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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식, 당뇨, 마비 등 온갖 질병을 달고 삶이 시작된 한 아이가 있다. 다이앤(사라 폴슨)이 낳은 딸 클로이(키런 앨런)다. 시간이 흘러 클로이는 대학에 갈 나이가 되었다. 학생인 그녀의 일상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다. 수많은 알약, 채혈과 주사, 엄마와의 식사 그리고 구토. 반복되는 고된 일상이지만 모녀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클로이가 무언가를 발견하기 전까진 말이다.
어느 날, 클로이는 엄마가 식탁에 올려놓은 마트 봉투를 뒤지다 자신의 약통을 발견한다. 하지만 약통 겉면에 적힌 환자의 이름은 엄마였다. 클로이는 자신의 루틴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런>은 엄마에게 의심을 품은 딸 클로이가 자신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영화는 두개의 차이를 충돌시키며 서스펜스를 창출해낸다. 하나는 클로이의 시선에서 일상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시각차라고도 할 수 있다. 관객은 클로이가 휠체어에 앉은 높이에서 그녀와 함께 세상을
'런' <서치>를 연출한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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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주변 환경, 경제적 조건,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처음엔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동시에 내 주변에 드리운 벽이자 족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울타리의 또 다른 이름은 가족이라고도 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이 가난과 폭력의 고리에 갇혀 버텨온 시간을 담아낸다.
‘힐빌리’는 미국 남부의 백인 저소득층, 낮은 교육수준과 보수적 성향을 띤 이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가난한 백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한 변호사 J. D. 밴스의 동명 자서전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3대에 걸쳐 이어지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트럼프 시대 미국의 현실을 내비친다. 예일대 학비를 위해 로펌의 인턴 자리를 구하고 있는 밴스(가브리엘 바소)의 시점에서 수시로 과거의 기억들이 교차되며 밴스 가족의 역사를 훑는 형식
'힐빌리의 노래' 미국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이 가난과 폭력의 고리에 갇혀 버텨온 시간을 담아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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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알제리를 탈출하며 부모를 잃은 안티고네(나에마 리치)는 현재 퀘벡에 정착해서 할머니와 언니, 오빠들과 살고 있다. 이민자 가족이라고 해서 남다를 것은 없다. 간혹 가족들과 투닥대고, 학교에서 새로 사귄 남자 친구 때문에 설레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며 그녀의 운명이 흔들린다. 경찰의 오인 사격으로 큰오빠 에테오클레스(하킴 브라히미)가 사망하고, 같은 장소에 있던 작은오빠 폴리네이케스(라와드 엘 제인)가 투옥된 것이다. 작은오빠가 캐나다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하자, 안티고네는 오빠를 대신해서 스스로 감옥에 갇히겠다고 마음먹는다. 물론 이 시도가 순조로울 리는 없다. 이내 발각돼 재판에 오르면서 세간의 관심은 온통 16살의 작은 소녀에게 집중된다. 게다가 SNS를 통해 번지는 사건의 진상은 그녀가 겪었던 것과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의도하지 않은 의견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간다.
소피 데라스페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안티고네&g
'안티고네' 소피 데라스페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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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4일 집 앞 놀이터에서 실종된 장기 실종아동 최준원양(당시 6살)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야기의 한축엔 아버지 최용진씨와 동생의 실종과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가 큰 첫째딸 준선씨의 관계가 놓여 있다. 또 다른 한축엔 17년 만에 장기 실종 전담팀에서 재수사에 들어가 사건 해결의 희망을 품게 되는 수사 이야기가 있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
'증발' 집 앞 놀이터에서 실종된 장기 실종아동 최준원양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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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넛이 탐험선 W를 타고 대산호초 탐험을 떠난다. 이들은 아름다운 산호초로 뒤덮인 호주 대산호초에서 아기 산호 코리를 만난다. 옥토넛은 가시관 불가사리의 공격으로부터 산호초를 지키기 위해 작전을 펼친다. 다양한 해양 생물과 바닷속 생태계를 보여주는 옥토넛 다섯 번째 시즌의 한 에피소드로, 환경오염 때문에 가시관 불가사리 숫자가 늘어나고, 그러면서 바다 생태계가 무너질 위협에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극장판 바다 탐험대 옥토넛: 대산호초 보호작전' 다양한 해양 생물과 바닷속 생태계를 보여주는 옥토넛 다섯 번째 시즌의 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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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후, 바이올렛 에버가든(이시카와 유이)은 길베르트 소령을 그리워하며 ‘자동 수기 인형’이라는 명목하에 대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바이올렛은 길베르트 소령의 거처를 알게 된다.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바이올렛 에버가든> 시리즈의 마지막 극장판이다. 끝을 맺는 작품인 만큼 수려한 작화에 편지의 문체까지 섬세히 공을 들였다. 등장인물들이 망설임 끝에 감정을 표하는 순간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 <바이올렛 에버가든> 시리즈의 마지막 극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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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인공인간들이 넘쳐나는 2220년의 대한민국. 아픈 아들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인간(정경호)과 새 삶을 살아보려는 인공인간(강유석)은 일자리를 찾아 동행하다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에 실제와 연기가 섞인 대답을 내놓는, 배우와 일반인을 포함한 100여명의 인터뷰가 이들의 드라마 앞뒤로 붙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부문 초청작.
