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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말 액티비티> 1편의 결말은 세 가지였다. 2007년 영화제 상영버전에서는 악령에 사로잡힌 케이티가 미카를 살해한 뒤 경찰의 총에 맞는다. DVD 버전에서는 케이티의 자살을 암시하며 끝난다. 그리고 스필버그가 참여한 극장판에선 미카의 시체를 카메라로 던진 다음 케이티가 사라지는 것으로 끝났다. <파라노말 액티비티2>는 가장 공포영화다웠던 세 번째 결말을 전제로 삼고 있다.
미카가 죽기 몇달 전, 케이티의 여동생 크리스티는 상처한 남자 다니엘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 어느 날 밤 마치 도둑이 든 것처럼 집 안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고 다니엘은 집안 곳곳에 총 6대의 CCTV를 설치한다. CCTV 화면에는 가족이 알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들이 촬영된다. 허공 어딘가를 빤히 응시하는 아기, 수영장 밖으로 저절로 튀어나오는 청소기, 충직한 셰퍼드의 갑작스런 발작. 어린 시절 케이티와 함께 경험했던 악몽이 떠오른 크리스티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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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관습에 훨씬 더 충실해진 <파라노말 액티비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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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뒤섞임이라기보다 무용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남자의 손은 여자의 가슴을 부여잡고 놓기를 반복하고, 여자의 엉덩이는 규칙적으로 내쉬는 숨소리를 박자 삼아 남자의 배를 향해 들어가고 나온다. 두 육체의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나탈리>의 오프닝 크레딧은 이후 전개될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를 의미한다. ‘이 영화는 섹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려는 듯.
<나탈리>는 예술가와 예술가가 사랑한 뮤즈에 관한 이야기다. 세기의 조각상 ‘나탈리’가 10년 만에 거장 황준혁(이성재)의 개인전에서 공개된다. 전시회 마지막 날, 미술평론가 장민우(김지훈)가 찾아와 황준혁에게 나탈리를 팔 것을 요청한다. 황준혁은 뜨거운 사랑을 함께 나눴고, 자신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은 오미란(박현진)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잃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나탈리를 사려는 장민우의 의도도 궁금했다. 알고 보니 장민우 역시 오미란을 사랑한 남자였다.
두 남자가 기억하는 여자
예술가와 예술가가 사랑한 뮤즈에 관한 이야기 <나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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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생들의 세계에도 모험과 신화는 있다. 영국 작가 리처드 애덤스가 1972년에 쓴 <워터쉽 다운의 토끼들>(Watership Down)을 한번 떠올려보시라.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워터쉽 다운의 토끼들>은 토끼라는 연약한 포유류의 세계에 인간적인 모험을 결합한 고전이었다. EBS에서도 방영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보고 ‘장성한 내가 지금 토끼 따위를 위해 울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을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국내에도 출간된 <가디언의 전설>의 원작 역시 <워터쉽 다운의 토끼들>과 비슷한 종류의 소설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건 올빼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반지의 제왕>, 혹은 <해리 포터>식 본격 판타지 서사극에 가깝다는 거다.
