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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사람냄새나는 나쁜놈들
한달쯤 뒤, 차 대표가 S라는 친구를 소개해준다기에 사무실에 갔다.
“미안하다. 오늘 S랑 저녁먹기로 했는데 어제 구속됐단다.”
“S는 어떤 사람인데요?”
“S? 그 새끼가 진짜 나쁜 놈이지. 니가 지금까지 만난 애들은 S에 비하면 다 착한 애들이야.”
“하! S아저씨를 꼭 만났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여자들한테 S만큼 착한 놈이 없어. 여자가 손발 차다면 영지버섯 사줘, 뭐 먹으면 여자 입에 떠먹여주고, 식당 같은 데선 신발도 신겨줘. 그리고는 결혼한다고 돈 빌려서 결혼식엔 안 가고 포커 쳐. 돈 갚으라면 원투 스트레이트로 때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 위조방지보안회사에서 조사해온 위조기술자료까지 얻은 나는 시나리오에 박차를 가한다(왜 대한민국에는 위조지폐가 드문가에 대해서 밝히고 가자. 간단하게 얘기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란다. 1만원권 지폐를 정밀하게 위조하는데, 펄프 수입하고 기계 사고 인건비 포함하면 1만원쯤 든단다. 만약
<범죄의 재구성> 감독의 사기사건 취재수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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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취재, 구미에는 결혼사기가 많다…
첫 번째 취재처는 구미경찰서. 한국은행 사기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쉽게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범인도 못 잡은 걸 뭘 알라카고 참…. 더이상 얘기는 못해주고 마~ 그냥 커피나 한잔 마시고 가쇼!”
“그래도 용의자들은 있을 거 아닙니까?”
“용의자가 있다 커면 그놈이 범인일 수 있지만, 용의자가 없어. 80년대 초에 서울 영등포에 있는 뭐 은행에 비슷한 수법으로 했던 사람들까지 다 뒤져봤는데 다 죽고 읎어. 그래도 우린 계속 수사하고 있어. 내가 잡으면 연락할게.”
영화 취재를 왔다고 하자 신기한가보다. 여럿이서 모여들더니 한마디씩 거든다.
“나는 뭐꼬 그… <처녀들의 저녁식사> 그런 영화가 젤로 좋드만.”
“<무사> 찍은 영화사라구? 일본놈들 상대로 무사 한번 찍었으면 좋겠어. 그런 걸 찍어야지 무슨 사기꾼 얘길? 사기꾼들 별거 없어. 그냥 아저씨, 아줌마야.”
“이쪽 구미서는 결혼사기가 젤 많다
<범죄의 재구성> 감독의 사기사건 취재수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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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냐, 아니면 발이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두 가지 방식을 두고 사람들은 우열을 가리고 싶어한다. 물론 어떤 것이 더 좋은 창작방법인지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발에 땀나게 뛰어다녀서 모은 이야기와 머리가 쥐나도록 짜낸 이야기에는 나름의 쾌감이 있는 법이니까. “대한민국 대표은행이 털렸다”는 카피를 앞세운 <범죄의 재구성>은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감독과 제작자가 함께 파트너를 이뤄 전설적인 사기꾼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취재한 내용을 캐릭터에 버무려낸 영화다. 예고편만 보더라도 박신양, 염정아, 백윤식, 이문식 등 주요 배우들이 맡아 연기한 캐릭터들의 개성의 충돌이 한껏 부각된다. 4월15일 개봉을 앞두고 믹싱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는 최동훈 감독을 졸라서 받아낸 시나리오 취재기는 영화를 맛보기 전에 한 숟갈 뜨는 애피타이저로는 더없는 선택이 될 듯하다.
