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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는 개교 이후 충무로에 감독과 현장인력을 가장 많이 배출한 단일 교육기관이다. 연출, 프로듀서, 촬영을 전공하는 아카데미 22기 재학생 19명 전원에게 설문을 청했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가장 높이 평가한 감독은 홍상수다. 다른 설문 그룹에서 박찬욱과 봉준호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던 것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결과다. 홍상수를 최고로 꼽은 응답자들은 “영화언어에 대해 가장 정확한 해석을 내린다”고 평가했다. 최고의 한국영화에 대한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두 그룹과 달리 흥행작 위주가 아닌 작가의 개성이 두드러진 작품들이 다수 포진됐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수위를 차지했고, 박찬욱 감독 작품 중에도 <복수는 나의 것>이 선택됐다. <살인의 추억>을 제외한 작품들은 역대 흥행순위와는 거리가 멀다. 상업적 감각과 대중영화의 성취에 대한 응답은 다른 설문 그룹과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젊은 영화광들이 말하는 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 [4] -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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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과 학생들이 현재와 미래의 감독으로 점지한 인물은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다. 설문에 응한 영화과 학생들은 감독에게 집중된 초반 다섯개의 질문에서 두 사람을 모두 5위권 내로 진입시키는 애정을 과시했다. 박찬욱 감독은 ‘가장 높이 평가하는 감독’으로 꼽혔고 봉준호 감독은 ‘최고의 한국영화, 한국영화 베스트5, 2000년 이후 데뷔한 감독 중 가장 주목받을 감독’으로 선정됐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는 설문 전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높은 순위를 점했다. 두 사람은 작가주의와 웰메이드한 상업영화 사이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상업적인 감각을 가진 감독’을 묻는 문항과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 항목에서도 수위를 차지한 강제규 감독과 김기덕 감독보다는 박찬욱 감독, 장진 감독의 약진이 눈에 띈다. 두 질문의 핵심은 흥행과 제작기간이지만 박찬욱 감독과 장진 감독의 선전은 응답자들의 취향을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
젊은 영화광들이 말하는 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 [3] - 대학 영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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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영화광들이 집단으로 출몰하고 동거동락하는 세곳의 ‘서식처’는 영화산업의 시스템에서 비껴 있고 그래야 옳다. 그러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사유하는 ‘게토’는, 어쩔 수 없이 한국영화의 에너지이자 꿈이기도 하다. ‘젊은 영화광들에게 묻는 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의 설문조사 결과는 평단과 충무로로 대별되는 기성 세대의 인식과 평가를 살짝 배반하면서도 슬쩍 공유하는 흥미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세 부류의 취향이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면서도 현장에 가장 근접한 영화아카데미는 영화의 이상 혹은 목적이라는 대목에 이르러선 다른 두 부류와 뚜렷한 ‘노선 차이’를 드러낸다.
어쨌든, 가장 단순하게 뭉뚱그리면 이들은 고결한 작가주의나 취향없는 상업영화 어느 한쪽을 편애하지 않고 이를 동시에 꿈꾸는 가치기준을 자신있게 들이밀고 있다. 단적으로, 박찬욱을 이 시대의 화두처럼 내세운 반면 홍상수(나아가 김기덕까지)를 부재시킨다. 그리고 김동원의 <송환>은 홍상수보다 더 완벽하게 소외된다. 상업
젊은 영화광들이 말하는 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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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세계가 아마추어 집단을 거울처럼 비춰보고 성찰하는 게 유용할까? 대학 영화과와 영화동아리, 영화아카데미는 말하자면 아마추어다. 하지만 그들은 영화광(혹은 시네필)이기도 하다. 영화광은 프로페셔널이 아니지만 그들과 그들 너머까지의 세상을 동경하고 수집하며 미래로 삼는다. 그들을 사로잡은 지금의 감독과 영화로 미래의 감독과 영화를 가늠하는 건 그래서 가능하지 않을까. ‘젊은 영화광들에게 한국영화의 오늘과 미래를 묻는다’는 취지의 설문을 시작하고 그 결과를 들여다보면서 왜 더 일찍 이런 걸 해보지 않았을까, 새삼 자문하게 됐다. 설문은 불친절하고 투박했지만, 젊은 영화광들의 답변에선 우리가 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우려와 탄성이 동시에 흘러나오기도 한다. 독자로 부를 수밖에 없는 개별적인 영화광들과 프로페셔널들과 더불어 그들의 생각과 취향을 음미해보려고 한다. 설문에 성심성의껏 응해준 6개 대학 영화과 151명, 6개 대학 영화동아리 회원 41명, 영화아카데미 22기 19명에게
젊은 영화광들이 말하는 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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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랑의 기억을 지운다?
