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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사랑의 밀어 따위는 없다. 머리끄덩이 잡기는 예삿일. “너 같은 미친X는 정말 처음”이라는 발사에 “이런 개 같은 XX가”라는 폭격으로 받아치는 식이다. 연애 초기의 설렘과 흥분이 가라앉은 오래된 커플에겐, 식어버린 온도에 딱 맞는 ‘생활형 연애’가 남아 있을 뿐이다. <연애의 온도>는 3년째 비밀연애를 해온 직장동료 동희(이민기)와 영(김민희)의 결별 스토리다. ‘헤어져’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마이클 더글러스, 캐서린 터너가 죽자고 부부싸움을 하던 <장미의 전쟁>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메가톤급 치졸한 공방전이다. 선물했던 노트북은 부서져서 되돌아오고, 호의로 줬던 돈은 모두 빚으로 셈해지는 살풍경의 현장에서 사랑은 지긋지긋한 현실이 된다.
사랑에 빠지는 건 3초의 찰나로도 가능하다지만, 그 사랑에서 벗어나는 데는 그 몇백 곱절의 노력이 필요한 게 연애다. <연애의 온도>는 지극히 사실적인 상황과 구어체
야단법석 결별 스토리 <연애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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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히 짚고 가자. <부러진 화살>이 공개되기 전까지 정지영 감독은 과거에 머물렀다. <남부군>의 명성과 거장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유효했지만, 현재진행형 감독의 수식을 붙이긴 어려웠다. <부러진 화살>이 거둔 평단과 흥행의 성공 이후, 연이은 <남영동1985>의 문제제기로 정지영 감독은 궤도를 되찾았다. 정지영 감독의 부활은 그 개인의 성공에 그치지 않았고, 한국 영화사에 뜨겁고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한국 영화산업 최고의 전성기에 중견감독의 활동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지영 감독을 비롯해 같은 연배의 이두용, 이장호, 고(故) 박철수 감독이 뭉쳐 만든 네편의 옴니버스 단편영화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은 그 질문에 대한 우회적인 답변의 영화다. 정지영 감독의 시장에서의 입지가 고무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영화를 네 감독은 대규모 자본의 도움 없이 감독으로서의 노련한 연출력과 현재의 고민을 접목해 완성했다.
이
한국 영화사에 바치는 질문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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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9일 안타까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 박철수 감독의 유작 <생생활활>은 <녹색의자>(2003) 이후 저예산 디지털영화로 맥을 이어온, 성(性)과 영화의 엄숙주의로부터 탈피를 주장했던 박철수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현대판 <데카메론>’이라는 카피답게 100여분의 상영시간 동안 자그마치 스무개의 에피소드를 선보이는 이 영화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간호사 이야기, 성매매 방지 특별법에 대한 토론, 페티시 산업 종사자와의 인터뷰, 성에 대한 학제간 논의 등을 통해 오늘날 성에 관련된 고정관념과 제도들이 어떻게 비틀리고 억압된 성의식을 창출하는지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망한다.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에 출연했던 오인혜가 배역을 바꿔가며 때로는 감독의 시선에서, 때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선에서 이 천태만상의 이야기 속을 유람한다.
<생생활활>은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어떠한 구심점이나 일관된 맥락 없이 자유분방하게 연결
‘현대판 <데카메론>’ <생생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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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감독이 관객에게 뉴욕을 꿈꾸게 만들었다면 오멸 감독은 보는 이가 제주를 앓게 만든다. 그의 제주는 늘 ‘웃프다’. 인물이 처한 상황의 비루함은 여유로운 삶의 리듬과 유머로 전도되고 그 누구도 일방적인 동정을 갈구하지 않는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제주 4.3 사건을 ‘제사’(祭祀) 형식을 빌려 스크린 위로 소환한다. 작품은 ‘신위-신묘-음복-소지’라는 소제목으로 분절된다. 하지만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살고 싶었는가’이다. 감자의 제주 사투리인 ‘지슬’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숨죽이며, 달리고, 항거하고, 배반하면서까지 살아남고 싶었던 이들의 삶에 대한 열망을 응축하고 있는 상징물이다. 그들은 집을 떠나 캄캄한 동굴에 숨어서, 죽은 어미의 품에서 꺼내온 지슬을 먹는다. 그리고 삶의 고통이 무색하게 지슬은 늘 달다.