프롤로그-1997년, 사기와의 첫 만남
1997년. 어느 백수가 대학을 졸업했다. 모름지기 지식인의 자세는 주경
<범죄의 재구성> 감독의 사기사건 취재수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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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년기의 대단원, 혹은 어떤 밀월의 추억
나는 한국영화가 소년기 혹은 성장영화 시대를 경과해왔고 이제 그 마지막 단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를 특징짓는 젊음은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양자의 육체적 연령의 문제를 포함한다.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된 199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1천만 관객시대가 개막된 현재까지의 시기를 한국의 젊은 감독과 젊은 관객의 밀월기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끈 60년대 세대의 감독들은 관객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70, 80년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정서적 통로를, 전통적인 영웅상이 아니라 양자가 공유한 소년성에서 찾았다.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품행제로>와 같은 자전적 색채가 강한 회고적 청춘드라마이건 아니면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좀더 양식화된 장르영화이건 또 아니면 <실미도>처럼 역사적 사건을 직접
한국영화의 ‘소년성’에 대한 단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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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년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몇몇 비평가들은 한국영화가 고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개봉된 이 시점에서 보면 그것은 극복돼야 할 결함이라기보다는 한국영화의 중요한 징후이자, 많은 한국영화의 장르적 성격과 밀접하게 연관된 구성적 요소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고아의식이라는 용어는 소년성으로 대체하는 것이 좀더 유용할 듯하다. 성공한 한국 대중영화들에는 영웅성의 자리를 소년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 소년성이 한국 장르영화의 불안정하며 변칙적 성격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여기서 소년성은 주인공들의 신체 연령이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욕망과 그들이 맺는 관계의 성격을 지칭한다. <실미도>의 설경구, <공동경비구역 JSA>의 이병헌을 일반적인 의미에서 소년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그들은 어떤 소년성을 공유하고 있다. 원작 일본 만화의 제목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긴 하지만
한국영화의 ‘소년성’에 대한 단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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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는 지금 소년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승승장구 관객 1천만 시대를 열고 있는 지금, 영화평론가 허문영씨는 한국영화의 현재를 이렇게 진단한다. 한국영화가 산업적 절정기에 있다는 일반론만으론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이 주장은 서로 다른 영화들의 내적 논리를 종횡으로 엮은 예민한 통찰의 결과다.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관객의 폭넓은 호응을 얻었던 다수 한국영화가 갖고 있는 서사구조의 특징은 한국영화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까지 아우른다. 이 글을 통해 한국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경향을 함께 들여다보자.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가장 의아스런 장면은 이 영화의 결말이다. 노인이 된 오늘의 진석이 형의 유골 앞에서 오열하는 장면으로 끝날 듯하다가, 곧이어 한국전쟁 직후에 집으로 돌아온 청년 진석이 그의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황량한 폐허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진
한국영화의 ‘소년성’에 대한 단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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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구속을 뛰어넘어 서로를 만나는 여성들
뉴저먼 시네마의 어머니, 마가레테 폰 트로타 특별전
<독일 자매>
1981년 / 106분 / 35mm / 드라마 / 감독특별전
‘이상을 위한 폭력’이라는 모순에 대해 트로타가 해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여성의 유대를 통한 폭력적 상황의 극복이다. 이 영화부터 일관되게 제시되는 트로타의 여성적 유대는 단순한 친밀감의 차원을 넘어서 독일 현대사의 상흔과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성격을 띤다. 그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인 <독일 자매>(1981)는 이같은 트로타의 생각이 더욱 구체화된 작품이다. 영화는 페미니스트 언니와 테러리스트 동생의 상반된 길을 보여준다. 결국 동생의 투옥과 의문의 자살을 통해, 언니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자매의 행동이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반항이라는 어떤 공통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이해하게 된다.
<로젠슈트라세>
2003년 / 136분 / 35mm / 드라마 /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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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 위해 싸운다
<우리 시대> Our Times…
릭샨 바니 에테맛 / 이란 / 2002년 / 75분 / 35mm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2001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모티브를 얻은 <우리 시대>는 개혁의 순간을 기록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해 한 여성의 생존투쟁을 지켜보며 끝을 맺는다는 점에서 여성영화제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정치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허울 아래서>가 지난해 여성영화제에 초청됐고 이란의 대표적인 여성감독 중 하나이기도 한 락샨 바니 에테맛은 혼란에 빠진 독백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기로 결심했지만, 어디에서부터 촬영을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에테맛은 개혁주의 성향을 가진 현 대통령 모하마드 하타미를 지지하는 자신의 딸과 그 친구들을 인터뷰하다가 정부로부터 출마를 금지당한 48명의 여성 후보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게 만난 여자가 홀로 어린 딸과 눈먼 어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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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근대성-여성, 삼각축의 불가해한 매력
