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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시나리오는 좋은 영화의 필수 요소다. 영화의 뼈대이자 토대라 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탄탄하기만 하면 캐스팅이나 연출력, 자본 등 다른 요소의 장애를 어느 정도 뛰어넘을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만만치 않다. 시나리오 작업은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며, 가장 힘이 많이 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각장애 여성과 버스 운전기사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안녕! 유에프오>(감독 김진민)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1996년 12월 단편 옴니버스 시나리오에서 출발해 2004년 마침내 영상으로 옮겨지기까지 8년 동안 작가들의 피를 말리고 애간장을 태웠으며, 사소한 기쁨과 무한한 좌절을 맛보게 했던, 이 예사롭지 않은 제목의 <안녕! 유에프오> 시나리오의 ‘제작’ 과정을 이해영, 이해준, 김지혜, 세 작가의 시점으로 만나본다.
1996년 12월
이해영_ 8월의 <투캅스3>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보기좋게 낙방했다
<안녕! 유에프오> 시나리오 ‘제작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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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추석은 공중파 방송사에서 비교적 최신영화를 마음먹고 보여주는, 달리 말하면 돈없는 영화팬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호기다. 올 설 연휴에는 최신영화는 물론 보기 쉽지 않던 옛날 영화들도 만나볼 수 있겠다. 2003년의 화제작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에서부터 “아저씨~”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까지 당신의 3박4일 방콕여행을 책임질 TV영화 추천작 가이드.
춘사에게 바치는 오마주
<벙어리 삼룡>
나도향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신상옥 감독의 <벙어리 삼룡>은 1960년대 한국 문예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춘사 나운규의 1929년작 <벙어리 삼룡>에 바치는 오마주이다. 원작소설은 아마 웬만한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에 한번쯤 읽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와 함께 신상옥 감독의 3대 걸작 문예영화 중 한편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상옥 감독은 나운규의 무
설특집. 설연휴 볼거리, 읽을거리 [6] - TV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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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 사이 ‘∼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이 부쩍 많아졌다. 이를 두고 미시사의 부각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제목의 책 대부분은 역사학에서 말하는 미시사와는 상관이 없다. 일부 온라인 서점은 그런 책을 미시사로 분류해놓았고 언론매체 서평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역사학자들과 한번이라도 상의해봤는지 의문이다.
‘∼의 역사’가 많아지는 건 자료검색형 혹은 자료수집형 독서의 확산을 반영한다. 특정 주제에 관해 가능한 한 방대하고 정확한 자료를 확보하려는 지식정보욕구가 그런 책을 요구한다. 확장형 및 심화형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터넷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자료의 한계를 양적, 질적으로 뛰어넘는 책들이기도 하다. 물론 앎을 두루 넓히는 데만 소용이 닿는 건 아니다. 새로우면서 흥미로운 갖가지 사실들을 즐기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성(性)
처음부터 좀 세게(?) 나가보자. 넓은 의미의 성(性) 관련 역사서다. ‘20세기 서구는 오르가슴을 강요하는 사회’라는 흥미로우
설특집. 설연휴 볼거리, 읽을거리 [5] - 역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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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겨울바람 때문에∼. 하지만 걱정할 게 무어랍니까? 극장에 가면 뜨뜻하게 앉아서 팝콘과 콜라를 즐기며 상상의 나라로 떠날 수 있는 것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하지만 영화 속에는 존재하는 산 ‘아시아크’를 찾아 <빙우>를 볼까, 아니면 78년 고딩 청춘들의 뼈아픈 성장기를 따라 ‘말죽거리’를 찾을까. 부산영화제에서 재밌다고 입소문난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에, 얼짱 신드롬을 낳은 남상미가 출연하는 <그녀를 모르면 간첩>까지, 모든 장르와 모든 스타들을 만날 수 있는 설 극장가가 이 두 페이지에 있소이다!
<안녕! 유에프오>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처럼 시각장애 여성과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리는 따뜻한 멜로영화. 시각장애인 경우는 UFO, 그러니까 미확인 비행물체를 ‘믿는다’. 시각장애인 경우에게 어린 시절 보았던 UFO의 기억은 신비한 외계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삶과 존재에
설특집. 설연휴 볼거리, 읽을거리 [4] - 개봉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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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추석, 나는 약간의 각오를 하고 고향집으로 갔다. 내게는 집과 작업실에 몇 마리의 고양이 동거자들이 있는데, 부모님이 잔소리를 하실까 지레 겁을 먹고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실제로 전화를 하다가 내 방의 고양이 소리가 들리자, ‘고양이는 안 좋네’ 하면서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하셨다. 그때는 텔레비전에서 나는 소리라고 둘러대기도 했지만, 그 이후 내가 고양이에 관한 책을 냈고 이제는 도망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렇게 잔소리를 들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집에 들어간 순간, 나를 먼저 반긴 것은 어머니도 조카들도 아닌,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였다. 그 사이 형의 가족이 시추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고, 녀석의 애교에 부모님이 이미 넘어가버리셨던 것이다. 덕분에 나의 고양이 동거 생활도 은근슬쩍 묻혀버리게 되었다.
