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현정_형제 중 첫째죠? 맏이로 살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어요? 저는 척 봐도 맏이 같지만 김동률씨는 둘째처럼 보이는데….
김동률_아니, 저도 맏이 성격이에요. 꽤 오랜 시간 어른 말씀, 부모님 말씀은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내면화돼 있었어요. 삼남매 중 부모님 기대에 가장 부응했던 것도 맏이였던 이유가 클 거예요. 스스로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피아노도 제가 제일 오래 배웠어요. 요즘 동생들 만나 술 한잔하면 오빠는 모르는 누이동생들의 비애에 관한 뒷이야기가 나오죠. (웃음) 저를 탓하는 건 아니고요. 순응하며 성장한 콤플렉스 비슷한 것이 있어요. 아티스트는 좀 똘끼가 있어야 하잖아요?
고현정_그렇다고 알,려,져 있죠. 혼자 있는 시간에 튀어나오는 기질도 없나요?
김동률_별로 없어요. 세상이 정한 규칙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학생 시절 공부만 하면 다른 걱정은 없었고 데뷔 뒤에는 매니저가 다 챙겨주면서 살았잖아요? 진취적이거나 용
“예민한 사춘기에 팝을 안 들었어요”
-
“넌 날 따라할 게 없어서 별걸 다 따라한다. 그래, 가수들 실컷 만나보렴.”
막역한 선배 배우 윤여정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고현정은 꿋꿋이 다시 음악인을 맞은편 소파에 청했다. 지난해 11월 솔로 6집 《KimdongYULE》을 발표한 김동률이 그녀의 초대를 수락했다. 두 사람의 일정을 맞추고 자리를 준비하는 며칠 동안 1994년 ‘전람회’ 1집부터 차곡차곡 쌓인 김동률의 음악으로 양쪽 귀를 푹 감싸고 겨울 거리를 걸어다녔다. 우단 같은 목소리가 손바닥으로 쓸면 이리로 일어나고 저리로 누우며 다른 색을 냈다. <해변의 여인>을 찍을 무렵 홍상수 감독이 고현정을 가리켜 감정의 다발이 두터운 배우라고 묘사했던 말이 불쑥 기억났다. 어딘지 비슷한 ‘촉감’이다.
간혹 김동률의 노래는 혼자 부르는데도 합창처럼 들린다. 도타운 음색 때문인지 오페라적인 전개 덕분인지, 목소리만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루고 뮤지컬의 한 장(章)을 머릿속에 연출하는 극적인 데가 있다. 연기가 내내 잔잔
99명이 몰라도 1명은 알아주리라는 믿음으로부터
-
<토리노의 말>의 말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배우가 있고,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배우가 있다면 <토리노의 말>의 말은 전자다.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와 자웅을 겨룰 만한 신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으로서의 배우를 발탁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벨라 타르 감독은 루마니아의 국경 근처에서 그를 찾아냈다. 그가 니체의 일화 속 말처럼 주인이 아무리 거세게 채찍을 휘둘러도 끄떡하지 않을 만큼 센 고집의 소유자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그에겐 별다른 훈련도 필요없었다. 깊은 우울증에 빠진 듯 “유독 슬픈 눈을 가진” 그를 타르는 그저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오기만 하면 됐다. 그가 마구간에서 먹기를 거부하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부와 마부의 딸이 빛도 소리도 없는 세계 속으로 가라앉기에 충분하리라. 마부가 집을 버리고 떠나려는 장면에서는 자연히 그를 대신해 마부의 딸이 짐수레를 끌게 됐다. 바람에 맞서기조차 힘겹다는 듯 게으르게 이끌려
마치 한장의 사진처럼 멈춰서다 / 연기를 안 하는 듯 하는 듯… / 스코시즈가 반한 사랑스러움
-
<하울링>의 시라소니
우리는 이미 질풍이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티끌 한점 없는 순수한 영혼이었으나, 냉혹한 사회에서 괴물이 됐고, 결국 시스템에 의해 패퇴하고 마는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 말이다. 죽음을 맞는 순간, 누군가의 친구였던 시절을 떠올리는 질풍이의 눈빛에 살인 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 <초록물고기> 속 막동이의 모습을 겹쳐본다면 어떨까. 지칠 줄 모르는 육체로 질주하고 또 질주하는 괴물의 이미지로 본다면 <황해>의 구남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질풍이를 묘사하는 늑대개 시라소니의 연기 또한 내적 고통을 육체적인 감각으로 드러내는 하정우의 연기와 닮아 보인다. 스크린을 정면으로 육박하는 속도와 몸무게를 실어 상대배우의 몸을 제압하는 타격감에 관객은 압도당했다.
