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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많은 죽음을 경험한 덕분에, 요즘 그것에 대해 더 진지해졌다. 엄밀히 말해 ‘살아남은 것’에 대해서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 온 세계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죽기 전날에도 한국 언론의 해외토픽에는 “마이클 잭슨 귀가 성형 부작용으로 반 토막?” 같은 괴상한 기사가 있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애도의 물결이 불만이다. 나의 애도가 진정한 애도란 뜻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그는 이뤄놓은 업적들에 비해 언제나 과소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이지 리스닝으로 취급되던 아바, 카펜터스를 비롯해 싸구려 대중문화의 집합체라고 여겨지던 마돈나와 듀란듀란까지 ‘아티스트’로 대접받던 90년대 후반에도 마이클 잭슨은 논외였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미안하다. 자기고백을 하게 만들고 계속 생각하게 된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 전성기는 명백하게 1980년대와 90년대 후반이었다. 1979년 ≪Off The Wall≫부터 ≪Thriller≫(1984), ≪Bad≫(
[마이클 잭슨] 최신가요까지 그에게 빚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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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남긴 말, 말, 말
“E.T.를 보면 내가 생각난다. 그래서 난 E.T.가 좋다.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가 사람과 친구가 된다. 800살은 먹은 지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날게 해준다. 그런 모든 판타스틱한 일들이 너무 멋지다. 하늘을 날게 해준다는 데 거부할 사람이 대체 어딨나.
-1983년 1월20일 <Smash Hits>와의 인터뷰 중
“난 아이들의 얼굴에서 신을 본다. 지구상에 아이들이 없다면, 만약 누군가가 세상 모든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발표한다면, 나는 그 즉각 발코니에서 뛰어내려버릴 거다. 정말이다.”
-2003년 2월. TV 다큐멘터리 <Martin Bashir> 출연 중
“부모님은 항상 존경받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뭘 하든 가진 모든 걸 내주라고. ‘두 번째 최선’이 아닌 정말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다.”
-2001년 <USA 투데이>와 인터뷰 중
“우리가 함께 음악을 시작했던 때 난 너무 어려서 당시를
[마이클 잭슨] 나도 가슴과 감정이 있는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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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5일(현지시각).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영면했다. 필리핀의 한 교도소에서 그를 추모하는 <We are the World>가 울려 퍼지는 동안, 파리 시민들은 거리에서 잭슨을 상징하는 춤 ‘문워크’를 재현했고, 뉴욕 유니온 스퀘어에서는 슬픔에 잠긴 팬들이 ‘마이클! 마이클!’을 외치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에서 잭슨을 기리는 추모 퍼레이드가 열렸고, 라디오와 TV에선 잭슨의 노래가 쉴새없이 울려 퍼졌다. 잭슨을 따라 자살하겠다는 팬클럽의 극단적인 소식이 들려왔고, 잭슨의 동상을 백화점 안에 설치한다는 영국 해러즈백화점의 소유주인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발표도 있었다. LA 대형 경기장의 장례식과 추모 공연도 예정돼 있다.
