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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루각은 겉으로는 멀쩡한 중국집이지만 실제로는 사설 복수 대행 업체다. 철민(지일주), 지혜(박정화), 승진(장의수), 용태(배홍석), 곽 사장(정의욱) 등 각기 다른 이유로 용루각에서 함께 살게 된 이들은 정체가 불분명한 정보원으로부터 제보를 받아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을 대신해 힘을 쓴다. 어느 날 마약에 중독된 재벌 2세의 만행 때문에 죄 없는 여성이 살해되는데, 철민이 평소 자주 찾는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용루각은 사건의 배후에 폭력조직 호야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여러 등장인물들을 골고루 다루려는 연출이 이야기의 속도감을 수시로 늦춘다.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장황하고 몰입하기 힘들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의 후반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해 아쉬움을 남긴다.
'용루각: 비정도시' 재벌 2세가 살해한 여성의 복수를 계획하는 중국집 점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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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의 기적>은 성모마리아 발현의 기적 103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작이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 한 줄기 빛이 비친다. 10살 소녀 루치아(스테파니 길)와 어린 사촌동생들은 빛 속에서 현신한 성모마리아를 마주하고, 그녀는 매달 13일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한다. 이후 세명의 아이들은 6차례 마리아와 만나 기적을 목격한다.
안정되고 원숙한 연출로 당시 주변 상황과 공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영화는 욕심 부리지 않고 기적의 순간을 담담히 전한다. 기적 그 자체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순수함의 미덕을 관찰하는 태도가 돋보인다. 신성, 믿음, 희망을 전하는 성실한 종교영화다.
'파티마의 기적' 성모마리아 발현의 기적 103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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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는 10대 시절 로맨틱 코미디의 열렬한 팬이었던 엘리자베스 생키 감독의 에세이적 다큐멘터리다. 그는 오랫동안 사랑했던 장르의 이상적 결말인 ‘결혼’의 실체를 경험한 후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가 중산층 이성애자 백인 중심으로 제작됐다는 점이나,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로절린드 러셀이나 캐서린 헵번으로 대표되는 진취적 여성 캐릭터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방대한 아카이빙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는 궁극적으로 이 장르의 한계를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비백인 캐릭터를 내세운 <빅 식>(2017)이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의 성과를 언급하며 최근의 흐름을 짚고, 사랑과 인간성을 탐구하는 장르가 가진 항구적 매력을 강조하며 감독의 오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
'로맨틱 코미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로코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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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게임, 망겜, 1등으로 망할 것 같은 게임. 국내 최초 레벨 없는 RPG 게임으로 화제가 됐던 <일랜시아>는 2000년대 초반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곳”으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지만 지금은 10년 넘게 운영진에게도 버림받는 ‘망한 게임’이 됐다. 닉네임 ‘내이름전지현’, ‘마님은돌쇠만쌀줘’의 길드마스터이기도 한 박윤진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아직도 이 게임을 떠나지 않은 유저들을 찾아간다.
<일랜시아>는 IMF 키즈들의 안식처였다. 시간을 쏟을수록 절대적인 결과가 나오고 순수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게임 세계는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성취감과 위로를 줬고, 노력과 결과물이 비례하지 않는 현실은 그들이 여전히 게임의 추억을 놓지 못하게 한다. 유저들 스스로도 ‘게임 자체가 무기력한 느낌’이라며 자조하지만 <일랜시아>의 매력을 고백하는 대목엔 순수한 애정만이 줄 수 있는 뭉클함이 있다.
넥슨사의 게임은 돈이 없으면 고스펙
'내언니전지현과 나' 운영진도 버린 '망겜'을 10년 넘게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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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안에 짐승 한 마리를 키운다. 두 마리 늑대에 관한 인디언 속담이 있다. 한 마리의 이름은 화, 질투, 거짓말, 열등감, 죄책감이며 다른 한 마리의 이름은 진실, 겸손, 연민, 희망 등으로 불린다. 내면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는 두 늑대 중 누가 이기는가. 아이의 질문에 현명한 노인은 답한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
<럭키 몬스터>는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에 던져진 남자가 자기 안의 짐승에게 서서히 먹혀가는 이야기다. 다단계 판매직으로 일하는 도맹수(김도윤)는 또 다른 자아 럭키 몬스터(박성준)의 환청에 시달린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등 벼랑 끝에 선 맹수는 유일하게 집착하던 아내 리아(장진희)를 지키기 위해 위장이혼을 감행한다. 얼마 뒤 로또 1등에 당첨된 맹수는 다시 아내를 찾으려 하지만 그녀의 행방이 묘연하다. 그토록 바라던 돈이 손에 들어왔지만 맹수의 환청과 불안은 점점 심해져만 간다.
<럭키 몬스터>는 매끈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구조 안에
'럭키 몬스터' 자기 안의 짐승에게 서서히 먹혀가는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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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의 어둠 속에서 깨어난 아버지가 잠든 아들의 한쪽 얼굴을 쓰다듬는다. 아들의 얼굴엔 마저 지우지 못한 하얀 분칠이 남아 있다. 광대 분장을 하고 하루 종일 행사를 뛰던 직업 MC 경만(하준)은 이제 막 아버지의 병상 곁에서 미뤄둔 잠을 청한 참이다. 낮이 되자 경만의 귀여운 동생 경미(소주연)까지 나타나 활기를 돋운다. 아프고 가난하지만 세 식구의 돈독한 사랑에는 모자람이 없어 보이는 풍경에 불안이 스밀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버린다. 급하게 장례비를 마련해야 할 처지에 빚을 갚으라는 고약한 친척까지 등장하면서 남매는 궁지에 몰린다.
