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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의 선수 산티아고 무녜즈(쿠노 베커)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1편인 <골!>(2005)이 평범한 축구 꿈나무 소년의 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 입단, 활약상을 그렸다면 <골2: 꿈을 향해 뛰어라>는 이 청년이 유럽 최고 축구구단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승승장구할 듯했던 산티아고의 인생은 조금씩 삐걱거린다. 뉴캐슬에서 먼저 레알로 이적한 선배 개빈(알레산드로 니볼라)과 가까워지면서 그는 연습보다 파티에 빠지게 되고, 여자친구와 불협화음을 겪고, 필드에서의 기회를 잃어간다.
1편처럼 <골2…>도 대단한 축구상식이 필요하지 않은 스포츠영화이고, ‘승리’라는 결과에서 모든 난관들의 보상을 찾는 단순한 플롯의 성장드라마다. 이렇게 전형적임에도 불구하고 관습적이라는 인상을 덜 주는 까닭은 이 영화가 쓸데없는 감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예산 공포영화 <하우스 오브 왁스>로 주목받았던
축구상식이 필요하지 않은 스포츠영화 <골2: 꿈을 향해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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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산 웰메이드 대중영화인 <사모안 웨딩>은 사모아족 4인조 ‘웨딩 크래셔’들의 좌충우돌 유쾌한 소동을 그린 로맨틱코미디다. 뉴질랜드 거주 사모아인이라는 설정은 다소 낯설지만, ‘결혼’과 ‘연애’를 두고 벌이는 소동이란 국경과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달콤씁쓸한 재미와 갈등을 주는 법이다. 결혼엔 생각도 가망도 없는 사모안족 네 친구들은 남 결혼식을 깽판 치며 다닌 지 수년째다. 이들만 떴다 하면 멀쩡한 결혼식이 난장판이 되니 마을의 목사는 급기야 이들에게 결혼식 참관 금지령을 내린다. 문제는 이 4인방 중 한명인 마이클의 동생의 결혼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제법 염치는 있는지라 이 철부지 형님들은 어떻게든 마이클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애를 써본다. 그러다 얻은 아이디어가 바로 ‘참한 여자와 결혼식 가기’. 여자 파트너가 있다면 결혼식에서 문제를 일으킬 리 만무다. 그러나 심사숙고와 담을 쌓은 세파는 동거하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책임감과도 담
뉴질랜드산 좌충우돌 코미디 <사모안 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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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온 지구가 눈으로 덮여서 착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객기 승객은 그 안에서 ‘늙어 죽어야’ 한다. 또 아프리카 우간다는 ‘무중력병’으로 사람들이 천사처럼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재해’를 겪고 있다.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올 어바웃 러브>는 이렇게 초현실주의적인 위트를 섞어서 문명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어느 부부의 애틋하고 숭고한 사랑 이야기가 균형추 역할을 한다(여주인공 클레어 데인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출연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실제로 줄리엣 역을 맡았었다).