그리고 잭슨이 죽은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가 세운 음악적인 기록, 사후 그의 유산, 판권과 관련된 모든 것이 돈으로, 숫자로 환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잭슨은 수치로 매길 수 없는 그 이상의 절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의 죽음은 80년대
[마이클 잭슨] 불타는 숲속의 새끼사슴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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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장 클로드 반담’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360도 돌려차기의 달인, 상대는 언제나 그가 때려주기만을 기다리며 가만히 서 있던 수많은 액션영화의 히어로 장 클로드 반담, 그 이름이 맞다. 그는 최근까지도 매해 <웨이크 오브 데스>(2004), <세컨드 인 코맨드>(2006), <언틸 데스>(2007) 등 B급 액션영화를 꾸준히 찍어오고 있었다. 결코 액션영화가 아닌 블랙코미디 <JCVD>는 처음으로 고향 벨기에에서 찍은 장 클로드 반담의 자기 반영적인 영화이자, 그가 자신의 이름 그대로 출연하는 가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록키 발보아>(2006)에 출연하며 환갑이 된 자신의 육체의 노쇠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영원한 라이벌 스티븐 시걸이 뜻밖의 코미디영화 <양파 무비>(2008)에 출연하며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한 것처럼 20세기 아날로그 ‘근육’ 액션스타의 막내라 할 수 있는 장 클로드 반
[개봉 촉구] 10. 장 클로드 반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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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영화를 움직인다. 최근 일본의 인디영화 이야기다. 이누도 잇신의 <황색눈물>, 미키 사토시의 <텐텐>, 다카다 유이의 <백만엔과 고충녀>, 요코하마 사토코의 <울트라미라클 러브스토리>는 사실 아라시의 영화거나, 오다기리 조의 코미디, 아오이 유우의 사진극이거나 마쓰야마 겐이치의 무대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 감독의 성향이 전무한 건 아니지만 최근의 일본 인디영화들은 배우의 힘을 빌려, 그 이미지를 활용해 완성되는 느낌이 크다. 제작의 용이함을 위해서도 이들 영화는 배우 위주로 기획이 이뤄지며, 신인감독들은 오다기리 조의 손을 잡고, 아오이 유우의 이미지를 타고 첫 장편을 찍는다. 오구리 슌, 마쓰야마 겐이치, 마쓰다 류헤이 등 최근 연기의 폭을 넓히며 주목받는 젊은 배우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여기 여성감독의 선전이 더해진다. 일본의 젊은 여성감독들은 배우들의 감정 폭, 동작의 기운을 최대한 살려
[개봉 촉구] 9. 이구치 나미의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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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러버스>는 제임스 그레이의 첫 번째 비갱스터 장르영화다.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다. 그러나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에서 장르적 외피가 중요했던 적은 거의 없다(그를 ‘작은 스코시즈’라고 부르는 건 좀 재미없는 일이다). 오히려 <투 러버스>는 <더 야드>와 <위 오운 더 나잇>에 이어지는 ‘제임스 그레이의 와킨 피닉스 3부작’이라고 일컬어도 좋은 영화다. 그게 어떤 영화냐고? 일탈을 시도하지만 결국 안정된 가족의 삶 속으로 침잠해버리는 남자들의 초상 말이다.
레너드(와킨 피닉스)는 약혼녀에게 파혼당한 뒤 극심한 우울증을 겪다가 부모 집으로 돌아와 사는 유대인 청년이다. 그는 아버지의 세탁소 일을 도우며 낡은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걸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레너드의 부모는 아들이 다른 세탁소 주인의 딸 산드라(비네사 쇼)와 결혼하길 원한다. 하지만 레너드는 위층에 사는 독신녀 미셸(기네스 팰트로)을 흠모한다. 유부남 변호사와 내연의 관계에
[개봉 촉구] 8. 제임스 그레이의 <투 러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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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주드 애파토우 때문이다. 그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웃긴 남자다. 국내에는 데뷔작 <40살까지 못해본 남자>(2005) 정도가 유일하게 극장 개봉한 작품이지만 그가 연출을 떠나 기획, 각본은 물론 제작자로 진두지휘한 일련의 영화들은 북미 지역에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고 있다. 잭 블랙, 세스 로건 등 절친한 남자친구들을 골고루 주연으로 기용하면서 이 거대한 사단을 이끌고 있는데 오죽하면 올해 <베니티 페어> 4월호는 특집으로 ‘주드 애파토우 사단’에 대해 다루며 ‘코미디의 뉴 레전드’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아직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를 제외하고는 그 사단의 영화들이 극장 개봉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나마 <슈퍼배드>(2007), <파인애플 소동>(2008), <드릴빗 테일러>(2008),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2008) 등은 DVD 출시라도 됐지만 존 C. 라일리 주연의 음
