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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겨울, 어느 날
홍 감독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느 때처럼 느닷없이 호출하는 감독님과 급만남을 하게 됐다.
홍상수: “지원아, 내가 여름에 영화를 하나 찍고 싶은데… 같이 할래?”
엄지원: “아, 그래요?… 확실히 찍으실 거예요?”
홍상수: “응.”
엄지원: “좋아요, 그럼. 스케줄 빼둬요?!”
홍상수: “그런데 내가 이번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해…. 내가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 찍어야 하니까…이번에는 예산을 최대한 적게, 투자받지 않고, 내 돈으로 찍어보려고.”
엄지원: “네~.”
홍상수: “그래서… 배우들 개런티를 못 줄 거 같아….”
엄지원: “징짜?? 밥은 사주고?”
홍상수: “그럼~.”
엄지원: “알쪄요. 대신 나는 하루에 만원씩 과자값줘야 돼요. 알았죠?”
홍상수: “그럼. 너는 내가 특별히 3만원씩 줄게. ㅎㅎ”
대략 1, 2부로 영화가 나뉜다는 것과 남자 캐릭터가 영화를 관통하는 주인공이 될 거라는 정도의 정보만 듣고 시간이 흘렀
배우 엄지원이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잘알지도 못하면서> 제작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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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주는 느낌이 의미심장하다. 누구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살아가는 삶 자체의 과정 양면이 영화에 모두 등장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제목을 처음 떠올릴 때 어떤 생각을 했나.
=언젠지 모르겠지만, 아는 친구와 얘길 하던 중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말이 들렸다. 딱 고 문구만 들리더라. 나 혼자서 ‘음 재밌다, 저 말이 재밌다, 왜 이렇게 걸리지?’ 하다가, 잊어버릴 것 같아 종이에 써두었다. 그러다가 다른 내용들이 떠오르면서 하나씩 그 제목에 붙는 걸 보니 이게 제목이 되려나 보다 싶었다. 내 안에서는 좋은 것 같은데 또 어쩌다 생각해보면 제목이 너무 발랄한 것 같기도 하고 장난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확신을 할 때까지 가제로 놔뒀다. 안에서 느꼈던 게 맞는지, 결국 그 제목이 좋더라.
-제목을 먼저 생각하고 ‘새 삶’이라는 주제를 떠올렸다고 했다. 결국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새 삶을 산다’라기보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산다’라고 볼 수 있지
[홍상수]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다른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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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가까이 있는 두 도시 이야기. 구경하는 남자는 제천과 제주도를 차례로 방문한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벌어지는 작은 미스터리들, 그리고 연이은 사소한 실패 앞에서 당황하고 만다. 홍상수 감독의 아홉 번째 장편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역시 물과 가까이 있는 도시, 칸영화제의 감독주간 상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렇게 이 영화는 자신이 품고 있는 내용처럼 우연이고 동시에 필연인 삶의 일부분이 된 걸까? 홍상수 감독과의 인터뷰, 그리고 여기 참여했던 일곱 배우들의 육성, 여기에 배우 엄지원이 기록한 생생한 제작기와 본지 창간 14돌 기념으로 열린 ‘배우, 열정을 말하다’의 첫 토크쇼 주자 고현정과의 유쾌한 대화를 전한다.
“한여름, 제천과 제주도에서 구경남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나긴 하는데, 그 안을 쳐다보면 다른 면도 많이 있습니다.” 제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영화감독 구경남(김태우). 프로그래머 공현희(엄지원)를 비롯한 영화인들과의 술자리를 핑계 삼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 작가의 유쾌한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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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이 평소 박찬욱 감독 영화에 비해 적은 느낌이다.
= 평소보다 많지는 않다. 그러나 다른 영화에 비해 아주 크게 적지는 않을 거다. <올드보이>는 음악을 많이 썼고, <친절한 금자씨>와는 비슷한 것 같은데.
