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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이야기지만, <그래비티>는 SF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작가 입장에서도 어떤 작품이 SF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건 그다지 실용적인 활동이 아니어서 그런 식의 논쟁은 피하는 편인데, 작품이 추구하는 재미나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사용된 미학적인 재료에 관해 다뤄보라는 요청을 받으면 별수 없이 장르 구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있다. 특히나 “SF는 이러이러해야 하는데 어떤어떤 작품은 그런 조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별로”라거나, “<그래비티> 같은 작품은 다른 SF와는 달리 이런이런 점에서 더 훌륭하므로 다른 모든 SF영화들도 이런 장점을 본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경우는 선택의 여지가 더 좁은 것 같다.
리얼한 SF가 아닌 리얼한 영화
<그래비티>가 SF처럼 보이는 건 우주가 나오기 때문이다. 주로 SF 영역에서 다루던 소재들을 재료로 삼아 만든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재료들을 통해 하
상상이 아닌 진짜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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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극찬대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역대 최고의 영화”인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테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어쨌거나 <그래비티>가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로 보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나아가 이런저런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준비해봤습니다. 과학자, 철학자, SF작가 3인의 <그래비티> 다시 읽기. 남순건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배명훈 SF작가, 이진경 철학자, 세 필자가 <그래비티>라는 영화의 행성을 향해 기존의 영화평론가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질문들을 쏘아올려보았습니다. 그 질문들과 더불어 새로운 공전궤도에서 <그래비티>를 다시 곱씹어보시길 바랍니다.
중력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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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에서 ‘인간 슈퍼히어로’들과 지구를 지켰던 토르가 그의 동생 로키의 손을 잡고 신들의 땅 아스가르드로 돌아간 것이 2012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현실 시간으로는 1년, 영화 속 시간으로는 2년이 지나 <토르: 다크 월드>로 다시 돌아왔다. 상투적인 홍보 문구 같지만 이번 2편은 스케일도 커졌고 인물들의 드라마 역시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이러한 개별적인 성취와 함께 더욱 뚜렷해진 것은 <어벤져스> 시리즈 내에서 <토르> 시리즈가 갖는 독특한 성격이다.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이 앞다투어 영화에 출연하는 지금, 과연 토르는 어떤 자신만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을까.
올해 여름에 열렸던 디즈니 팬들의 가장 큰 축제인 ‘D23 Expo’에서 <토르: 다크 월드>의 새로운 연출자인 앨런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말을 했다. “영화의 러닝타임에 대한 루머가 있더라고요. 저는 좀더 긴 버전을 원하고 제작사는 좀더 짧은 버전을 원한
산만하다고? 그게 우리 전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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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신촌살인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집을 나올 때 지갑 빠트린 건 몰라도 스마트폰 놔두고 온 건 바로 알아챈다. (웃음) 뭐랄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뭔가에 질질 끌려다니는 느낌이다. 지금 10대들을 보면 스마트폰이 단순한 통신수단 이상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이룬 것 같다. <공각기동대>나 <매트릭스>에서 얘기하던 세계가 정말 완전한 현실이 됐다고나 할까. 영화 속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아이들이 서로의 존재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 있다. 하지만 다들 서로에 대해 답을 잘 하지 못한다. 실제로 그 사건의 담당 형사들과 아이들을 취조했던 심리분석관을 만나봐도,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아이들의 상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더라. 물론 영화는 실제 사건과 좀 다르지만, 그들은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까, 그런 궁금증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 됐다.
-그런 접근방식에 있어 3D가 중요한 선택이었다고 느끼는지.
=구스 반 산트의 10대 영화들인 &l
3D는 결국 세계 안의 인물들을 바라보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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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제작하는 3D 단편영화 <유령>을 촬영 중이다. <시>와 <로맨스 조>의 이다윗, <전설의 주먹>에서 호흡을 맞춘 박정민과 박두식, 그리고 최근 버스커버스커의 2집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아오이 유우의 도플갱어’라 불렸던 손수현이 출연해 온라인 카페 채팅방을 둘러싼 소외된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구체적으로는 바로 지난해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이른바 ‘신촌살인사건’을 영화화하는 것. 류승완 감독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그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조망하기 위해 3D라는 방법을 택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고 열흘 정도 <유령>에 매달린 그는 아마도 그 결과물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일 것이다. 내년 상반기 극장 개봉을 목표로 그를 이어 곧 김태용, 한지승 감독도 촬영을 시작해 3D 옴니버스영화로 완성될 예정이다.
