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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원 남짓한 월급을 쪼개 5명의 청소년을 후원하고 남은 돈으로 생명보험을 들었는데, 그 보험의 수혜자 역시 불우 청소년 후원 재단. 고아로 태어나 중국집 배달원으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언제나 자신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이웃에 사랑을 베푼 천사 같은 남자. 이우수씨의 이야기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이웃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라고 한다. 실수로 어떤 사건에 휘말려 수감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감옥 안에서 어느 소식지의 불우 청소년 사연을 읽으면서 선행을 베풀기로 결심한 것이다. 출소한 뒤에도 그의 후원은 계속됐다. 그의 도움을 받은 청소년들은 편지를 통해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이우수씨는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따뜻한 마음을 베풀었다. 그의 선행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질 때쯤,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철가방 우수氏>는 고 이우수씨의 실화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영화는 이우수(최수종)씨가 자장면을 배달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에
천사 같은 남자 <철가방 우수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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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이혼한 유림(유선)은 딸 은아(남보라)와 함께 새 출발을 시작한다. 고교 1학년인 은아는 한살 위의 동급생 조한(동호)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에게 초콜릿을 만들어 선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약속 장소에 조한과 어울리던 남학생들이 나타나고 은아는 성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그녀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이, 가해자들은 미성년자라는 신분과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법적인 처벌을 피해간다.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재판이 끝난 뒤 가해자들은 동영상을 빌미로 협박을 시작하고, 은아는 점점 참담한 상황으로 내몰린다.
<돈 크라이 마미>는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다. 김용한 감독은 성범죄를 ‘영혼살인’에 비유하며 그 처참한 실상을 알리고 현 법체계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은아와 유림이 겪는 절망과 분노를 화면에 결대로 담아내는데, 힘겨운 감정을 쏟아낸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주인공의 정신적 고통이 지극히 물리적인 파동을 남기며 잘 전달된다. <돈 크
‘영혼살인’ <돈 크라이 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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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1985>는 고 김근태 의원이 남긴 수기 <남영동>을 모태로 한 영화다. 정지영 감독은 이 책 가운데 22일 동안 벌어진 고문의 과정을 발췌했다. 1985년 9월의 어느 날, 주인공 김종태(박원상)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온다. 고문관들의 구타와 욕설은 그를 짓이긴다. 그들이 알고자 하는 건,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잠시 일을 쉬고 있는 김종태가 하고 있던 생각이다. 김종태는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에게는 바로 고문이 자행된다. 그의 입에서 “나는 빨갱이다!”라는 자백이 나올 때까지 고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물고문이 끝나고 나면 수십장의 갱지에 ‘그들이 원하는’ 진술서를 쓰고, 다시 물고문을 당하고 또다시 진술서를 쓰는 일이 반복된다. 김종태는 끊임없는 고문에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아직 모든 고문이 끝난 건 아니다.
남영동 대공분실 직원들이 가한 고문의 방식부터 당시 김근태가 들었던 비명소리와 라디오 소리, 건물 밖에서 들리던
고문은 멈추지 않는다 <남영동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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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희망이 사라졌을 때 누군가를 만나 특별한 순간을 보낸다면 다시 희망을 얻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떠나야 할 시간>과 <생수>로 구성된 옴니버스영화 <사이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작품이다. <떠나야 할 시간>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두 남녀에 관한 드라마다. 여자(황수정)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고, 남자(기태영)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감옥으로 이송되던 중이었다. 호송차가 사고를 당하면서 남자는 극적으로 탈출하고, 우연히 여행 중이던 여자를 만나게 된다. 죄책감과 절망 속에서 삶을 살아가던 남자는 여자와의 여행을 통해 위안과 희망을 얻기 시작한다. <생수>는 바닷가 절벽 위에서 자살하려는 남자 송장수(박철민)를 주인공으로 하는 블랙코미디다.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기 직전, 그는 물을 마시고 싶어 근처에 있는 다방에 커피를 주문한다. 당연하게도
절망 속 희망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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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2012년 10월까지 진행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영국 아레나 투어 공연 실황을 그대로 담은 작품이다. 1969년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는 유다의 시선에서 예수에게 질문을 던지는 파격적인 내용을 가진 싱글 앨범 <<슈퍼스타>>를 작곡, 작사해 발표하고 1971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뒤 40년 넘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서사는 예수의 마지막 7일간의 행적을 중심으로 예수와 유다,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빌라도의 고뇌와 갈등이 중심을 이루지만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설정하고 헤롯이 쇼 프로그램의 유쾌한 MC로 등장하는 등 서사를 재구성하며 공연 내내 귀를 지배하는 록 음악과 함께 화려한 무대와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영화라기보다는 공연 실황을 그대로 담아낸 영상물에 가까우며,
생생한 현장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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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4대에 걸쳐 로저(유덕화) 가족의 집안일을 하며 살아온 아타오(엽덕한)가 갑작스런 중풍으로 쓰러진다. 가족은 이미 해외로 이민을 갔고 로저 역시 수시로 중국으로 출장을 가 거의 집을 비운 거나 마찬가지다. 아타오는 자기 몸조차 추스르기 힘들어지자 로저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요양병원행을 자처한다. 그곳에서 아타오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적응하려 하고, 로저는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다해 병원을 찾아 아타오의 말벗이 된다. 로저의 어머니 역시 병원을 찾아 지난날을 회상한다. 하지만 타오의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된다.
