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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와우를 닮은 개의 이름이 이렇게 거대한 ‘물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벡>은 일본에서 1500만부가 팔린 해롤드 사쿠이시의 인기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고등학생 코유키(사토 다케루)가 뉴욕 출신 천재 기타리스트 류스케(미즈시마 히로)를 만나고, 류스케의 강아지 이름을 물려받은 밴드 ‘벡’에 합류하는 것이 기본 줄거리다. 영화는 원작의 초반부 내용, 즉 코유키가 류스케와 더불어 불같은 성격의 래퍼 보컬 치바(기리타니 겐타)와 차분하고 실력있는 베이시스트 타이라(무카이 오사무), 유일한 학교 친구이자 드러머 사쿠(나카무라 아오이)와 밴드를 꾸리고 일본 최대 록 페스티벌인 그레이트풀 사운드에 진출하기까지 겪는 온갖 우여곡절을 다룬다.
이미 우라사와 나오키의 대작 <20세기 소년>을 3부작 영화로 만든 경험이 있는 쓰쓰미 유키히코 감독은 팬들의 우려를 다독이려는 듯 원작 만화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살려냈다. 원작
밴드를 통한 소년의 좌충우돌 성장기 <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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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스웨덴 버전 <렛미인>과 맷 리브스 감독의 할리우드 버전 <렛미인>의 비교는 불가피해 보인다. 2004년 출간된 욘 A.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Lat Den Ratte Komma In>을 원작으로 하는 두 영화는 많은 부분 닮아 있다. 할리우드 <렛미인>이 초반에 이야기 구조를 살짝 뒤튼 것 빼고는 내용 전개과정도 거의 똑같다. 대신 리브스의 <렛미인>은 거추장스러운 이야기의 곁가지를 쳐내고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한다. 1983년 미국의 한 마을. 하굣길이면 어김없이 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12살 소년 오웬(코디 스밋 맥피). 소년은 어느 날 옆집으로 이사온 또래 소녀 애비(크로 모레츠)를 만난다. 맨발로 눈밭을 걸어다니는 특별한 구석이 있는 이 소녀에게 오웬은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애비와 소녀의 아버지로 보이는 늙은 남자가 이사 온 뒤 마을에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애비가 살기 위해 사람
뱀파이어물 고유의 공포와 스릴을 최대치로 뽑아낸 할리우드 버전 <렛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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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have control/I want a perfect body/I want a perfect soul/I want you to notice/When I’m not around/You’re so fucking special/I wish I was special.”
영화 본편에는 등장하지 않는, 예고편에만 삽입된 <Creep>의 가사는 <소셜 네트워크>의 정서를 단번에 드러낸다. 혹은 제시 아이젠버그가 연기하는 마크 저커버그의 제스처를 보라. 그는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처럼 똑바로 걷질 못하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몸을 비틀고 뛰듯 걷는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주변 경관을 둘러본다든가 하는 일이 일체 없다. 그는 몸은 여기 있되 정신은 다른 어딘가에 가 있다. 즉 누구보다 더 편안하고 자신있는 존재, 컴퓨터 속 네트워크로. 이건 기본적으로 소년들의 쓰라린 성장담이다. 상대방이 A라고 질문하면 A’로 답하는 게 아니라 C를 먼저 말해버리
현실과 뒤섞여가는 인터넷 공간에 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목격담 <소셜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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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완(박현영)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둔다. 처음에는 금방 될 것 같았던 영화감독에의 꿈이 점차 험난한 길로 드러날 즈음 <레인보우>도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5년 동안 아무 결실이 없는 지완을 보며 남편은 불쌍히 여기면서도 불안해하고 아들은 시큰둥하다. 지완은 충무로 제작사를 돌면서 시나리오를 고쳐내며 혹은 모욕에 가까운 말을 참아넘기며 제도 안에서 고군분투하지만 꿈을 이루기가 힘들다. 과거에 찍어둔 ‘레인보우’라는 밴드의 인터뷰를 기초로 무언가 새로운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지만 쉽지는 않다. 급기야 쓰던 시나리오를 들고 직접 이곳 저곳을 방문해보지만 그 일도 잘 풀리지 않는다. <레인보우>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했는데 그 자전적 이야기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결국 성공하지 못한 누군가의 실패담, 한 사람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을, 지극히 현실적인 대다수 충무로의 사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루지 못했던 꿈의 무지갯빛 실현 <레인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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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씻고 봐도 정상은 없다. <페스티발>의 인물들은 누구랄 것 없이 모조리 ‘변태’다. 경찰관인 장배(신하균)는 ‘양놈’들보다 거시기가 크다는 근거없는 자부심을 확인하기 위해 악악댄다. 장배의 우악스러움에 정나미가 떨어진 영어강사 지수(엄지원)는 ‘나 홀로 오르가슴’을 위해 갖가지 도구를 사들인다. 한복 의상실 주인 순심(심혜진)은 밤마다 동네 철물점에 들러 킬힐을 신고 채찍을 휘두른다. 반면 건장한 체격의 기봉(성동일)은 순심의 감당 못할 카리스마 앞에서 가면을 쓰고 기어다닌다. 다 큰 어른들만 ‘변태’가 아니다. 여고생 자혜(백진희)는 땀에 젖은 팬티를 팔아 돈을 벌고, 자혜의 데이트 신청을 번번이 거절하는 어묵 장수 상두(류승범)는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는 인형과 열애 중이다. 국어교사 광록(오달수)도 어느 날부터 갑자기 란제리를 즐겨 입기 시작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에 이은 이해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페스티발>은 ‘변태’ 커플들의 별
'변태'커플들의 별난 행진을 소재 삼은 섹스코미디 <페스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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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이 흘러나오는 홍콩 누아르가 얼마 만인가. <비스트 스토커2 - <증인> 두 번째 이야기>(이하 <비스트 스토커2>)는 새해를 맞이하는 풍경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같은 연말 시기를 배경으로 역시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이 들려왔던 임영동의 <타이거맨>(1989)과 같은 설정이다. <타이거맨>에 출연했던 배우 유강이 우정출연한다는 점에서도 <비스트 스토커2>는 옛 홍콩 누아르의 전성기에 바치는 오마주처럼 읽힌다. 하지만 홍콩은 20여년 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경찰과 삼합회는 거의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다.
