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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 1980에 대한 연민
가작에 당선된 <날개, 1980>은 현재 영국 유학 중인 조창열(32)씨에게서 날아왔다. 막동이 시나리오 당선자와 서면 인터뷰를 시도하는 이례적인 일은 그렇게 이뤄졌다. 역시나 유학의 이유는 영화였다. 한겨레영화학교, 그리고 중앙대 연극과의 학부와 대학원을 다녔던 그는 지금 런던필름스쿨에서 연출 공부를 하고 있다. <데자뷰>라는 16mm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 영화를 공부하도록 한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단편에서 발생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여기 런던에까지 왔다”고 한다.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언제인가부터 관심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괴발개발’이라는 희곡 모임 집단에서 글쓰기를 수련하기도 했다. 시나리오 작가협회에서 <엔드 게임>으로, 영진공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아바타>로 당선된 적이 있는 공모전 선수이기도 하다. <아바타>의 경우에 완성되지는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4] - <날개, 1980>의 조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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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결혼이 위대하다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한 로맨틱코미디 <원더풀 나이트>는 이중삼중의 복안으로 재수 끝에 탄생한 와신상담의 결실이다. 당선자 이경의(26)씨는 지난해 막동이 공모에서 소동극 <3일만 버티는 남자>를 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가 올해 준비한 카드는 더블 캐스팅. 당선된 <원더풀 라이프> 외에 <이노센스>라는 시나리오를 제출한 이경의 작가는 철학을 전공했고, 대전 영화아카데미에서 시나리오를 처음 배웠다. 집필 구력은 2년, 장편은 3∼4편에 불과하지만 인터넷 방송, 독립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아이템 작가 등 짧은 기간 동안 강하게 스스로를 트레이닝한 이력을 가졌다. “그중 1년은 아르바이트하느라 보냈다”라는 것이 그의 전언. 2003년 싸이더스HQ의 시놉시스 공모에서 <전지현 따라잡기>로 당선된 일도 그가 ‘될성부른 떡잎’임을 보여준다. 등록금이 연출과보다 적아서 시나리오과로 전과했던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3] - <원더풀 나이트>의 이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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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상상력에서 뽑은 재밌는 이야기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 <공중곡예사>의 박대민(30)씨가 <씨네21>로부터 기다리는 연락은 두 가지였다.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됐다는 소식과 얼마 전 신청한 <씨네21> 데이터베이스 아르바이트에 합격했다는 소식. 그래서 “<씨네21>인데요”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이거 아르바이트 하라는 전화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순간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몇 곱절 더 좋은 낭보가 날아든 셈이다.
건축과를 4학년 2학기까지 다 다니고도, 이미 대학 3학년 때 결심했던 늦깎이 열정으로 동국대 영화과에 다시 1학년으로 입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 손을 잡고 영화관을 드나들고, 한때 유행했던 예술영화 불법 비디오테이프 보기도 불사했던 전형적인 시네필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 덥다>(2000), <이봐요, 무얼 찾고 있나요?>(2002) 등의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2] - <공중곡예사>의 박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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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결과 발표, 당선작은 박대민의 <공중곡예사>
영화배우 한석규가 전액 후원하고, 인터넷 한겨레와 <씨네21>이 공동 주최하는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결과가 발표됐다. 예년에 비해 200여편이 늘어난 총 600여편의 작품이 수상을 놓고 격전을 벌였다. 그중 박대민의 <공중곡예사>가 당선작으로, 조창열의 <날개, 1980>과 이경의의 <원더풀 나이트>가 각각 가작으로 뽑혔다. <공중곡예사>는 구한말 한 살인사건을 추적해가는 조선 탐정 이야기를 주축으로 한 역사 추리물이고, <날개, 1980>은 폭정의 시대에 형사로 일했던 자의 쓰라린 후회와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여인과의 사랑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원더풀 나이트>는 결혼을 앞둔 한 여자가 갑자기 새로운 사랑에 눈뜨는 유쾌한 로맨틱 스토리다. 심사를 맡은 권칠인 감독은 코미디가 약세를 보이는 대신 스릴러
제7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1] -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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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제2의 기술혁명 초읽기
<보이지 않는 위험>과 디지털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이 영화기술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루카스 필름은 6월18일부터 LA와 뉴욕의 네 군데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디지털 영상으로 상영하고 있다. 디지털 방식의 영화란 셀룰로이드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영화 화상을 디지털 부호로 옮겨 디지털 영사기를 통해 상영하는 영화다. 특수효과나 편집에 디지털 방식이 도입된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영화 전체를 디지털 방식으로 상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디지털 영화는 셀룰로이드 필름처럼 긁히거나 말릴 우려가 없다. 영사기 초점이 흐려지거나 릴에서 릴로 바뀔 때 생기는 시차도 없다. 무엇보다 디지털 영화는 셀룰로이드 필름에 비해 화면 해상도가 뛰어나고 명암 차이가 뚜렷하다. 색감 차이가 특히 돋보이는데 디지털 영사기는 10억개 이상의 색깔을 재현할 수 있어 화면 색깔이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을 준다. 조금
조지 루카스의 '포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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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카스 인터뷰
"평론가들 비웃음, 이제 익숙해졌다"
-인터뷰를 잘 안 하는 걸로 알려졌는데
=나를 ‘은둔자’라고 말하는 건 언론의 오해다. 영화를 만들지 않을 때 난 1년에 보통 15번 정도 인터뷰를 한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7번 인터뷰를 했다. 이만하면 외부접촉이 잦은 편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은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영화로 보인다.