시라소니는 집념과 인내심을 키워드 삼아 질풍이란 캐릭터에 몰입했다. 연기에 앞서 그가 제일 먼저 연마한 것은 고독감을 참는 것이었다. 텅 빈 도로 위에 홀로 남겨진
나는 액션배우다 / 내 눈을 바라봐
-
-
<워 호스>의 조이
집단지능을 연기론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물론 영화란 집단노동의 산물이기에 어느 영화배우나 협업을 통해야만 최상의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워 호스>의 조이는 14마리의 조이‘들’이 합심해 1마리의 조이를 탄생시켰다는 의미에서 진정으로 집단지능의 소산이다. 수석 조련사 바비 로브그렌이 서러브레드, 안달루시안, 웜블러드 혈통을 이어받은 배우들 중에서 외모가 비슷한 14마리를 선발했고, 분장팀이 동물에 무해한 페인트로 그들의 눈과 눈 사이에 다이아몬드를, 손목과 발목에 흰 띠를 똑같이 그려넣어 싱크로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모든 장면에는 적합한 성품과 능력을 지닌 조이들이 둘씩 대기해 한 마리가 지치면 다른 한 마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 결과 개별 조이들의 연기력의 합을 초월하는 ‘기적의 말’ 조이가 태어났다.
팀플레이의 센터는 로브그렌이 직접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파인더였다. 2003년, 전설적인 경주마 이야기를 다룬 영화
14마 1역의 환상적 팀웍 / 이런 발연기, 사랑합니다~
-
추억 속의 인물을 끄집어내는 게 유행이다. 이제는 가물가물한 ‘위대한 유산’의 이름을 동물영화 목록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래시 어디 갔어? 벤지 어디 갔어? 하고 부르면 눈썹을 휘날리며 그들이 달려올 것 같지 않은가.
동물배우, 그중에서도 연기견 하면 역시 래시와 벤지의 이름이 앞다투어 튀어나온다. <래시 컴 홈>(1943)으로 처음 자신의 존재를 알린 콜리종의 래시는 이후 영특하고 용감한 개의 표본이 되었다. 래시를 연기한 강아지의 이름은 팔이었는데, 팔은 <선 오브 래시>(1945), <용감한 래시>(1946) 등 1951년까지 MGM사가 제작한 6편의 래시 시리즈에 출연했다. 당시 래시의 인기는 <래시 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제작될 정도로 대단했는데, 공연을 위해 출장을 갈 때면 호텔 특실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였다고 한다. 팔은 1958년에 사망했지만 이후 팔의 후손과 다른 콜리종의 개들이 영화와 TV시리즈에서 래시를 연기했
아기곰 ‘두스’ 기억하세요?
-
외국의 동물배우를 향한 감탄은 한국의 동물배우들을 궁금케 했다. 한국에서도 어기 정도의 연기력을 갖춘 동물배우가 있을까? 그들은 어떤 훈련을 받고, 어느 정도의 출연료를 받을까. 자기가 키우는 동물도 배우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동물배우에 대한 사사로운 질문들을 모았고, 몇몇 전문가들에게 답을 구했다.
<하울링>에 출연한 늑대개 시라소니.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 출연했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도 얼굴을 비췄다. 현재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에 출연 중이다. 사람에게 안기기를 좋아하는 성격인 듯한데, 눈을 보고 있자니 좀 무서웠다.
Q. 한국에도 동물배우 에이전시가 있을까?
에이전시를 다른 말로 하면 소개업이다. 일반적으로 동물 에이전시는 동물을 수입대행해서 필요한 곳에 공급해주는 회사를 뜻한다. 현재 한국에서 동물배우들을 관리하고 연기를 가르치는 회사들은 대부분 ‘훈련업’
Q: 우리 개를 <아티스트>의 어기처럼 키우고 싶어요
-
2012년 1/4분기는 동물배우 연대기의 한 챕터를 채울 게 분명하다. 관객은 스타의 얼굴보다 동물의 표정과 행동에 더 크게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중이다. <아티스트>의 어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지정좌석을 배정받을 만큼 신드롬을 일으켰고, <워 호스>는 명마 조이의 여정으로 관객을 감동시켰으며 한국에서는 <하울링>의 질풍이가 사람배우 못지않은 스타덤에 올랐다. 이 밖에도 <비기너스> <휴고>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등 동물배우가 작품의 이야기와 정서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이 넘쳐났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빅 미라클> <더 그레이> 등 실제 동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동물캐릭터를 만든 영화들도 사례에 포함될 것이다. 가히 전 지구적이라고 할 만한 동물배우들의 전성시대를 맞아 한국의 동물배우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과 그들을 훈련시키는 조련사들에게
강아지와 고양이의 시네마천국♬♪
-
1200만달러짜리 저예산영화 <크로니클>은 현재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6천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로튼토마토닷컴에서는 무려 86%의 신선도를 기록하고 있다. 당연히 감독과 배우들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도 강렬하다. <크로니클>의 감독과 배우들을 LA 현지 정킷으로 만났다.
“평범한 고등학생 같은 배우를 원했다”
감독 조시 트랭크 인터뷰
-<크로니클>은 독특한 영화다. 이 영화를 시장에 내놓는 데 특별한 전략이 있었나.
