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모욕’적인 연구 결과부터 이야기해볼까 한다. 일본의 한 기업이 작업장 환풍기에 돈 냄새가 나는 바람을 흘려보냈고 그 결과, 직원들의 생산력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 사례에서 힌트를 얻어 신권을 갈아 넣은 향수가 나오기도 했으니, 화학약품과 특수 잉크가 버무려진 지폐 냄새야말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강력한 유도체라 할 만하다. 이 얇고 네모난 섬유 조각이 풍기는 비린내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돈다발이 주는 희열이 매번 지독한 허기와 모멸감을 불러일으킨다 해도 말이다.
<돈의 맛>은 비서 주영작(김강우)이 윤 회장(백윤식)을 따라 들어간 비밀금고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입을 벌리는 검찰 수뇌부에게 뒷돈을 건네러 가는 길이다. 거대한 현금더미가 모습을 드러내고, 영작은 서둘러 가방에 돈을 담는다. 윤 회장이 현금을 따로 챙겨 ‘돈맛’을 봐둘 것을 권하지만, 영작에게는 아직 딴 주머니를 찰 의지나 배포가 없다. 그는 돈다발을 들어 슬쩍 냄새를 맡고는
돈으로부터 모욕감을 느끼는 하녀와 하남
-
<다른 나라에서>는 변함없이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감독을 포함해 두세명에 불과한 전원사 식구들의 품을 가장 많이 요구한 영화이기도 하다. 유명한 외국 여배우가 주연을 맡은 데 따른 부수 업무들, 전체의 절반 가까운 영어대사를 처리해야 하는 후반작업, 칸 경쟁부문에 가는 데 따른 잡무 등. 그래도 그 인원이 여전히 포스터와 예고편에서부터 자막에 이르기까지 투덜거리면서도 모두 해치우는 걸 보면 거의 마술이다.
이 마술적 가내 수공업을 통해 한국의 시네필들을 가장 설레게 하는 영화가 매년 한편, 때로는 두편이 꼬박꼬박 태어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이고 그저 고마울 뿐인 마술이다. 칸행을 준비하느라 여전히 바쁜 홍상수 감독을 만났다.
-<다른 나라에서>는 촬영 전에 무엇이 제일 먼저 정해졌나요. 이번에도 장소였습니까.
=그런 것 같아요. 가장 처음 정한 게 부안의 모항이란 장소였어요. 그다음 촬영날짜를 잡았고. 지난해 5월쯤엔가 이자벨 위
"이 영화를 생각하면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맑고 귀엽고"
-
빚을 지고 도망간 이모부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쫓겨 모항으로 내려온 모녀(윤여정, 정유미). 그런 상황이 마땅찮은 딸은 무료하고 불안한 마음에 세편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안느라는 이름의 프랑스 여인(이자벨 위페르가 1인3역을 한다)인데, 그녀가 각기 다른 이유로 모항으로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안느는 각각 프랑스에서 온 멋진 영화감독이고,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진 유부녀이며, 한국 여자 때문에 남편에게 이혼당한 여자다. 안느‘들’은 젊은 여자(정유미)가 일하는 동일한 펜션에 머무르며, 외국 여자에게 호감을 갖는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고, 해변의 텐트에 사는 안전요원(유준상)을 만난다. 이 세편의 시나리오가 홍상수의 열세 번째 장편 <다른 나라에서>를 채운다.
겹치고 서로 반응하는 세편의 시나리오
그러니 <다른 나라에서>는 <극장전>이나 <옥희의 영화>에서 부분을 이루었던 ‘영화 속의 영화’가 전체로
꿈의 중첩 활동
-
홍상수판 <꿈의 해석>이 궁금한가. 임상수판 <자본론>을 읽고 싶은가.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나란히 초청된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5월17일 개봉)과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5월31일 개봉)가 5월12일과 13일에 연이어 공개됐다. 이자벨 위페르, 윤여정, 정유미, 유준상 등이 출연한 홍상수 감독의 13번째 장편 <다른 나라에서>는 언어로 구획되지 않는 이미지 미로에 관한 기이하고 낯선 지도다. 반면 윤여정, 백윤식, 김강우, 김효진 등이 출연하는 임상수 감독의 7번째 장편 <돈의 맛>은 지옥 같은 현실에 영혼을 저당잡힌 자들의 비명록이다. ‘청량한’ 꿈을 좇는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와 ‘부조리한’ 현실을 뚫는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을 미리 들여다보고, 곧 칸으로 떠나는 두 감독의 인터뷰를 덧붙였다.