멀지 않은 미래 2021년. 세계는 이상 기후와 종말론적 징후들로 가득 차 있다. 폴란드에서 학자로 살고 있는 존(와킨 피닉스)은 뉴욕에서 세계적인 스케이팅 스타로 활약하는 아내 엘레나(클레어 데인즈)와 별거 중이다. 두 사람의 마음은 멀어지고 존은 이혼서류에 서명을 받기 위해 뉴욕공항에 도착한다. 환승시간에 잠시 서류를
세상에 남은 건 ‘사랑뿐’ <올 어바웃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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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클라이브 오언)는 한 임신부가 총을 든 킬러에게 쫓기는 것을 보고 얼떨결에 거대한 사건에 휘말려들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당근을 씹어대는 그는, 당근으로 상대방의 목을 관통하고 눈을 찌르는 등 기상천외한 액션을 펼치는 무뢰한이다. 그 임신부가 막 낳은 아이를 보호하게 된 그는 옛 연인이자 화류계의 여왕 퀸타나(모니카 벨루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급기야 두 사람은 또 다른 킬러 허츠(폴 지아매티)에게 함께 쫓기게 된다. 그러면서 스미스는 신생아들을 둘러싼 섬뜩한 음모가 정치권과 연루돼 있음을 알게 된다.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은 그야말로 예측을 불허하는 액션영화다. 아니 때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예측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당근을 이용한 과격한 액션은 물론, 아이를 등에 업고 쌍권총을 날려대는 등 과거 홍콩 누아르의 과잉된 총격전을 더욱 극단적으로 연출한 장면들의 연쇄는 말 그대로 거침이 없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현란한 액션들의 연속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거침없는 액션의 질주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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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V무비에서 메이저영화까지 가리지 않고 한해에 두세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용이 간다>는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다. 플레이스테이션2 성인용 게임 <용과 같이>( 龍が如く)를 영화화한 작품인데, 보통 게임에 기반을 둔 영화들이 매끄러운 스토리 전개로 게임의 단절적인 서사를 넘어서려는 태도를 보이는 반면에 미이케의 작품은 과장된 캐릭터와 개연성에는 크게 구애되지 않는 게임의 속성을 영화에 고스란히 끌고 들어왔다. ‘영화가 예술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다’라며 감독의 자의식이 지나치게 드러난 영화는 ‘재미없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감독의 태도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이 영화는 재미를 위해 다소 황당무계한 에피소드들을 빠른 속도로 이어나간다.
스즈키 세이준의 <도쿄 유랑자>의 주인공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전설적인 야쿠자 키류 카즈마(기타무라 가즈키)가 10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카무로쵸에 돌아오자마자 은행에 보관되어
‘싸나이’들의 액션 <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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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두개의 이야기로 직조된 공포 멜로다. 김민숙 감독이 맡은 첫 번째 부분에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논개의 이야기가 재해석된다. 만약, 일본 장수를 껴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렸던 논개의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일본군에 연인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던 한 여인이 그마저 실패한 뒤, 혼령이 되어 지상을 떠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한은 핏물이 되어 일본 장수 기무라 주변을 맴돌고 그는 점차 광기로 치닫는다. 감독이 밝힌 대로 영화는 역사적인 관점을 취하는 대신, 사랑을 둘러싼 인간의 내면을 심리적 공포를 통해 재현하는 데 공을 들인다. 특히 나비를 모티브로 사랑, 죽음, 광기 등의 관념을 형상화하는 영화의 미학은 눈여겨볼 만하다. 상상력 역시 기발하지만, 짧은 시간에 방대한 이야기를 끌어안다보니 종종 비약적인 전개가 거슬린다. <편지> <산책> 등을 연출했던 이정국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의 시점으
욕망이 빚어낸 공포 멜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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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한 그림자가 온 지구면을 덮고 있는 요즘, 채털리 부인의 해피엔딩을 향해 데이비드 매킨지 감독의 <어사일럼>은 이렇게 묻는다. “욕망을 억압하는 신분사회로부터 ‘영원히’ 도망갈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와 교도관들이 지배하는 ‘어사일럼’(정신병에 걸린 범죄자들의 수용소)의 ‘외부’라는 것이 있기나 한가?”
1950년대 영국 북부의 한 ‘어사일럼’. 정신과 의사인 남편(휴 보네빌)을 따라 아들 찰리와 함께 사택으로 이주해온 스텔라(나타샤 리처드슨)는 무료하기만 하다. 출세주의자에 질투심 가득한 남편은 일에만 몰두하고 다른 의사 부인들과의 친교는 의례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사택 정원을 가꾸던 에드가(마튼 크소카스)와 그녀의 눈이 마주치고, 둘은 걷잡을 수 없는 관계로 치닫는다. 줄거리의 앞부분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둘이 벌이는 긴박감있는 옥외정사에 할애되고, 후반부는 연이은 두 남녀의 탈출과 탈출 이후의 여정에 할애된다.