- 그래도 <친절한 금자씨>는 메인 테마가 반복적으로 쓰인 게 느낌상 영향을 준 것 같은데.
= 반복적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고 귀에 들리는 음악이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레코딩 분량을 따져보니까 50분이 좀 넘던데, 그 정도면 많이 적은 것은 아니다.
- 전체적인 음악을 놓고 박찬욱 감독과 조율했을 텐데.
= 박 감독과 조율한 것은 <올드보이> 때는 음악이 감정을 리드했고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음악을 썼다면, 이번에는 감정의 치우침 없이 중도적인 음악을 많이 쓰자는 것이었다.
- 중도적인 음악이라… 상당히 어려운 컨셉 같다.
= 태주가 부활하는 장면 같은 데서는 과잉
[조영욱] 음악이 덜 의식된다면 굉장히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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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쥐>를 촬영할 때 세워놓았던 기본 컨셉은 무엇이었나.
= 박찬욱 감독과 영화작업을 할 때는 최소한 각색 단계부터 참여한다. 각색 과정이 어떻게 변하느냐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게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본 컨셉도 시나리오가 각색돼가는 과정에서 정해지는 것 같다. 이번 컨셉은 알렉 소스(Alec Soth)라는 작가의 사진이 시작점이 됐다.
- 알렉 소스에게선 어떤 부분의 영향을 받았나.
= 우리가 사진에서 영향을 받을 때는 구도나 정신세계가 아니라 색이나 채도 같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화를 논할 때 콘트라스트나 색감이 중요하잖나. <박쥐>라는 영화가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지만, 알렉 소스의 사진에서 뭔가 명확하지 않고 짓누르는 듯하면서 답답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해맑은 신부 시절의 상현은 좀 밝고 어느 정도 콘트라스트가 있게 설정했지만, 뱀파이어가 된 뒤에는 콘트라스트가 약화된다. 일반 관객이 느끼기에는 약간 뿌옇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정정훈] 배우들보다 내가 더 NG 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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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쥐>는 실내 분량이 많아서 프로덕션디자이너로서 일이 엄청났겠다.
= 거의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었으니까. 아프리카 배경도 다 짓고 그랬다. 실제 촬영지인 호주에서 찍은 장면은 실험 자원자들이 배구하는 장면과 송강호가 찾아가는 병원뿐이다. 공간 수도 많았다. 그래도 다른 공간은 그냥 개념적으로 가면 되는데 ‘행복한복집’은 특히나 어려웠던 것 같다. 영감을 가장 많이 준 것은 시나리오에서 엿보이는 오페라틱한 느낌이었다. 계단을 통해서 오아시스 멤버가 한명씩 도착하고 카메라가 빠지면 복도가 보이고. 한 시퀀스 안에서도 굉장히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담은 콘티를 보면 오페라나 뮤지컬 찍는 것처럼 느껴졌다.
- <박쥐>의 전반적인 미술적인 컨셉은 무엇이었나.
= 박 감독님은 ‘이건 이런 영화야’라고 얘기하는 분이 아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내가 많이 물어봤다. 외국 소설에서 뱀파이어는 이성중심주의에 반대해서 생긴 것인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상현은 또 이런 요소에
[류성희] 침대보만 수백개를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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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 할 것 없이 올해 상반기 가장 뜨거운 영화,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드디어 그 베일을 벗었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이후 송강호와 사실상 7년 만의 만남이면서 그 스스로 엄격한 가톨릭 환경에서 성장한 기억이 짙게 반영된 작품이다. 종교적 바탕 위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문제적’ 장면들도 많고, 지금껏 단 한번도 멜로영화에 출연한 적 없다 할 만한 송강호로서는 꽤 수위 높은 장면 속으로 녹아들었다. 더불어 추락과 구원, 욕망과 딜레마에 빠져든 인물들은 지금껏 그의 영화들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면서도 가장 직설적이다. 파격과 귀여움이 한데 살아 있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부조리한 유머도 여전하다. <박쥐>에 대한 첫 번째 감상과 더불어 그의 오랜 단짝인 정정훈 촬영감독, 류성희 미술감독, 조영욱 음악감독을 만났다.
