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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수치로만 따진다면 여전히 지상파는 케이블과 위성TV를 압도한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의 ‘체감지수’는 좀 다르다. ‘지상파는 장르별로 날로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는 케이블·위성TV의 수십개 채널 가운데 하나의 선택지로 느껴질 뿐’이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케이블·위성TV가 지상파에 맞먹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특히 시간을 가장 알뜰하게 함축적으로, 뭐든 결론이 나게 쓴다는 지상파의 보이지 않는 원칙으로는 도저히 편성하기 힘든 프로그램들이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수많은 논점을 제공하고 있었다. 예컨대 케이블·위성TV 곳곳에 산재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괴이한 재미가 그렇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일본 드라마와 각종 외화 시리즈, 다큐멘터리, 성인 채널, 그리고 하나의 장르로 분류하기 애매한 ‘컬트 프로그램’들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와 케이블TV의 주시청층은 20∼30대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로
케이블·위성TV의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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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영혼이 거둔 상업적 성공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센세이셔널리즘 비판
데릭 엘리/ <버라이어티> 수석 영화평론가각 영화관객 세대는 자기가 받아 마땅할 역사 서사물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어떻든 간에 신세기 영화에 어울리는 반영이다.
영상에 찌들고 MTV에 길들여진 세대를 위한 성서드라마로서 이 영화는 과잉 자체를 메시지로 받아들이며 영화와 텔레비전 폭력을 종교로 삼는 관객을 위한 영화이다. 또한- 우연에 의한 것인지 의도된 것인지 몰라도- 이 영화는 <블레어윗치> 이후 미국에서 나온 가장 영리하게 마케팅된 영화이다. 이 영화가 지금까지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것은- 3억달러를 거둬들일 전망인 듯한데- 요즘 다른 할리우드 제작물의 거의 절반이 갖는 무미건조한 보수성과 미국 이익단체들의 상업적 인식을 생성할 수 있는 힘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미국 평단의 의견은 대략 50 대 5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 열풍의 핵심은 무엇인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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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의 신앙, 지켜보거나 느끼거나
하지만 열정과 신앙심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논쟁에 휩싸인 것은 그런 이유다. 자세하게 묘사된, 예수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유대인 제사장과 군중은 예수의 죽음을 광적으로 원한다. 그리고 마태복음 27장 25절에 나오는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라’라는 말을 한다(아람어로는 말하지만, 영문자막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후대에 유대인 박해의 근거가 되었던 그 구절을, 멜 깁슨은 ‘재현’이라는 이유로 감행한다. 예수를 죽인 것이 바로 유대인이었다고 말하는 듯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표현은 분명 오해의 여지가 있다. 멜 깁슨을 비롯한 그 누구도 유대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영화 속의 사건들로만 보았을 때는 책임이 있다. 게다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본 바티칸쪽에서는 ‘예수의 수난의 역사적 사실을 복음서의 설명에 따라’ 보여준다고 말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 열풍의 핵심은 무엇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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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5일 북미에서 개봉된 멜 깁슨 감독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관객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자막영화로는 최고 기록이었던 <와호장룡>을 넘어서는 것은 기본이고, 5일간 1억2520만달러를 벌어들여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기록마저 뛰어넘었다. 예수가 마지막으로 지상에서 머물었던 12시간을 그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종교영화이지만, 어떤 블록버스터 이상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제는 종교와 신앙마저도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버린 것일까? 반유대주의를 선전한다며 유대인 단체 등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은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하여 자신의 답을 구하’기 위해 종교 관련 서적을 구입하는 등 관련 상품들도 함께 호황을 누리고 있다. 4월2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일찌감치 시사회를 가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무엇이 관객을 끌어들이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 열풍의 핵심은 무엇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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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에서 전통 신화 속의 치료자 원형, 바리데기를 발견하다
크게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당대가 지난 뒤에도 호평받는 영화나 연극, TV드라마들을 잘 살펴보면 시대와 문화권을 초월하여 인간 심성 깊은 곳에 이미 내재된 보편적 주제와 감성을 다룬 서사구조를 지닌 경우가 많다. 그들 중 다수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의 갈등과 해소 도식으로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가능하다. 개인사적 경험의 더 아랫부분 심층에는 이른바 집단무의식적 경험이 존재한다. 이것은 대개 신화나 전설 또는 민담의 형태로 그 원형(原型)을 드러낸다. 그리고 역으로 이 시대의 신화, 즉 큰 대중적 영향을 끼치는 문화현상에 대해 우리 현대인들의 마음 심층에 존재하는 어떠한 주제의 투영으로서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장금이는 솜씨있는 궁중요리사로 성장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바야흐로 참된 치료자로 거듭나고 있다. 이전에도 훌
<대장금>이 보여준 여성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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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아. 사람들이 너를 오해하는 게 있다. 니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데 있어. 모두가 그만두는 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시작하는 것.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
-한 상궁의 대사 중
유일무이한 목표에 정진하는 노력형 천재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에서 유난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한 상궁이나 수의녀 장덕, 신 주부와 정 주부 등 장금 역시 만만찮은 스승 복을 자랑한다. 그러나 한 상궁, 장덕과 장금의 경우는 평범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뿐 아니라 삶의 태도와 방식까지 관여하면서 조언을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일종의 멘토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비록 장금의 수라간 나인 시절이 예정보다 길어지면서 제주도에서 수의녀와 장금이 맺는 관계와 유대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으로 처리되었지만 한 상궁과 장덕은 엄연히 각기 다른 형태의 매력적인 멘토를 대변한다. 한 상궁은
<대장금>이 보여준 여성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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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대장금>이 23일 마침내 종영했다. 시청률과 평판 측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이 드라마는 몇 가지 익숙한 코드와 함께 적잖은 새로움과 중요한 생각거리들을 제시해주었다. 우리는 그 모든 유의미한 지점들을 열거하는 대신 가장 주목할 만한 한 가지 측면에 간결하게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것은 여성성의 본질과 여성적 관계의 문제다. <대장금>은 그동안 여성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재현되었던 사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그리고 조선시대의 궁궐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달성된 유려하고 대중적인 버전의 여성주의 드라마로 기록될 것이다.