감독은 희생자의 범주를 제주도민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권력의 틈바구니에
삶에 대한 열망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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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케(오마 사이)는 심장에 문제가 생겼고, 지아니(가드 엘마레)는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베르다(조이 스타르)는 상대팀 선수를 폭행해 수감 중이고, 레앙드리(프랑크 두보슥)는 실축의 트라우마를 못 이겨 삼류 배우가 되었으며, 마약과 유흥에 찌든 마란델라(람지 베디아)는 방탕한 생활을 그만두지 못한다.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이들은 축구팀 ‘FC몰렌’의 대표선수들이다. 이 구제불능의 팀을 이끄는 감독, 오베라(호세 가르시아)도 만만치 않은 말썽꾼이다. 한때 국가대표로 잘나갔던 오베라지만 지금은 알코올 중독과 가난으로 점철된 시궁창 인생이다. 딸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 FC몰렌의 감독이 된 오베라는 구단주가 주는 압박 속에서 팀을 재정비하고 프랑스컵 대회에 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자벨 위페르, 마리온 코티아르, 르네 젤위거, 니콜 키드먼 등 쟁쟁한 여배우들과 작업하며 우아한 연출을 특기로 삼아온 올리비에 다한 감독의 이력을 상기하면 <드림팀>은 다소 낯설고, 귀여워
구제불능 축구팀 <드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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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역사 놀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통해 나치군에 피의 복수를 함으로써 유럽 역사를 재구성한 타란티노가 미국 노예제 역사에 메스를 들이댄 <장고: 분노의 추적자>(이하 <장고>)를 내놓았다. 영화명을 빌려온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1966년작 <장고>처럼 흑인 노예 장고(제이미 폭스)가 주인공이긴 한데, 이 노예가 쇠고랑을 벗는 건 한순간이다. 장고는 착한 사마리아인 같은 독일인 현금사냥꾼 닥터 킹(크리스토프 왈츠)의 도움을 받아 금세 멋진 말을 타고 미국 평원을 달리며 헤어진 아내 브룸힐다를 찾아다니는 총잡이 낭만주의자로 변신한다. 말하자면 얼굴색만 다를 뿐 영락없는 미국 서부극의 주인공이다. 그는 브룸힐다가 미시시피에서 가장 악독한 농장 캔디랜드의 노예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농장주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찾아간다.
“(<장고>는)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지옥의 불구덩
총잡이 낭만주의자 <장고: 분노의 추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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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국가는 인간을 보호하는 울타리인 동시에 억압하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기에 더 폭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바바라>는 국가와 체제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때 생기는 부조리에 초점을 맞추며 냉전시대 동독에서의 삶을 재현한다. 출국신청서를 냈다는 이유로 베를린에서 시골의 작은 병원으로 좌천당한 바바라(니나 호스)는 감시와 통제의 눈길 속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잠깐의 외출의 대가로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탐문과 알몸 수색을 받아야 한다. 서독에 있는 애인이 출장 올 때마다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 속에서 잠시밖에 볼 수 없다. 그녀에게 지금 여기의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며 여기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을 위해 잠시 유보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이곳을 탈출하여 연인과 새 삶을 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삶으로 출발하기 직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 영
냉전시대 동독에서의 삶 <바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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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만을 위해 모든 걸 던지는 비련의 여인. 영국 로맨틱코미디의 명가 워킹타이틀의 여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19세기 러시아 상류계층의 여인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캐스팅부터 상영 언어, 로케이션까지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의 조 라이트가 <안나 카레니나>의 연출을 맡으며 직면했던 문제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제작비 3천만파운드를 두고 러시아에 촬영지를 예약했다 취소하기를 여러 번, 결국 조 라이트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촬영을 세달 앞두고 <안나 카레니나>의 주요 배경을 극장으로 바꾼 것이다(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은 런던 근교의 셰퍼튼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하지만 조 라이트의 이 대담한 시도는 <안나 카레니나>의 영화화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보는 이가 되새겨볼 새도 없이 숨가쁘게 무대의 막이 오르고 내리며,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사회 <안나 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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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호스트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생글생글 웃으며 반기는 꽃미남들의 경쾌한 인사를 그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마는 단 한명, 하루히만은 예외다. 후지오카 하루히(가와구치 하루나)는 호화스러운 오란고교에서 유일한 서민 학생이다. 조용히 공부할 곳을 찾던 하루히는 실수로 호스트부의 값비싼 화병을 깨고, 화병 값을 변상하는 대신 여자임을 감추는 조건으로 호스트부에 입부한다. 한편 학교 축제인 오란제에서 우승해 중앙홀 사용권을 얻고 싶은 호스트부는 경기 연습에 매진한다. 그즈음 단기 유학생으로 미셸(시노다 마리코)이 전학을 오는데, 미셸의 등장으로 호스트부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돈다.
