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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때 부모를 잃고 입양된 마린(마리 디나노드)은 언니 리사(멜라니 로랑)와 사랑스런 조카 레오와 함께 불만없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린은 자신이 일하는 서점으로 찾아온 알렉스(데니스 메노쳇)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불만을 품은 리사는 알렉스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마린은 진정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잠시 알렉스를 멀리하려고도 해보지만 결국 그를 거부할 수 없음을 깨닫는 마린. 그러나 얼마 뒤 마린은 퇴근길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남겨진 사람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그녀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린다.
“누구나 어릴 땐 꿈이 있다. 어릴 적 꿈과 현실은 다르다. 그래도 잘 지낸다. 하루하루 우린 살아간다. 서로 의지하면서.” <마린>은 지금 이 순간 내 옆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온기를 기억하도록 만드는 영화다. 프랑스의 떠오르는 여배우 멜라니 로랑은 직접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에서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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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런던,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인재인 로라(데미 무어)는 거대 기업인 ‘런던 다이아몬드’에서 일하고 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면서 열심히 일하지만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매번 임원 승진에서 탈락한다. 회사의 청소부 홉스(마이클 케인)는 청소를 하다가 로라가 곧 해고당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로라에게 회사의 다이아몬드를 같이 털자고 제안한다. 로라는 이직을 알아보지만 이직은 쉽지 않고 결국 회장의 파티에 가서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곧바로 회사에는 CCTV가 설치된다. 다리가 불편한 홉스가 금고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CCTV가 허점을 보이는 60초 내외. 로라는 걱정하지만 홉스는 할 수 있다며 거사를 단행한다.
영화는 적절한 긴장과 서스펜스를 유지하지만 치밀한 계획과 두뇌 싸움을 통해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통쾌한 복수극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구조 속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인간
그녀의 성공 스토리 <플로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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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소녀들>은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전작인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이는 단순히 두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특성들, 두 여성이 극의 중심을 이루는 것과 공간 속에 시간과 감정의 밀도를 쌓아올리는 연출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전작이 1987년 당시 동구권의 억압적 시대 공기를 두 여성의 분투를 통해 잡아냈다면, 이번 영화 역시 2005년 루마니아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과 이를 다룬 논픽션을 토대로 종교적인 신념이 개인에게 억압을 가하는 과정을 그리며 정치적인 함의를 드러낸다.
알리나(크리스티나 플루터)는 수녀가 된 친구 보이치타(코스미나 스트라탄)를 데려가기 위해 고향 루마니아로 돌아온다.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수도원에 머물게 된 알리나는 엄격한 규율에 반발하며 번번이 갈등을 일으키고, 수도원 사람들은 그녀의 돌발행동에 불안을 느낀다. 어느 날 알리나에게 발작이 일어나고, 신부와
맹목적인 신념과 사랑 <신의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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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국영화 관객이 1억명을 돌파했다. 하루 평균 20만 관객이 극장을 찾았고, 1천만명이 넘는 흥행 영화가 두편이나 개봉했다.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고, 독립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 영화계가 제작과 흥행 면에서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시점에서 <영화판>은 한국 영화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시작부터 논점이 확실하다. <영화판>은 ‘영화계’라는 격식있는 언어 대신 ‘영화판’이라는 비속어를 들고나온다. 산업적으로 모양새를 갖춘 한국 영화시장에서 영화인들을 향해 ‘영화판’이라고 쓴다는 건 분명 실례가 되는 용어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지금의 한국 영화계의 이면에 숨어 있는 비합리적인 모순을 지적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더군다나 한국영화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는 출연자들이 ‘판’이란 용어를 거침없이 쓸 수 있을 만큼 한국 영화계에 깊숙이 몸담은 영화인들이란 점도 주목해야
한국 영화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영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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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함정’이란 말이 있다. 예를 들어 하루에 만원을 버는 사람 천명 중에 단 한명만 1억원을 벌어도 이들 수입의 평균은 10만원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999명을 평균보다 못한 사람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무난하다’고 평하는 영화들에도 똑같은 오류가 숨어 있다. 연기는 빼어난데 연출에 약간 문제가 있을 때, 몇몇 장면은 기억에 남을 만큼 좋지만 나머지가 전반적으로 지루할 때, 혹은 내내 지루하다가 엔딩에서 훈훈한 마무리를 선보였을 때 우리는 흔히 ‘무난하다’는 말을 쓴다. 그러나 이는 연기, 연출을 비롯한 전반적인 장면들이 모두 고르게 평균을 유지하는 ‘무난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자가 재미없는 영화에 시간낭비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자기 합리화에 가깝다면 후자는 눈에 띄게 빼어난 장면과 인상 깊은 대사는 없지만 적어도 보는 동안은 충분히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말하자면 모두가 10만원의 수입이 생기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균’이다. <나의
연애에 관한 우리의 맨 얼굴 <나의 PS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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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체포될 당시 그의 배낭에는 그가 직접 쓴 노트와 문서들이 들어 있었고, 볼리비아 정부는 사후 그의 기록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한다. 영화는 볼리비아 정부가 공개한 체 게바라의 육성 자료로 시작된다. 아내에게 안부를 묻고 시를 낭송하는 체 게바라의 생생한 육성이 울려퍼진다. 그리고 영화는 볼리비아 정부가 공개한 볼리비아 무장투쟁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노트 29권 중 그때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3권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체 게바라의 마지막 친필과 메모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구와 사색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자 했던 마음과 시와 공부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는 그의 기록들에서 그가 사상을 행동으로 옮겼으며 그 행동으로 새로운 이론적 성찰을 이끌어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혁명 운동의 종점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은 아닐까라고 질문하며 그의 행적을 따라간다.
