가 재수생의 처지로 입시
카메라에 함축된 ‘게이적 시선’ <영원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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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감독의 7년 만의 신작 <디워>는 <용가리>(1999)로부터, 혹은 더 멀리 영구아트의 창립작이기도 한 <영구와 공룡 쮸쮸>(1993)로부터 이어지는 심형래식 한국형 SF의 현재형이다. 그것은 또한 <용가리>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심형래가 직접 ‘영구’로 출연한 이전 영화들은 특수효과와 더불어 그 특유의 개그가 반반씩 섞인 구조였다면, 말 그대로 ‘영구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용가리>와 <디워>는 할리우드의 뒤를 좇겠다는 야심찬 목표 아래 블록버스터급 특수효과 영화를 지향하고 있다.
LA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를 취재하던 이든(제이슨 베어)은 정체불명의 비늘을 보고 회상에 잠긴다. 어렸을 적 잭(로버트 포스터)에게 옛 한국의 전설을 들었던 그는 그것이 이무기의 것임을 직감한다.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서는 여의주를 지닌 처녀를 제물로 삼아야 하는데, 과거 승천에 실패했던 이무기가 다시 LA에
서늘한 구성상의 빈약함 <디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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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종교, 예술 분야에서 새로움과 화려함이 난만했던 17세기를 뿌연 안개와 질척대는 진흙탕 속에 놓인 혼돈으로 보여주는 영화 <리버틴>은, 자유롭고 방탕했던 시인이자 극작가인 백작 존 윌모트(조니 뎁)의 영락을 따라간다. 도처에 존재하는 타락과 방탕을 둘러싼 먼지 같은 뿌연 기운들은, 결국 파멸에 이를 주인공들의 인생에 대한 암시가 된다. 존(재미있게도 그의 애칭은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과 같은 ‘조니’인데)은 셰익스피어가 될 수 있는 영광의 길을 등지고 가차없이 자유로운 난봉꾼(libertine)의 삶을 택한다. 예술가적인 마에스터가 재능있는 여제자를 가르치는 플롯, 그 여제자가 다시금 뮤즈가 되어 예술가의 상상력을 폭주시키는 플롯, 결국에는 여자가 권력 앞에서 사랑과 예술을 배신하는 플롯 등 익숙한 이야기 선들은 다소 식상하지만, 17세기 궁정과 런던의 뒷골목을 앤티크 스웨이드, 제이드그린빛의 희뿌연 푸름으로 연출한 영상 연출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질감의 인상적인
예술가 영화의 익숙한 클리셰 <리버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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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이 아니라 기담이다. 혹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상한 이야기다. 1942년 경성에 위치한 신식병원을 무대로 하는 세 가지의 기이한 이야기를 엮어낸 <기담>의 제목은 일종의 선언이다. 무리한 공포를 기대하지 말라는, 무섭지 않은 것을 무섭다고 우기지 않겠다는. 세개의 이야기, 세명의 주인공, 세 가지의 비극을 (옴니버스가 아닌) 단일한 시공간 속 하나의 플롯으로 풀어낸 영화의 구조 역시 그 제목과 묘하게 어울린다. 서로 다른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각각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줄 뿐 별다른 소제목이나 단락 구분없이 이어지는 영화 <기담>이 가장 세심하게 신경쓴 것은 이야기의 맛이기 때문이다. 학교나 병원 같은 공적 공간에 깃든 이야기들, 여름밤을 하얗게 밝도록 두런두런 이어지던 이야기들, 잠자리에서 더욱 또렷해지던 신기한 이야기들.
“제국주의가 극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안생병원 안에선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정혼자와 결혼을 앞둔
한국형 공포영화의 가능성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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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는 과거의 폭력성을 감추고 살던 남자가 선의의 폭력을 계기로 다시 그 ‘나쁜’ 폭력의 늪에 빠져드는 이야기, 혹은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폭력을 수행하는 이야기다. <폭력의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들추어내서가 아니라 창조적인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현실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폭력성을 은폐하고 선량한 가장으로 사는 남자의 삶은 사실, 새 출발도, 회개도 아니라 그저 아메리칸 ‘드림’, 즉 환상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영화는 톰의 분열된 역사에서 미국의 역사를 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정작 폭력의 근원이 마을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들의 집단 무지와 환상이 범죄자와 영웅을 동일인으로 만든다. 크로넨버그는 탄탄한 각본과 버릴 것 하나 없는 숏의 배열을 기반으로 한치의 망설임도