=<…보이지 않는 위험>이 다른 <스타워즈> 시리즈보다 더 어린이용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 때문에 악평이 쏟아지는 거겠지만.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이거 디즈니영화구먼”하고 만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위험>이라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거다.
-영화가 과대포장돼서 역효과를 발휘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 자신의 영화가 평론가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난 내 영화에 대한
조지 루카스의 '포스' [2]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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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는 그저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영화일 뿐이다. 섹스와 같다. 섹스는 사랑과 달리 한순간의 쾌락이다. 하지만 그 쾌감이 20년 이상 지속된다면, 그것은 '최고의 ' 섹스이거나 낭만적인 사랑이다." <스타워즈>는 이미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세대의 아드레날린을 들끓게 하고 있다. <스타워즈>가 위크엔드 무비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쨌든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사회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도 <스타워즈>에 베이비붐 세대의 집단 기억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름에서 보이듯 루크는 조지 루카스 자신이고, 조지 루카스와 그의 친구 스티븐 스필버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욕망과 향수를 대리만족시켜주는 이야기꾼인 것이다.
옛날 옛적 미국에서…
영화홍보에 가장 까다로운 감독을 꼽자면, 첫손가락에는 얼마 전 작고한 스탠리 큐브릭이 꼽힌다. 스탠리 큐브릭은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 자신의 작품을 개봉할 때도 모든 것을 챙겼다.
조지 루카스의 '포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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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꽝스러운 도시 방콕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티즌 독>의 위시트 사사타니앙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말에 따르면, 위시트 사사나티앙(41)은 ‘올림픽 감독’이다. 4년 만에 한번씩 신작을 내놓기 때문이다. 타이 최대의 광고회사 필름팩토리의 주력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코카콜라,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의 광고를 도맡고 있다) 그는 “영화로는 밥먹고 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광고 일을 놓지 못하고 가끔 취미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지만, 최근작 <시티즌 독>(Citizen Dog)을 본 이들이라면 지독할 정도로 완벽성을 기하는 성미 탓에 과작의 감독이 됐을 것이라고 쉽사리 추측할 수 있다. 6개월 이상 후반작업을 했다는 <시티즌 독>(타이에선 지난해 12월 개봉했다)은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과는 또 다른 판타지의 세계로 보는 이를 안내하는 영화. 타이 고유의 의상, 건축물 등의 색감에서 뽑아낸 화려한 비주얼을 구경하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7] - 위시트 사사타니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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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보고 강혜정을 캐스팅했다”
5번째 장편 <보이지 않는 물결> 촬영 중인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은 펜엑 라타나루앙(43)의 필모그래피에서 변곡점 같은 영화다. <펀 바 가라오케> <69> 등이 로테르담, 베를린 등에 소개되면서 한때 ‘타이의 타란티노’라 불렸던 그는 타이 서민들이 즐겨 듣는 룩퉁 뮤직을 뼈대로 한 영화 <몬락 트랜지스터>로 잠시 휴식을 취하더니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에서 재기발랄함을 완전히 버렸다. 대신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정적인 화면에 깊이있게 담아냈다. 전작들에 비해 “더 느리고, 더 조용하고, 더 황폐하고, 더 신비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영화는 크리스토퍼 도일, 아사노 다다노부와의 협업의 결과물이었다. 2월24일 촬영을 시작한 펜엑 라타나루앙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보이지 않는 물결>(Invisi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6] - 펜엑 라타나루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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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는 아무 생각없이 보면 아주 쉽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35)은 방콕에 없었다. 그는 <세계의 욕망> 촬영을 마치고 고향 콘캔에서 신작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고 했다. 인터뷰 전날 그는 자신의 모교 콘캔 대학에서 워크숍 강의가 있어 도저히 방콕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전해왔다. 급한 놈이 나선다고, 하는 수 없이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떨어진 콘캔으로 날아갔다. 방콕에서 그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지만 고향에선 달랐다. <열대병>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던 그를, 지인들은 유명 감독이라며 자신의 또 다른 동행자들에게 알리기 바빴다.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면서부터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그의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병원을 가리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삭였다. 타이영화의 신성, 아핏차퐁이 새우볶음밥을 오물거리며 털어놓은 자신의 영화에 관한 짧은 주석.
