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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모든 사람이 알 만큼 널리 알려져야 하되 핵심적인 정보와 내용은 감춰져야 한다. 1951년 발표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 D. 샐린저는 여기 딱 부합하는 인물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전세계 누적판매부수 7천만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일 뿐 아니라 발표 당시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은둔자로 알려진 샐린저는 자신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철저히 차단해 스스로 미스터리가 되었다. <샐린저>는 그런 J. D. 샐린저의 행적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할리우드의 인정받는 시나리오작가이기도 한 셰인 샐러노 감독은 2003년부터 샐린저의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기 시작했으며 무려 10년 만에 샐린저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했다.
<샐린저>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탄생 과정과 작가 샐린저의 일상생활 등을 찬찬히 따라간다. 샐린저의 사연 자체가 그의 소설처럼 놀랍다기보다
<샐린저> 샐린저의 사진과 영상, 법적 문서 등이 최초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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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로 잘 알려진 존 요제프 라칭거(앤서니 홉킨스)와 그의 뒤를 이어 교황 프란치스코가 되는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조너선 프라이스)의 일련의 만남을 극화한 작품이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죽음으로 가톨릭 추기경들은 콘클라베(교황을 선출하는 선거를 지칭하는 말)를 위해 바티칸으로 모인다. 세번의 투표 끝에 보수적인 입장에서 가톨릭 신앙을 추구하는 강경파 라칭거가 교황 직위를 얻게 된다. 하지만 재임 기간 중 성직자들이 재단 소년들을 괴롭히고 바티칸의 기밀 유서가 유출되는 등 전무후무한 교회 스캔들에 휩싸인 라칭거는 자진해서 교황직을 내려놓고자 한다. 비슷한 시기, 스스로가 가진 마음의 짐 때문에 추기경직을 사퇴하려는 베르고글리오가 라칭거를 찾는다.
<두 교황>은 ‘두 교황’을 연기한 유능한 두 배우, 앤서니 홉킨스와 조너선 프라이스를 공들여 조명한다. 또한 흑백과 컬러, 다양한 화면비를 가진 이미지와 영상을 교차하며 영화의 리듬감을 형
<두 교황> 차이와 신념을 둘러싼 중심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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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04년 2월 25일. 영국 정부통신본부(GCHQ) 소속 캐서린 건(키라 나이틀리)은 공무상 비밀엄수법을 어긴 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선다. 그가 누설한 기밀 내용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이라크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영국 정보부에 불법적 요구를 했다는 것.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묻는 판사의 음성을 뒤로하고 <오피셜 시크릿>은 캐서린이 그 기밀을 처음 맞닥뜨린 1년 전으로 돌아가 사건의 전말을 좇는다. 플래시백이 시작되고 캐서린이 고민 끝에 반전운동 중인 친구에게 기밀을 전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대신 실제 역사에 기반한 이 영화는 개인의 신념에 따른 결단이 또 다른 개인들의 의지에 힘입어 국가권력에 일격을 가하기까지의 과정에 집중한다. 철저한 사실 확인 끝에 캐서린의 메모를 기사화하는 마틴(맷 스미스)과 냉철한 시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캐서린의 변호인 벤(레이프 파인스)이 각각 전반부, 후반부의 조력자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캐서린의 행동에
<오피셜 시크릿> 담백하게 사건의 진행을 따라가는 연출이 미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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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김인권)과 연경(이나라)은 결혼 10년차 부부다. “너무 안 하고” 사는 것 같아서 사랑도 날짜를 정하고 나누는 이들의 관계에는 의무감만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경이 큐레이터로 일하는 갤러리에 영욱의 직장 상사 민식(서태화)이 찾아오며 권태롭던 부부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연경은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민식이 싫지 않지만,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설렌다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한편 영욱은 직장에서 친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인의 아내와 동침한다. 부부관계는 영욱이 지방에서 일하게 되면서 더욱 위태로워진다. 민식은 영욱의 부재에 더욱 적극적으로 연경에게 접근하고, 영욱에겐 “인간은 모두 정사 본능이 있다”고 말하는 후배 재순(이서이)이 다가온다.