'구직자들'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부문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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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호주에 정착한 3명의 터키 이주민이 있다. 터키 아이스크림 장수 메멧(알리 아타이), 낙타 쇼맨 알리(에르칸 콜칵 코스텐딜) 그리고 사탕 장수 살림. 오스만제국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이들은 마을에서 한순간에 적이 돼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메멧과 알리는 고향으로 돌아가 전쟁에 가담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영국 부대에서 나온 웨인 대위(윌 소프)가 이들의 계획을 저지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갈리폴리로 향하는 연합군의 기차를 멈출 계획을 수립한다.
<터키쉬 아이스크림>은 전쟁으로 한순간에 적이 된 호주 속 터키인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코미디영화다. 극중 인물들은 영어를 잘 못한다. 메멧의 말을 알리가 주로 통역하는데, 그 과정에서 오역이 발생하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영화는 마냥 코미디만 펼쳐내진 않는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전쟁이 빚어낸 비극의 농도가 짙어진다. 희비극의 중첩으로 짙어진 페이소스를 관객에게 주는
'터키쉬 아이스크림' 전쟁으로 한순간에 적이 된 호주 속 터키인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코미디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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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서 청춘의 고독과 우울을 그렸던 이시이 유야 감독이 이번엔 소년의 판타지로 잠수했다. 너무 착해 오죽하면 별명이 예수님인 마치다(호소다 가나타)는 만삭인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며 매일의 밥상까지 책임지는 소년 가정주부다. 버스에선 누구보다 빠르게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주변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겐 어떻게든 가장 먼저 달려가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어서, 지나치게 덜렁대고 실수투성이라는 큰 결점 때문에 자주 엉뚱한 코미디 포인트를 양산해낸다. 마치다는 어느 날 양호실에서 마주친 같은 반의 이시하라(세키미즈 나기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불운한 가정사를 지닌 동급생 소녀의 냉랭한 매력으로부터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
<마치다군의 세계>는 남의 사생활을 캐는 데 지쳐 있는 연예부 기자 요시타카(이케마쓰 소스케)의 피로와 염세를 마치다와 대조하면서, 선의로 가득 찬 사람이 지닌 구원의 가
'마치다군의 세계'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서 청춘의 고독과 우울을 그렸던 이시이 유야 감독이 이번엔 소년의 판타지로 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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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에 솔직했던 그날 밤 이후, 사건은 무려 5개월이 지나서야 고백된다. 과외선생님과 고등학생 제자로 만난 토일(정수정)과 호훈(신재휘)은 임신 5개월차에 이르러 양가 부모를 찾는다. 커다란 옷을 벗어던지자 이미 안정적인 임신부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딸 앞에서 교사 커플인 토일의 부모가 사색이 된 반면, 레게 문화에 심취한 듯한 호훈의 부모는 당혹스러우리만치 낙관적이다.