경만은 고심 끝에 장례식장에 경미를 남겨두고 당일치기 지방 행사를 떠나기로 한다. 효심이 지극한 의뢰인 일식(정인기)이 팔순의 어머니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경만에게 잔칫날의 마이크를 덥석 맡긴 날. 울어야 하는데 웃겨야 하는 오빠의 애처로움만큼이나 홀로 장례식장에 남아 무력하게 동분서주하는 동생의 서러움도 커져만 간다. 김록경 감독의 &
'잔칫날' 아버지가 죽은 날, 팔순 잔치에 초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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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1, 2절) 2천년 전 성경 속 하나님 언약의 비밀을 탐구해가는 다큐멘터리 드라마다. 이스라엘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풍습을 바탕으로 인류학자, 성서학자들이 성경을 해석한다. 친절한 내레이션과 재현 드라마로 성경 속 예언을 쉽게 풀어낸, 시청각 교육용 성경 해설서.
'가나의 혼인잔치: 언약' 2천년 전 성경 속 언약의 비밀을 탐구해가는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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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의 스승이자 영춘권의 고수 엽문이 젊은 시절 경찰이었다는 사실에서 착안해 구성한 이야기다. 광저우 불산에서 경찰로 근무하던 엽문(두우항)은 도끼파의 방주인 삼야(왕민덕)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다. 엽문은 도끼파를 내몰고 상인회를 접수한 일본인 사사키와 가라테 고수인 도쿠가와와 대결을 벌인다. 일본에 맞서는 ‘중국인’ 엽문에 초점을 맞춘 액션영화로, 쿵푸, 도끼권, 봉술, 취권, 가라테 등 다양한 무술을 보는 재미가 있다.
'엽문 리부트 2020' 일본에 맞서는 중국인 엽문에 초점을 맞춘 액션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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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만화 원작의 TV애니메이션을 영화화했다. 앞선 시리즈가 밴드 ‘기븐’의 보컬 마후유(야노 쇼고)와 기타 리츠카(우치다 유우마)의 만남에 집중했다면 <극장판 기븐>은 드럼 아키히코(에구치 다쿠야)와 베이스 하루키(나카자와 마사토모) 사이를 조명한다. 첫사랑을 끝낸 아키히코와 그런 그를 짝사랑하는 하루키의 관계가 밴드의 콘테스트 준비와 함께 조금씩 무르익는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경연곡이 이들의 서사를 감성적으로 압축한다.
'극장판 기븐' BL 만화 원작의 TV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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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책 덕분에 말과 대화할 수 있는 에미(루비 반힐)는 캔디스 왕국의 공주로 공식 임명될 무도회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시기심 많은 사촌의 모함에 빠져 무도회는 물론 마법의 책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남들에겐 없는 자신만의 능력을 증명해야 위기를 풀 수 있는 소녀의 이야기가 달콤하고 화사한 색채로 전개된다. 언뜻 종이 동화책의 질감처럼 느껴지는 부드러운 화면이 성인 관객에게도 묘한 향수와 휴식을 안길 듯하다.
'프린세스 에미: 마법 책의 비밀' 남들에겐 없는 자신만의 능력을 증명해야 위기를 풀 수 있는 소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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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발 기차 안에서 수배범을 검거했던 철도경찰 정잉(청청)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다. <최미역행>은 각자의 자리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의료인들은 우한 지원에 주저하지 않고, 기업가는 물품을 기부하며, 사회는 힘을 모은다. 하지만 쉽게 끓는 감정선과 과도한 배경음악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정잉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수배범이 죄책감을 느껴 여죄를 자백하는 등 억지스러운 설정도 보인다.
'최미역행' 각자의 자리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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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국정원 도청팀장인 대권(정우)은 가택 연금된 정치인 의식(오달수)을 도청하다 그와 가까워진다. <이웃사촌>은 좌충우돌 도청 생활의 묘를 습득해가는 직업 드라마이자, 적과의 동침에 어느덧 마음을 열어버린 스파이물의 코미디적 변주를 지향한다. 인정과 우애가 부각되는 주제는 따뜻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정의 앞에서 갈등하는 가부장의 눈물겨운 스토리는 한국영화의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처럼 새로움 없이 다가온다.
'이웃사촌' 좌충우돌 도청 생활의 묘를 습득해가는 직업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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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메건 폭스)이 이끄는 사설 용병팀 로그는 무장단체 알샤바브에 납치된 주지사의 딸을 구출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작전을 펼친다. 로그팀은 잠시 폐가에 몸을 숨기는데, 사실 이곳은 한때 불법으로 운영되던 사자 농장이다. 사설 용병부대, 테러 조직, 사자로 이루어진 삼각 사슬이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남부 아프리카에서 성업 중인 사자 사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라는 얘기를 설명조로 전달하는 방식은 감상의 맥을 끊는다.
'로그' 사설 용병부대, 테러 조직, 사자로 이루어진 삼각 사슬이 긴장감을 조성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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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의 시나리오를 쓴 허먼 맹키위츠(게리 올드먼)의 눈으로 고전기 할리우드의 풍경을 옮겨냈다. 스튜디오 시스템에서의 작가 처우 문제, 대공황 이후 할리우드의 보수화를 지켜보며 작가로서 느낀 환멸이 축적되어 <시민 케인>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 할리우드 가십, 특히 <시민 케인> 때문에 미디어 재벌 허스트의 정부 정도로 낙인 찍혔던 배우 매리언 데이비스(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시도가 엿보인다.
'맹크'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를 쓴 허먼 맹키위츠의 눈으로 고전기 할리우드의 풍경을 옮겨낸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