“아주 어지럽고 좋아요. (웃음)” 검은색 3D 입체안경을 쓴 류승완 감
유령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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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1일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사회 여러 분야에서 협동조합은 물론 협동의 경제와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이 가능해졌고, 영화 관련 협동조합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고양의 영화나눔협동조합, 서울의 청년공정영화협동조합 모두를 위한 극장에 이어 대전에서는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 등이 설립되어 활동 중이다. 리틀빅픽쳐스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다만 기본법이 협동조합이 금융 및 보험업법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는 투자 등을 할 수 없다는 문제와 안정적인 자본금 형성을 위해서는 다양한 출자자 및 투자자와 협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식회사를 선택하게 된 중요한 변수가 되었을 것이다. 창작자가 아닌 자본이 주인 행세를 하는 시장에서 제작사들이 함께 힘을 모아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일본, 협동조합 영화관이 순회 상영
리틀빅픽쳐스와는 다르지만 협동 방
자본이 배려하지 않는 곳을 어루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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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숫물이 댓돌을 뚫을 수 있을까. 제협 소속 8개 제작사와 <씨네21>, 더컨텐츠콤 등 10개 회사가 시장이익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공공적 성격의 대안배급사 리틀빅픽쳐스(이하 리틀빅)를 설립했다. <씨네21>은 제협 회장단인 명필름 이은 대표, 영화사 청어람 최용배 대표,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에게서 리틀빅을 설립하기까지 어떤 고민들이 있었는지, 앞으로의 리틀빅은 어떤 청사진으로 운영될 것인지에 대해 들어봤다.
씨네21_제협은 올해 초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이하 동반협)를 통해 영화계 노사정간 공정한 거래 풍토를 만드는 데에 합의했다. 제협은 왜 이 시점에 리틀빅이라는 대안배급사를 만들게 됐나.
이은_동반협엔 여러 단체들이 있기 때문에 각 단체에 해당하는 사안을 다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우리에겐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자 본질적인 가치의 문제인데 동반협의 논의에만 맡길 수 없어서다.
최용배_올해 2월 새로
“정신만은 분명하다 십시일반, 대동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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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FC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축구팀이다. 메시와 네이마르가 뛰고 있다.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FC 바르셀로나가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구단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많다. FC 바르셀로나의 주인은 메시도, 네이마르도 아닌 20만명에 달하는 조합원이다. 회비 150유로만 내면 누구나 바르샤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1년 넘게 활동한 조합원이라면 조합 이사회에 참석해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고, 6년마다 열리는 클럽 회장 선거에서 소중한 한표를 행사할 수 있다. 선수 이적을 비롯한 구단 운영이 비교적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그것이 바르샤의 축구가 아름다운 이유다.
영화를 공급받는 극장이 상영조건 좌우
바르샤가 그렇듯이 작은 힘이 모인다면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 리틀빅픽쳐스(Little Big Pictures, 이하 리틀빅)는 여러 제작사들이 힘을 모아 만든 공공적 성격의 배급사다. 명필름, 영
‘갑님’ 중심의 영화 생태계를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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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체제에는 두 가지 핵심 단어가 있다. 경쟁과 협동이다.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의 저자이자 오랫동안 협동조합을 연구해온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경쟁을 통해 산업이 번영하기 위해서는 협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고, 그로 인한 비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또 이것으로 인해 많은 부정적인 문제가 초래된다. 스탭 처우 문제를 비롯해 무료입장권 남발, 불공정한 수익 분배 문제, 스크린 독과점, 수직계열화 등 영화산업의 여러 구조적 문제가 계속 발생한 것도 2008년 영화계 불황 이후 지난해의 호황에 이르기까지 외형적인 성장에만 몰두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기업 투자배급사를 중심으로 산업의 질서가 견고해진 2013년 가을,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작은 제작사들이 공정한 산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을 모아 공공적 성격의 배급사를 만들었다. ‘작지만 강하다’는
작은 힘이 모여 큰 꿈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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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촬영을 보니 소행성의 충돌 위험으로부터 혼란에 빠진 인간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확연한 SF 장르다.