친절한 상현씨는 뱀파이어지만 괜찮아. <박쥐>는 박찬욱 감독이 이미 10년 전에 예고한 작품이자, 이미 워밍업
<박쥐> 위험한 사랑, 욕망의 클라이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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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의 연출자인 고동선 PD의 드라마는 하나같이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달콤한 스파이>는 민생치안의 선봉장이 되고 싶지만, 의욕만 앞서는 여순경이 주인공이었고, <메리대구 공방전>은 철없는 백수 청춘들이 연대하는 이야기였다. 그는 “일종의 세계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2%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자신이 부족한 걸 모르고 완벽하다고만 생각하는 인물들이라서 웃음도 있고 비극도 드러낼 수 있는 것 같다. (웃음)” 연이은 촬영 스케줄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내조의 여왕>에 대해서 물었다.
- <내조의 여왕>은 어떻게 기획된 작품인가.
= 박지은 작가가 미리 쓴 4회분의 대본이 있었다. 이야기의 사이즈가 아기자기해서 좋더라.
원래 이야기는 온달왕자와 평강공주의 구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논의를 하면서 결국 남자의 사회생활에 여자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여자의 행복에 남자는 어떤
<내조의 여왕> 뗏목 타고 파도 헤치는 부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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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혹>이 뚫고 <꽃보다 남자>가 지나간 막장드라마의 터널에 이제 출구가 보이는 걸까. 제목만 듣고 뻔한 아줌마 드라마인 줄 알았던 <내조의 여왕>이 유쾌한 웃음과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시청률은 방송 때마다 경신되고, 최철호와 윤상현 등 배우들의 연기도 호평을 받는 중이다. <내조의 여왕>의 종영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최근 4부를 연장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이 웃고 울며 사는 모습들을 가까이서 살펴보고 싶었다. 험난한 세상을 강한 비위로 돌파하는 천지애, 그런 아내 덕분에 요즘 한창 기가 살고 있는 온달수, 천지애와 결혼한 달수를 부러워하며 점점 망가지는 한준혁, 그리고 그런 준혁과 전면전을 시작하는 양봉순의 이야기는 이제 어떻게 흘러갈까. <내조의 여왕> 10회가 방영된 지 3일 뒤, 11회와 12회를 촬영 중인 <내조의 여왕> 현장을 찾았다.
<내조의 여왕>을 보다가 지독한 농담
<내조의 여왕> 험난한 세상, 비위로 돌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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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가 돌아왔다.
스리랑카영화는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보고.
폴란드 거장의 강펀치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회고전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안나와의 하룻밤>(2008)은 어떤 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다름 아니라 그 영화의 크레딧에는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란 이름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페르디두르카>(1991) 이후 17년의 긴 시간 동안 자기 이름을 건 영화를 만들진 않았지만 그의 예전 영화들을 봐왔던 이들은 그것들이 남긴 짙은 잔상을 아직 잊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전주영화제에서는 그처럼 오랜만에 감독의 자리로 돌아온 폴란드의 거장을 아주 시기적절하게도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골랐다.
스콜리모프스키라고 하면 크지슈토프 자누시와 함께 전후 폴란드영화의 부흥을 이끈 이른바 ‘폴란드 유파’(Polish School) 이후 세대로서 폴란드영화의 새로운 재능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할 수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4. 귀환과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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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의 슬로건 중 하나인 대안적 기운이 살아 숨쉰다.
무엇을 두려워할까.
당신이 새로운 영화를 찾는다면 꼭 들러야 할 곳.
<음지> Umbracle
감독 페레 포르타베야 | 스페인 | 1972년 | 85분 | 35mm | 흑백
박제된 동물들이 진열된 박물관. 배경음이라곤 무슨 음절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부다. 높아졌다 낮아지는 그 소리는 완고하리만큼 메마른 화면에 공포감를 더한다.