체 게바라의 사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혁명 운동의 새로운 시작점 <체 게바라: 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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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무장강도들이 현금수송 차량을 강탈해 400만달러를 가지고 달아난다. 경찰은 시 외곽을 빠져나가는 모든 차량을 검문한다. 휴게소 앞에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일당은 가족과 함께 캠핑을 떠나던 네이트(제임스 카비젤)의 차량을 발견하고 그의 차에 있던 짐과 현금이 든 가방을 바꿔치기 한다. 일당은 검문을 당하지만 무사히 통과하고 곧바로 네이트 가족의 뒤를 쫓아간다. 네이트의 차를 발견한 일당은 속도를 높여 따라가지만 위험을 예감한 네이트도 본능적으로 속도를 높여 달아난다. 하지만 네이트는 과속으로 경찰에게 단속되고, 부동산 사기로 18개월형을 받고 나와 보호관찰을 받고 있던 네이트는 유치장에 다시 갇힌다.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에 숙소를 잡은 네이트의 부인은 그날 밤 일당들의 습격을 받지만 때마침 출동한 경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다음날 네이트는 풀려나고 가족은 다시 여행을 떠나지만 경찰의 보호에서 벗어난 그들을 일당은 계속 추적한다.
영화에서 네이트의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가족간의 불신 <트랜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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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스카우트다. 그는 선수에 대해 공개된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하기보다는 직접 경기를 관람하며 선수를 관찰하고 공이 글러브에 들어갈 때 나는 소리와 같은 자신의 직감과 선수의 자질 등 여러 조건들을 고려하여 선수를 스카우트한다. 하지만 그는 시각을 점점 잃어가고 있으며 그의 낡은 스카우트 방식은 컴퓨터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구단의 최신 부류들과 충돌하고 그의 자리도 위협받는다. 하지만 구단은 그를 믿어보기로 하고 거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선수를 뽑기 위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스카우팅 여행을 떠난다. 한편 거스의 딸 미키(에이미 애덤스)는 장래가 촉망받는 변호사로, 성사되면 승진까지 장담받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거스를 걱정하는 친구 피트(존 굿맨)가 찾아오고 미키는 고민 끝에 일을 잠시 멈추고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영화는 가족간의 소통과 화해를 다룬다. 아버지는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불통이며 6살 때부터 아버지와 떨
소중한 가치를 돌이켜보는 순간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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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프린스 앤 프린세스>(1999)와 마찬가지로, 오슬로의 다섯 번째 장편 <밤의 이야기>는 중국의 그림자 연극에 영향을 받은 ‘실루엣애니메이션’ 형태를 띤다. 컷아웃과 스톱모션 기법이 적용됐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정교해졌다. 3명의 애니메이터가 의견을 교환하면서 6편의 동화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의 패턴도 같다. 소년과 소녀가 캐릭터를 정하면, 노인이 아이들을 커튼 너머의 극장으로 보내준다. 티베트에서부터 캐리비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민담들이 수집되고 여기에는 현실의 인물뿐 아니라 전설 속의 존재들도 다수 등장한다. 많은 클리셰가 사용되지만 지루하지도 않다. 영화를 보다보면 음악과 그림, 인물의 말투가 주는 리듬감, 배경에 새겨진 이국적 그래픽에 홀려 어느덧 상영시간이 지났음을 아쉬워하게 된다.