-<정오의 낯선 물체>에선 시체놀이(exquisite corps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5]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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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영화 연표(1897∼1995)
활동사진에서 시작, 영화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1897
산바사트라 왕자, 출라롱컨 왕 유럽 여행 중에 유럽 여행길에 촬영장비 들여옴(그가 찍은 단편기록들은 1900년 이후 것만 발견됨). <멋진 파리풍의 촬영: 살아 움직이는 그림> 맘 차오 알랑칸 극장에서 상영.
1904∼05
일본 흥행사들, 방콕의 왓턱에 거대한 텐트 설치하고 러일전쟁 영상 등을 보여줌. 1905년에 일본 영화관 건립. 타이 최초의 영화관.
1904∼22
유럽과 할리우드에서 수입된 무성영화 상영. 캄베안베르 왕자, 정부 활동 소개 위해 시사영화제작소 설치(1922)
1923
미국 감독 헨리 멕레, 타이인들로 출연진을 구성한 35mm 무성영화 <샴국의 미스 수완> 제작.
1927
방콕영화사, 타이인이 제작한 최초의 영화 <두배의 행운> 만듦. 잇따라 최초의 영화사인 샴영화사의 <뜻밖의 사건> 완성.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4] - 타이 영화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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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옹박> 머지 않았다
90년대 타이영화 르네상스부터 2005년 현재까지의 타이 영화 산업
1996년의 어느 날. 논지 니미부트르와 위시트 사사나티앙은 방콕 쑤꿈윗가의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시파콘 예술대학 미술과 동기인 두 사람의 대화는 여느 때처럼 영화 이야기로 흘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틴에이저영화 지겹지도 않나”라는 불평을 했고, “볼 영화 참 없지” 하고 맞장구쳤다. 그리곤 만취해서 헤어졌다. 둘의 회합은 그뒤로도 계속됐다. 광고 후반작업을 위해 사사나티앙이 칸타나 스튜디오 편집실에 갔을 때 역사가 이뤄졌다. 거기엔 니미부트르가 와 있었고, 두 사람은 이날 “우리 말로만 그러지 말고 보고 싶은 영화 직접 만들어볼까”라는 데 의기투합했다.
아이템은 니미부트르가 오랫동안 품어온 1940년대 방콕을 배경으로 한 갱영화였다. 10대 영화나 슬랩스틱코미디로만 근근이 연명하던 타이영화를 바꿔보자는 심산이었다. 공동 작업 끝에 두 사람은 완성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3] - 타이 영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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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괴상한 촬영현장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세계의 욕망> 촬영 현장을 가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좀처럼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따로 지시하는 것도 별로 없다. 디지털캠코더 이동시에 곁에 있는 1∼2명의 스탭들을 손짓 아니면 눈짓으로 부르는 게 전부다. 감독이긴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액션’을 부르지도 않고, ‘컷’을 외치지도 않는다. 35mm 카메라는 모니터 앞에 다리 뻗고 앉은 한 여자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남녀 배우 두 사람도 그녀의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 반면, 위라세타쿤은 염탐이라도 하듯 캠코더를 들고 수풀 사이를 이리저리 유영하고 있다. 쓱 돌아보면 누구나 쉽사리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는 혼자서 유령놀이라도 하듯 비밀촬영이라도 하듯 자신을 숨기느라 애쓰며 35mm 구역을 맴돈다. 머리에 쓴 국방색 얼룩 모자는 어쩌면 은신을 위한 보호장구일지도.
‘액션’도 ‘컷’도 없는 조용한 현장
지난 1월21일이었다. 여태껏 본 적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2]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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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는 지금 또다른 르네상스를 꿈꾼다
인디컴이 이번엔 <아시아영화기행>을 만든다. 1995년 <세계영화기행>을 내놓으며 주목받았던 인디컴은 전세계적인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아시아영화로 포커스를 좁히는 대신 좀더 심도있는 영상물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이란, 인도, 타이, 홍콩, 중국, 중앙아시아 등 아시아 9개국과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까지 모두 10개국이 대상. 올해 10회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열돌을 맞은 <씨네21>이 후원하며, CJ미디어가 협찬하는 이 대장정의 기록은 현재 방영을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과 협의 중이다. <씨네21>은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인디컴의 취재과정에 동행하고 있고, 지난 10년 동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영화의 이해를 위한 첫 번째 디딤돌로 타이 편을 내놓는다. 전주국제영화제 3인3색 프로그램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세계의 욕망> 현장 방문기,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