분절된 에피소드들로 이뤄진 <음지>는 간혹 접점을 찾기 힘든 영상과 사운드를 이어붙이는데,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건 기묘한 긴장감이다. 전화벨 소리와 같은 의미불명의 사운드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담배를 피우거나 난데없이 일군의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남자, 기차 안에서 은근히 서로를 의식하던 남녀의 영상이 펼쳐지고, 곧 영상과 사운드가 일치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 1970년대 스페인영화계를 지배한 검열 코드를 설명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리고 에드거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3. 실험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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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패기 넘치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면 이 영화들을 먼저 주목하시기를.
신인들의 국제경쟁부문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들.
<도쿄 랑데부> Tokyo Rendezvous
감독 이케다 치히로 | 일본 | 2008년 | 104분 | 35mm | 컬러
최근 일본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아버지의 부재’다. 가정의 부재로 아이들이 혼자 자란다거나(<새드 배케이션>), 작은 균열이 어떻게 가족을 한순간에 붕괴시킬 수 있는지(<도쿄 소나타>)와 같은 소재를 다루어왔다. 여성감독 이케다 치히로의 데뷔작 <도쿄 랑데부> 역시 그런 경향들에 편승하는 듯하면서도 현실을 그려내는 시선은 긍정적이다.
노가미(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은행 빚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그들이 사는 오래된 아파트를 팔자고 설득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요지부동. 둘의 갈등이 깊어갈 쯤 직장을 그만두고 갈 곳 없는 미사키(가세 료)와 역시 마땅히 하는 일없이 선을 보러 다니는 료코(가가와 교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2. 패기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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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 영화의 최전선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다.
동시대의 영화사를 이끄는 거장과 신예들이 영화의 한 진풍경을 만들어낸다.
<멜랑콜리아> Melancholia
감독 라브 디아즈 | 필리핀 | 2008 | 480분 | DV | 흑백
정치적이고 실험적이며 시적이기까지 한 걸작. 안토니오 셰라드 산체스, 라야 마틴, 카븐 드 라 크루즈, 말하자면 ‘필리핀영화의 무서운 아이들’을 선두에 서서 이끄는 라브 디아즈의 신작이다. 줄리안, 알베르타, 리나. 그들은 실패한 혁명 전사들이다. 지금은 과거에 대한 상처를 안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은 잊혀지지 않았으며 혹은 알베르타의 남편 레나토처럼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다.
줄리안은 자신의 기억과 필리핀영화의 역사를 관통시켜 영화로 만들 계획을 한다. 영화는 8시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과거, 현재, 대과거, 그리고 다시 현재라는 시간을 오가며 이들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영화는 단순하게 정치적인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1. 거장과 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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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0일부터, 전주에서 알차게!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로 10회를 맞아 4월30일부터 5월8일까지 열린다. 10년을 기념하는 해인 만큼 상차림은 다양하다. <숏!숏!숏! 2009: 황금시대>를 개막작으로 하여 폐막작 <마찬>까지 영화들이 알차다. 폴란드의 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스페인의 전설 페레 포르타베야, 필리핀의 떠오르는 신예 라야 마틴의 회고전과 스리랑카영화의 특별전을 주목하자. 10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전주가 발견한 감독 열전 상영작’도 주시하자.
신예들의 등용문이 될 국제경쟁은 예년만큼 긴장감 넘치는 영화들을 볼 수 있고, 거장과 신인들의 다양한 신작이 포함된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에서는 필리핀의 거장 라브 디아즈나 포르투갈의 주앙 보텔료, 이란의 키아로스타미를 비롯하여 다양한 지금 영화의 현재를 엿볼 수 있다. 전주만의 특색으로 꼽아야 할 ‘영화보다 낯선’ 부문에서는 켄 제이콥스의 영화를 비롯한 실험적인 영화들이 기다린다. 거장과 신예,
1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무엇을 맛볼지 차림표부터 감상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