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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영화수용문화의 중심인 비디오숍의 우수 운영자들을 후원하고 전국 곳곳에 숨은 우수 비디오숍들을 발굴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마련했습니다.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한 제1회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씨네21>은 지난호에서 비디오대여업계의 현황과 전망을 살펴보는 기획 '비디오숍에도 봄은 오는가'를 실었습니다.
이번호에는 이번 '2000 씨네21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에서 뽑힌 30개 숍 가운데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5개 숍을 탐방하고 운영자를 소개합니다.
또 비디오숍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대여문화 백양백태를 콩트로 엮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관심갖고 지켜봐준 비디오숍 운영자 및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국영화 컬렉션, 이보다 많을 순 없다
우수 비디오숍 1 - 경희대 앞 미래영상, 손태영씨
통신을 통해, 혹은 비디오를 컬렉션하는
2000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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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에 대해 다 동의하는 분위기인데 혹자에 따라서는 더 세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정색하고 욕을 한다든지 동성애 느낌이 드는 면을 더 줄 수도 있고, 하여 본인이 더 욕심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어요.
=감독님하고 조율한 부분인데 감독님이 표현하려고 하는 게 오히려 어색함에서 오는 섬세한 뉘앙스랄까 이런 게 있는데. 물론 그렇게 생각하신 분들이 있을 테고. 오히려 이영애의 연기력 여하에 따라 달라졌다고 하면 할말이 없겠지만 저도 더 갔으면 좋겠는데 감독님은 줄여서 가고 오히려 낯선 게 더 재미있지 않겠느냐 하세요. 감독님이 한번 더 한번 더라는 닉네임을 저한테 주신 이유도 그래요. 저는 캐릭터에 대한 기준을 모르겠는 거예요. 이게 좋은 건지, 저게 좋은 건지. 그래서 감독님은 확신을 하고 오케이를 주셨는데 내 선에서는 이게 정말 맞는 것인지에 대한 모호함이 현장에서 많이 있었죠. 그래서 전 계속 테이크를 많이 가고 싶어했고 감독님 선에서는 왜 자기를 못 믿느냐는
이영애의 재발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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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세게 가길 원했는데 감독님이 줄여 가자고…”
낯을 많이 가릴 거라는, 또는 지적으로 난감한 질문을 잘 피해갈 거라는 선입견은 이영애의 다갈색 눈동자 앞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지그시 상대방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때로는 까르르 웃음을 던지고 때로는 신중하게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한명의 배우가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오히려 불쑥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을 하는 그에게서 엉뚱하고 장난기 많은 금자씨의 단면을 보았다. 박찬욱 감독이 양보해서 더 세게 찍을 수도 있는 걸 약하게 간 것이 아니냐는 음모성 질문부터 왜 스캔들이 없느냐는 잡담성 질문에까지 웃음을 머금고 일일이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복수하는 금자씨의 여유를 보았다. 인터뷰 중간에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절한 금자씨> 전야제 표를 잃어버렸다는 아버지에게 친절하게 일러주는 장면에서 여느 상냥하고 귀여운 여염집 딸을 보았다. 그는 소속사
이영애의 재발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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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에서 13년간 갇힌 금자씨 이영애는, 스스로 후광을 발하며 한밤중 어두운 교도소를 은은하게 빛낸다. 그 빛은 옹색한 감방 창살을 넘어서 교도소 밖까지 미친다. 중세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그림을 패러디한 이 장면은, 여신 같은 이미지로 지상에 현현한 CF모델로서의 이영애를 패러디하는 듯하다. 그러나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CF모델로서의 이영애가 아니라 데뷔한 지 13년 된, 그리고 재능이 흘러넘치는 배우 이영애의 후광이다. 이영애는 대중의 선입견에 갇혀 있지만, 배우로서의 연기력과 잠재력은 관객의 편견을 넘어서 비추고 있다는 것이 이 장면의 또 다른 메시지가 아닐까.