두세집 건너 한 마리씩 동물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물론, 새와 물고기, 파충류와 곤충류도 차례상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사실 만화만
설특집. 설연휴 볼거리, 읽을거리 [3] -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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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소문난 음악 마니아 9명이 2003년 최고의 음반을 꼽았다. 하지만, 이 리스트는 연말이면 각종 음악매체에서 발표하는 ‘올해의 음반’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들이 뽑은 최고의 음반은 ‘음악성’에 의해 선정된 게 아니라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감흥과 사연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인 각각의 성격 또한 드러나는 2003년 ‘나만의 베스트 앨범’ 9장, 아니 8장(<킬 빌: Volume1> O.S.T는 두명이 지목했으므로)을 소개한다.
황홀한 오리엔탈리즘
〈Wild Serenade〉I DuOuD I 국내 미발매
정성일/ 영화평론가
사실 나는 21세기에 들어서서 중동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중에서도 (내 맘대로 부르자면) 알제리 테크노와 터키 가요들, 그리고 이집트 뽕짝, 혹은 이라크 포크송, 혹은 북아프리카 하우스에 심취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어느 음반을 사야 할지 도무지 가이드를 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영화제들을 돌아다닐 때마다 산 중동
설특집. 설연휴 볼거리, 읽을거리 [2] -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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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를 몸으로 뼈저리게 느낄 정도로 따뜻한 날씨에 설날 기분은 나지도 않지만, 어쨌든 설날은 돌아오고, 장장 5일 연휴라는 황금과도 같은 휴가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연휴면 뭐하냐구요? 돈이 없으니 시간이 있어도 여유가 없다고요? 동남아 여행 같은 건 카드빚이라도 내지 않는 한 그저 남의 일이라구요? 쯧쯔… 무슨 그런 말씀을! 동남아를 가야 연휴 맛인가요, 어디. 자, 여기 <씨네21>에서 마련한 설 특별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조금 여유있으시다면 <씨네21>에서 추천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베스트 서플먼트 DVD를 구매하셔도 좋을 테고, 아니면 돈 한푼 안 드는 TV영화 올 가이드를 참고 삼아 방콕여행하셔도 좋겠죠? 가족, 친구분들과 함께하면 더 해피할 설날 보내세요.
DVD 베스트 서플먼트 10선(選)
너희는 영화 보니? 난 서플 본다
이제 본편영화만을 볼 생각으로 DVD 타이틀을 구매하거나 대여하는 인류는 멸종해가고 있는 듯이 보인
설특집. 설연휴 볼거리, 읽을거리 [1] - 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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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판타지의 비극까지 직시하다
감독 P.J. 호건
빈사의 팅커벨을 관객의 박수로 살려내는 연극의 명장면은 영화 <피터팬>에도 남아 있다. 다만 영화는 객석의 박수를 “나는 요정을 믿어!”(I do believe in fairies)라고 곳곳에서 독백하는 사람들의 몽타주로 대체한다. 온 세상 아이와 어른이 환희의 미열에 들떠 “아이 두!”의 후렴을 거듭 외친다. 마치 주례 앞에 선 <뮤리엘의 웨딩>의 토니 콜레트처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카메론 디아즈인 양 복숭앗빛 홍조를 만면에 떠올리고.
지금 와서는 P. J. 호건 감독의 ‘I do 3부작’이라고 묶어도 그럴싸하지만, 결혼식이 등장하는 코미디 두편으로 주목받은 감독을 대규모 예산의 실사영화 <피터팬>의 감독으로 낙점한 것은 약간의 상상력을 요하는 결정으로 보인다. 소니 스튜디오를 떠나면서 <피터팬> 기획을 지참금 삼아 들고 나온 제작자 루시 피셔는 자신의 <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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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닫은 웬디, 창 밖의 피터
아이들은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 단 한명만 빼놓고. 피터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달아나버렸다. 그의 완벽한 세계는 어른을 원하지 않는다. 네버랜드의 판타지로 초대받을 수 있는 것은 어린이뿐이다. 어른의 세계는, 단순히 행복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날아다니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어린 영웅을 요구하는 판타지는 <피터팬>만이 아니다. C. S. 루이스의 <나니아 나라 이야기> 시리즈의 주인공은 어린 네 남매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해리도 물론 소년이다. 르 귄의 대표작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의 1, 2편은 각각 게드와 테나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출발하고, 3편의 아렌 역시 미숙한 소년이다. 어찌보면 <반지의 제왕>도 그렇다. 반지원정 당시 프로도는 50살로 어리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락한 샤이어 밖으로 나와본 적 없는, 그리고 누군가 계속 돌봐줘야 하는 무력한 존재다.