미셸 오슬로는 메르헨의 재해석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이다. 이번에도 익숙한 소재들을 다루지만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끝까지 극에 몰입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 <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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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보다 ‘모지리’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순수영혼 네드(폴 러드)는 경찰에게 마약을 판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다. 이후 감옥에서 나와 여자친구 집을 찾아가지만 이미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고, 사랑하는 개 ‘윌리 넬슨’마저 빼앗기고 만다. 갈 곳 없는 네드는 세 자매를 찾아간다. 첫째 누나 리즈(에밀로 모티머)는 가사노동에다 무관심한 남편 때문에 삶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고, 둘째 누나 미란다(엘리자베스 뱅크스)는 혈기왕성한 기자지만 딱히 되는 일이 없으며, 막내 여동생 나탈리(주이 디샤넬)는 레즈비언이며 늘 웃는 얼굴의 박애주의자다. 그렇게 네드는 어느 순간 자매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일단 배우들의 면면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피비(리사 쿠드로)의 약혼남으로 익숙하고 <40살까지 못해본 남자>(2005), <사고친 후에>(2006) 등 주드 애파토우 사단 영화의 조연으로 간간이 모습을 비췄던, 하지만
뻔하지 않은 가족이야기 <아워 이디엇 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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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다 도모아키는 은퇴 직후 시한부 선고를 받은 60대 후반 남자다. 위암 말기로, 암세포가 다른 장기에까지 퍼진 상태라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순리. 죽음을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로 받아들인 도모아키는 세례명 받기, 손녀들과 힘껏 놀아주기, 여당이 아닌 야당에 투표하기, 장례식 예행연습하기 등 이제껏 외면했던 일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실행에 옮긴다.
<엔딩 노트>는 거창한 버킷 리스트가 아니다. 눈물로 쓴 병상일지는 더구나 아니다. 정작 죽음을 기다리는 당사자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부정하거나 불공평한 죽음에 분노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몇년은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불어넣을 때, 도모아키는 그럴 리 없다고 잘라 말한다. 비탄 끝에 도모아키가 어쩔 수 없이 체념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얼마나 더 잘 살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해야 더 잘 죽을 수 있을까를 도모아키는 이미 깨달은 상태다. “거칠게 살아온” 죗값을
죽음이 삶을 위무할 때 <엔딩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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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세월의 먼지에도 빛이 바라지 않는다. <메모리즈>가 재패니메이션의 정수이자 일본 애니메이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걸작이란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재패니메이션이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이 독특하고 경이로운 상상력의 조합은 1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 큰 놀라움과 생경함을 전한다. 3편의 옴니버스로 이루어진 <메모리즈>는 사이버펑크의 거장 오토모 가쓰히로의 지휘 아래 모리모토 고지가 스페이스 호러 오페라 <그녀의 추억>의 감독을, 오카무라 덴사이가 블랙코미디 <최취병기>를, 그리고 오토모 가쓰히로가 고풍스런 판타지 <대포도시>를 맡았다. 작화부터 장르, 분위기까지 판이하게 다른 세편의 작품은 <메모리즈>라는 틀 안에서 기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공개 당시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SF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각기 호러, 코미디 등 다른 장르
재패니메이션의 영광 <메모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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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의 성우 나동주(박하선)는 구제불능의 음치다. 애니메이션 더빙 도중 노래 실력 때문에 구박을 받던 그녀는 급기야 녹음실을 박차고 나온다. 졸지에 백수가 된 그녀 앞에 10년 동안 짝사랑해온 고교 동창 민수(최진혁)가 다시 나타나고, 얼결에 다른 동창생의 결혼식 축가를 맡게 된 동주는 이참에 민수의 애창곡을 마스터해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로 마음먹는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Dr. 목 음치클리닉’, 그곳에는 타고난 음치마저 노래경연 스타로 탈바꿈시키는 명강사 신홍(윤상현)이 있다. 동주는 추레한 외모에 불쾌한 냄새마저 풍기는 신홍이 영 마뜩잖다.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거리던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강도 높은 속성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음치클리닉>은 <청담보살> <위험한 상견례>를 만들었던 김진영 감독의 새 작품이다. 친근한 소재를 코믹한 에피소드로 풀어내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 역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웃음기
음치의 짝사랑 <음치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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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말한다. 80년 5월의 광주. 억울하게 죽은 수천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살해를 지시한 사람은 여전히 사죄하지 않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26년>이 염원하는 관객은 바로 그때의 기억을 듣고 들었던 지루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때의 광주를 이야기한 영화, 드라마, 소설들 가운데 실제적인 ‘복수’를 거론한 작품은 없었다. 강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26년>은 아직도 남아 있는 상처에 대한 위로가 아닌, 점점 커져가는 분노의 폭발에 관한 영화다. 실제의 그 사람이 아직도 건재한 현실에서 그를 향한 복수극은 지루할 수 없을 것이다.
<26년>은 파스텔 톤의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이 만든 이 애니메이션은 훗날 복수에 가담할 인물들의 비극적인 사연을 소개한다. 미진(한혜진)의 엄마는 딸의 이름을 짓다 창문을
‘그 사람’을 향한 복수극 <2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