올빼미들의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전설이 있다. ‘순수 혈통’을 내세워 올빼미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한 무리와 올빼미들을 보호하는 가디언 올빼미들이 먼 옛날
올빼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본격 판타지 서사극 <가디언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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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누가 누구와 공통항을 갖는지 주의를 기울이자. 그게 <참을 수 없는>의 ‘연애’의 방점이다. 지흔(추자현), 출판사 직원이고 성격이 활달하다. 너무 활달한 나머지 폭력 사고를 친다. 그녀는 야구경기 보기를 좋아한다. 지흔의 가장 친한 친구 경린(한수연), 성실한 의사와 결혼하여 모자람없는 생활을 하지만 어딘가 표정이 지쳐 있다. 실내암벽등반을 배우러 다니는데 뭔가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있는 것 같다. 야구경기엔 관심이 없다. 지흔의 남편 명원(정찬), 유년 시절의 가난이 그를 “재수없는 놈”으로 만들었고 일터와 집밖에 모르지만 유일한 취미가 있다면 야구경기를 보는 것과 동네의 실내 야구장에서 배팅연습을 하는 것이다. 동주(김흥수), 명원과 같은 병원의 진단전문의로 일하고 실내암벽등반 전문가이자 여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도전하는 데 능하다. <참을 수 없는>의 주인공인 네 사람의 연애관계는 지흔이 사고를 치고 돈을 다 잃은 다음 경린과 그 남편 집에 얹혀살
엇갈린 인간관계의 긴장감 <참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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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보드 열혈광인 십대 소년 둘이 파리에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들의 하루는 어떠할까. 그래, 마땅히 소년들은 사건에 휩싸일 것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신나게 파리를 질주한 다음 으슥한 주차장 안쪽으로 들어가 기분 삼아 가볍게 대마초에 취해 보려는데 저쪽에서 사납게 생긴 어른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무언가 거래를 하는 것 같더니 이내 한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 하필이면 그때 그 장면을 몰래 찍고 있던 소년들의 카메라에서 소리가 나고 이제 소년들은 이 무서운 범죄자의 먹잇감이 돼 쫓기는 신세가 된다.
<스케이트 오어 다이>는 단순한 이야기다. 철모르는 십대 소년 둘이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는 누명을 쓴 채 쫓겨다니는 이야기라고만 말해도 될 만큼 단순하게 전개된다. 영화의 강조점은 다른 데 있다. 우선 이곳은 프랑스의 파리. 파리의 잘 알려진 장관이 그려지고 거리의 분위기가 속도 빠른 카메라에 자주 담긴다. 그 사이를 소년들이 질주한다. 앞선 사건은 소년들의 질주를
스케이트보드 열혈광인 십대 소년 <스케이트 오어 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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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리트>(1987)의 주인공 고든 게코는 지난 22년 동안 전세계 증권가를 휩쓴 모토 두개를 창조했다. 하나는 “돈은 절대 잠들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탐욕은 좋은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절대로 잠들지 않는다던 돈은 깊은 숙면에 빠져들었고, 탐욕을 찬양하던 월 스트리트 거물들은 입을 닫았다. 다들 자본주의 시스템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전편에서 주식거래법 위반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던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가 출감했다. 그의 손에 떨어진 것은 당시로서는 부유한 자들이나 겨우 만져볼 수 있던 벽돌 크기의 노키아 휴대폰뿐이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열쇠는 있다. 그는 22년 전 자신이 스위스 계좌에 딸 이름으로 빼돌린 재산을 인출하기 위해 딸 위니 게코(캐리 멀리건)와 딸의 연인인 신예 증권 트레이더 제이콥 무어(샤이어 라버프)에게 접근한다. 딸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고, 아버지는 혈육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며, 딸의 연인은 그녀의 아버지
월 스트리트 자본가들의 맞춤슈트처럼 잘빠진 오락영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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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 커피까지 끓여놓고 죽었군.” 커피만이 아니다. 유월절 정찬 준비에 부족함이 없도록 냉장고 가득 음식을 채워넣고 포스트잇에 조리법까지 써놓은 뒤 노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라의 죽음을 제일 먼저 발견한 건 그녀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호세(페르난도 루한)다. 20년 전 노라와 이혼한 호세는 노라의 장례 준비를 맡게 되는데, 유월절 기간에는 장례를 치르지 않는 유대교 풍습에 따라 장례식은 미뤄진다. 노라의 아들 루벤(아리 브릭맨)은 엄마의 장례식을 종교 율법에 맞게 성스럽게 치르려 하고, “종교도 다 장삿속”이라 믿는 무신론자 호세는 기독교식 장례로라도 빨리 그녀를 땅에 묻으려 한다. 노라의 집안일을 거들었던 파비아나, 노라의 동생 리아, 랍비 등이 하나둘 노라의 집에 모이고, 그 과정에서 호세는 노라와 외간 남자가 찍힌 사진 한장을 발견한다.
