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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에서 일하는 대호(김상경)와 윤희(손예진)는 첫 번째 입주자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크리스마스를 맘껏 즐기지 못하는 건 소방대장 영기(설경구)도 마찬가지다. 화재 사고 때문에 그는 결혼 뒤 크리스마스를 아내와 함께 보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들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는 이들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7광구>에 이은 김지훈 감독의 신작 <타워>는 108층 규모의 초고층 빌딩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사고를 소재로 삼은 재난영화다. “63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는 <타워>는 <해운대>의 쓰나미가 그러했듯이 우리가 익히 떠올릴 수 있는 공간들을 파괴함으로써 공포를 배가한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대신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현실로 받아든 사람들이 탈출구 없는 미궁 속에 던져져 아비규환의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비교적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매끄러운 컴퓨터그래픽과
크리스마스의 악몽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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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보다 머리가 앞서는 관계의 주변엔 늘 불행이 맴돌고 있다. 마음의 변화가 사람을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궁중 로맨스가 종종 ‘치정극’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래서다. 정략적으로 시작된 사랑없는 결혼 생활, 마음에 없는 예의범절로 가득한 그곳에서 공허한 마음의 주인공들은 종종 일탈을 꿈꾸고, 그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 된다. 덴마크영화 <로얄 어페어> 또한 궁중 치정극의 서사 구조를 따른다. 덴마크의 왕비로 간택된 영국 출신의 앳된 소녀 캐롤라인(알리시아 비칸데르)은 크리스티안 7세(미켈보에 폴스라르)와의 달콤한 로맨스를 꿈꾸며 북유럽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매력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자다. 아내를 외면하고 밖으로만 나도는 왕에 지친 캐롤라인이 웃음을 잃어갈 무렵, 왕의 주치의로 궁에 들어온 의사이자 계몽주의자 요한 스트루엔시(매즈 미켈슨)가 그녀앞에 나타난다. 마음 둘 곳 없던 캐롤라인은 그녀에게 루소와
덴마크 왕가의 기묘한 삼각관계 <로얄 어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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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되는데 꼭 로맨스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그만 여관에서 야간당번으로 일하고 있는 돔(도미니크 아벨)에게 어느 날 저녁 피오나(피오나 고든)라는 낯선 여인이 찾아온다. 맨발에다 차림새도 엉망인 여인은 여관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자신이 요정이며, 돔의 소원을 세 가지 들어주겠노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희한한 방식으로 ‘들이대는’ 피오나를 본체만체하는 돔이지만, 다음날 아침 그토록 원하던 파란 스쿠터가 여관 현관에 놓여 있는 것을 보자 약간은 허술하고 멍한 이 남자는 정말로 그녀가 ‘요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녀는 곧장, 사랑에 빠진다.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희비극 스타일에 무용과 마임을 곁들인 기묘한 연기방식으로 주목을 받아왔던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브루노 로미 트리오가 2011년작 <페어리>로 다시 뭉쳤다. 전작 <빙산>(2005)과 <룸바>(2008)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인정받은 이들은 프랑스 코미디영화
소박한 진솔함 <페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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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5: 가문의 귀환>(이하 <가문의 귀환>)은 <가문의 영광>의 주역 쓰리J 가문의 10년 뒤 이야기를 그렸다. 교통사고로 막내딸 인경을 잃은 쓰리J 가문은 조직폭력배 생활을 청산하고 장삼건설을 차린다. 하지만 장남 인태(유동근) 대신 사위 대서(정준호)가 사장 자리를 꿰찬 데 불만을 품은 인태, 석태(성동일), 경태(박상욱) 삼형제는 대서가 회사의 주식을 사모은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서로부터 회사를 지키기 위한 모략을 꾸민다. 한편 대서는 무료급식 봉사를 하다가 만난 복지재단의 간사 효정(김민정)과 사랑의 감정을 키우기 시작한다.
<가문의 귀환>의 가장 큰 관건은 이 작품이 얼마나 새로운 웃음을 줄 수 있느냐이다. 속편을 4편이나 만든 코미디 프랜차이즈물이 겪어야 할 당연한 고비다. <가문의 위기> <가문의 부활> <가문의 수난>이 백호파라는 새로운 조직폭력배 가문을 내세워 웃음에 대한 돌파구를
쓰리J 가문의 10년 뒤 <가문의 영광5: 가문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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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열풍’은 애니메이션계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는 오락실에 줄지어 있던 8비트 게임기 앞에서 ‘insert coin’이라는 반짝이는 문구에 매혹당해본 적 있는 사람들에겐 (역시나)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다고쳐 펠릭스> 게임의 악당으로 등장하는 랄프는 게임 탄생 30주년 기념 파티에서 게임 속 캐릭터들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나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랄프는 이제 자신도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영웅’이 되리라 결심하고 자신이 속한 게임을 빠져나와 <슈가 러시>라는 레이싱 게임의 세계로 뛰어든다. 한편 랄프가 떠나는 바람에 <다고쳐 펠릭스> 게임이 폐기처분될 위기에 놓이자 게임의 주인공 펠릭스는 랄프를 데려오기 위해 <슈가 러시>를 찾아온다. 랄프는 <슈가 러시>에서 소녀 바넬로피를 만나고, 이들의 정신없는 모험이 펼쳐진다.