[개봉 촉구] 7. 주드 애파토우 사단의 <워크 하드: 듀이 콕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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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체>는 4시간18분짜리 한편으로 묶여 상영됐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누군가가 소리쳤다. “스티븐, 영화가 좋지 않으면 두고보자고!” 다행히 중간 휴식시간이 있었다. 영화사에서는 체 게바라의 이름이 박혀 있는 샌드위치를 나눠줬다. 우적우적 체 게바라를 씹는 소리 사이로 호평이 쏟아졌다. 체 게바라가 쿠바의 수도 아바나로 입성하기 직전에 끝나는 <체: 파트 원>은 건조하지만 근사하게 조율된 전쟁영화였다. 모든 기자와 평론가들은 <체: 파트 투>가 어떻게 혁명을 마무리할 것인가를 기대했다. 그런데 2편이 상영되는 순간 쿠바는 사라졌다. 콩고도 없었다. 2편은 1편으로부터 5년을 뛰어넘어 볼리비아의 산악지대로 들어선다. 필름으로 촬영된 1편과 달리 2편은 디지털로 찍었다. 화면은 훨씬 메마르고 영화 또한 그렇다. 평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그런데 미국 기자들은 다른 걱정으로 심란했다. 대체 웨인스타인 컴퍼니는 4시간18분짜리 아트 영화를
[개봉 촉구] 6. 스티븐 소더버그의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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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작가의 별난 영화다. 각본가 찰리 카우프먼의 연출 데뷔작 <시넥도키, 뉴욕>은 제목부터 별나다. 멀쩡한 건물에 7과 1/2층을 지어내고(<존 말코비치 되기>), 사람을 철창 안에 가두고(<휴먼 네이쳐>), 스스로를 콤플렉스 똘똘 뭉친 작가로 그린(<어댑테이션>) 남자니 별난 게 뭐 새롭겠나 싶겠지만 <시넥도키, 뉴욕>은 그 별남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영화다. 조금씩 어긋나는 이야기는 어느새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퍼지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세계는 이성과 논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불규칙함의 덩어리를 만든다. 미국 개봉 당시에도 영화는 절대적인 호평과 악평으로 갈렸는데 악평의 대다수는 “따라잡기 힘든 이야기, 자기 중심적인 전개, 자만하는 태도”에 대한 내용이었다. 실제로 찰리 카우프먼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는 영화는 100% 주인공 케이든의 시점에서 흘러간다. 어떤 순간엔 케이든의 내면이 그대로 화면이 되어 표현되
[개봉 촉구] 5. 찰리 카우프먼의 <시넥도키,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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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은 현재진행형인 방 안의 코끼리다. 누구도 이라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주 봐서 지겨운데다 속시원한 해결방안도 없어서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도 이라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관객이 찾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간 브라이언 드 팔마의 <리댁티드>, 폴 해기스의 <엘라의 계곡> 같은 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대부분 흥행에 참패했다. 이런 와중에 캐스린 비글로는 어쩌자고 <허트 로커>를 만들었나. 솔직히 말해 캐스린 비글로라는 이름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거의 없다. <니어 다크>(1987), <폭풍 속으로>(1991),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를 통해 드문 여성 액션영화 감독으로 활약하던 그녀의 경력은 잠수함 블록버스터 <K-19>(2002)의 실패로 완전히 끝났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비글로는 재기에 성공했다. <허트 로커>는 비글로의 최대 걸작인 동시에 이라크전을