여신처럼 보이는 우아한 자태와 산소만 먹고 사는 듯한 살결과 그리고 길게 늘어뜨린 옷자락 때문에 종종 배우 이영애가 보이지 않거나 잊혀질 때가 있다. 노희경의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의 작부 애숙이나, 드라마 <대장금>에서의 장금, 또는 허진호 감독의 <
이영애의 재발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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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인력이 16년이라는 시간을 끌게 만들었다”
“오토모씨가 쓰러졌어요. 병원에 입원하셨답니다”라는 비보를 들은 것은 서면 인터뷰의 답변을 받기로 했던 날로부터 겨우 이틀 전이었다. 혹여나 인터뷰가 성사되지 못하면 어쩌나 고민하는 동안, 병원에 누워 있는 오토모 가쓰히로의 구술을 받아 정리하고 있다는 영화사의 소식이 전해졌고, 인터뷰는 어렵게 도착했다.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이 중요하다는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의 병상에서 쓴 인터뷰.
-<아키라> 이후 16년 만의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산고 끝에 개봉시킨 감회는.
=시간이 걸린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자금 조달 사정 때문이다. 또한 애니메이션계의 인재가 부족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한 부분 한 부분 미묘하게 표현돼야 하는 수작업이 많은 관계로, 능숙한 기술을 가진 인재들을 확보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스팀보이>는 어떻게 떠올린 프로젝트인가.
=<메모리즈>의 에피소드
<스팀보이>와 오토모 가쓰히로 [4]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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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펑크의 자장 속에 꿈틀대는 희망
스스로가 스팀펑크(Steam-Punk) 장르에 속해 있음을 고백하는 <스팀보이>의 제목은 모호한 <아키라>에 비해 참으로 직설적이다. 스팀펑크는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실제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가상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체역사 장르. 사이버펑크 계열의 SF작가들에게 적극 수용되어졌던 이 장르는 오랫동안 일본 아니메의 환대를 받아왔다(증기를 내뿜으며 걸어다니는 하울의 성!). 근미래를 다룬 작품들을 만들어왔던 오토모가 스팀펑크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 이유는 “<메모리즈>를 계기로 “증기기관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인터뷰의 조각들을 찾아본다면 “증기기관이야말로 진정한 인간혁명의 시작”이라거나, “내가 상상해왔던 세계를 능가하는 시대”라는 답변들을 찾을 수 있다. 오토모가 <스팀보이>에서 그리는 것은 순진할 정도로 테크놀로지에 대한
<스팀보이>와 오토모 가쓰히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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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시대 발명가 소년의 활극 <스팀보이>
우연의 일치겠지만 오토모가 <스팀보이>를 기획한 1994년은 <아키라>가 마침내 제작비를 완전 회수한 해였다. 새로운 꿈을 품어볼 만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스팀보이>의 제작과정은 <아키라>와 여러모로 닮아 있어서, 그 고난의 세월을 묘사하려면 한권의 책을 온전히 바쳐도 불가능할 것이다(참조/ 박스2). 거쳐간 회사만도 ‘스튜디오 4℃’에서 ‘선라이즈’와 ‘프로덕션 IG’까지, 일본 최고의 아니메 제작사들이 줄줄이 개입한 뒤에야 <스팀보이>는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아키라>의 후속편이 아니다. 관객이 그같은 기대를 가지지 않고 봐주었으면 한다”는 오토모의 빈번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10여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던 대중의 기대치는 과중한 압력을 받은 증기기관처럼 스팀을 뿜어대고 있었고, 그들이 바랐던 것은 <아키라>의 뒤
<스팀보이>와 오토모 가쓰히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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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메의 성서가 되어버린 <아키라>로부터 16년. 오토모 가쓰히로의 두 번째 장편 아니메 <스팀보이>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작기간 10년, 일본 아니메 역사상 최고인 제작비 24억엔, 역시 아니메 역사상 최고의 작화 수 18만장. <스팀보이>는 무시무시한 규모로 완성된 일본 아니메 기술력과 자본력의 극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키라>와 <스팀보이>를 중심으로 고집스럽게 자신의 세계를 지켜온 완벽주의자의 세계를 살펴보고, 도쿄에서 날아온 서면 인터뷰를 싣는다.