부제가 ‘여인칠십’ 정도 될 것 같은 <심플 라이프>는 허안화가 <객도추한>(1990), <여인사십>(1995), <이모의 포스트모던 라이프>(2006), <천수위의 낮과 밤>(2008) 등을 통해 줄곧 다뤄왔던 여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직접적으로는 <객도추한>의 이방인의 정서, <여인사
가족적인 단란함과 생경함 <심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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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록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미국의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디 록페스티벌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2011년 한국의 인디밴드들을 미국에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서울소닉’ 프로젝트로 SXSW에 참가했던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한국 밴드들과의 합동공연과 주로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이에 그들은 자비를 들여 3주간 무려 19회의 공연을 계획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공연은 만만치 않다. 첫 공연의 관객 수는 3명. 공연 중이지만 관객은 로데오를 타는 데 열중하기도 한다. 그들의 무대도 화려하지 않다. 피자집 지하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콧수염 파티나 비치발리볼장에서 공연하기도 한다. 공연한 대가로 피자를 무제한으로 먹기도 하고 금목걸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피자집 공연에서 생각지도 못한 다른 밴드의 젊은 음악을 만나기도 하고 평생을 록을 하며 음악여
잠자고 있는 삶의 에너지 <반드시 크게 들을 것2: WILD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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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추억: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이하 <유신의 추억>)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비추는 몽타주로 시작한다. 도시는 발전했고, 그 속의 사람들은 바쁘다. 스크린 밖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은 이제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었던 올해 개봉한 다큐멘터리들처럼 <유신의 추억>도 그들이 잊고 있던 사실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두 개의 문>은 용산의 그날을 목격하게 했고, <MB의 추억>은 5년 전 이맘때의 이야기를 통해 우스운 선택을 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유신의 추억>은 그보다 먼 과거에 관한 이야기다.
1972년 10월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치체제를 개혁한다”고 선언했다. 선언과 함께 국회가 해산됐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됐으며 다음달에는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약 90%에 달하는 투표율에 역
과거라는 미래의 거울 <유신의 추억: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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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낡은 자동차 한대가 작은 마을을 누빈다. 운전석엔 ‘상근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상근(김무열)이 앉아 있고, 보조석엔 그의 왼팔인 충모(진선규)가 자리를 지킨다. 이윽고 이들이 도착한 곳은 터미널 부근에 있는 ‘옥상의 아지트’다. 그곳에는 영화의 주요 멤버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중에 호기로워 보이는 자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간혹 폭력적인 청탁을 받을 때도 있지만, 대개 그들의 일상은 시시껄렁한 소일거리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도시 특유의 한가로움도 ‘과거의 1인자’ 세일(서동갑)이 등장하면서 사라진다. 문제는 2년 전 그를 쫓아냈던 것이 상근이 아니라 그저 힘센 동네의 치킨집 주인이라는 데 있다. 다시 나타난 세일이 당연한 듯 상근을 발아래에 두려고 한다. 상근은 이 상황이 싫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힘없는 자들의 본새 나쁜 악전고투가 이렇게 시작된다.
포스터나 제목의 인상과는 달리 <개들의 전쟁>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드라마적 요소를 많이 품은 영
소소한 악행 <개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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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서영주)는 친구들과 함께 빈집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주인을 밀치고 황급히 도망친다. 지구는 특수강도 상해죄로 학교 앞에서 체포되고 소년원으로 보내진다. 소년원 생활이 1년이 다 되어가던 무렵, 엄마 효승(이정현)이 지구를 면회하러 온다. 어린 시절 집을 나간 뒤 소식 한번 없던 엄마다. 임시출소한 지구는 엄마를 따라나서지만 효승은 아들과 함께 살 변변한 거처조차 없다. 한편 지구는 여자친구 새롬(전예진)이 집에서 가출한 뒤 청소년 쉼터에서 지내고 있음을 전해 듣는다. 자신 때문에 미혼모가 된 새롬을 찾아간 지구는 용서를 구하지만, 새롬은 지구를 아는 척도 안 한다.