주인공은 뉴욕에 살고 있는 조엘(짐 캐리)이다. 그는 옆집 사람이 자기 차를 찌그러뜨렸다고 여기면서도 그냥 참고 넘어갈 만큼 소심하고 착한 사람이다. 영화는 잠에서 깨어난 그가 회사로 가던 중 무작정 몬타우크행 기차를 타고 바닷가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순간에도 조엘은 자신이 왜 일상을 벗어나 몬타우크행을 선택했는지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나 거기서 조엘은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럿)을 만나고, 그녀의 활달한 성격 덕분에 금세 친해져, 그 다음날은 찰스강에 같이 놀러가서 꽁꽁 언 강바닥에 누워 별을 바라보며 멋진 추억도 만든다. 게다가 그녀는 농담처럼 “우리는 분명히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조엘과 그걸 보는 세심한 관객을 동시에 당황시킨다. 그리고 날이 밝아 클레멘타인을 집에 데려다줄 때, 그녀는 갑자기 조엘의 집에 가도 되겠냐고 묻는다. 그러자 조엘은 좋다고 말한다. 짐을 챙기겠다며 집으로 들어가는 클레멘타인. 잠시 뒤 한 남자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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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에서 가장 기괴한 작가 찰리 카우프만과 뮤직비디오계의 발명가 미셸 공드리가 만나 완성한 두 번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11월10일 개봉한다. 사랑했던 남자를 기억에서 지워버린 여자와 그 기억을 지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남자의 따라잡기 힘든 현란한 숨바꼭질이 펼쳐진다. <이터널 선샤인>의 탄생과정과 그것을 세상에 내놓은 카우프만-공드리의 합작 세계, 그리고 흥미롭게 재단되어 있는 영화의 구조를 미리 들여다본다. 그래, 세상은 요지경인데 사랑만이 불변이다. 카우프만과 공드리가 전하는 이 전언을 따라가보자.
“당신은 그/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졌습니다. 이제 그/그녀는 더이상 당신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내용이 담긴 서신 하나를 받는다면, 그 누군가의 삶은, 혹은 이야기는 이제부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이터널 선샤인>의 감독 미셸 공드리가 친구 피에르 비스무스에게 들은 아이디어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가 이 단상으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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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통해 역사와 현재를 말한다
<금발의 초원>은 20대의 꿈을 꾸는 80대 노인의 사랑 이야기다. <시니바나>(2004)는 양로원에 들어간 노인들이, 마지막 열정으로 은행금고를 터는 이야기다. <히미코의 집>(2005)은 게이 노인들이 모인 집에서 벌어지는 이해와 용서의 이야기다. <시니바나>가 영화사의 제의로 만들어진 영화라 해도, 이누도 잇신의 영화에서 일관되게 ‘노인’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누도 잇신의 영화에서, 노인은 역사의 체현자로서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시간이 보인다. 거기에 노인이 등장하면, 단지 그 인물의 시간만이 아니라 영화의 시간이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살아온 만큼의 역사가, 그 영화에 더해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영화의 폭이 넓어진다. <금붕어의 일생> 역시 1년2개월을 통해, 금붕어의 긴 역사가 보인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증명이다. 역
이누도 잇신 감독을 만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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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본 한국 관객은 4만5천명. 1천만 시대를 자랑하는 한국영화에 비하면 모래알 같은 숫자이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열광적인 팬의 지지로 1년 뒤 재개봉까지 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영화이며 감독이었지만, 영화가 개봉한 뒤 입소문을 통해 꾸준히 관객을 불러모았고 본 사람들은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거대한 해일이 될 수는 없었지만, ‘작은 영화’가 한국 영화계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는 알려주었다. 상업적인 주류영화와 예술적인 작가영화라는 구분이 아니라, 관객에게 무엇인가를 전해주는 다양한 ‘작은’ 영화들이 풍성해질 때 한국 영화계도 한 걸음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오로지 재개봉을 찾아준 관객을 만나기 위해 서울을 찾은 이누도 잇신 감독을 만났다. 둥그런 얼굴의, 선량한 표정의 이누도 잇신과의 만남은 그의 영화처럼 즐겁고,