2003년 여름. 영국의 어느 지방도시. 아이맥스 극장 앞에 20대 젊은이 서너명이 모여 있다. 극장에는 “<아키라> 아이맥스 재개봉”이라는 문구가 큼직하다. 두리번거리던 젊은이 중 하나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한다. 6명의 젊은이들은 하얀 알약을 하나씩 삼키고 극장으로 들어섰다. 극장 안에는 10대 후반에서 3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스팀보이>와 오토모 가쓰히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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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민 | 연기자로서 감독과 교감한다는 말들을 하죠. 감독과 교감한다는 건 어떤 건가요. 문소리씨의 경우엔 어떻게 교감하시는지, 벽을 느낄 때는 어떻게 푸시는지 궁금한데요.
문소리 | 중요한 건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를 알아내는 것이죠. 시나리오 보면서 짐작할 수 있는 것 말고 이면의 것, 위아래의 것을 알고 찍는 게 중요하거든요. 교감하려고 하고 소통하려고 해요.
오기민 | 이건 아니라고 했는데, 동의 못했는데, 감독 요구 때문에 간 적도 있나요.
문소리 | 있죠. 하지만 끝까지 의논해요. 주먹다짐 직전까지 의논해요. 과감하게 얘기하기도 하고 애교 떨며 얘기하기도 하고. 그래도 감독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생각해도, 연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걸 내 몸에 넣어서 해 보겠다는 거죠. 다른 걸로 더 찍으면 안될까요, 제안하기도 하구요. 많은 남자 감독들이 여배우와 소통하기 어렵다고 해요. 그게 누구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과감
영화인 7인 특강 전문 [6] - 문소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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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무슨, 담소나 나누죠. (웃음) 제가 강의 제안을 많이 받아요. 교사인 친구들한테도 강연 요청에 시달리곤 하는데, 모든 강연을 정중히 거절하는 입장이예요. 저 보고 지적인 이미지라고들 하시는데, 진짜 지적인지는 어느 누구도 확인한 바 없으나(웃음), 그런 이미지 때문에 강연 요청에 시달리는 것 같아요. 제가 어느 누구에게 강의를 할만한 연배도 아니고, 일가를 이룬 것도 아니잖아요. 이제 시작했고 박차를 가하고 있는 와중이라,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엔 모자라죠. 그래서 10년 20년 하고 난 뒤에 생각해 보겠다는 말로 거절했는데, 씨네21에는 거절 못했어요. 애정이 있기도 하고, 친분을 통한 압박도 있었고, 그래서 거절을 못했어요. 일방적인 강연이 아니라 서로 궁금한 것들을 나누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네요.
오늘 강연 제목이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캐릭터’로 돼 있던데, 다양한 장르 안에서 다양한 캐릭터 소화한 배우로 판단해 주셨던 것 같네요. 나에 대해 무슨 할말이 있을까,
영화인 7인 특강 전문 [5] - 문소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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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으로 영화 데뷔하는, 드라마 PD 안판석
방송국 스타 PD 15년 만의 외출
‘노났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 횡재했을 때 사람들은 “노났네” 한다. 2003년 1월, 안판석은 15년 동안 다녔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짝>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현정아 사랑해> 등을 연출하면서 MBC 드라마 간판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그가 일을 그만둔다고 하자, 동료들은 그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서 외주 프로덕션에 스카우트된 줄 알았고, 다들 “노났구먼∼”이라고 한마디씩 했다. 회사를 그만둔 직후, SBS에서 <흥부네 박터졌네>를 연출할 때까지만 해도 주위의 반응은 그랬었다. “영화하겠다고 말하기는 뭣해서 그냥 나왔는데 전에 프리 선언하고 그만둔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 그렇게들 생각하더라.”
