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에서 미리 만난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5월25일 런던에서 장막을 걷어냈다. 오래전부터 가장 무섭고 어두운 영화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해리 포터> 세 번째 영화는 그 소문이 근거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다치기 쉬운 십대의 감성과 부모 잃은 소년의 슬픔 또한 품고 있었다. 새로운 감독 알폰소 쿠아론과 훌쩍 커버린 세명의 소년 소녀, 조금은 걱정하면서 낯선 세계로 들어온 신참 어른배우들을 런던에서 만났다.
편집자
해리 포터는 방학을 좋아하지 않는 이 세상 유일한 소년이다. 그는 방학이 되면 자신을 숨겨야 할 흉터로 여기는 더즐리 가족과 지내야 하고, 진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친구들과 편지 한장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없다. 그러나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개학 즈음 시작했던 전작들보다 좀더 서둘러 모험의 길로 뛰어든다. 이모부의 폭언을 침착하게 견디던 꼬마 해리가 열세살이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대한 괜한 걱정 세 가지 [1]
-
세 번째 조우_ 재일동포 구수연 감독
영화란 재미있는 말걸기이다
구수연(44) 감독의 이름은 아직 우리에게 낯설다. 영화로는 지난해 9월 일본에서 개봉한 <우연히도 최악의 소년>이라는 작품 한편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선 데뷔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손꼽히는 CF 히트감독이며, 음반 프로듀서에 뮤직비디오 연출과 노래 작사가, <하드 로만티카>(2001)와 <우연히도 최악의 소년>(2002)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우연히도…>는 일본 가요계의 스타 나카시마 미카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조연, 단역까지 일본의 유명스타들이 줄줄이 포진했다. CF에서 인연을 맺어온 스타들이 그의 첫 영화데뷔에 흔쾌히 나선 결과였다. 흥행수입은 1억1천만엔 정도로 화려한 캐스팅과 화제에 비해선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최근 출시된 비디오와 DVD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두개의 정체성 두겹의 눈, 아시아의 한인감독들 [4]
-
두번째 조우_ 재일동포 3세 리상일 감독
소통과 자극의 문을 두드리다
어떤 이에게 ‘재일’이란 단어는 삶의 굴레였다. 오직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일본사회 밑바닥에서, 때론 불법의 일도 가리지 않아야 했던 재일동포 1세들. 그들은 ‘고난’의 상징이었고 차별의 대상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보통 재일동포 2세, 대부분 3세인 영화감독들에게 ‘재일’은 굴레가 아니다. 아마도 영상에서 그 상징적인 모습은 최양일 감독의 블랙코미디 터치 가득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일 것이다. 재일동포는 여전히 차별받는 존재지만, 거기에 절망하거나 또는 정치적인 대항을 하는 의미는 엷어졌다. 흠, 그래, 나 재일동포다. 그래서? 자신을 재일동포라고 ‘커밍아웃’하는 단계를 넘어서, 재일동포 감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보편적인 ‘마이너리티’가 보는 일본사회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재일’이란 창을 통해, 나아가 ‘마이너리티’라는 창을 통해 일본사회에 간절히 말걸고 싶어한다.
두개의 정체성 두겹의 눈, 아시아의 한인감독들 [3]
-
<당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찾아낼 것”
오기처럼 시작하게 된 〈11세>의 촬영 첫날, “미리 준비했던 시나리오는 현장에서 방해만 될 뿐이었다. 모든 것이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주변의 스탭들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건 처음이니까 연습하는 셈 쳐라’라고 말했지만, 최선을 다하려던 영화를 연습으로 찍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오전 내내 헤매고 버벅대던 그가 오후부터 전열을 가다듬었다. 현장에서, 배우로부터,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영화만의 흐름과 리듬은 무엇일까. 쓸데없는 이야기는 버리고, 정서만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는 천천히 영화를 완성하면서,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갔다. 그리고 〈11세>는 아무런 대사도 없이 음향과 실험적인 음악만으로 풍부한 사운드를 재현하는 영화, 이야기는 모호하지만 영화적 의미로 꽉 차 있는 영화가 되었다.
두 번째 영화이자 첫 번째 장편인 &l
두개의 정체성 두겹의 눈, 아시아의 한인감독들 [2]
-
-
칸에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올드보이>를 외치는 순간, ‘한국영화’라는 말은 금가루를 날리며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순간이 ‘한국영화’의 외연과 내포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한다. <씨네21>이 최근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아시아 네트워크’의 연장선상에서, 그리고 한국영화를 재사유하는 개념틀로 제안했던 ‘내셔널 시네마’를 구체화하는 차원에서, 재외한인감독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재중’ 동포감독 장률, ‘재일’ 동포감독 리상일과 구수연은 각각 중국-한국, 일본-한국의 이중적 정체성 속에 포획된 혹은 연접한 혹은 탈주하려는 경계인들이다. 경계인이 만들어내는 사이공간(space between)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한국에서 만난 장률, 일본 현지에서 만난 리상일, 구수연 감독을 통해 듣는다.