미국 현실에 대한 강력한 발언 <폭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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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인근인 미국 LA 동쪽, 산베르디날도 카운티와 리버사이드 카운티를 묶어 일컫는 ‘인랜드 엠파이어’에는 상류층 인구 400만이 거주한다. 영화 <인랜드 엠파이어>의 공간적 무대는 이곳이다. 주인공인 금발의 스타 여배우 니키(로라 던)는 할리우드에서 작가로 칭송받는 킹슬리 스튜어트 감독(제레미 아이언스) 작품에 주연으로 캐스팅된다. 엄청난 기대감에 부푼 그녀. 감독으로부터 “이 영화가 실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폴란드 어떤 영화의 리메이크작”이며 “원작의 두 주연배우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인랜드 엠파이어>는 린치의 여느 영화들처럼 범상한 미스터리물인 척 시치미를 떼고 시작해서 꿈, 상상, 무의식과 판타지 등 비현실계를 현실계와 뒤섞으며 내러티브를 해체해간다. 몇 가지 이야기틀로 정리되지만 이야기틀간의 질서는 없다. 관계는 전복되고 위계는 완전히 허물어진다. DV카메라로 핸드헬드 기법을 써서 촬영한 저예산 다큐 스타일의 화면은 현실-극-기억
지적 오락물의 절정 <인랜드 엠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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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상속되는 건 유산뿐만이 아니다. 가족에 얽힌 저주도 그대로 물린다. 대만 감독 레스티 첸의 장편 데뷔작 <가족상속괴담>은 중국의 무속 신앙을 빌려 20년 넘게 이어지는 가족의 저주를 그린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제임스(제이슨 챙)는 먼 친척으로부터 저택을 상속받게 되자 고향인 대만으로 돌아온다. 혼자 살기엔 너무 크고 낡았지만 그는 고풍스러운 느낌이 좋다며 그곳에서 약혼녀 요(테리 콴)와 함께 살기로 한다. 하지만 집의 가장 위층에선 원인 모를 음산한 느낌이 감돌고 그곳에서 함께 파티를 했던 제임스의 친구들은 밤 12시만 되면 이상하게 다시 제임스의 집으로 모이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태아 귀신 모시기’라는 중국 무속 신앙에서 시작된다. 죽은 태아의 시체를 납골당에 모시고, 사람의 피를 그 태아에게 먹이면 가문에 복을 가져다준다는 이 무속은 제임스의 조상들이 가문을 지켜온 방식이다. 하지만 이 신앙은 가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기 때문에 경우에
저주를 상속받은 남자 <가족상속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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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 올마이티>는 4년 전 짐 캐리에게 신의 권능을 잠시 부여해 인간사를 멋대로 주무르게 하면서 익살어린 볼거리를 만들어냈던 <브루스 올마이티>의 뒤를 잇는다. 그때 짐 캐리의 경쟁자로 심술궂은 앵커처럼 그려졌던 에반 벡스터(스티브 카렐)가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주인공도, ‘올마이티’의 권능이 발휘되는 구조도 새판처럼 달라졌다. 세상을 바꾸자, 는 구호로 정계 진출에 성공하자 자신의 신세가 바뀌었다. 교외의 근사한 대저택으로 이사했고, 장갑차 뺨치는 튼실한 새 차도 마련했다. 등원 첫날, 실세 의원 롱(존 굿맨)에게 자신이 상정하는 법안에 힘을 모아달라는 요청을 받는데, 신의 축복 신호 같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로드맵은 없지만 상관없는 듯하다.
진짜 신(모건 프리먼)이 예의 화이트룩으로 등장하면서 일찌감치 반전(?)이 시작된다. 맞춰놓지도 않은 새벽 6시14분에 알람이 반복적으로 울리더니, 주문하지도 않은 엄청난 양의 목재와 공구 세트가 배달된다. 출
성실함이 묻어나는 코미디 <에반 올마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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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의 미국 3부작 중 2편인 <만덜레이>는 아버지와 함께 ‘도그빌’을 떠난 그레이스가 ‘만덜레이’라는 노예제가 상존하는 농장에 머물게 되면서 전개되는 상황을 다뤘다. 전작과 이어지는 연극적 비주얼, 공평무사한 내레이션, 살짝 우아한 바로크 음악과 엔딩 때 흐르는 데이비드 보위의 <Young American>은 영화에서 일어나는 파탄들에는 무심해 보이는 형식적 골격을 제공한다. 그레이스라는 한명의 이방(혹은 타인종) 여자와 마을 사람 전체와의 대면이라는 서사적 설정 역시 전작의 구도를 잇는다. 그러나 가면 쓴 미국식 합리성의 폭력에 훼손당했던 그레이스의 입장이 이번엔 마을의 질서와 윤리를 만드는 주재자의 위치로 전도된 듯하다. 노예들에게 자율과 독립적인 사고방식을 ‘가르쳐’주기 위해 농장에 머물기로 한 그레이스는 미국식 미덕과 민주주의의 질서에 대한 포교자가 된다. 그러나 타율에 익숙한 자들의 내성은 자율이라는 이질적인 사태에 근본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도발적인 미국 3부작 <만덜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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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희(조안)는 자신의 창작품을 실재에서 구한다. 절친한 친구가 외국으로 나가버린 사이, 그 친구를 둘러싸고 떠도는 나쁜 소문을 뼈대로 소설을 썼고, 인기를 얻었다.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창작의 희생양이 된 친구의 실재는 부정할 수 없다. 후속작이 문제다. 편집장은 그럴듯한 글의 마감을 쪼고 있는데 창작의 불을 지펴줄 자극적인 소재가 없다. 마침, 베트남으로 간 친구 서연(차예련)이 보내온 ‘므이의 전설’이 구미를 자극했다. ‘누군가에게 복수를 꿈꾸는 자는 므이 초상화에 저주를 빌면 대신 복수를 해준다, 거기에는 끔찍한 대가가 뒤따른다….’
윤희는 베트남으로 날아가 옛 친구 서연의 집에 머물며 그의 도움을 받아 므이 초상화의 기원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윤희는 므이의 초상화에 대해 알게 되면 될수록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서연에게서 석연치 않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서연은 윤희가 자기를 먹이삼아 소설을 썼다는 것도 알고 있던 터였다. 서연의
공포의 기원에 대한 안이함 <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