지금은 '상수' 시대
-
-
스물네살 시절의 <선데이서울> 인터뷰에서부터 예순다섯살인 지금의 <씨네21> 인터뷰까지, 윤여정의 말들을 모았다. 윤여정의 말들은 4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이 없다. 어쩌면 그녀는 <화녀>부터 <돈의 맛>까지 오는 동안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TV는 죽 연결이 되어서 한번 슈팅하면 그 감정이 계속해서 사는데 영화는 컷마다 끊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드라마의 감정에 단절이 생기게 돼요. 어떤 사람은 그래서 더욱 쉽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난 더 곤란한 것 같아요. 연기의 비결은 누구나 그렇듯 바로 극중의 인물이 된 듯 분위기에 사로잡히는 거죠. 그래서 나는 한번 슈팅에 들어갔다 하면 비교적 쉽게 끝까지 소화할 수가 있어요. 말하자면 작품을 소화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게 문제겠죠.”
-1970년 <화녀>를 찍기 직전 <선데이서울>과 인터뷰 중-
“화려한 재복귀. 이런 떠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돼”
-
윤여정에 대한 글입니다. 아니요. 윤여정을 인터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윤여정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아니요. 윤여정을 생존자로 떠받드는 글이 아닙니다. 아니요. 윤여정을 우리 시대의 아이콘으로 정착시키려는 음모를 품은 글도 아닙니다. 네. 이 글은 윤여정에 대한 글입니다. 네. 이 글은 윤여정에게 바치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게 맞습니다.
“미친년 나왔네.” 외할머니는 TV에 나오는 몇몇 여자들을 미친년이라고 불렀다. 기준은 한 가지였다. 그 여자가 이혼을 했느냐 아니냐.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혼을 한 여자들은 미친년이거나 팔자 사나운 년이었다. 특히 외할머니가 미친년이라고 부르던 궁극의 대상은 윤복희였다. 윤복희가 오랜만에 TV에 나와 특별공연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저 미친년 좀 봐라”라는 외침과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복희는 당대에 드문 이혼녀에 무릎이 다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남한 전역에 살포한 죄인이었다. 나도 어쩔 도리 없이 TV에 윤복희가 나오면 “
나는 지금 그녀와 열애에 빠져 있다
-
영화제의 심사위원 기자회견이란 실은 빤한 문답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올해 칸 경쟁의 심사위원장은 난니 모레티가 아닌가. 확고한 의견과 재치있는 말솜씨의 소유자 난니 모레티가 올해 심사의 향방을 말한다.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작품을 이번 영화제에서 보기 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였나.
=사실 그런 말은 영화제 이전에 누구나 하는 말이긴 하지. 하여간에 좋은 점은 우리 심사위원 모두가 특별한 편견 없이 매우 열린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란 점이다. 심사위원 모두가 나처럼 놀라움을 주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실은 종종 수백번은 봤던 것 같은 작품들을 보게 되면서도 말이다.
-심사위원장의 역할은 어떻게 수행할 생각인가.
=불행인 건 심사를 매우 민주적인 방식으로 하게 될 것 같다는 거다. 일종의 학교 담임선생 같은 것이 나의 역할이다. 우리 심사위원들에게 중요한 건 동일한 정도의 집중력과 존중을 유지하며 모든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인 건 심사위원장의 권력에는
우릴 놀라게 해봐!