<노라 없는 5일>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중심엔 호세와 노라의
누군가의 죽음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된 사람들 <노라 없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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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별 플래닛 51에 사는 주인공 몇명을 소개할까 한다. 우주과학에 관심이 많고 천문관측소 큐레이터 보조로 이제 막 합격하여 기쁨에 넘치는 렘. 만홧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언제나 외계인의 침공을 꿈꾸는(?) 망상 소년 스키프. 렘의 옆집에 사는 미모의 소녀 니이라. 그리고 렘의 동생 에클이 주인공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들은 지구인은 아니고 ‘플래닛 51인’이다. 여기에 외계인이 나타난다. 이 외계인은 지구라는 별에서 왔다. 그의 이름은 척. 그는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일까. 소문처럼 플래닛 51인들의 뇌를 파먹으러 온 것일까. 그로울 대령을 앞세운 플래닛 51의 군인들이 총집결한다. 하지만 척은 렘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군인들의 눈을 피해 도망다닌다.
<플래닛 51>의 각본은 <슈렉>의 조 스틸먼이 썼다. 이 얘기가 때론 냉소적이지만 대체로 유머러스하고 패러디 장면은 기억에 남을 만하다는 뜻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미국의 행복한 어느 마을처럼
역지사지 애니메이션 <플래닛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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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이라는 제목이 트릭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간장, 고추장, 된장의 그 된장을 제목으로 뽑는 건 아무래도 촌스러우니까. 그런데 <된장>은 정말로 ‘된장 스토리’다. 100% 염화나트륨의 완전무결하게 순수한 소금, 매화꽃 향기가 밴 흙으로 빚은 장독, 무더운 여름에도 차디차다는 옻샘물로 된장을 만드는 과정이 <된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된장>과 <식객> 시리즈가 닮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물론 된장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끝내주게 맛있는 된장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도 고개를 내민다.
살인마 김종구는 사형 직전에 묘한 한마디를 남긴다. “그 된장찌개가 먹고 싶네.” 방송국 PD인 최유진(류승룡)은 그 말의 의미를 쫓아가보기로 한다. 경찰을 농락하며 탈옥했던 김종구는 된장찌개를 먹다가 5년 만에 붙잡힌다. 무장한 경찰들이 코앞에 있었는데도 무엇에 홀린 듯 된장찌개만 먹고 있었다.
단순하고 순수하고 구수한 맛이 베어있는 영화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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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면 텅 빈 하얀 벽, 그리고 하나의 신비처럼 바흐를 연주하는 피아노 자동기계가 등장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음악적 현실과 우리의 현실을 누빈다. 우리 삶 속의 구두점 사이에 음악이, 바흐의 마그니피카트와 평균율이 놓여 있다. 때로는 실험적 화면이, 때로는 역사극 같은 재연 다큐멘터리가, 때로는 우리의 옆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번갈아가며 제시된다. 마치 현실이 없었더라면 바흐의 음악 역시 없었다는 듯, 영화는 일상적 현실과 음악적 현실을 대위적으로 나열하지만 그것에 어떠한 의미구조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은 제작자이자 시나리오작가, 연출자이자 배우로서 실험적인 스페인 영상 미학을 개척했던 거장 페레 포르타베야 감독의 연출작이다. 예술로서의 영화가 지닌 사회적 역능에 대한 그의 오랜 미학적 관점이 설득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나 있다. 밥 먹고, 사랑하고, 잠자듯 바흐의 음악은 현실의 가까이에 있다. 매우 일상적이
