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소아성애자가 아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스티븐 달드리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논쟁적인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영화화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이하 <더 리더>)가 개봉한 직후, 발빠르게 올라온 몇몇 인터넷 리뷰들은 다른 무엇보다 영화 속 10대 소년과 30대 여성의 육체적 사랑에 대해 침 튀기며 설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마이클을 맡은 독일 배우 데이비드 크로스가 만 18살(독일에서는 18살이 넘어야 섹스신을 찍을 수 있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촬영할 정도로 철저하게 규정을 지켰지만, 달드리 자신은 영화 속 섹스신이 그리 많지도 혹은 굉장히 논쟁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보시라. 책에는 섹스에 대한 더 많은 본질적인 묘사들이 들어 있다. 영화에서는 오히려 소극적으로 찍었다고 생각하는데….”(스티븐 달드리) 그러니까 이건 폭력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고통의 역사에 구경꾼의 역할을 묻다
-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50년대 들어서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우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스스로에게 그다지 확신이 없었다. 대공황이 시작되던 1930년에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연기 수업을 받은 적도 없는 그에게 딱 맞는 기회가 돌아올 리 없었다. 보잘것없는 영화들을 전전하던 그는 TV쪽으로 건너왔고, 마침내 그에게 첫 번째 도약의 발판이 찾아왔다. 세명의 카우보이가 주인공인 인기 시리즈 <로하이드>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192cm에 달하는 이 껑충하고 말수 적은 남자가 카우보이 역을 그럴듯하게 해낸다는 걸 깨달은 주변인들의 추천은, 그를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로 이끌었다. ‘이름없는 남자’ 3부작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가 그것이다. 여기서 이스트우드는 기존 존 웨인 스타일의 선하고 정의로운 카우보이도, 혹은 제임스 코번이나 리 반 클리프가 단골로 맡았던 피도 눈물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살아 있는 신화의 연대기
-
<석양의 무법자> (1966)
1950년대 후반 텔레비전 시리즈 <로하이드>에서 농장의 미남 감독관으로 첫 주연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후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발탁되어 스파게티 웨스턴의 ‘이름없는 사나이 3부작’으로 옮겨간 뒤에는 질겅질겅 시가를 씹어대는 거칠고 비정한 사나이로 돌변한다. 이 둘의 차이는 그 부드러운 미소와 찡그림만으로도 확연하다. 이름없는 사나이 3부작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성공적인 첫 번째 연기 변신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수는 별로 없지만 말을 잘 타고 피곤함과 체념에 젖은 걸음걸이를 가졌다”는 걸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린 남자의 시가와 언제나 장전된 총은 오랫동안 그의 도상이 됐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당신이 시키는 건 다 하겠어. 담배만 빼고”라고 말할 정도로 담배를 싫어했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어이 친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클린트 이스트우드] 장대비를 우두커니 맞던 그 몇초간…
-
월트는 몽족 소녀 수를 괴롭히는 흑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일 너네들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가 바로 나야.” <그랜 토리노>에서 이것이 꽤 인상적인 대사인 것은 <더티 하리>(1971)에서의 하리가 했던 짧지만 그 유명한 대사 “덤벼봐”(Make my day!)와 공명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랜 토리노>의 월트는 하리 캘러한이 은퇴한 뒤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듯이 느껴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조금 더 들여다보면 월트라는 존재에게서는 하리 이상의 어떤 자취가 묻어나는 것처럼도 보인다는 점이다. 예컨대 침을 뱉듯 피를 토하는 것이나 총을 겨누는 자세 등에서 우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다른 영화들에서 그가 보여줬던 면모들과 다시 만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랜 토리노>는 <사선에서>(1993)의 대사에서처럼 ‘살아 있는 전설’로서의 이스트우드와 대면하게 해주는 영화라고 볼만 하다. 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의 연기가 법이다
-
-
또 하나의 전환점 <그랜 토리노>…
연기론·활동사·명장면·인물지도 통해 그를 돌아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돌아왔다, 라고 써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방식으로 돌아왔다. 이미 이 영화가 그의 배우로서의 마지막 고별사가 될 것이라는 예고도 심심찮게 전해져온다. 그러고 보면 의미심장한 영화다. <그랜 토리노>를 본 다음 우리는 하나같이 이번에야말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관해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라며 입을 모았다. 그의 영화를 주목해온 사람들에게는 어떤 손짓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론을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그가 걸어온 활동사를 요약했다. 그리고 그가 왜 훌륭한 감독임과 동시에 매력적인 배우였는지를 명캐릭터, 명장면으로 뽑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중심으로 한 관계 지도는 그에 대해 시시콜콜 더 알고 싶은 이들에게 흡족함을 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바친다. 그리고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바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살아 있는 신화를 말한다