‘범죄소년’이라는 제목은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소년으로서 형벌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 형사책임을 지는 자”라는 뜻으로 실제 쓰이는 법률용어다. 5개월 동안 소년원, 경찰서, 청소년 쉼터 등을 돌며 시나리오를 쓴 강이관 감독은 연일 뉴스를 도배하는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소년범죄를 소재로 끌어오는 대신
범죄자라는 DNA <범죄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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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은퇴식을 마친 학교 수위 하네스(테오도르 줄리어슨)는 괴팍한 성미의 노인이다. 그는 걸핏하면 아내 안나(마그렛 헬가 요한스토디어)에게 화를 내고, 장성한 아들과 딸에게 생트집을 잡는다. 자식들은 어머니를 연민하고, 아버지를 원망한다. 이들에게 하네스는 그저 실패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네스가 바로 자신들 때문에 귀향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들은 은퇴식이 끝난 뒤 하네스가 자살 시도를 했던 것도, 안나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변기에 앉아 아이처럼 울었던 것도 알지 못한다. 전신불수가 된 안나를 하네스가 직접 돌보겠다고 고집하자, 자식들은 아버지를 몰아세우며 반발한다. 그리고 곧 체념하고는 이내 심드렁해진다. 이제 이들은 어머니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아주 가끔씩 부모 집을 드나들 것이다. 죽어가는 아내 곁에서 연로한 남편이 경험하는 심연에 비한다면, 어쩌면 자식들의 연민과 원망이란 호들갑스럽고 얄팍한 감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신예 루나 루나슨
세상의 모든 아버지 <볼케이노: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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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극작가 ‘앙트완 당탁’의 부고를 들은 열세명의 인물들이 몽블랑 고지대에 위치한 대저택에 모여든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 앙트완의 희곡 <유리디스>를 연기한 적이 있는 배우들이다. 집사는 이들에게 저택의 내력에 대해 설명하는데, 앙트완이 지난해 스물다섯살 연하의 애인과 헤어지면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됐단 이야기이다. 이후 모두가 스크린이 설치된 거실에 모이고, 본격적인 유언집행이 시작된다. 이때 영화에는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 속 구절, “그들이 일단 다리를 건너자, 그때 유령들이 다가왔다”가 떠오르는데, 이는 모든 인물들이 앞으로 맞게 될 상황에 대한 암시를 준다. 유령들, 그러니까 이미지의 환영이 재연될 것이고 이들은 곧 현실과 괴리될 것이다. 실제로 영화가 진행되자 배우들의 현실은 당연한 듯 지워지는데, 인물의 나이나 배경 등이 모두 삭제되지만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모두 이 문구 덕이다.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세 커플이 반복 혹은
형식에 바치는 영화적 연가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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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오다 노부나가도 가고, 패왕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갔다. 이제 무대는 일본 전국시대의 종언을 고한 세키가하라 전투로 옮겨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부하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란을 수습하기 위해 군주들의 마음을 모으러 다니고 독안룡 다데 마사무네와 열혈무장 사나다 유키무라도 여기에 뜻을 함께한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또 다른 심복 이시다 미쓰나리는 주군의 복수를 위해 흉검을 휘두르며 악의 세력을 구축하고 두 세력은 세키가하라에서 마지막 대결을 벌인다.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유명 무장들의 활약을 그린 열혈 경파 시대활극인 <전국 바사라> 시리즈의 최종판이다. ‘라스트 파티’라는 제목에 걸맞게 전국시대를 마감한 세키가하라 전투를 무대로 이제까지 활약한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이 한판 사투를 벌인다. 독안룡으로 불리던 마사무네와 창의 명수 유키무라의 라이벌 관계를 중심으로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마에다 게이지 등 전국시대 무장들의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과장하여
개성만점 캐릭터 백화점 <전국 바사라 극장판: 라스트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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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녀의 엇갈린 러브스토리는 TV드라마가 빈번하게 내세우는 설정이다. 올여름 MBN에서 방영한 동명의 2부작 드라마를 바탕으로 한 <수목장> 역시 두쌍의 남녀와 두개의 삼각관계로 얼개를 짰다. 나무치료사인 청아(이영아)는 한 고등학교의 병든 수목을 조사하던 중 죽은 자의 혼령과 맞닥뜨린다. 환영은 계속되고, 청아의 현실로까지 파고든다. 피처럼 붉은 수액을 흘리고 악취까지 내뿜는 나무들이 수목장(樹木葬, 주검을 화장한 뒤 뼛가루를 나무 뿌리에 묻는 장례 방식)을 치른 나무들이었음이 드러날 무렵 청아에겐 발신인 불명의 소포가 배달된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었던 그녀는 소포 안에 든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들춰보면서 되살아나는 끔찍한 과거에 붙들린다.
초반부에 청아의 약혼자인 정훈(온주완)이 청아 앞에 등장할 때 원한의 구도를 이미 짐작할 수 있다. 전반부가 끝나기 전에 청아를 따라다니는 스토커 한기(연제욱)의 정체가 드러나면 두 남녀의 사랑 곁에 또 다른 두
비극의 러브스토리 <수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