<대장금>의 인기 비결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탄탄한 구성, 만화적 상상력, 빛나는 조연, 매력적인 악인, 색다른 형식 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도 줄을 선다. 그러나 <대장금>이 <대망>이나 <다모> 등 여타의 새로운 형태의 사극으로 불렸던 작품들에 비해 <대장금>만의 미
<대장금>이 보여준 여성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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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인어공주> 출연 제안을 받았나? 어떤 점에 끌렸나.
=지난해 9월경 감독님을 만났고 10월부터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니까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싶더라. 전도연씨랑 일한다는 것도 중요했다. <질투는 나의 힘> 할 때 배종옥씨 같은 면이 있다. 만나자마자 편해졌고 마음이 통했다.
-배역 비중으로 보면 전도연씨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 그 점이 꺼려지지 않았나.
=처음부터 전도연씨 영화라는 걸 인정하고 들어갔다. 감독과 같이 일할 배우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 구애받진 않았다. 해녀라는 소재가 참 독특했다. 워낙 외국영화랑 비슷한 한국영화가 많은데 해녀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뭔가 따라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전도연씨에 비해 비중이 적긴 하지만 <살인의 추억>과는 개념이 다른 거 같다. 나만의 영역이 있어서 좋았다. 내 입장에
<인어공주> 필리핀 바닷속 촬영 동행기 [4] - 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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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는 육체적 어려움이 큰 영화로 보인다. 해녀로 나오다보니 물에서 수영하면서 찍는 장면이 무척 많다.
=원래 육체적으로 힘든 걸 즐기는 스타일이라 괜찮다. 수영을 아주 잘하는 건 아니다. 영화 찍기 전에 2∼3주간 스킨스쿠버 교육을 받았다.
-TV에서 <인어공주> 포스터 찍는 장면 보니까 물을 많이 먹고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던데 그런 장면 찍고 나면 기분이 어떤가.
=(웃음) 내 발등을 찍고 싶지 뭐. 그날 얼마나 물을 많이 먹었는지 촬영 끝나고 나서도 이틀 동안 코에서 물이 계속 나오더라.
-주요 장면을 우도에서 찍었는데 우도에서의 촬영은 어땠나.
=우도에서 찍을 때는 추위가 가장 힘들었다. 수영장에서 연습을 많이 했지만 진짜 바다는 또 다르다. 추위가 너무 심해서 발질이 안 되더라. 10월부터 우도에서 찍었는데 11월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다에 들어갔다. 좀더 추워지기 전에 다 찍어야 한다고 서둘렀는데 결국 못 찍고 여기까지 오게 됐
<인어공주> 필리핀 바닷속 촬영 동행기 [3] -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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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런 날씨와 수심 5m가 넘는 낯선 바다에 대한 두려움
이튿날인 3월8일, 본격적인 촬영이 진행됐지만 취재진은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풍랑이 심상치 않은데다 첫날 촬영이 연기되면서 제작진의 신경이 곤두선 탓이다. 새벽에 촬영을 나간 제작진이 돌아온 것은 밤 7시가 넘어서였다. 그들은 모두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풍랑이 심해 몽땅 젖은 것이다. 이날 수중촬영팀은 9시에 물에 들어가 6시까지 점심식사도 거르고 9시간 동안 물에 떠 있었다. 스쿠버팀에게 9시간 동안 물에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물어봤더니 이렇게 답한다. “물속에서 100m를 가는 것은 지상에서 300m를 달리는 것과 맞먹는다. 체온은 지상보다 25배 빨리 뺏긴다. 전문가라 해도 웬만한 체력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스쿠버팀에 비하면 덜 힘들다 해도 전도연씨도 체력의 한계를 느낄 정도로 오래 물에 있어야 했다. 수중촬영의 경우, NG가 나더라도 물에서 나와서 쉬다가 다시 들어
<인어공주> 필리핀 바닷속 촬영 동행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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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감독, 전도연, 박해일 주연의 <인어공주>가 필리핀 세부에서 마지막 촬영을 했다. 딸이 우연한 계기로 젊은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목격한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국내 촬영을 마쳤고 지난 3월6일부터 11일까지 필리핀에서 수중촬영 장면을 찍었다. 제작진과 동행해 취재한 <인어공주> 수중촬영 현장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보자.