그의 나이 마흔다섯. 두툼한 봉급 마다하고 영화판으로 뒤늦게 뛰쳐나온 그의 갈증은 무엇이었을까. “드라마를 불끄고 집
그가 감독이 됐다 [3] - 안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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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다이>로 영화연출 데뷔하는, 배우·설치미술가 이상현
<거짓말>의 제이는 잊어도 좋다
혹시, 그러니까, <거짓말>의 이상현이냐고? 맞다, 그 이상현이다. 그렇다고 와이를 묶고 때리고 쑤시던 <거짓말>의 제이를 떠올리면 안 된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이상현은 SF영화 <해피다이>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감독 지망생이다. 설치미술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다가 일약 배우로 변신한 바 있는 그이기에 영화 연출을 맡는다는 게 뜬금없이 느껴지진 않는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집 대문에 극장 포스터를 붙이게 해주고 받은 초대권으로 극장을 공부방처럼 들락거렸고, 한국의 대학에서 사진을 배운 덕에 조각 전공으로 독일에서 유학할 때도 친구들의 단편영화 작업에서 카메라를 잡았던 그가 아닌가. 물론 시네키드로 살았다는 사실이 쉰 넘은 나이에 입봉을 준비하는 그의 사정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사람들에게 내 뜻을 전하는 데 가장 강력
그가 감독이 됐다 [2] -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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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감독이란 단어는 뭔가 미숙하지만 싱싱하고, 빈약하지만 푸릇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런 신인감독만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일가를 이뤘지만 영화연출이라는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에 선 박광정, 이상현, 안판석이 그들이다. 연극, 미술, TV분야에서 성공이라는 고지를 정복한 이 중년 남자들이 자세를 낮춰 일개 신인 영화감독이 된 사연은 각기 다르다. 하지만 오랫동안 품고 있던 꿈을 늦게나마 끄집어냈다는 점만큼은 매한가지다. 살찐 소파 속에 안주할 수 있는데도 벌떡 일어나 황량한 극지로의 여정에 나선 이들이기에 용기와 패기가 20∼30대 신인감독에 떨어진다 말할 수 없을 것. 게다가 셋 모두 영화와 매우 밀접한 영역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절반쯤은 검증된 게 아닐까. 세월의 풍파를 겪었지만 완숙하고, 풍성한 세계를 품고 있는 중고 신인감독 3인방을 소개한다.
<가마다 행진곡>(가제)으로 영화연출 데뷔하는, 배우·연극연출가 박광정
영화가 부
그가 감독이 됐다 [1] - 박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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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UFO 떴다
누구나 다 아는 전설이 팀 버튼식으로 변하기까지
팀 버튼은 의뭉스럽다. ‘1799년 뉴욕’이라는 설명을 달아 마치 <슬리피 할로우>가 역사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 양 착각하게 하지만, <슬리피 할로우>는 지상에 없다. 팀 버튼의 주인공들이 현실세계에 안착하지 못하듯 그는 언제나 현실 밖에 이상한 나라를 만들어왔다. 누군가의 지적대로, 그 나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기폐쇄적인 세계(singular self-enclosed world)다. 마치 이미지의 독재자처럼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믿음대로 그 나라를 통제한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가 그러하듯, 팀 버튼의 영화는 무엇보다 먼저 화면 그 자체를 살펴야 한다. 표면을 읽음으로써 심층을 헤아리는 게 팀 버튼의 영화에서는 가능하다.
스타일화한 자연주의, 모순된 세계를 찾아서
팀 버튼 사단이 다시 뭉쳐 만든 <슬리피 할로우>는 더 깊어진 팀 버튼의 비전을 보여
이상한 동화나라의 팀 버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