영화가 임신 사실을 알아챈 주인공의 충격과 혼란을 가뿐히 건너뛰고, 양가 부모의 반응부터 담아낸 데는 이유가 있다. 나이 어린 부모의 좌충우돌기보다는 임신과 결혼 발표를 매개로 드러나는 가족의 의미에 집중하는 <애비규환>은, 어린 시절에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나선 토일의 여정에 관객이 기꺼이 동참하도록 이끈다. 이혼 후 어려움을 딛고 새 가정을 꾸렸던 엄마 선명(장혜진)과 15년 넘게 친아빠를 대신하기 위해 애써온 태효(최덕문)는 아직 그 마음을 알 길이 없고, 자기 뿌리를 찾으러 고향인 대구로 떠났던
'애비규환' 캐릭터의 힘으로 웃음과 애틋함을 동시에 견인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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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계 소녀 마리엠(카리자 투레)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할 위기에 놓여 있다. 낮은 성적 때문에 실업계 진학을 권유받자 그는 용기 내어 “다른 애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라며 일반계 진학 의사를 밝히지만, 선생님으로부터 “그러기엔 늦은 것 같구나”란 답변을 들을 뿐이다. 생업을 책임지는 엄마 대신 여동생 둘을 돌보고, 고압적인 태도로 구는 오빠 때문에 숨 쉴 곳도,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마리엠으로서는 삶에 대한 모종의 기회를 박탈당한 기분이다.
좀처럼 마음이 풀리지 않던 마리엠은 우연히 레이디(아사 실라), 아디아투(린지 카라모), 필리(마리투 투레) 일행을 만나고, 학교를 벗어나 거리를 쏘다닌다. 더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서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마리엠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길에서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때론 백인 아이들의 돈을 뺏는 나쁜 짓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이 학교를 떠났다고 해서 악독한 범죄에 빠지거나, 인간으로서 추락하는 모습으
'걸후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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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벼랑 끝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한명은 경찰 현수(김혜수)다. 그는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의 모함으로 추문에 시달렸으며, 업무 중 일으킨 사고로 징계위원회에 불려갈 예정이다. 다른 한명은 고등학생 세진(노정의)이다. 세진은 아버지가 연루된 범죄 사건의 증인이라는 명목하에 섬마을에 고립되어 있다.
어느 날, 세진이 유서 한 장을 남긴 채 절벽에서 사라지고, 이후 복직을 앞둔 현수가 윗선의 지시로 세진의 실종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자살로 종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수는 차근차근 세진의 삶의 궤적을 더듬어나가기 시작한다. 절벽 위 세진의 운동화를 시작으로 CCTV 영상과 유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세진의 사연에 접근해간다. 섬마을 주민들의 목격담을 조사하던 현수는 세진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순천댁(이정은)으로부터 세진에 관한 몇 가지 단서를 얻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비밀을 풀어나가던 현수는 그 과정에서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세진을 마주하며 복잡한
'내가 죽던 날'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경선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던 박지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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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시청률 35.7%를 찍었던 <내일은 미스터트롯>. ‘트롯맨’들의 열풍은 여전히 뜨겁다. <미스터트롯: 더 무비>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들의 인기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톱6 임영웅, 영탁, 이찬원,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이며, ‘<내일은 미스터트롯> 대국민 감사 콘서트’ 서울 공연 장면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영화를 채운다.
생애 첫 대규모 콘서트를 앞둔 심정, 여름 MT에서의 편안한 모습 등 무대 위아래에서의 모습이 고루 담겼다. 임영웅은 지난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는 영화 속 안내자로서 내레이션을 맡았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아니었다면, 콘서트 무대 자체의 스펙터클이 지금보다 더 두드러질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스터트롯: 더 무비'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톱6 임영웅, 영탁, 이찬원,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가 주인공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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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앙상블엔 대개 연습이 필요하다. 무수한 리허설에 익숙한 연극인들이 정작 자기 삶의 초연 무대에서 허둥지둥대는 모습이 놀랍지 않은 이유다. <성혜의 나라>(2018)로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던 정형석 감독이 이번엔 자신의 본거지인 공연계로 눈을 돌렸다.
나이듦 앞에서 부쩍 위축된 극단 연출자 영로(김승수)는 오랜 파트너였던 조연출 세영(서윤아)의 구애를 부담스러워하고, 유산을 계기로 소원해진 만식(이천희), 혜영(김정화) 부부는 예전으로 돌아갈 기회를 찾지 못한다. 새로운 만남에 방어적인 민우(유민규)와 그의 팬 주영(최배영)의 사랑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다. 정형석 감독의 연출은 자극적인 전개 없이 일상적 정서에 충실하며, 불신과 불안 앞에 망설이는 세 연인의 속내로 관객을 편안히 이끈다.
'앙상블' <성혜의 나라>(2018)로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던 정형석 감독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