=여러 가지 자원을 활용했다. 나는 100% 인터넷 세대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인터넷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생활을 하지 않나? 나는 50% 정도 인터넷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터넷이 어떻게 아이디어를 싹틔우고 소문을 만드는지, 얼마나 빠르게 이야기를 실어나르는지, 그리고 그 여파에 대해 관찰하고 알고 있을 만큼 운이 좋았던 셈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한 가지 배운 것은 마케팅 시장이 인터넷으로
나쁜 슈퍼 히어로들의 박스오피스 습격 사건
-
<크로니클>은 지금 영화를 만드는 세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 영화다. 만약 <클로버필드>와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 같은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형식을 지금 할리우드를 휩쓸고 있는 슈퍼히어로물과 접목한다면? 이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사람은 스물일곱 동갑내기인 감독 조시 트랭크와 각본가 맥스 랜디스다. 조시 트랭크는 <스타워즈>의 제다이와 스톰트루퍼가 십대들의 파티에 갑자기 나타난다는 내용의 파운드 푸티지 단편 <레아의 22번째 생일날의 칼부림>(Stabbing at Leia’s 22nd Birthday)으로 유튜브에서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아들로 태어난 조시 트랭크는 “실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주 평범하고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로 시작하다가 갑자기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영화 말이다. 어느 날 여객기를 타고 날아가다 창밖을 봤는데 구름이
파운드 푸티지가 슈퍼히어로를 만났을 때
-
가만 생각해보라. 지금 할리우드를 휩쓸고 있는 두개의 신종 장르인 파운드 푸티지와 슈퍼히어로물을 하나로 합친다면 뭔가 흥미진진한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크로니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70∼80년대 선배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일본 만화의 영향력까지 호쾌한 솜씨로 버무려넣는다. 스물일곱살 신인감독의 데뷔작 <크로니클>은 <블레어 윗치>가 <엑스맨>을 만난 영화, 혹은 <클로버필드>가 <아키라>를 만난 영화다.
만약 당신이 슈퍼파워를 손에 넣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은 하늘을 날 수도, 손에서 거미줄을 뿜어내며 빌딩숲을 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터 파커의 삼촌이 말했듯이 “큰 힘에는 큰 책임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아니다. 그건 마블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법칙이다. 진짜 세계에서라면 큰 힘에는 책임감이 아니라 큰 업보만 따라온다.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당신은 기껏해야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고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영웅
-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으로 작품을 여러 편 했다. 영향력이 큰 감독 아래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어쩌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극장전>은 연출부, <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는 조감독을 했다. 그렇게 너무 많이 하면 네 색깔이 없어지지 않겠냐는 주위의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는 막상 주위에서 걱정하는 만큼은 못 느꼈다. 막연하지만 어떻게 될 거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감독님과 일하면서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느낌도 들었다. 홍 감독님의 트리트먼트, 대본 등을 보면서 나도 같이 발전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큰 걱정은 안 했다. 게다가 감독님과 일하면서 좋은 배우들을 많이 봤고 그게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들이 말하는 그런 부담에서는 점점 더 멀어졌고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게다가 감독님의 제작방식이 큰 의지가 됐고 거기서 확신을 얻게 됐다. 이렇게
“홍상수 감독님에게서 현장의 여유를 배웠다”
-
이광국의 <로맨스 조>는 씨네21i와 보리픽쳐스(대표 임순례)가 공동으로 추진한 신인 발굴 프로젝트 당선작이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로테르담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데뷔 감독의 이야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 솜씨란 특별한 내용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뜻이 아니라 특별한 형식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씨네21i가 발굴한 신인감독이므로 더 주목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도 어쩔 수 없다. 올해의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 중 한명이 될, 이광국 감독과 그의 데뷔작 <로맨스 조>를 소개한다.
이광국의 데뷔작 <로맨스 조>는 싸구려 모텔의 복도에 걸려 있는 그림, 야생마들이 늠름하게 내달리는 그 그림에서 시작한다. 그야말로 거기엔 말(馬)들이 몰려온다. 카메라가 천천히 트랙 아웃하는 동안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음악이 흐르는 걸 보면 이때의 말들은 유머이며 신호다. 실은 그 말이 아니라 다른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를 쏟아내다
-
공격형인지 수비형인지 그것까진 모르겠어요
-김윤석 배우와 두 작품을 했습니다. 전 이런 게 궁금합니다. 함께 신을 만들 때 두 배우의 장면 해석이 일치할 필요가 있나요? 아니면 현실의 인간이 그렇듯 주고받으면서 속으로 다른 그림을 그리는 건 상관없나요.
=서로 확인하진 않아요. 장면의 큰 목표에 관해선 대화하지만 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 해요. “우리 지금 맞게 가고 있는 거니?”그런 문답은 오가죠. 예컨대 구남을 잡으려고 갑판에서 면정학이 직접 바다로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형, 그래도 두목인데 여기서 면가가 배에서 뛰어내리는 게 말이 돼요?” 하면 “그치?” 하면서 감독한테 이야기해보는 거죠. 그럼 나홍진 감독은 농담으로 그러죠. “뛰기 싫으세요?”(좌중 폭소) <황해>에서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보면 형이 “구남이, 밥 먹었니?” 물어보는데 저는 거기서 예인지 아니오인지 애매하게 말을 뭉뚱그려서 대답해버렸어요. 그건 상대배우를 곤란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3 since 2009: 하정우가 자신의 연기를 돌아보다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