<아직 사랑하고 있습니까?>는 권태기에 빠진 부부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질문하는 과정을 좇는 섹스 코미디물이다. 제목처럼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한 자
<아직 사랑하고 있습니까?> 권태기에 빠진 부부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질문하는 과정을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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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부대 근처에 위치해 달러가 지배하던 과거의 이태원에서부터 미군 감축과 기지 이전의 움직임으로 쇠퇴하던 2000년대 초반의 이태원, 상권이 호황을 이루며 서울에서 가장 핫한 공간이 된 현재의 이태원까지. <이태원>은 1970년대부터 이태원에서 살아온 삼숙, 나키, 영화라는 세 여성의 일생을 좇으며, 변해버린 공간 ‘이태원’을 기억한다. 삼숙은 40여년 전 면세 클럽 그랜드올아프리를 사들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 시간이 허무하다고 말한다. 나키는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 후 미군 클럽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이태원에 터를 잡았다. 미군과 결혼했던 영화는 미국에서 1년 만에 돌아와 조카를 돌보고 있는데, 아이의 학교 문제로 이태원을 떠날 수 없다. 세 사람의 사적인 기억은 개인의 사유인 동시에 이태원이라는 고유한 공간의 역사가 된다. 짙은 한숨, 멍한 표정, 끊어진 말 사이의 공백 등 침묵의 순간들마저 세심하게 포착하며 이들의 삶의 궤적을 묵묵히 응시하는 카메라는 한
<이태원> 변해버린 공간 ‘이태원’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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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에밀리아 클라크)의 본명은 카타리나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 언니(에마 톰슨)와 함께 전쟁 중이던 유고슬라비아를 탈출해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케이트로 개명했다. 가족은 여전히 그를 카타리나라고 부르지만 케이트는 그런 가족이 지긋지긋하다. 달랑 캐리어 하나 들고 집을 나와, 산타(양자경)가 운영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용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 집을 전전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 그의 유일한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지만 오디션에서 번번이 낙방해 좌절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마땅한 탈출구 없이 방황하고 사고만 치던 그는 노숙자 센터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남자 톰(헨리 골딩)을 우연히 만난다. 그 날 이후 톰은 예고도 없이 케이트 앞에 나타나 런던 시내 어딘가로 이끌고, 케이트는 그런 톰에게 점점 끌린다.
심장수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에 지칠 대로 지친 케이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톰은 산타 할아버지가 준 선물 같은
<라스트 크리스마스> 두 남녀의 만남을 통해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을 그린 로맨스물이자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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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영화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 공개 당시 호평 일색의 반응을 자아낸 <나이브스 아웃>은 영리한 각본과 공들인 미장센이 각축전을 벌이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충직한 후계자를 자처하는 라이언 존슨 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종종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추리 장르 팬들에게 즐거운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사건은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인 작가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이 자신의 85살 생일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시작된다. 외딴 저택에 모인 할란의 간병인과 자식 내외, 그리고 3세들은 유산 상속을 놓고 대거 혼란에 빠지는데, 이들 사이를 탐정 브누아 블랑(대니얼 크레이그)이 헤집고 다니면서 각자의 살해 동기와 알리바이를 겨눈다. 초상화, 벽난로, 골동품이 가득한 화려한 고딕풍 저택에 갇힌 여러 명의 용의자들. 유머와 패션 센스를 갖춘 언변능숙형의 주인공 탐정까지. 이보다 더 고전적인 살인 미스터리의 세팅이 또 있을까. 영화는 이
<나이브스 아웃> 이보다 더 고전적인 살인 미스터리의 세팅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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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소설을 쓰는 소년과 누구도 찾지 않는 곳에서 피아노를 치는 소녀가 만난다. 단숨에 마음을 나누고 연인이 된 라파엘(프랑수아 시빌)과 올리비아(조세핀 자피)는 정식으로 책을 출판하고, 무대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어른이 되기까지 10년을 함께한다. 하지만 라파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과 달리 피아니스트로서 올리비아의 성과가 차차 미미해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도 균열이 생긴다. 서로의 변심을 탓하며 다툰 다음날,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여느 때처럼 유명 작가의 일정을 소화하고자 친구이자 비서인 펠릭스(벤자민 라베른)를 만나 중학교 강연장과 출판사 회의실을 찾은 라파엘은 어제까지의 자신이 어디에도 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인기 시리즈 소설가가 아닌 중학교 문학 교사로서의 삶을 사는 평행세계에 온 것이다. 달라진 직업을 확인한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 또한 남이 된 것을 알고 절망한다. 게다가 평행세계에서 올리비아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환영받는 스타 피아니스트가 되
<러브 앳> 꿈과 사랑을 되찾고자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프렌치 로맨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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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 나쁜 친구여도 좋은 배우인 편이 나아.” 언제나 직업적 정체성이 최우선이었던 엄마 파비안느(카트린 드뇌브)와 자란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는 세월이 흐른 후 엄마를 질책해보지만 파비안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심지어 파비안느가 출간을 앞두고 있는 회고록에선 그녀가 다정한 엄마로 묘사돼 있어 울화가 치민다. 대배우 파비안느와 이기적인 엄마에게 받은 상처로부터 회복되지 못해 여전히 고투하는 뤼미르. 오랜만에 재회한 두 여자의 동거는 해소되지 않은 과거의 잔해들이 삶에 불쑥 비수로 꽂히는 광경을 비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주의를 기울이는 가족의 화두는 프랑스로, 그리고 연예계로 옮겨간 뒤에도 내밀하고 유효하다. 영화의 존재를 빌려 진실의 정의를 질문하고, 예술가의 재능과 생활인의 미덕이 이율배반을 이루는 흥미로운 지점을 탐구한다. 감독 최초의 외국어영화인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그래서 어쩌면 현재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자신과 가장 맞닿은 주제에 약간의 거리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우리 시대에 더이상 존재하기 힘든 예술·예술가의 의미를 되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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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솔로 9888일째. 휘소(지일주)는 오직 로봇밖에 모르는 공대생이다. 대학 축제가 열리는 날도 여느 때처럼 남자 동기들과 VR 게임을 즐기던 그는 휠체어를 타고 동아리 부스로 돌진해온 혜진(이엘리야)과 마주친다. 장애인이 된 뒤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혜진은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하며 고장난 휠체어를 직접 고쳐주는 휘소에게 호감을 느낀다. 사회성 제로의 외골수였던 휘소도 혜진 덕분에 처음으로 함께한다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몸과 달리 “목표한 곳 어디든 자유롭고 시원하게 날아서 팍 하고 꽂히는” 화살이 좋아 양궁선수로 활동하는 혜진을 보며 휘소 역시 오랫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자동차 운전을 시도해본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휘소의 폐소공포증이 재발하고, 두 사람의 관계도 흔들린다. <너의 여자친구>는 오랫동안 몸과 마음의 장애를 안고 살아온 두 남녀가 서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조명한 로맨스영화다.