오락실의 8비트 게임기 <주먹왕 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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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발레계의 모차르트’란 별명을 얻은 발란신은 자신이 안무한 <호두까기 인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이야기는 매우 쉬운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라고. 그의 분석은 맞아떨어졌다. 러시아 초연에 실패한 공연은 그의 안무를 통해서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영화 <호두까기 인형 3D> 역시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호프만 원작의 <호두까기 인형과 쥐의 왕>(1816)을 비롯해 알렉상드르 뒤마의 플롯에서 이야기는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원작에 비해 이야기의 초반 전개에 공을 들이지 않은 탓에 영화의 집중도가 떨어진다. 예컨대 호두까기 인형의 턱이 부러지는 사건과 쥐마왕의 존재에 대한 언급이 원작보다 임팩트가 낮다. 대신 영화는 쥐마왕과의 결투장면을 보강하는 식으로 나름의 강약조절을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열아홉살의 메리(엘르 패닝)와 남동생 맥스는 부모 없이 성탄절 장식으로 치장된 집에 덩그러니 남아
인형왕국 여행 <호두까기 인형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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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의 이야기는 시작부를 제외한 거의 모두가 한 아파트 안에서 진행된다. 은퇴한 음악교수 안느(에마뉘엘 리바)와 조르주(장 루이 트랭티냥)는 이제 80대의 노부부가 되었는데, 그에 걸맞게 느리지만 우아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중 안느에게 갑자기 마비증세가 생기면서 부부의 삶은 흔들린다. 수술 뒤 반신불수가 된 안느를 조르주는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그 역시 위태로워 보이긴 마찬가지다. <하얀리본>으로 200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마하엘 하네케의 신작으로, 이번 영화 역시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를 낚아채며 ‘2012년 하반기의 최고 기대작’으로 언급되었던 작품이다. 역시 명불허전이다. 하네케 특유의 잔혹성을 제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과 냉철함을 무기로 관객을 장악한다. 감독은 자신과 30년간 함께한 아내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설명하는데, 사랑의 정서뿐 아니라 특유의 우아함이 영화에 배어 있다.
한마디로 <
사랑과 죽음을 뛰어넘는 <아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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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강일(고수)은 3년 전 아내의 죽음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강일이 다른 사람을 구조하던 도중 만삭이던 강일의 아내는 비명 속에 죽어갔다. 시간이 흘렀지만 강일의 죄책감은 조금도 줄지 않는다. 흉부외과 의사인 미수(한효주)는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돌려보냈다가 의료사고에 휘말린다. 미수는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병원에서 환자의 남편이 휘두른 칼에 맞은 강일에게 맞고소를 제안한다. 그러나 강일은 미수를 양아치 취급하고 돌아선다. 어떻게든 강일의 마음을 되돌려야 하는 미수는 급기야 강일이 일하는 119 구조대 의용대원으로 지원한다.
전반부는 영락없는 로맨틱코미디다. 미수가 벌이는 갖가지 소동들은 <엽기적인 그녀>의 만행 못지않다. 미수는 강일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교 위 난간에 올라 자살 시위를 벌이고, 술에 취해 경찰서에서 난입(?)해 주먹까지 휘두른다. 헤헤거리면서 연일 사고치는 미수와 뒤얽히면서 강일은 냉동고에 갇혀 목숨을
익숙한 이야기 속의 떨림 <반창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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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은 한 세기 동안 수십 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옮겨졌다. 비교적 최근 버전으로는 리암 니슨이 장발장으로 분한 빌 어거스트 감독의 영화(1998)와 제라르 드파르디외, 존 말코비치가 출연한 TV드라마(2000)가 있고, 클로드 를르슈 감독의 1995년 버전처럼 원작의 설정을 새로운 이야기에 덧댄 영화도 있었다. 여러 각색물 중에서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아마도 뮤지컬 버전일 것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지난 30여년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인기몰이를 해왔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레미제라블>은 이 뮤지컬을 다시 한번 영화적 형식으로 재연한 작품이다. 1985년 런던 초연 이후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지휘해온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와 워킹타이틀사, <킹스 스피치>의 톰 후퍼 감독이 의기투합했고, 그 결과 거의 전 대사가 노래로 된 실제 공연 형식을 고스란히 살린 작품이 만들어졌다.