미조구치 겐지에서 이치가와 곤까지 일본 고전영화 속의 여성
Ten Dark Women
이치가와 곤 / 1961년 / 103분 / 35mm / 아시아특별전
한 남자가 있다. 아내와 9명의 정부 사이에서 줏대없이 왔다갔다하는 TV 프로듀서 카제 마츠키치는 그의 정부들이 자신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그는 급기야 호색한 남편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사업에서 즐거움을 찾던 아내에게 도움을 구한다. 영리한 아내는 덜미를 잡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정부들은 자기 꾀에 빠져 여기에 걸려들고 만다. 누아르풍의 화면을 보여주는 〈1명의 아내, 9명의 정부>는 1960년대 영화라는 것을 믿기 힘들다. 정교한 유머감각이 그렇고 스타일이 그렇다. 열명의 여성들이 한 남자를 실질적으로 ‘공유’하면서 때로 라이벌이 되고 때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TV방송사라는 배경은 여성의 노동, 근대성의 상징으로 비춰 더욱 흥미진진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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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관계들의 상처
세상 끝까지> To thr other End of the World
<리사 마도에린 / 스위스 / 2003년 / 28분 / 베타 / 다큐멘터리 / 여성영상공동체
한국계 스위스인인 리사 마도에린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세상 끝까지>는 자기 어머니의 과거를 통해 가족 또는 관계에 대한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30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다큐멘터리는 옛날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연인의 사진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들은 마도에린 감독의 친부모, 아키오 이치가와와 김명희다. 마도에린 감독은 클럽 가수였던 어머니와 당시 딸 셋을 둔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어떻게 사랑을 시작했고 끝을 맺게 됐는지,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하나하나 기록해나간다. “세상 끝까지라도 당신을 쫓아가겠어”라는 달콤한 사랑고백을 한 아버지와 그런 남자의 아이를 결국엔 혼자서 낳아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딸은, 두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친아버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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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인 활동가로 불러주오
<벌거벗은 페미니스트> The Naked Feminist
루이사 아칼리 / 호주 / 2003년 / 58분 / 베타 / 다큐멘터리 / 영페미니스트 포럼
<벌거벗은 페미니스트>가 선택한 장은 포르노 산업이다. 장편 극영화 <원 테이크>를 만들었으며, 독립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루이사 아킬리는 한 잡지에서 포르노 스타 니나 하틀리에 관한 기사를 읽고 포르노 산업 내의 페미니즘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곧 <벌거벗은 페미니스트>의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랜 기간 남성들의 시각적 쾌락에 종속돼온 것으로 악명 높았던 포르노 산업 속에서 오히려 ‘전복적인’ 페미니즘 투사들을 발견한다. 포르노 스타 베로니카 하트, 캔디다 로얄, 글로리아 레오나드, 애니 스프링클, 베로니카 베라 등은 자신들의 긍정적인 자부심과 세계관, 활동 방식, 작업 형태들을 준거로 포르노그라피가 단순히 남성 전유물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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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욕망은 지금 몇시인가?”
아마도 부산영화제나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이런 식으로 재편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4월2∼9일)의 섹션 구획을 임의로 해체해 ‘여성의 욕망은 지금 몇시인가?’라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시침으로 상영작을 분류하자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성적 욕망, 문화적 욕망, 정치적 욕망, 가족·관계에의 욕망이란 그물망에 상영작들이 대체로 분류됐다(아시아 단편경선과 성장영화 정도를 빼놓고 아시아특별전과 감독특별전까지 이를 적용할 수 있었다). ‘여성’이란 이름으로 말해야 하고, 해야 할 것이 그만큼 곳곳에 산적해 있다는 뜻일 게다. ‘의외의 일’이란 이런 분류가 가능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 분류를 통해 좀더 명확히 드러나는 변화와 차이다. 예컨대 페미니즘과 웬만해선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어 보였던 포르노가 어느 순간 페미니즘의 무기가 되어 있고, 자신의 몸을 토대로 한 성적 욕망이더라도 그 여성이 어느 땅에서 태어났느냐,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느냐에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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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질적인 것’과 ‘배창호적인 것’
배창호 감독은 <황진이> 이후 자신의 영화가 변화했다고 늘 말한다. 거기에 한번의 전환을 더 덧붙이자면, <젊은 남자> 이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시작한 필모그래피는 <고래사냥>(1984)을 기점으로 흥행사로서의 80년대를 지났으며, <황진이>(1986) 이후 적지 않은 실험작 목록을 남겨놓았다. 그러나 명백히 <천국의 계단>과 <젊은 남자>는 젊은 세대들의 감성에 밀착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다음이 지금의 <길>을 설명할 수 있는 궤도이다. 그는 자신의 세대적, 또는 내적 감성으로 회귀했다. <러브스토리>에서부터 <정>과 <흑수선>을 지나 <길>까지 젊은 세대들을 뒤쫓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그가 말하고 싶어하는 “한국적인 것 속에 있는 배창호적인 것, 우리
용서의 드라마로 돌아온 배창호의 신작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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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흥행사 배창호 감독의 저예산영화, <길>의 지난한 여정
<흑수선> 이후 2년이 지났다. 배창호 감독은 다시 저예산영화 <길>을 들고 찾아왔다. 개봉시기는 잡히지 않았고, 언제 이 영화를 볼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씨네21>은 한국 중견감독의, 오랜만의 신작이 어서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영화 <길>의 고된 제작의 길과 그 작품의 길, 그리고 감독이 말하는 신념의 길을 함께 싣는다.
배창호 감독의 새 영화 <길>은 그가 자주 쓰는 표현처럼 “굳은 신념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그런 영화이다. 사비를 털고, 친지들의 주머니를 뒤져 제작과 감독을 겸하면서 <러브스토리>(1996)와 <정>(1998)을 완성했지만 관객의 발걸음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뒤 주위의 기대를 모으며 미스터리스릴러물 <흑수선>(2001)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불시착한 영화처럼 보였다. 그것을 배
용서의 드라마로 돌아온 배창호의 신작 <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