-
여기도 개막, 저기도 개막이다. 프랑스는 지금 사방이 개막으로 바쁘다. 올랑드 시대가 막 개막했고, 5월16일 칸국제영화제가 그 뒤를 바짝 이어 65회 개막을 가졌다. 대선 직후의 흥분 속, 프랑스인의 제1 관심사는 역시 올랑드 대통령의 집권 초기 향방이다. 도미닉 스트로스 칸의 추문이 영화의 거리, 크루아제를 뒤덮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옆집 아저씨 같은 올랑드의 푸근한 미소가 서비스로 마련되어 있다. 올해 칸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가 섹스심벌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사뭇 다른 온화한 미소를 보이는 것도 부러 쌍을 맞춘 듯한 선택처럼 보일 정도다. 관건은 영화제가 올랑드 시대의 개막에 필적할 카드를 내밀 수 있냐는 거다.
칸에 모인 전세계 기자들의 관심을 일거에 집중시킨 건 결국 개막작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의 몫이었다. 칸 메인 상영관 드비시 극장. 웨스 앤더슨은 전세계 기자들로 구성된 관객을 보란 듯이 1965년의 뉴잉글랜드 근교 작은 섬마을로 안내한다. 빌
21세기의 영화를 찾을 수 있을까?
-
감독 스티브 마티노, 마이크 트메이어 / 출연 레이 로마노, 데니스 리어리, 존 레기자모, 숀 윌리엄 스콧 / 개봉예정 7월
-4편이 나온다고? 멸종한 공룡까지 부활시켜서 3편을 만들었지 않나. <슈렉>처럼 ‘아이스 에이지 포에버’라도 만들려는 건가.
=돈을 벌어주는데 왜 안 만들겠나. <엠파이어>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전세계 박스오피스 수익을 약 9억달러로, <아이스 에이지4: 대륙이동설>(이하 <아이스 에이지4>)은 9억5천만달러로 예상했다. 이십세기 폭스에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는 지난 10년간 제임스 카메론 못지않게 중요한 돈줄이었다. 1편이 3억7800만, 2편이 6억2400만, 3편이 8억8800만달러를 기록했다(그동안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 한편을 만들었을 뿐이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아이스 에이지4>가 <토이 스토리3>의 기록인 10억6천만달러를 넘어설 가능
매머드 양반, 대륙이동이 웬말이오?
-
감독 마크 앤드루스, 브렌다 채프먼 / 목소리 출연 켈리 맥도널드, 에마 톰슨, 빌리 코놀리, 로비 콜트레인 / 개봉예정 9월27일
-픽사의 새 애니메이션이다. 공개된 예고편을 보면 픽사의 작품이 맞나 의심스럽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 3D>는 픽사의 열세 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카2> 개봉 1년여 만에 선보이는 픽사의 신작인데(미국에서 6월, 국내에서 9월 개봉예정), 낯선 제목 때문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애초 <곰과 활>(마치 전래동화 제목 같다!)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브레이브>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리고 국내 개봉 제목은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 <메리다와 마법의 숲 3D>로 확정됐다. 간결한 제목을 선호하는 픽사인데, 국내에선 오히려 글자 수가 늘었다. 무엇보다 이번 픽사의 신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주인공이 ‘여자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간 픽사 애니메이션을 주름잡
천방지축 말괄량이의 모험담
-
감독 토니 길로이 / 출연 제레미 레너, 레이첼 바이스, 에드워드 노튼 / 개봉예정 8월
-<본 레거시>에 본이 나오지 않는다면 누가 나온다는 건가.