고전이 된 <채털리 부인>의 도
채털리 부인의 해피엔딩 <어사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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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센스, 센서빌리티> <설득> 등. 제인 오스틴의 여자들은 항상 돈과 사랑을 두고 겨룬다. 극성인 어머니와 예의와 이성에 따라 행동하려는 딸의 구도로 벌어지는 싸움이지만 이는 그 시대 여성들이 고민해야 하는 상반된 두 가지 요소를 반영한다. 가부장 중심적인 사회에서 좋은 가문과 결혼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이어갈지, 자신의 감정과 사랑을 존중해 결혼의 상대자를 고를지. 간혹 ‘그래봤자 시집 잘 가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이는 동시에 제인 오스틴의 여자들이기에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현실을 고민한다는 건 현실을 불편하게 느낀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혼할 나이가 됐지만 남자보다 글쓰기에 관심이 더 많은 여자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런던에서 온 법학도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와 사랑에 빠진다. 처음엔 자신의 글을 비판했던 리프로이에게 반감이 컸지만 그가 건넨 H. 필딩의 소설 <톰 존스>
제인 오스틴 되기의 어려움 <비커밍 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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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초고를 악보에 옮겨적는 과정을 뜻하는 제목의 영화 <카핑 베토벤>은 베토벤 교향곡 중 최고작이자 최후작인 <합창>이 만들어질 당시, 여류작곡가 지망생이 함께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외모는 물론 거동 하나하나까지 베토벤의 환생인 듯한 에드 해리스, 베토벤과 교감하는 총명한 여인으로 눈을 반짝이는 다이앤 크루거의 연기는 물론 발군이지만, <카핑 베토벤>의 가장 큰 감동은 뭐니뭐니해도 <합창>의 초연장면을 커다란 스크린이며 풍부한 사운드로 감상하는 순간에 있다. 여성예술가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던 지난 예술사에 대해 재기어린 반문을 던지는 아그네츠카 홀랜드(<유로파 유로파> <비밀의 화원>)의 복화술 또한 의미심장하다.
베토벤에게 매료되다 <카핑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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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베인(조디 포스터)은, 세상에서 가장 안온하고 아름다운 도시 뉴욕을 예찬하는 라디오 DJ다. 또 그녀는 연인 데이비드(나빈 앤드루스)와 결혼을 앞둔 행복의 정점에 서 있다. <브레이브 원>의 첫 소절은 넘치게 감미로워, 참혹한 비극의 전조임을 대번 눈치챌 수 있다. 청첩장을 고르던 날, 에리카와 데이비드는 센트럴 파크로 산책을 나섰다가 불한당 패거리들에게 이유없이 습격당한다. 무자비한 구타는, 데이비드의 숨을 끊고 에리카의 육신을 짓이겨놓는다. 요즘 뉴욕의 치안 상태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단지 기념하고 자랑하기 위해 범행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는 불량배들의 행태는, 이 영화가 요즘 이야기임을 강변한다. 3주간의 혼수상태에서 에리카가 깨어나면, 영화는 곧장 그녀의 주관에 밀착한다. 겨우 회복한 에리카가 거리로 나서면 카메라는 휘우뚱 기울고 음향은 거슬리게 과장된다. 그녀의 눈에 이제 모든 행인은 잠재적 야수다.
닐 조던 감독의 관심사는 애인 죽인
범죄와의 개인적인 전쟁 <브레이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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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가 왔다. 전편 <박치기!>에서 60년대 교토를 활보하던 조선의 젊은 주먹이자 재일 한국인인 안성(이사카 슌야)은 이제 교복을 벗고 성인이 되었으며 어린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도쿄로 이주한 뒤 동분서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다. 그 즈음 동생 경자(나카무라 유리)는 우연히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연예인의 길을 걷게 된다. 안성과 경자의 현재 이야기가 전개되는 사이, 그들의 회상을 통해 안성의 아버지 진성(송창의)이 어떻게 징병거부와 탈영을 거듭하다 고향땅 제주도를 떠나 일본에 정박하게 되었는지가 덧붙여진다.