편집자
* 455호 잡지 기사에서 리상일 감독의 얼굴 사진이 잘못 실렸습니다. 사진 속 인물은 안노 히데아키 감독입니다. 또 의 주연배우는 쓰마부키 도시오가
두개의 정체성 두겹의 눈, 아시아의 한인감독들 [1]
-
“시대극 속에서 모던한 여성을 보게 될 것이다”
윤종찬 감독 인터뷰
<청연>은 <소름>과 굉장히 다른 영화다. 의외라는 느낌이 든 가장 큰 이유는 <소름>이 극단적으로 어둡고 비관적인 이야기인 반면 <청연>은 그렇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소름>을 할 때도 저 사람이 왜 공포영화를 하지,
=그런 말을 듣긴 했다. (웃음) 아무튼 <소름>을 찍고 나서 느낌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고 드러냈을 때 그 후유증이 나에게도 있었다. 영화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감독이 굉장히 짓눌려서 찍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청연>은 그런 면에서 내게 유연성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어둠과 밝음을 잘 분배해서 다 아우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기조가 다른 만큼 스타일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 거 같다. 예를 들어 영화의 색조나 조명
<청연> 촬영현장, 일본 우에다를 가다 [4] - 윤종찬 감독 인터뷰
-
"울었지만… 끝까지…혼자… 넘는다"
박경원 역 장진영 인터뷰
-오늘 촬영현장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무엇 때문에 울었나.
=촬영 초반인데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장면부터 찍어야 하니까 감정을 끌어올리기가 힘들다. 오늘 찍은 장면 같은 경우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찍을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거랑 달랐다. 박경원이라는 인물의 강인함을 많이 보여주면서 슬픈 감정이 함께 들어가야 하는데 사실, 힘들다. 일본어 대사도 만만치않다. 내가 말하는 건 어떻게든 되는데 상대방이 일본어를 하면 그걸 받아서 리액션을 하는 게 어렵다. 대충 무슨 얘기인지 알아도 귀로 들었을 때 느낌이 잘 안 살기 때문에 반응이 제때 안 나온다.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오늘처럼 힘들어서 울 때 윤종찬 감독은 어떻게 하나? 워낙 현장에선 독한 사람이라는 말이 많던데.
=다독이기도 하고 채근하기도 하고. 아무튼 그 장면을 포기하지 않게 해준다. <소름>을 찍을 때도 그랬고. <소름>에
<청연> 촬영현장, 일본 우에다를 가다 [3] - 박경원 역 장진영 인터뷰
-
◁ 자원해서 <청연> 엑스트라로 출연한 우에다 주민들과 장진영, 김주혁이 기념촬영을 했다.
우에다 표 세트, 우에다 표 엑스트라
드라마의 정점에 해당하는 촬영이 끝난 다음날인 5월24일 아침, 파란 하늘은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제작진은 야외촬영을 위해 우에다시 외곽에 위치한 운노주쿠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옛날 가옥이 길 양쪽으로 빽빽이 늘어선 이곳은 세트로 지은 게 아닌가 의심할 만큼 영화촬영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시대극을 찍으면 항상 걸림돌이 되는 전봇대나 전선이 없기 때문이다. 2km 정도 옛날 거리를 그대로 보존한 운노주쿠는 우에다가 자랑하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이지만 영화촬영을 위해 개방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도 옛날 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집집마다 촬영허가를 따로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몇 십억원을 들여도 이렇게 훌륭한 세트를 짓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오전 촬영은 박경원이 조종사가 되고 싶다며 찾아온 이정희(한지민)와
<청연> 촬영현장, 일본 우에다를 가다 [2]
-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날씨였다. 지난 5월23일 <청연>의 촬영현장인 우에다로 가기 위해 도쿄 나리타 공항에 내렸을 때, 하늘은 잔뜩 지푸린 얼굴이었다. 기자와 동행한 <청연>의 배우 겸 캐스팅디렉터 김응수씨는 비가 오면 내일 촬영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장 조바심이 일었다. 단 2박3일의 취재일정, 만약 24일 촬영이 취소된다면 아예 현장을 못 보고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다. 일요일 아침 8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해 12시에 도쿄에 도착했지만 촬영지인 우에다까진 여기서 차로 4시간을 더 가야 하니 잘못하면 하루를 촬영장에 도착하는 데만 쏟게 생겼다. 그런데 내일 비가 와서 촬영이 취소된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무튼 마음을 가라앉히려 우에다로 가는 버스 안에서 <청연>의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읽어본다. <청연>이라는 영화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이름, 박경원. 그녀의 마지막 비행 때도 비가 왔다. 박경원
<청연> 촬영현장, 일본 우에다를 가다 [1]
-
기독교적 테마를 자의식화한 김기덕
정성일 | 김기덕 감독은 베를린 감독상까지 받고도 관심을 너무 못받는 것 같다.