이누도 잇신 감독을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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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미안하다는 나의 고백이다”
<사랑해, 말순씨>는 박흥식 감독이 데뷔작으로 준비했던 시나리오다.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 많이 의존한 이 시나리오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와 <인어공주>를 먼저 내놓은 뒤에 만들어지게 됐다. 박흥식 감독은 <사랑해, 말순씨>를 “성장기의 상실에 관한 영화이면서 불행한 공기에 대한, 불행이 시작되는 공기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다. 과연 그는 지금 관객들과 자신의 소년기가 어떤 교감을 나누길 바랐던 것일까? 기자시사회가 있던 10월24일 저녁 박흥식 감독을 만났다.
-영화를 본 30대 후반들은 공통적으로 <사랑해, 말순씨>의 시대 고증이 좋다고 한다.
=예산문제 때문에 정확히 하진 못했다. 촬영지인 전주의 느낌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더 가깝다. 슬레이트 지붕, 시멘트 골목, 마루와 장독대가 있는 가옥구조, 창호지 문 등에서 옛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는 있는데
<사랑해, 말순씨> 찬반양론 [3] - 박흥식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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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의아한 점은 이것이다. 왜 <사랑해, 말순씨>일까? 왜, <사랑해, 엄마>가 아니라 <사랑해, 말순씨>일까?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별다른 사전 지식이 없었으므로, 나는 박흥식은 이제 엄마가 아닌, 엄마의 ‘이름’을 부르고 있구나, 했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말순씨라고 부르는 것의 그 의미심장함. 아마도 그는 <인어공주>에서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한 발자국 나아간 게 분명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 동일한 제목이 다른 의미로 다시 의아해진다. “사랑해, 말순씨”라고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왜 하필이면, “사랑해, 은숙(주인공 광호가 짝사랑해 마지않던 여인)씨” 혹은 “사랑해, 내 십대의 추억”이 아니라, 말순씨란 말인가? 이 영화에서 말순씨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다지 특별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음을 깨달은 순간,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단순히 관객 동원용이었나, 아니면
<사랑해, 말순씨> 찬반양론 [2] - 남다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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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사랑해, 말순씨>가 오는 11월4일 개봉한다. 자잘한 우연들을 통해 남녀의 만남을 이뤄내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 구조를 통해 구질한 모녀관계를 긍정적인 현실로 이해하고자 하는 <인어공주>에 이어 1980년을 배경으로 한 14살 소년의 성장기 <사랑해, 말순씨>는, ‘나도 80년대에 소년이었다’는 문장으로 서두를 뗀 많은 성장영화들과 궤를 같이하는 뒤늦은 편지다. 그 소년들에게 똑같은 모양의 상처를 남긴 시절을 자신만의 디테일하고 온기어린 손길로 매만진 박흥식 감독의 <사랑해, 말순씨>에 대해 영화평론가 심영섭과 남다은이 각각 지지와 비판의 의견을 보내왔다. 그리고 감독에게 직접 이 영화를 왜, 어떻게 만들고자 했는지 물었다.