약동하는 민중의 에너지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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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놈을 때리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불량배 은혁(백성현)은 또래의 패거리들과 어울려 다니며 길남(김주영)을 비롯한 다른 조선족 청년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박질을 벌인다. 그러던 어느 날 은혁은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온 길남의 소꿉친구 칭칭(정주연)을 곤경에서 구해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둘 사이에는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채업을 하는 폭력배 윤식(박재훈)과 조선족 사회를 돌보는 위강(전창걸)의 이권다툼으로 조선족과 주민들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그 와중에 길남의 아버지와 은혁의 친구 상구(최상학)가 말려들면서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진다.
<차이나 블루>는 욕심이 많은 영화다.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는 조선족 이주민들과의 갈등을 은혁, 길남, 칭칭 세 청춘남녀의 일화로 그려내면서 동시에 사채업과 연예인 기획사,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의 앙금 등 당대의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건드린다. 하나 이러한 여러 갈래
욕심이 많은 영화 <차이나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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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영화에서 ‘나치강제수용소’가 등장하는 순간, 거의 어김없이 함께 불려오는 것은 아마도 ‘기억’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경험이 기억으로 바뀔 때, 영화는 자연스럽게 플래시백 구조로 현재와 과거를 병치하는 방식을 선택하곤 한다. 안나 저스티스의 영화 <리멤버> 역시 이러한 맥락에 놓인 영화라 할 수 있다.
1944년 폴란드의 나치수용소, 강제 수감된 폴란드인 토마스(마테츠 다미에키)와 독일 출신 유대인 한나(앨리스 드바이어)는 사랑에 빠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한 이들은 수용소를 벗어나는 데는 성공하지만 주변 상황은 나빠져만 가고 결국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헤어진다. 30년 뒤, 아픈 기억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던 한나는 우연히 토마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토마스의 사진을 꺼내보며 과거의 일들을 떠올린다. 영화는 1944년(과거)과 1976년(현재)을 오가며 한나의 기억들을 차례로 불러오고, 그 과정에서 점점 더
그녀의 잃어버린 시간 <리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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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감독에게, 그 세계관을 이어갈 새로운 시리즈의 유혹은 엄청난 것이다. 무려 30여년 동안 <스타워즈>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조지 루카스를 생각해보라! 이러한 유혹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2000년대 초반 지상 최대의 판타지영화를 만들어냈던 피터 잭슨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건 <호빗> 3부작 중 시리즈의 포문을 여는 첫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이하 <뜻밖의 여정>)을 보건대 피터 잭슨이 안일한 마음으로 중간계에 복귀한 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맞먹는 환상적인 프로덕션, 블록버스터영화의 최전방에 위치한 신기술로 무장한 <뜻밖의 여정>은 2시간50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
<호빗>의 1부는 <반지의 제왕>으로부터 60여년 전의 중간계를 조명한다. <
60여년 전의 중간계를 조명하다 <호빗: 뜻밖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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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전작인 <카모메 식당>은 덩치 큰 핀란드의 갈매기를 보고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키웠던 고양이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고양이는 뚱뚱한 데다 싸움질만 하고 다녀서 모두가 싫어하지만 주인공한테만 유독 호의를 보인다. 고양이를 너무 좋아한 주인공은 어머니한테 알리지도 않고 먹이를 많이 줘 고양이는 죽는다. 그리고 1년 뒤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린다. 주인공은 이제 낯선 핀란드에서 그 고양이를 닮은 갈매기(카모메)를 이름으로 한 식당을 열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듯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외로움 속에 서로서로 친구가 되어주고 정을 준 그 고양이를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서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직접 대여한다. 그 사람들은 하나씩 다 구멍을 갖고 있으며 갇혀 있다. 죽음을 앞두고 집에 갇혀 있는 할머니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방에서 일하는 아버지, 직장에 하루 종일 갇혀 있는 여직원이 그들이다. 고양이를 빌려주는 사요코(이치카와 미카코)도 할머니가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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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꿈꾸는 엠마(앤 해서웨이)는 대학 졸업 파티날, 자신이 짝사랑하는 덱스터(짐 스터지스)와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부잣집에서 태어나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덱스터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한 노력을 쌓아가는 엠마의 너무 다른 삶의 양상은 이들의 사랑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다. 때문에 엠마와 덱스터의 애틋한 마음은 좀처럼 서로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안타까운 시간들만 차곡차곡 흘러간다.
대부분의 멜로영화들이 이런 엇갈림의 시간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결정적인 (하지만 어딘가 억지스러운) 사건을 배치한다면, <원 데이>는 20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기다리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엠마와 덱스터가 처음으로 함께 보낸 1988년 7월15일을 시작으로 매해 기념일을 셈하기라도 하듯 달력을 넘겨가며 이들의 삶을 그저 지켜본다. 그러고보니 (20년 동안) 7월15일 성 스위딘 데이, ‘하루’(원 데이)들을 지켜보는 이 영화는 2월
긴 시간을 가로지르는 여러 번의 하루 <원 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