판타지에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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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새로운 금광, 아동 판타지
2001년 나란히 개봉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 제왕> <슈렉>은 그해 박스오피스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 세 작품이 벌어들인 수익이 그해 전체 매표 수익의 10%를 차지했을 정도. 이들 작품은 모두 아동 소설을 토대로 한 판타지영화였다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이는 캐릭터가 강하고 스토리가 매력적이며 볼거리가 풍부할 뿐 아니라 잠재관객이 친숙함을 느꼈기 때문. 할리우드의 흥행사들이 이런 안전판을 놓칠 리 없다. 최근 몇년 새 할리우드의 주요 스튜디오들은 경쟁적으로 아동 문학이라는 금광으로 달려들었고, 조만간 그 성과가 드러날 전망이다.
지난 1999년 이래 총 8권까지 출간된 인기 시리즈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파라마운트에서 영화화되고 있다. 화재로 부모를 잃은 어린 상속자들이 재산을 빼앗으려는 친지들의 음모에 대항한다는 모험담. 아이들의 목숨을 노리는 사악한 친척 카운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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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학살이 공존하는 네버랜드
어쩌면 호건은 원작에 충실하자는 가장 단순한 원칙만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그 원칙을 지킨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피터팬>은 1924년작 무성영화, 1953년과 2002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몇 차례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TV영화,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크> 등으로 각색됐다. 후일담을 제외한다고 해도 이 많은 <피터팬>은 잃어버린,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을 향한 향수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열두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누구나 행복해지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그러나 네버랜드는 독약과 학살과 질투도 있는 섬이었다. 자라지 않는 소년과 “미안해, 난 어른이 되어야 해”라고 말하는 소녀가 정을 나눈 비극의 섬이 웬디는 엄마 달링 부인이 가진, "오른쪽 끝에 키스가 숨어있는 입술"을 동경한다. 그러나 웬디는 이제 자라야 할 시간이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기도 했다. 그 충돌과 모순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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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to 'REAL' Never Land!
<피터팬>은 그 주인공처럼 늙지 않는 판타지다. 1904년 희곡으로 태어난 <피터팬>은 1911년 소설로 무성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1953년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2002년의 리메이크 <리턴 투 네버랜드>로 영원한 유년을 반복했다. 그리고 J. M. 배리의 <피터팬>이 런던에서 초연된 지 100년이 되는 지금, 살아 있는 사내아이의 육체를 가진 사상 최초의 피터팬이 스크린을 통해 날아들었다. P. J. 호건 감독의 <피터팬>은 티없이 건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풍부하기 때문에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판타지로 완성됐다. ‘완역판’ 영화 <피터팬>은 어떻게 누구에 의해 탄생했는가? <피터팬>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이후 판타지 트렌드의 어디쯤을 날고 있는가? 판타지는 왜 어린 영웅의 모험을 먹고 꽃을 피우는가? 네버랜드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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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 영화에선 좋은 교사가 한명도 안 나오잖아. 와, 그거 되게 좋더라고. 사실, 우리 때는 그런 선생님들이 부지기수였잖아.
유하 | 시나리오를 쓸 때나 영화를 찍으면서 한 가지 의문사항이 들더라고. 교사들이 아무 개연성 없이 애들을 때리잖아. 그런데 그 당시를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그냥 연결이 돼. (웃음)
김성수 | 교실에 들어오면서부터 때리기 시작하잖아.
유하 | 오히려 영화적으로 점잖게 다룬 셈이지.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맞은 기억밖에 없어서…. ‘맨소래담’이 필수품이야. 1학년 때는 키가 크니까 선도부 하라고 맞고, 기수 하라고 맞고. 알루미늄 배트 있잖아, 그걸로 맞으면 머리까지 충격이 와.
김성수 | 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나니까 기분이 어떠냐.
유하 | 사실 이런 얘기는 오히려 서른다섯 때까지 정말 하고 싶었는데, 좀더 나이가 들어서 하니까 장점이 있더라고.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라고. 그래선지 쿨하게 만들 수 있었어. 사실 나는 70년대에
유하-김성수 감독 <말죽거리 잔혹사> 대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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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 시나리오 읽었을 때도 한 말이긴 하지만 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현수가 은주를 사랑하지만 고백도 못하다가 상처를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희망을 갖고, 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 같다는 거야.
유하 | 그게 너랑은 안 맞았을 수 있어. 너는 여자한테 딱 한번 대시해봐서 ‘아니면 말고’ 그러잖아. (웃음)
김성수 | 그게, 네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야. (웃음) 그런데 은주는 우식이랑 같이 떠났던 거지?
유하 | 떠났다가 돌아온 거지. 오래 갔겠니. 한 5일 됐겠지. 시나리오상에서는 우식이랑 은주랑 살림을 차려. 지방에서. 그게 그 당시를 보면 리얼한 부분이 있었거든. 근데 다들 비현실적이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뺐지. 우식이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 있지만 어차피 성장영화이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설명이 필요없을 거라고 생각해. 사실 난 우식이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뭐, 나이트클럽이나 왔다갔다 했겠지, 뭐.
김성수 | 어, 근데 난 우식이가 궁금하
유하-김성수 감독 <말죽거리 잔혹사> 대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