범죄정보수사관 아돈(장가휘)은 보석상 도둑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제 막 출소한 고스트(사정봉)를 찾는다.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고스트는 어쩔 수 없이 아돈의 제안을 수락하고, 도둑 일당의 보스의 애인인 아디(계륜미)와 함께 보석상을 정탐
옛 홍콩 누아르의 전성기에 바치는 오마주 <비스트 스토커2 - <증인>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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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은 TV시리즈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극장판이다. 시리즈의 주요 인물은 스즈미야 하루히와 쿈을 비롯한 SOS단 친구들이다. SOS단은 하루히가 특별한 인류를 찾기 위해 만든 클럽으로 이곳에는 이미 하루히가 찾는 우주인이나 미래인, 초능력자, 사이보그가 있지만 정작 하루히는 모르고 있다. 하루히가 자신도 모르는 능력으로 시공을 초월한 사고를 치면 SOS단이 하루히 몰래 사고를 수습하는 소동이 이 시리즈의 주된 패턴이다. 극장판은 2006년부터 이어온 시리즈의 세계를 전면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느 날 학교를 찾은 쿈은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이곳에서는 SOS단 클럽도, 뒷자리에 앉은 스즈미야 하루히도 원래부터 없었던 존재다. 쿈은 아무런 사고도 없는 새로운 세계에 남아야 할지, 시공의 흐름을 재수정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은 극장
지금의 시간을 더욱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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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콧의 눈길은 여전히 철로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2009년 스콧은 존 트래볼타를 지하철 납치범으로, 덴젤 워싱턴을 그에 맞서는 배차원으로 출연시킨 <서브웨이 하이재킹: 펠햄 123>을 만들었다. 이번엔 기차다. <언스토퍼블>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무인 기관차의 폭주극이다. 정비공의 실수로 사람없이 철로 위를 달리게 된 화물열차 777호는 가속이 붙어 시속 160km 속도로 펜실베이니아 도심을 질주한다. 유독성 화물을 잔뜩 실은 이 열차가 폭발하면 미사일급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열차를 멈추기 위해 애를 쓴다. 기관차가 출발한 장소의 조차장 직원 코니(로자리오 도슨), 그리고 같은 시간 우연히 777호와 같은 선로를 달리고 있던 고참 기관사 프랭크(덴젤 워싱턴)와 신참 승무원 윌(크리스 파인)은 이 예기치 않은 폭주 기관차 사고에 깊게 관여한다.
덴젤 워싱턴과 크리스 파인을 투톱으로 내세웠지만, <언스토퍼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무인 기관차의 폭주극 <언스토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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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어 라이프>는 로저의 죽음과 그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제이크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로저와 제이크는 어릴 적 둘도 없는 친구였다. 로저는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제이크를 몸을 던져 구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다리를 절뚝이는 로저에게서 친구들은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둘도 없는 친구라 생각했던 제이크마저. 결국 로저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보는 가운데 총구를 자신의 머리를 향해 거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제이크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보장된 안락한 미래에, 당장의 현실에 집중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크리스 목사(조슈아 웨이겔)를 만나면서 친구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자친구 에이미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도 하고, 학교의 왕따 조니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하면서 서서히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시작한다.