=우선 <본 레거시>가 ‘본’ 시리즈의 프리퀄도 리부트도 아닌 스핀오프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넘어가자. 하차한 맷 데이먼을 대신해 제레미 레너가 연기하는 비밀특수요원의 이름은 소문 속의 아론 크로스가 아니라 케네스 키슨으로 밝혀졌다. 그는 본과 별개의 인물이지만 자신이 속했던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에 버그 같은 존재가 된다는 설정은 공유한다. 그래도 기존 팬들에게는 그가 아직 본의 서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 이해한다. 하지만 기대할 만한 부분도 있다. 토니 길로이 감독이 그를 톰 크루즈나 채닝 테이텀에 버금가는 ‘액션광’이라고 혀를 내둘렀다는 거 아나. 마흔이 넘는 나이에도 모든 스턴트를 몸소 소화해냈단다. 그러니 그의 순도 100% 활극을 기다려봐도 좋을 것이다. 본앓이 대신 키슨앓이가 시작돼도 책임 못 진다
어디까지나 ‘스핀오프’!
-
감독 존 추 / 출연 브루스 윌리스, 드웨인 존슨, 이병헌, 채닝 테이텀, 에이드리언 팰리키 / 개봉예정 6월21일
-전작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에 이어 <지.아이.조2>에 스톰 쉐도우 역으로 또 이병헌이 출연한다. 심지어 1편에서 스톰 쉐도우는 죽기까지 했는데 다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찍이 제작사 파라마운트에선 아시아 지역 흥행 일등공신으로 이병헌을 꼽은 바 있다. 그러니 파라마운트 입장에서야 죽은 스톰 쉐도우를 다시 살려서라도 이병헌을 붙잡고 싶지 않았을까. 얼마 전 <씨네21>과 인터뷰에서 이병헌은 “내가 등장하면 어쨌든 내 스토리가 진행된다. 내용 면에서 보면 엄청난 발전이다. 얼마 전 존 추 감독이랑 통화하는데 스톰 쉐도우 장면은 편집에서 거의 다 살렸다라고 하더라”라고 밝혔다. <지.아이.조2>에서 이병헌이 맡은 스톰 쉐도우의 비중이 상당 부분 늘어났다는 이야기인데 존 추 감독도 배우 이병헌도 서로 기대하는 바
브루스 윌리스 대령이오~
-
감독 티무어 베크맘베토프 / 출연 벤자민 월커, 도미닉 쿠퍼,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 개봉예정 8월30일
-링컨이 뱀파이어 헌터라니 설정이 너무 황당한 것 아닌가.
=소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를 쓴 작가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를 기억하는가. 제인 오스틴이 쓴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를 동양무술 마스터로 만들어 좀비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게 했던 그 소설가 말이다. 이어 그가 내놓은 소설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이 이 영화의 원전이다. 여기에 제작자로 팀 버튼이, 감독으로 <원티드>의 티무어 베크맘베토프가 합세했다. 장르라면 도가 튼 3명의 남자가 의기투합했으니 황당한 영화가 아니라 대단한 무언가가 나오리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뱀파이어에게 어머니를 잃은 링컨이 충격을 받고 미국이 뱀파이어에 지배당하는 걸 막기 위해 대통령이 돼 남북전쟁에 참가한다니. 전기, 장르가 한데 버무려져 어떤 빛깔을 낼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링컨, 도끼를 휘두르다?!
-
감독 렌 와이즈먼 / 출연 콜린 파렐, 케이트 베킨세일, 제시카 비엘, 브라이언 크랜스턴 / 개봉예정 8월2일
-<토탈 리콜> 리메이크라니! 폴 버호벤 버전은 SF사의 걸작이다.
=벌써 22년 전이다.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은 당시 2억6천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며 SF사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다. 제대로 못 만들면 본전도 못 찾을 공산이 크다. 렌 와이즈먼은 말한다. “나 역시 똑같은 의문을 던졌다. 그럼에도 리얼리티와 판타지 요소가 서로 뒤섞여 대결하는 원작에 매혹됐다. 이것이 진실인가 환상인가라는 마인드 게임이 핵심이다”라고.
-렌 와이즈먼의 복안은 무엇일까. <언더월드> 시리즈의 음울함이 지배하는 건가.
=렌 와이즈먼은 리메이크편에 대해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를 가져다 컬러를 입힌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버전이 원작보다 더 단단하고, 더 현실적이며, 더 우울할 것임을 약
오리지널을 뛰어넘겠다는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