“짐 이리 줘. 밑에 놓을게.” 지난 3월6일 필리핀 세부행 비행기, 뒷자리에 앉아 있는 전도연씨가 필름통을 받아든다. 앞뒤 좌석 간격이 좁기로 악명 높은 필리핀항공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있는 그는 마치 프로듀서 같다. 비즈니스 좌석이 아닌 걸 불평하기는커녕 스탭들이 책임질 필름통까지 나서서 챙긴다. 전도연 같은 스타가 스탭과 똑같은 대접을 감수하다니, 내심 놀래 뒤돌아봤지만 그의 행동이 가식처럼 보이진 않는다. 웬만한 배우면 지방촬영 때 묵을 호텔의 수준까지 미리 출연계약서에 못박고 들어가는 요즘
<인어공주> 필리핀 바닷속 촬영 동행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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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17일 수요일
우림_ 나쁜 놈
오늘은 비를 아주 실컷 맞았다. 교실에서는 내다보다가 얼굴 다 젖고, 두 번째 신은 우산을 쓰고 여민이가 토끼 밥 주는 것도 1번에 OK, 고마워하는 것도 1번에 OK, 마지막으로 여민이 얼굴 따는 데 두번이나 자기 찍는다고 나는 등 다 맞고 머리 젖고, 그래도 촬영이라 꾹 참았지. 나~~~아~~~쁘~~~은~~~넘~~~!
2003년 12월18일 목요일
우림_ 우림이의 첫 등장
# 촬영한 지는 꽤 되었지만, 오늘이 우림이가 처음 등장하는 날이었다. 새침데기, 미워할 수 없는 허풍선이 우림이의 첫 등장이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천사 같이 오는 우림. 속내가 궁금하다. #
여민_ 첨 먹어본 꽁보리밥
점심 시간 보리밥 먹는 신이다. 나는 완전한 보리밥이라 억지로 먹고 체해서 토하고 약 먹고 겨우 찍었다. 옛날 도시락이 이상하게 생겼고 어디서 구했는지 신기하다. 영화를 위하여 소품들도 신기하고 특이한 것을 많이 구해 오셨다. &
<아홉살 인생> 꼬마들이 쓴 촬영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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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23일 일요일
여민_ 연속 촬영 몇 주째
오늘은 싸우는 신이다. 보조 출연 아줌마 아저씨들이 많이 왔다. 노인회관이 좁아서 할아버지들에게 미안하고 정신이 없었다. 계속 연속 촬영 몇 주째. 이제는 몸이 아프고 감기가 온다. 오늘은 다행히 일찍 끝났다. 피곤하다. 나보다 물통 메는 아저씨가 더 힘들어 보인다. 미안하다.
2003년 11월27일 목요일
여민_ 홍보 비디오
아침 8시 집합. 날씨가 흐려서 홍보 비디오 찍는 데 힘들었다. 원래는 오늘부터 촬영인데 비가 와서 30일부터 찍는다. 홍보팀 누나 형들이 잘해주었다. 나는 눈에 카리스마가 없어서 홍보 비디오 찍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기종, 금복, 제비, 우림, 나, 다섯명 다 고생하고 잘 찍었다. '
2003년 11월30일 일요일
우림_ 두 번째 촬영
오늘은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촬영을 하는 날이다. 점심을 먹고 한참 기다리다가 촬영을 했다. 랩을 칭칭 감고 물에 들어갔다. 빠지는 것을 내가 하
<아홉살 인생> 꼬마들이 쓴 촬영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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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인생 ‘첫 번째 아홉수’ 이야기
“아저씨가 감독이에요?” <아홉살 인생>의 촬영장에는 이렇게 태도 불량(?)한 배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10명 안팎의 아이들이 이끌어가는 영화 속에서 연기 경험이 있는 배우는 단 두 사람. 나머지는 카메라 앞에는 사진 찍을 때말고는 서본 적 없던 초짜 배우들이었다. 연기의 테크닉이나 영화의 메커니즘을 이들이 알 턱 없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엉뚱한 상상력과 팔팔한 에너지, 또래간의 우정과 경쟁심, 로맨스가 싹트고 꽃피며, “인생을 알기에 충분한 나이” 아홉살을 넘긴 십대 초반의 꼬맹이들은 영화 속에서 몇 계절을 살았고 또 그만큼 자라났다. 5인의 아역배우가 수줍게 내민 촬영일기에서 ‘영화 찍기’에 대한 이들의 고민과 다짐을 엿본다.
10월14일 화요일
우림_ 물에 빠져서
오늘은 충북 제천에 가서 물에 빠지는 신을 찍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6시쯤 영화사에 도착했고 6시30분에 출발했다. 3시간 동안 달리고 달려
<아홉살 인생> 꼬마들이 쓴 촬영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