-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 소나타>가 3월19일 개봉한다. 한국 내 홍보자료의 문구는 ‘가족에게 찾아온 불협화음이 아름다운 하모니로 변해가는 과정을 다룬 따스한 가족영화’다. 기요시의 팬들이라면 미리 실망할 필요 없다. 따스한 가족영화라니. 대체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건 <큐어>와 <회로>와 <절규>를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다. <도쿄 소나타>는 무시무시한 가족 지옥도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절규>(2006)는 걸작이었다. 그러나 <절규>는 정식으로 국내 개봉하지 못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나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 같은 기회를 통해 소수의 구로사와 팬들을 만났을 따름이다. 정식으로 개봉해봐야 돈을 벌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일까. 억측은 젖혀두자. 문제는 <절규>를 먼저 거론하지 않고서는 <도쿄 소나타>를 이야기하는 게 조금 재미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절
[must see] <도쿄 소나타> 따뜻한 가족영화라니 당치 않소
-
<스타트렉>이라니 이름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5월7일 그 비밀스러운 정체를 드러낼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TV시리즈 <스타트렉>을 원작으로 한 열한 번째 영화다. 제작비로 1억5천만달러를 쏟아부은 프로젝트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스타플리트 생도들의 재집합에 머리를 맞댄 이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감독좌에 오른 이는 뛰어난 아이디어맨 J. J. 에이브럼스요, 각본가는 <트랜스포머>를 성공으로 이끈 로베르토 오치, 알렉스 커츠먼 콤비. 게다가 스포크의 또 다른 자아라 해도 과언이 아닐 배우 레너드 니모이까지 얼굴을 비춘다니, 올드팬은 물론 잘 만든 블록버스터라면 흔쾌히 지갑을 열 젊은 영화광들까지 모두 끌어안겠다는 심사다. 2월25일, <스타트렉>의 프리퀄인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개봉에 앞서 J. J. 에이브럼스 감독과 주연배우 크리스 파인, 조이 살디나가 한국을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30분 분량의 클립 네개를
<스타트렉: 더 비기닝>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프
-
중세의 고딕 건물을 그대로 간직한 동화 속 나라 벨기에의 브리주에 킬러들이 왔다. 런던도 파리도 베를린도 뉴욕도 아닌 브리주라니! 브리주가 어디냐고? 전문 킬러라면 절대, 실수로라도 거들떠도 보지 않을 곳이 이곳이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부터 약 한 시간 거리의 작은 소도시 브리주, 이곳에 도착한 두명의 킬러. 딱히 지시를 받은 것도 없는데다, 킬러의 필수품인 권총 하나 챙겨오지 않았다. 등에는 배낭을, 한손엔 가이드북을, 그리고 여행자 숙소인 B&B에 가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꽉 차버린 방이 언제쯤 비는지 진지하게 묻고 박물관 앞에선 10센트만 깎아달라고 통사정한다. 전망 좋은 종탑과 고풍스러운 성당, 운치있게 흐르는 운하가 내내 그들의 배경이 되어준다. 이건 말이다, 은퇴를 앞둔 킬러가 마지막 작업을 지시받고 아르헨티나 가서 탱고를 배운다는 로버트 듀발의 <어쌔신 탱고> 이상으로 사뭇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주목할 만한 신예 마틴 맥도나 감독
<
[must see] <킬러들의 도시> “100번도 더 본 갱스터물은 잊어라”
-
20여년을 기다렸다. 영화화 불가능 딱지가 오랫동안 붙어 있던 앨런 무어, 데이브 기븐스 원작의 <왓치맨>이 3월5일 개봉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왓치맨>은 지난 몇년간 여름마다 목도해온 슈퍼히어로 영화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내러티브와 세계관의 규모로만 말하자면 <다크 나이트>조차도 <왓치맨>의 한 챕터에 겨우 삽입될 소품에 다름 아니다. <왓치맨>은 진짜 성인을 위한 지적인 히어로물이다. 수많은 캐릭터와 수많은 이야기와 수많은 맥거핀이 교차하고 또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그래픽 노블의 교향곡이다. 무슨 말이냐고? 알고 가야 더 재미있는 영화라는 소리다. 그래서 준비했다. A부터 Z까지, 알고 가면 속 편한 <왓치맨> 사전.
A/ Alternate history 대체역사
만약 히틀러가 2차대전에서 승리했다면. 만약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현실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왓치맨 A to Z] JFK는 코미디언이 죽였다?
-
재활원에서 방금 나온 여자가 있다.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그녀는 재활원 동료, 직원의 곁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유난히 어두운 눈 그림자와 거칠게 다듬은 단발머리가 설핏 불안해 보인다. 저 멀리 자동차 한대가 다가온다. 여자는 벌떡 일어선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먼 옛날의 과오가 진득하게 달라붙은 끔찍한 스위트홈으로. 그 여자는, 레이첼이 아니라, 킴(앤 해서웨이)이다. 레이첼(로즈마리 드윗)은 혼인서약을 앞둔 양순한 장녀의 이름이다. 재활원에서 몸무게가 불었다지만 아직도 가날픈 전직 모델 킴은 언니 레이첼의 결혼을 맞아 며칠이나마 가족의 품에 다시 안기려는 찰나다. <맨츄리안 켄디데이트>(2004) 이후 다큐멘터리만 고집하던 조나단 드미가 4년 만에 선보인 극영화 <레이첼, 결혼하다>(2008)는 약물중독에서 갓 벗어난 집안의 골칫거리 킴의 귀환과 함께 시작하는 지독한 홈드라마다.