김소영 | 나는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허문영 | 개인적으로는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세 사람 공히 평론가들이 말하기 좀 지겨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최대한 호의를 갖고 보지 않으면 정이 가기 힘들다. 그러나 짜증나는 건 어떤 비평이 <효자동 이발사>를 치켜세우고 <여자는…>을 짜증난다고 할 때다. 그러면 우리는 변호사형 비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석에서 정 선배가 일반적 평가와 달리 <사마리아>를 김기덕 영화의 어떤 진전으로 본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정성일 | 제일 놀란 것은 홍상수 영화가 지겨울지언정 이제 나쁜 영화를 찍는 건 불가능하듯이, <사마리아>를 보면서 이제 김기덕 영화가 역겨울지언정 나쁘기는 틀렸구나 싶었다. 이제 그는 어떻게 영화를 찍어도 나빠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앞의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5]
-
홍상수의 나르시시즘은 텅 비어간다?
허문영 | 저널비평 수준에서는 임 감독과 마찬가지로 홍상수 감독의 이번 영화도 전작보다 썩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정성일 홍상수 영화의 비평담론부터 논해야겠다. 여러 평을 읽다가 두 가지를 문득 깨달았다. 첫째, 홍상수 영화가 한국 영화문화 안에서 갖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학습효과다. 즉 그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많은 평들은 자기 눈으로 본 걸 믿지 않고 거의 관성적으로 남이 해온 말들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해하는 게임에 뛰어든다. 홍상수는 너무 가혹한 표현이지만 그들을 파블로프의 개처럼 훈련시켜서 몇개의 힌트를 던져주는 순간 헐떡거리면서 반복하고 별 의미없는 것에 집착하고 의미있는 것을 놓치게 한다. 둘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홍 감독의 전작과 매우 다르다. 그러나 너무 많은 평들이 전의 영화들과 다르지 않은 평을 써서, 영화제목을 지워놓고 무슨 영화에 관한 평인지 시험문제를 내고 싶을 정도다. 너무 많은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4]
-
임권택식 장르영화의 ‘축제’를 보고 싶다
허문영 | 상반기에 작품을 낸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삼인삼색 이야기로 넘어가자. <하류인생>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 감동이 없는 영화로 받아들였는데 딱 한번 감동이 마지막에 뜨는 자막이었다. “(태웅은) 1975년에 전업했다. 그의 인생이 맑아지는 조짐이 보였다.” 영화 속에서는 맑아지는 조짐이라곤 요만큼도 없고 서사는 파멸과정을 포섭할 수 없는 상황으로 영화를 몰고 간다. <취화선>부터 임권택 감독은 감정의 지속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는데 이 영화는 피한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감정의 지속이 이뤄질 수 없는 구조다. 각 시대의 시퀀스들이 전혀 정서적 연속성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인물이 이 풍경의 절대 주인일 수 없는 방식으로 시퀀스를 구성했다. 모든 시퀀스를 병풍화의 풍경들처럼 느꼈고 그 풍경이 잔혹했다. 그렇게 느끼다 자막을 보는 순간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비로소 알았다. 이 영화는 정서조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3]
-
현재의 시간과 만나지 못하는 역사영화들
정성일 | 과거의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를 만나야 되는데, 끝내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온갖 꾀를 내고 있다. 이를테면, <실미도>는 전원 자폭으로 끝남으로써 영화를 누구의 사건도 아닌 과거로 만들고, 기괴하게도 <태극기…>는 현재에서 끝날 수 있었으면서도 굳이 과거로 회귀하여 끝나고, <아홉살 인생>은 70년대에 기어이 끝내야 됐다. <말죽거리…>도 주인공이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방식으로 끝났다. 그리고 한 감독의 데뷔작과 한 감독의 아흔아홉 번째 영화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효자동 이발사>는 머리가 다 자라면 다시 돌아오겠다며 끝나고 임권택 감독조차 “맑아지려는 조짐”을 말하며 끝난다.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묵시적 동의라도 한 것 같은, 시간을 정지시키려는 과거 시간에 대한 억압은 정말 이상하다.
김소영 | 나는 그것이 세트문화 때문인 것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2]
-
1천만 관객 동원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정신을 수습할 즈음에, 한국영화 두편을 경쟁부문에 초대한 칸영화제가 절정으로 달려가는 즈음에, 후텁지근한 여름영화의 장마가 막 시작될 즈음에, <씨네21>의 김소영, 정성일, 허문영 편집위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2004년 상반기 한국 영화문화의 사건과 징후들을 재구성해보기 위해서다. 세 사람은 1천만 영화가 남긴 파동을 곱씹었고, 3·12 탄핵의 이미지가 상반기 최고의 스펙터클이었다는 사실에 전율하기도 했다. 1990년대 기획영화의 새로운 후예를 짚었고 한꺼번에 신작을 낸 흥미로운 감독들의 도태와 성장을 논의했고 그럼에도 너무 많은 영화를 놓쳤음을 깨달았다. 부쩍 길어진 초여름 해에도 불구하고 장편영화 서너편의 러닝타임을 잡아먹은 세 사람의 대화는 밤 깊숙이 계속됐다. 편집장
애타게 자기 이미지를 찾아나선 한국영화
허문영 | 오늘이 5월17일이고 여름영화는 개봉 전이니 상반기를 회고할 적절한 시점이다. 일단 상반기에는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