심영섭이 <사랑해, 말순씨>를 지지하는 이유
인간에 대한 조용한 연민이 빛난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해, 말순씨> 찬반양론 [1] - 심영섭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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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일본 아가씨
港の日本娘 | 1933년 | 감독 시미즈 히로시 | 출연 오이카와 미치코, 이노우에 유키코
시미즈 히로시의 영화들에는 추락해버려서 떠다니는 신세가 된 영혼들이 자주 나온다. <항구의 일본 아가씨> 역시 그런 주인공이 사랑과 우정의 문제로 동요(動搖)를 경험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요코하마에 사는 스나코는 헨리라는 이름의 멋지게 생긴 남성과 교제 중이다. 하지만 자신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그녀는 남자친구의 다른 연인을 총으로 쏜다. 세월이 흘러 스나코는 교도소를 나와 고베의 바로 흘러들어온다. 그 사이에 헨리는 스나코의 절친한 친구 도라와 부부 사이가 되어 있었고 고향에 돌아온 스나코는 그들과 재회한다. <항구의 일본 아가씨>는 이야기의 얼개만 놓고 보면 뻔하게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를 예상할 수 있는 영화이지만 인물들의 심리보다는 어떤 환경 속에 놓인 인물을 관찰하는 시미즈 특유의 시선에 의해 세련미를 획득했
감독의 스튜디오, 쇼치쿠 110년 [4] - 쇼치쿠 대표작 1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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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후지산을 담은 쇼치쿠의 그 오래되고 친숙한 로고 숏은 이제 영화의 인장이 스타가 아니라 감독에게 속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한 증표이기도 했다. 일본 영화사를 서술하는 이들은 그런 흐름이 대략 1920년대 초, 즉 쇼치쿠가 당시 할리우드에서 카메라맨으로 활동하던 헨리 고타니(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아홉살 때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했던)를 데려와서 영화에 대한 선진의 기술들을 전수받은 때로부터 발원했다고 쓴다.
하지만 영화사 시스템의 중심을 스타에서 감독으로 완전히 옮겨놓은 이는 기도 시로(1894∼1977)라는 인물이었다.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1924년, 서른이란 이른 나이에 쇼치쿠 가마타 촬영소의 소장 자리에 오른 그는 신파극과 가부키의 묵은 유산을 털고 내용과 스타일 양면에서 ‘모던한’ 풍취가 나는 (순)영화들을 제작하고자 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또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쇼치쿠의 감독들과 조감독들은 기도 앞에서 토론할 기회를 가졌고 외국영화들을
감독의 스튜디오, 쇼치쿠 110년 [3] - 쇼치쿠가 사랑한 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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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치쿠 누벨바그와 <남자는 괴로워>
1953년 텔레비전이 첫 등장할 때만 해도 영화계의 우려는 크지 않았다. 1958년 당시 관객은 현재의 10배인 연간 11억2745만명에 달했다. 민간방송 출범 당시 영화계도 미국에 시찰단까지 보냈지만 흐지부지되었고 방송국은 신문사들이 맡게 된다. “여기에서 영화계의 운명은 갈렸다”고 하마노 교수는 말한다. 1965년 관객이 3억6천만명으로 격감했고, 1975년엔 처음으로 일본영화 관객이 외국영화 아래로 떨어졌다. 장기가 TV의 홈드라마, 가정극과 가장 비슷했던 쇼치쿠가 가장 타격이 컸다. 이전까지 확고한 업계 1위였던 쇼치쿠는 1958년 이미 3위로 떨어졌다.
하마노 교수는 역설적이지만 “일본에 홈드라마라는 장르를 확립한 것”이 쇼치쿠의 기여라고 했다. 기노시타 감독은 1970년대 실제 <TBS>가 지원해준 기노시타 프로덕션을 통해 수많은 홈드라마들을 만들어냈다. 일본의 2대 드라마 작가 중 한명인 야마다 다이치는
감독의 스튜디오, 쇼치쿠 110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