극적이지만 건조하게 밀어붙이는 솜씨
“처음 떠올린 이미
[must see] <레이첼, 결혼하다> 가자, 고통스런 스위트홈으로
-
페키니즈종 美男이를 떠나보낸 박혜명
아무리 늙어도 너는 강아지였어
개가 죽는 얘기라는 걸 알고 봤다. 나는 애견인이라, 엄청 울다 나오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이건 영화 탓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기이하리만치 ‘해체적’이어서, 2시간 동안 온갖 에피소드가 들고 나는데 어떤 에피소드도 이 영화의 핵심이 되지 못하고 줄거리는 한 방향으로 꿰어지지 않고, 주제가 뭔지 모르겠고, 사실은 이 영화에서 개가 주인공인지 오언 윌슨이 주인공인지 제니퍼 애니스톤이 주인공인지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막판에는 개가 죽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을 흘렸고, 극장을 나올 때의 기분은 시큰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가족과 5년을 살았던 페키니즈종 美男이에 대해 생각했다. 2007년 12월31일에 신부전증 악화로 안락사한 미남이는 주로 ‘남이’로 불렸는데, 이유는 우리 식구들끼리야 괜찮지만 남들 앞에서 “미남아”라고 부르기가 솔직히 부끄럽다는 엄마의 의견 때문이
<말리와 나>, 애견인 3인3색 에세이 [3] 박혜명
-
맬러뮤트 실피드와 로트바일러 바치 기르는 김소영
토종닭들을 묻고 우리는 쫓겨났지
(어쩔 수 없는 스포일러 있음)
김혜리 기자가 전화를 하더니, ‘전영객잔’의 김소영과는 다른 스타일로 ‘재미있게’ 쓸 수 있는 영화로 <말리와 나>를 추천했다. 우리 둘은 시네필이며 애견인이라는 공통의 장점이 있긴 하다. 물론 나는 “왜 이러세요! 전영객잔은 재미없다는 말?”이라고 히스테릭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김혜리 기자의 가녀리면서도 강인한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네필이며 동물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영화를 함께 보러 가자고 말하자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다. “거기 나오는 개에게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면 가지 않을 거야. 시놉시스를 보니 여피 부부가 개를 기르는 뻔한 이야기. 제니퍼 애니스톤도 질색이고. 영화가 끝날 무렵 그 개가 안젤리나 졸리에게나 가버리라지.”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래버라도 리트리버종인 말리가 제니(
<말리와 나>, 애견인 3인3색 에세이 [2] 김소영
-
애완동물과 함께 사는 건 본래 슬픈 일이다. 서로 사는 시간축 자체가 다르니 그들과의 동거엔 애초에 이별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보다 세배 빨리 산다는 고양이나, 인간의 1년이 7년과 같다는 개. 가벼운 마음에 귀엽다고 기르기 시작해도 언젠가는 이 무서운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책임감도 중요하고 용기도 필요하다. ‘개와 함께 보낸 젊은 날’이라 요약할만한 영화 <말리와 나>에도 개와의 이별이 나온다. 영화의 시사회가 있었던 극장에선 여기저기 훌쩍대는 소리가 났고, 몇몇 좌석에선 그 소리가 꺽꺽 울렸다. 과거에 개를 길렀거나, 현재 개를 기르는 이라면 이 영화에서 보이는 아프고 무거운 진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거다. <씨네21>은 애견인 3인에게 영화의 관람을 권했고 그들의 경험이 살아 있는 에세이를 받았다. 눈물도, 감동도, 경우에 따라선 불만도 묻어나는 이야기지만 함께 살아가는 동물을 추억하기엔 더없이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나, 너, 그리고 우리의 말
<말리와 나>, 애견인 3인3색 에세이 [1] 김혜리
-
‘그분’들도 보셨다.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의 흥행으로 나타난 현상 중 가장 눈에 띄는 지표는 중·장년층 관객의 증가량이다. 물론 이들의 잠재력은 이미 <색, 계>와 <미인도> <쌍화점>의 흥행을 통해 입증됐다. 전국 500만명이 넘는 대박영화들은 모두 1년에 영화를 1편 이상 볼까 말까 하는 이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오래전에 나왔다. 하지만 <색, 계>에서 <쌍화점>으로 이어진 중·장년층의 극장 나들이가 ‘벗는’ 코드로 설명됐다면, 벗는 영화도 아닌데다 지금까지의 대박영화들처럼 블록버스터도 아닌 <과속스캔들>의 800만명 달성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또한 500만명을 넘으면 중·장년층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이치라고 한다면, 이제 30만명을 넘어선 <워낭소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 두편의 영화가 일으킨 중·장년층 관객의 관람 현상은
벗지 않고도 중·장년층 유혹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