8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하토리 비스코의 인기 원작 만화 <오란고교 호스트부>가 TV애니메이션, 시뮬레이션 게임, 드라마에 이어 극장판으로도 제작됐다. 작품의 분위기나 출연진은 드라마와 대부분 같다. 대신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원작 만화의 에피소드를 주된 이야기로
거부할 수 없는 꽃미남들 <오란고교 호스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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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초호화 출연진이다. <블레이드 러너> 등에서 쌓아올린 명성을 내던지고 싸구려 영화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낮은 곳으로 임하셨던 명배우 룻거 하우어. <저수지의 개들> 이후 체중 증가와 비례하는 속도로 ‘미국 B급 액션의 큰형님’에 등극한 마이클 매드슨. 한때 지상 최강의 영장류라 불리며 이종격투기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거기에 열정과 의리의 대한민국 원조 상남자 김보성까지.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은 ‘장난 아닌’ 캐스팅만으로도 B급 액션영화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작품이다.
거대 제약회사 사장 헌트(룻거 하우어)는 불로장생의 신약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인간의 자살충동을 자극하는 바이러스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그는 무자비한 용병 릭(마이클 매드슨)을 사주하여 이 사실을 은폐하고 기일에 맞춰 신약 출시를 강행한다. 이를 눈치챈 한국 국정원 요원 장현우(김보성)와 러시아 특수부대팀들은 헌트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제
‘B급의 맛’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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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세 번째 오스카를 손에 쥐었다. 미합중국이 표방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전쟁을 불사하며 쟁취해낸 링컨(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숭고함과 인간적 향기를 완벽하게 형상화해낸 그에게 아카데미가 경의를 표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노예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정헌법 제13조를 의회에 통과시키기 위해 분투했던 링컨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그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종전과 흑인 해방 중 무엇이 우선인가라는 딜레마에 처하고 정의 실현을 위한 전쟁에 참전하려는 아들을 따귀를 때려가며 제지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특히 대통령이자 한 가족의 가장이었던 링컨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으로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식을 잃은 아내의 슬픔에 공감할 여유조차 없었던 링컨. 하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옛말을 증명하듯 엄청난 균형감각으로 가정과 국가를 모두 평온하게
대통령이자 한 가족의 가장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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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하현관)은 동래역에서 철도건널목 지킴이 일을 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수동. 매일 반복되는 일터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은 작고 쓸쓸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동래역에 노숙자 미스 진(진선미)과 꼬맹이(박나경), 그리고 또 다른 노숙자 동진(최웅)이 찾아온다. 미스 진은 넉살 좋게 무료 급식을 엄청나게 퍼가기도 하고 역내의 TV를 자기 집의 TV처럼 채널을 돌려 보기도 하고 역내에서 꼬맹이랑 체조까지 한다. 미스 진의 입담과 행동으로 굳어 있던 수동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그들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마음도 열고 서로의 일을 걱정하고 베풀기 시작한다.
영화는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이 노숙자가 된 이유를 묻거나 그들을 노숙자로 만든 구조적인 원인을 파헤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힘겹게 사는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따뜻함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본다. 그렇다고 감정을 과잉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그들의 삶
잠시 머물다 떠나다 <미스진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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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박사이자 디트로이트의 형사인 알렉스 크로스(타일러 페리)는 유능한 팀장이자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다. 부인은 셋째 아이를 임신했으며, FBI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은 상태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집안에서 4명이 죽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알렉스는 현장에서 다음 살인을 예고하는 그림 한장을 발견한다. 살해당한 사람은 한 기업의 간부. 알렉스는 살인범(매튜 폭스)의 최종 목표가 대부호이자 그 기업의 회장인 메르시에(장 르노)임을 직감하고 친구이자 동료인 케인(에드워드 번스)과 함께 살인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던 중 부상을 입은 살인범이 알렉스의 부인까지 살해한다. 분노가 극에 달한 알렉스는 케인과 함께 살인범을 잡기 위해 법의 테두리까지 넘어선다.
영화는 제임스 패터슨의 베스트셀러인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 중 16번째 작품인 <나, 알렉스 크로스>(I, Alex Cross)를 영화화했다.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는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키스 더 걸
심리학 박사와 살인범의 대결 <알렉스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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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동화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세월에 빛바래지 않고, 끊임없이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의외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결말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동화가 가진 힘이다. 할리우드가 동화에 매혹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기실 많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 최근 할리우드에서 연달아 제작되는 동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에는 그 빈칸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자리한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도 마찬가지다.
도로시가 아직 오즈에 도착하기 훨씬 전의 이야기.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실상은 하찮은 마술사에 불과한 오즈(제임스 프랭코)는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바람둥이다. 어느 날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마법의 땅 오즈에 도착한 그는 황금에 눈이 멀어 자신이 이 땅을 구원할 예언자라고 믿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 그 와중에도 나쁜 마녀의 음모는 차근차근 진행된다. 그
도로시가 오즈에 도착하기 전의 이야기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