[개봉 촉구] 4. 캐스린 비글로의 <허트 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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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와 오시이 마모루. 둘의 신작 <벼랑 위의 포뇨>와 <스카이 크롤러>는 2008년 거의 동시에 일본에서 공개됐다. 둘은 이전에도 종종 비슷한 시기에 작품을 선보였다. 2004년 개봉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이노센스>, 2001년 발표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아바론> 등.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어떤 주기를 만들었다. 일본의 한 평자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1990년대부터 두 이름을 축으로 굴러간다”고도 썼다. 호소다 마모루, 곤 사토시 등 2세대라 부를 만한 감독들이 하나둘 등장했지만 아직까진 일본에서 미야자키와 오시이를 넘는 작가가 나오지 않았다. <공각기동대>의 충격, <모노노케 히메>의 신경지는 여전히 새롭다. 세상과 자연의 섭리를 우화로 풀어내는 미야자키 하야오, 무표정의 2D애니메이션에 인간 본질의 문제를 고찰하는 오시이 마모
[개봉 촉구] 3. 오시이 마모루의 <스카이 크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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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기봉은 지금 가장 위대한 홍콩의 작가다. 그는 매년 2편 이상의 영화를 미친 듯이 창조해내면서도 단 한번도 미학적인 완성도를 놓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순수하게 돈을 벌기 위한 상업영화(게다가 액션영화)로 세계 3대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지속적으로 초청받는 유일한 작가다. 문제는 홍콩영화의 열광적인 팬이 순식간에 멸종해버린 한국에서 두기봉의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록 <익사일>(放逐)과 <매드 디텍티브>(神探)가 국내 개봉하긴 했지만 진정한 걸작인 <대사건>(大事件)과 <흑사회>(黑社會) 연작을 놓친 것은 비극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가 놓친 또 한편의 두기봉 영화가 있다. 두기봉의 가장 경쾌하고 기분 좋은 소품 <문작>(文雀)이다.
참새라는 의미의 문작(文雀)은 소매치기를 일컫는 홍콩의 속어다. 당연히 <문작>의 주인공들은 소매치기다. <흑사회>나 <익사일>처
[개봉 촉구] 2. 두기봉의 <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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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직업은 수도 없이 많다. 그는 모두가 다 알고 있듯 연기를 하며, 연출도 하고,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선 개그도 한다. 또 가끔은 책도 쓰고,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선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이름도 두개다. 연기와 코미디를 할 때는 비트 다케시, 연출을 할 때는 기타노 다케시. 웃음을 줄 때는 그저 바보 같지만 <소나티네> <하나비> 같은 영화에서 폭력을 휘두를 때면 정말 섬뜩하다. 그는 일본사회를 비판할 줄 아는 연예인이지만 동시에 도쿄도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를 지원하는 보수파이기도 하다. <피와 뼈>의 모습 그대로 가부장적인 아버지론을 주장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모저모가 서로 엉켜 있다. 부딪히고 겹친다. <다케시들>에서 그가 스스로를 분해하기 시작했을 때 그래서 그 모습은 이해가 됐다. 여러 모습을 가진 자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작점 같았기 때문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때부터 자신의 이름을, 그리고 직함을 하나둘
[개봉 촉구] 1. 기타노 다케시의 <감독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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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기자들 사이에서 말로만 회자되는 걸작들이 있습니다. 지난 몇년간 국제영화제에서 발견했고 수입도 됐으나 여전히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 혹은 너무 괜찮은데다 관객도 좀 들 것 같은데 도무지 수입되었다는 소식이 없는 영화들입니다. 이를테면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정한석 기자는 오시이 마모루의 <스카이 크롤러>를 봤습니다. 오랜만에 오시이 감독이 내놓은 훌륭한 영화랍니다. 낸들 알겠습니까. 개봉을 못했는데요. 김도훈 기자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스티븐 소더버그의 <체>와 제임스 그레이의 <투 러버스>를 보고 침이 튀도록 난리를 쳐댔습니다. 사기를 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라고요? 극장에서 본 적이 없는데 낸들 알겠습니까. 주드 애파토우와 두기봉의 공식 빠돌이 주성철 기자는 <듀이 콕스 스토리>와 <문작>이 재밌다고 난리입니다. 빠돌이 말은 믿을 바가 못 된다고요? 하긴. 개봉을 해야 믿든지 말든지 하죠.
류
[개봉 촉구] 이들에게 스크린을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