<박치기! 러브&피스>는 전편과 많은 부분 다른 시도를 한다. 연출은 여전히 이즈쓰 가즈유키가 맡고 있지만 그 밖의 주요 역은 모두 다른 배우들로 교체되었다. 캐스팅의 여건을 제외하더라도 새로운 배역의 힘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한 제작 의도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편에 비해 그리 성공
재일 한국인, 스스로의 이야기 <박치기! Love &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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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유행가 한 소절을 아무거나 읊조려보라. 열에 일곱은 <행복>과 공명하는 대목이 있을 것이다. <행복>은 스스럼없이 통속적인 이야기다. 무책임한 남자가 헌신적인 여인과 사랑을 나누다 배반한다. 게다가 그녀는 치명적 병마의 포로다. 허진호 감독은 이번에도 흔한 연애담의 그릇에 울림을 담으려 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그리고 ‘4월의 눈’이라는 해외 개봉 제목을 가진 <외출>에서, 계절은 줄곧 중요한 요소였다. 네 번째 영화 <행복>은 여기 덧붙여 허진호 영화의 사계(四季)를 헤아려 보게 만든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미처 시작도 못하고 접은 사랑의 꿈을 그렸고, <봄날은 간다>는 한여름 녹음처럼 영원할 것만 같던 젊은 날의 연애담이다. <외출>의 사랑은 배우자에게 배신당한 기혼 남녀에게 쓸쓸한 얼굴로 찾아왔다. 새 영화 <행복>에서, 사랑의 시제는 과거완
사랑의 균열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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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워>(1998) 1편으로부터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성룡은 <나이스 가이>(1997)와 <성룡의 CIA>(1998) 등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이른바 ‘쇠퇴기’라는 팬들의 아쉬움에 직면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로부터도 무려 10년이 지났으니 <러시아워3>에서 사실상 그의 ‘본격’ 액션이라 할 만한 장면은 별로 없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제 더이상 각박한 도심에서 그런 싱싱한 액션을 영영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룡은 ‘착한 경찰’이라는 자기 고유의 캐릭터로 안간힘을 쓴다. 한 대사에 대한 충성심과 어렸을 적 헤어진 옛 고아원 동생을 다소 맥락없이 등장시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국제적인 범죄조직 삼합회의 중심인물 ‘샤이 셴’의 정체를 이야기하려던 ‘한’ 대사가 세계범죄재판위원회 회의 도중 살해당한다. 그를 경호하던 리(성룡)와 단짝 경찰 제임스 카터(크리스 터커)는 곧이어 암살 위험에 빠진
성룡의 액션보다 귀여움 <러시아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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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마천루 안에서 양복차림은 모두 백인이고, 청소하는 이들은 대부분 히스패닉이나 흑인이며, 그 사이를 질주하는 택시기사 열에 아홉은 인도며 러시아에서 넘어온 이민자다. 패션과 개성과 자유의 도시 뉴욕은 인종과 계급의 차이를 가장 도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뉴저지 출신 애니(스칼렛 요한슨)가 얼떨결에 뉴욕 상류층 ‘X 가족들’ 외아들의 유모로 ‘발탁’된 이후의 고군분투를 그린 <내니 다이어리>는 그런 뉴욕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바라본다. 영화의 오프닝은 뉴욕 자연사박물관. 아마존과 사모아 원주민의 양육행태를 보여주는 밀랍인형 옆으로 뉴요커가 전시돼 있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인류학도를 꿈꾸는 애니에게 있어, 기를 쓰고 가정을 꾸린 뒤 온갖 명품으로 치장하고도 쇼핑에 피부관리, 자선사업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X부인(로라 리니)과 불륜이 일상인 X씨(폴 지아매티)의 모습은 인류학적 고찰의 대상이란 뜻이다.
2002년 첫 출간 이후 스테디
교훈극의 판타지 <내니 다이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