=종말 이야기와 주말극의 막장 요소를 가지고 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잘 조화가 되어야 하는데 못할까봐 걱정스러운 면도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에피소드 중에 ‘인생은 참 불가측하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결국 그게 내가 가진 세계관이라면 세계관이다. 원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지름이 400km 이상 되는 것들은 울퉁불퉁하다고 하더라. ‘감자별’이라는 이름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형태가 삶에 대한 메타포가 될 수 있다. 삶을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혼란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가 떠올랐다.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을 앞둔 가운데 한 개인의 우울증을 다룬 것처럼 <감자별>의 인물들도 비슷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멜랑콜리아>는 결국은 우울증 이야기를
나는 코미디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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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이후 1년 반이 지났다. 그간 TV에서는 다른 많은 화제작이 생산됐고 우리는 열광했다. 하지만 시청자에게 ‘시트콤’을 학습시킨 주인공,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의 분위기를 대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늘 초조한 기다림을 종용하는 유일한 이름의 연출자다. 그런 김병욱 감독이 귀환했다. 지난 9월23일 방송 시작, 총 120회 예정, 매주 4회 밤 9시15분에 방송되는 시트콤 <감자별 2013QR3>(이하 <감자별>)은 앞으로 6개월 동안 우리를 웃고 울려줄 태세로 초반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SF 장르를 틀로 하여, 드라마는 한층 강화되고 시트콤의 형식은 더 많이 해체된, 또 다른 변주의 시트콤이다. 스튜디오 촬영, 대본 회의, 집필 과정이라는 빡빡한 일주일 일정 속에서 자그마한 짬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무턱대고 그러나 조심스럽게 한나절을 공개해달라고 여러 번 청했고, 바람은 드디어 이뤄졌다. <
소행성 감자별과 충돌한다, 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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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의 상영 뒤 열린 관객과의 대화는 성토의 장이 됐다. 마이크를 잡은 관객들은 제각기 자신이 겪었던 사회생활의 애환을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쏟아냈다. 비정규직 사원인 <10분>의 주인공 강호찬은 그렇게 한번쯤은 ‘을’이었던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88만원 세대’인 이용승 감독은 단편 <런던유학생 리차드>에 이어 다시 한번 사실적이고 냉혹한 도심 속 정글로 보는 이들을 안내한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경험을 <10분>에 반영했다.
=자료원에서 영상자료를 검수하고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했다. 1년 단위의 계약직이었는데, 정규직과 계약직은 겉으로는 하는 일이 비슷해 보여도 미묘한 차이가 있더라. 말하긴 뭣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미세한 지점들이 <10분>에도 반영된 것 같다.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 <10분>의 등장인물들을 동물에 비유한 점이 인상적이다.
=단국대 영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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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공을 쫓아 달려갔다가 의외의 풍경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셔틀콕>은 목적지로 가는 도중 잘못 접어든 길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믿는 영화다. 부모의 유산을 가지고 잠적한 누나를 찾아 남해로 떠난 의붓형제 민재(이주승)와 은호(김태용)가 이 영화의 말미에 얻는 건 누나의 돈이라기보다는 여정의 수많은 샛길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무엇이다. 지나치기 쉬운 공간과 사건들을 소홀히 하지 않는 영화를 만든 데에는 연출자의 세심한 마음의 결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이유빈 감독의 말을 들어보니 그 짐작이 맞는듯하다. “이제까지 만든 단편들을 곱씹어보았을 때, 나는 ‘미련’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왔구나 싶다. 지나간 일에 집착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혹은 내가 그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어땠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내 영화의 이야기가 나온다.”
<셔틀콕> 역시 이유빈 감독이 과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배드민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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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어떤 사건을 겪은 여고생 한공주(천우희)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인천으로 전학을 간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면서 삶의 희망을 찾는다. 하지만 꼬리표처럼 따라온 과거가 공주의 새로운 삶을 또다시 산산조각낸다. 공주는 앞으로도 계속 따라올 자신의 과거를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하는 <한공주>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무비꼴라쥬상과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2008년 미쟝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촬영상을 수상했던 단편 <적의 사과>(2007) 이후 거의 6년 만이다.
=계속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한 제작사와 각본 계약을 해서 2년 동안 준비한 것도 있었고.
-<한공주>는 과거 어떤 사건을 겪은 여고생 공주가 새로운 삶을 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과거의 일이 플래시백을 통해 수시로 끼어든다.
=공주가 겪었던 그 때 그 사건을 재구성하는 건 내게
분노 말고 할 수 있는 게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