음악의 본질을 영상으로 엮어낸 탈은폐의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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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시대, 800년 전 사라진 라마의 유해를 차지하기 위해 전국의 검객이 모여든다. 하지만 유해의 일부를 한 사찰에 맡겨놓고 속세를 떠난 증정(양자경)은 얼굴도 바꾸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간다. 한때 흑석파의 자객이었던 증정을 찾기 위해 흑석파의 우두머리인 왕륜(왕학기)을 비롯해 나머지 킬러들인 옥(서희원), 레이빈(여문락), 마법사(대립인)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그녀를 수소문한다. 한편, 증정은 같은 마을에 사는 심부름꾼이자 허드렛일을 하는 지앙(정우성)의 순수한 마음에 이끌려 결혼에 이른다. 하지만 함께 들른 은행에서 정체 모를 자객의 공격을 받게 되고, 남편 지앙을 구하기 위해 증정이 옛 실력을 발휘하면서 서서히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고전 무협영화의 팬이라면 매 장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절대 무공을 선사한다는 라마의 시체와 애타게 그를 찾는 사람들,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옛 암살자, 그를 찾는 잔인무도한 자객들, 원수의 자식과 빠진 사랑. 오우삼이 심혈을
무척 간결하고 담백하며 우아한 무협영화 <검우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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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사우라의 영화를 보면 늘 눈과 귀가 즐겁다. 팔순을 바라보는 스페인의 이 노장은 1980년대 이후 정치적 입장에서 벗어나 스페인의 영혼이 담긴 춤과 음악, 예술이라는 주제를 줄기차게 탐구해왔다.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 <탱고>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에서 플라멩코, 스페인의 화가 고야, 포르투갈의 음악 파두 등을 적절히 배치하며 뛰어난 색채와 화려한 영상, 음악을 통해 자신의 화두를 던져왔다. <돈 조반니>도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영화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오페라를 쓴 시인 로렌조 다 폰테의 삶을 중심으로 다룬다. 또한 여기에 카사노바가 함께 등장, <돈 조반니>의 원작인 <돈 후안>과 함께 영화의 중요한 맥락을 이룬다. 영화는 원색의 화려한 의상, 푸른색의 차가운 색감과 노란색 계열의 따뜻한 색감의 대비가 선명하게 드러나며 시각적으로도 풍성한 볼거리
실제로 오페라를 보는 듯한 영화 <돈 조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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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라디오는 방송이라기보다 사적 밀담에 가깝다. 인기 라디오 DJ와 연쇄살인마 스토커가 벌이는 2시간 동안의 대결을 박진감있게 그린 <심야의 FM>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한 남자를 통해 환상이 현실로 새어들어올 때의 일그러짐을 보여준다. 5년 동안 <심야의 영화음악실>이라는 라디오를 진행해온 DJ 고선영(수애)은 두딸의 엄마이자 의식있는 (적어도 그런 척하는) 아나운서다. 검찰을 향해 날선 클로징 멘트를 거침없이 날리는 그녀는 일견 사회비판적인 듯 보이지만, 길거리에서 여자를 패는 포주를 쓰레기라 부르면서도 쓸데없는 일에 엮이는 게 귀찮다며 외면한다. 팬들이 보내온 선물들을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그녀에게 방송은 그저 일일 뿐이다. 일과 사생활을 철저히 구분하는 그녀가 말을 못하는 큰딸의 수술을 위해 마이크를 내려놓기로 결심하는 걸 보면 그녀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고선영의 이런 은퇴를 용납하지 못하는 스토커
인기 라디오 DJ와 연쇄살인마 스토커가 벌이는 대결 <심야의 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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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님, 사신님, 통화시간만큼 제 수명을 드릴 테니 소원을 들어주세요.” 밤 열두시, 특정 번호로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하면 사신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여고생들 사이에 퍼진다. 아버지가 지긋지긋한 사요코(우스다 아사미)는 사신의 번호로 전화를 걸고, 그녀의 소원대로 아버지는 죽는다. 그리고 또 다른 10대 소녀들-변태 선생님을 증오하는 소녀와 멋진 남학생과의 연애를 꿈꾸는 소녀-이 사신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소원 성취가 중요한 그녀들은 ‘통화시간만큼 제 수명을 드릴 테니’라는 주문을 무시하다가 잔인한 죽음을 맞이한다. 친구들이 목숨을 잃자 사요코는 1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다.
<엔드 콜>은 <착신아리>를 선배로 삼는 일본 ‘호러물’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그러나 2006년, <착신아리>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프로듀서 아리시게 요이치가 했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휴대폰을 소재로 한
구식 휴대폰을 소재로 해 구식 공포를 답습하는 함정 <엔드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