<세이브 어 라이프>는 청소년의 자살, 집단 따돌림, 부모님의 이혼, 십대 임신 등의 문제를 기독교적 가치로
10대들의 문제를 기독교적 가치로 풀어내는 영화 <세이브 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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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속 초인(강동원)은 지구를 구하러 나설 형편이 아니다. 그는 오른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고 남들과 다른 탓에 부모를 부정해야 하는 처지이며 그런 자신를 혐오한다. 그는 사람들의 행동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으로 고작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에게 대항하는 규남(고수) 또한 거대한 능력을 지닌 건 아니다. 중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진 그는 자신을 ‘임 대리’로 불러주는 한 전당포에 취직한 뒤, 이곳에서 돈을 훔치러 온 초인과 만난다. 규남이 초인과 맞설 수 있는 이유는 단지 그가 초인의 조종 밖에 선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규남은 초인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
<초능력자>의 플롯은 철저히 초인과 규남의 대결에 집중하고 있다. 양쪽은 서로에게 ‘왜 너만 조종되지 않는가’, 그리고 ‘네가 뭔데 세상을 조종하는가’를 놓고 분노한다. 이들의 대결은 사회구조적인 구도를 연상시킨다. 초인에게 조종당했던 사람들은 불가항력의 지배
사회구조적인 구도를 연상시키는 두 남자의 대결 <초능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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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입사 지원자들이 유명 제약회사 입사시험장에 들어선다. 시험 감독관이 시험 시작을 선언한다. 단 80분 동안, 질문도 하나, 답도 하나다. 응시자들은 곧바로 문제지를 확인하지만 놀랍게도 거기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초조해진 응시자들은 시험 규칙을 하나씩 어기며 실격당한다.
영국에서 날아온 독립영화 <이그잼>은 꽤 실감나는 유리한 포인트를 선취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가장 공포스런 순간 중 하나인 취업 면접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코스타 가브라스의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취업 스릴러다. <큐브> <쏘우> 등을 잇는 밀실 스릴러의 계보 속에서도 상당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인다. 썰고 자르고 죽어나가는 스플래셔 호러 대신, 최고의 엘리트 지원자들에게 제시된 두뇌 게임이 주된 숙제다. 각종 과학과 심리학적 상식을 동원하여 하나하나 과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최고의 엘리트 지원자들에게 제시된 두뇌 게임 <이그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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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은 과연 얼마나 긴 시간일까.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이하 <엘 시크레토>)는 그 긴 시간을 촘촘히 채운 사랑의 기록이면서, 1970년대 암울했던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에 대한 환기다. 영화에서 그 둘은 따로 있지 않다. 벤야민 에스포지토(리카도 다린)는 25년 전에 벌어진 강간살인사건의 기억으로 괴로워한다. 당시 법원 직원으로 그 사건을 조사하고 범인까지 잡았던 그는 그에 대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함께 사건을 추적했던, 과거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던 이레네(솔레다드 빌라밀)를 다시 만난다. 당시 두 사람은 사건 발생 몇년 뒤 극적으로 범인 고메즈를 잡아 종신형을 받게 했지만, 정부는 범인이 반정부 게릴라 소탕에 협력한다는 이유로 그를 풀어준다. 정부 당국에 항의하지만 에스포지토는 오히려 풀려난 고메즈의 습격을 받고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잔인무도한 범죄자에게 아내를 잃은 모랄
25년을 촘촘히 채운 사랑의 기억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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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이파네마 소년>은 물론이라고 말한다. 꿈에서나 가능한 사랑을 <이파네마 소년>은 꿈이니까 가능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소녀(김민지)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단짝과 함께 해변을 찾는다. 소녀는 단단한 몸매와 선한 눈을 가진 소년(이수혁)을 만나게 되는데 보드타기를 가르쳐주겠다는 그의 관심이 싫지만은 않다. “바다에는 누군가의 꿈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그 문을 찾기 위해 수영을 열심히 한다”는 소년에 대한 소녀의 궁금증은 점점 사랑의 감정으로 변해간다. 신인배우들의 앳된 용모를 훔쳐보거나 삿포로와 부산의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려 든다면 <이파네마 소년>은 심심한 청춘영화에 불과할 것이다. <이파네마 소년>의 진짜 재미는 판타지와 현실을 뒤섞는 블렌딩에서 나온다. 판타지가 이야기 사이에 끼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판타지가 나서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특히
서툴고 망설이는 청춘의 감정 <이파네마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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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를 운영하는 신구(최무인)는 마음 한편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장사하는 사람 특유의 싹싹함으로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만, 정작 그의 애정을 갈구하는 아내에겐 무심하다. 한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20년 만에 친모와 살게 된 준승(한태수)은 아직까지 엄마와의 생활이 어색하기만 하다. 배우를 꿈꾸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자, 그는 신구가 운영하는 바에서 주방보조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정하고 꼼꼼한 신구에게 점점 연정을 느낀다.
저예산영화로서의 기술적 흠결들, 거의 모든 상황이 예측 가능하게 정형화된 캐릭터 등을 지적하기보다, <사랑활동의 내구성>에서 가장 ‘놀라운’ 지점은 영화 말미에 터져나온다.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고민하던 준승은 군입대를 결심한다. 그가 게이라는 걸 안 어머니가 “그러니까 군대를 빨리 가야 해. 열심히 훈련받아야 잡생각이 없어진다”며 울부짖었던 것처럼, 그도 “진짜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올게요”라고 다짐하며 버스에
중년남자와 청년의 무대책 로맨스 <사랑활동의 내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