<너의 여자친구> 두 남녀가 서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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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갓난아기를 업고 말순(나문희)의 집에 찾아온 공주(김수안)는 자신이 말순의 친손녀라고 주장한다. 경치 좋은 마루에서 고스톱을 치며 낭만을 즐기던 말순은 갑자기 나타난 12살 초등학생 손녀와 그 손녀가 동생이라며 데려온 어린 진주 때문에 일상이 꼬여만 간다. 아이가 아이를 돌보는 상황이 그리 순탄할 리 없기에, 공주가 마트에서 증정용 기저귀를 공짜로 가져오려다 도둑으로 몰려 그를 변호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부딪히기도 한다. 공주도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신에게 반한 우람(임한빈)의 구애에 튕기랴, 자신을 질투하는 황숙(강보경)과 티격태격하랴 평범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지만, 그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싸우다 정들며 관계가 돈독해진다. 하지만 어린 진주가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병에 걸리고 말순의 치매 증상이 시작되면서 공주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2000년 부산 감천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족드라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감쪽같은 그녀> 2000년 부산 감천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족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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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육상부의 앵커 한주(박수연)는 대회에서 결정적인 배턴터치 실수로 좋지 않은 성적을 얻는다. 실력에 비해 미진한 결과 때문인지 연습 때도 기록은 단축되지 않고, 코치의 꾸짖음만 늘어간다. 대학 진학이나 실업팀 입단을 앞둔 중요한 시기인데 그의 걸음은 자꾸 더뎌지기만 한다. 약초를 캐며 가족의 생계를 잇는 할아버지와 하반신 마비를 앓는 동생 영준을 돌보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도 한주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약초를 캐기 위해 산에 올랐던 할아버지가 사고로 병원에 실려가면서 수술비가 필요해진다. 평소 물심양면으로 한주의 가족을 돌봐주던 목사를 찾지만 모든 일이 꼬여간다. 믿고 기댔던 목사는 사기꾼이었고, 그를 쫓다 집에 돌아오니 영준까지 사라졌다. 한주는 영준의 실종이 목사와 관련 있다고 믿고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되레 한주를 의심하지만, 혼자서 감내하기 버거운 상황에서도 한주는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역경에도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앵커>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한주만의 이어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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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은 손님이 오면 늘 녹차를 대접한다. 스크린에 불이 켜지면 그는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자신의 지난 작업들에 대해 천천히 입을 뗀다. 그의 기억 속에는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의 제작 과정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녹차의 중력>은 임권택 감독의 입을 빌려 <만다라> <서편제> <춘향전>에 대한 살아 있는 강의들을 들려준다. 하지만 정성일의 카메라는 임권택의 설명이 아니라 그의 주변에 흐르는 시간, 비어 있는 장소,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행위들을 지속적으로 응시한다.
평론가 정성일은 “감독의 시간은 영화를 찍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둘로 나뉜다”고 말했다. <녹차의 중력>은 임권택 감독이 102번째 영화 <화장>(2014)의 촬영을 앞두고 기다리는 시간을 담아낸 영화다. <백두 번째 구름>(2018)이 <화장>의 촬영 현장에서 거장의 비밀을 따라가는 영화라면 <
<녹차의 중력> 영화인과 자연인의 틈새에 고인 임권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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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관람의 이해를 돕는 자막이 뜬다. “이 영화는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부터 해방과 분단, 제주 4·3항쟁,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 자주독립과 하나된 조국을 꿈꾸었던 정정화, 김동일, 고계연 세 여성의 삶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20년 상하이로 망명한 뒤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했던 독립운동가 정정화(1900~91). 제주 4·3항쟁 당시 무장대와 함께 한라산에 올랐고, 이후 일본에 터를 잡고 살아간 김동일(1932~2017). 한국전쟁 직후 지리산에서 3년간 빨치산으로 활동했고 광주에선 5·18을 겪은 고계연(1932~2018). 도처에 죽음의 기운이 뻗친 고난의 시대를 세 여성은 독립운동가로, 빨치산으로 살아왔다. 영화는 세 여성의 삶을 나란히 병치하고, 개인의 일대기를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임흥순 감독은 꾸준히 ‘역사적 개인’의 이야기를 기록해온 작가다. <비념>(2012)으로 제주 4·3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개인의 일대기를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