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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3>의 개봉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4월25일 한국에서 최초 개봉).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이 총집합한 <어벤져스>의 대성공 뒤에 선보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슈퍼볼 시즌을 앞둔 지난 1월29일, 마블 스튜디오와 디즈니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을 초대했다. <아이언맨3>의 인터내셔널 트레일러와 슈퍼볼 스폿광고, 그리고 컴퓨터그래픽 작업이 되지 않아 아이언맨의 슈트가 광채라고는 없는 회색으로 칠해진 15분가량의 영상 3편을 공개했다. 이어 한 시간가량 제작자 케빈 파이지, 감독 셰인 블랙, 그리고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아이언맨3>를 예상해본다.
Q1. 마침내, 최강의 적을 만나다. 만다린의 정체는?
<아이언맨3>의 악역이자 국제테러조직을 이끄는 만다린은 인상적인 연설을 남긴다. “숙녀 여러분 그리고 어린이와 양들, 사람들은
초심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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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좋아하는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영향을 받아 탄생됐다. <킬 빌> 시리즈가 ‘쇼 브러더스’를 위시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아시아 액션영화 여행이었다면,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장고’를 경유하는 그의 스파게티 웨스턴 여행이다. 영화의 제목 역시 이탈리아 배우 프랑코 네로가 ‘장고’로 등장한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1966)에서 왔다. 하지만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흑인 장고를 내세워 노예제도라는 미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으로 깊숙이 들어가 헤집는다. 그렇게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에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의 정서를 덧씌운다. 타란티노식 ‘하이브리드’ 영화의 극치랄까.
왕년의 <장고>를 보며 한번도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의 심장을 겨누고 인생을 말하다>를 쓰기도 했던 스파게티 웨스턴 전문가 하워드 휴스는, <원스 어폰 어
장르와 계보의 무규칙 이종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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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이미 어둑어둑한 밤, 약속된 장소로 나가자 누군가 다가왔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나의 손을 잡고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택’(이 용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역정보’ 정도로 해두자)이라고 했다. 차를 타고 십여분 거리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처음 만난 곳은 관덕정 부근의 중앙성당이었고 이동한 곳은 삼성혈 근처의 광양성당이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니 지하실 같은 공간이 이미 200여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머뭇머뭇 앞으로 나가 인사를 하자마자 곧 불이 꺼졌다. 그렇게 <레드 헌트>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공식(?)상영되었다. 공안당국은 <레드 헌트>를 이적표현물로 규정했고, 나에겐 국가보안법이 적용돼 있던 시절이었다. 상영만으로도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니 성당이나 대학 학생회가 아니면 상영할 엄두조차 내질 못했다.
4.3 항쟁 50주년을 맞아 전북
4.3 에서 강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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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좀 촌스러운 데가 있다.” <지슬> 개봉 소식에 자파리 식구들이 꽤나 감격스러워하더라고 전하자 오멸 감독에게서 돌아온 대답이다. 이 말엔 자파리 식구들이 세련되게 감정을 숨기는 법을 모르는 순수한 친구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3월2일 간드락 소극장에서 만난 최은미씨가 그런 의미에서 특히 촌스러웠다. 인터뷰 도중 최은미씨의 눈가엔 몇번이나 눈물이 차올랐다. 목소리도 우렁차고 말도 조리있게 잘해서 무대인사 때 대표로 마이크를 잡는 장정인씨는 그런 은미씨를 보고 “고장난 수도꼭지”라고 놀렸다. 그런데 정작 본인도 <지슬>을 관람하러 극장에 들어설 땐 “야단맞기 직전처럼 배가 간질간질하다”며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파리 식구들은 아직도 <지슬>만 보면 왈칵 눈물이 솟구친다고 했다.
장정인, 성민철, 최은미, 강지윤, 조은. 이들은 길게는 10년, 짧게는 1년을 ‘자파리’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다. 제주말 자파리는 ‘쓸모없는 짓거리’ 정도로
쓸모없는 일이 아니라 쓸모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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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상실과 피로 누적. <지슬>로 인해 오멸 감독이 얻은 것들이다. “최근엔 내게 <지슬>밖에 없는 것 같다. 사생활 없이 몇달을 살다보니 자아를 상실하게 됐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지슬>이 공개된 뒤부터, 아니 <지슬>의 제작에 돌입한 순간부터 오멸 감독은 쉴 틈이 없었다. 게다가 몇년째 계속돼온 “트렁크 인생” . <지슬>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멸 감독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던 자신의 숙소이자 자파리연구소 합숙소의 보증금을 뺐다. “큰돈도 아니었다. 말이 보증금이지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였다. 이젠 트렁크 인생에 꽤 익숙해졌다.” 오멸 감독은 제주도에서도, 서울에서도 모텔을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지슬>이 제주도에서 개봉한 다음날인 3월2일 오멸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가 끝난 뒤 저녁으로 제주산 돼지고기를 구워먹는데 오멸 감독이 말했다. “이제야 좀 웃을 수 있게 됐다” 고. 여유가 생기자
“잘 찍으면 영웅 못 찍으면 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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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을 다룬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가 3월1일 제주도에서 먼저 개봉했다. 그리고 개봉 2주가 채 안돼 1만 관객을 동원했다. 제주 사람 오멸 감독이 제주에서 제주의 역사를 이야기한 영화 <지슬>에 제주 주민들이 뜨겁게 화답한 결과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개 부문 상(넷팩상,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 무비꼴라쥬상)을 휩쓸었고,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 황금수레바퀴상을 가져갔다는 소식은 <지슬>의 영화적 성취를 잘 말해준다. 3월21일, <지슬>이 전국 개봉한다. <지슬>을 먼저 본 관객에게도, 아직 보지 못한 관객에게도 좋은 가이드가 될 글들을 준비했다. 정한석 기자는 오멸 감독의 영화세계 안에서 <지슬>의 의미를 풀어냈고, 4.3부터 강정까지 제주의 역사를 꾸준히 카메라에 담아온 조
말하라 땅이여, 울어라 넋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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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추 감독에게 <지.아이.조2>는 프랜차이즈 시리즈 이상의 의미가 있다. 3D영화를 감독한 경험자로서, 시리즈의 속편을 이어받은 감독으로서, 마지막으로 팬으로서의 그의 입장을 통해 무려 1년 동안 숙성된 <지.아이.조2>의 세계를 엿보았다.
-공개된 영상이 짧아서 아쉽다.
=3D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싶어 완료된 부분 중 가장 공들인 부분을 골라봤다. 본편에서의 분량은 충분하니 걱정하지 말라. (웃음)
-원래 2D로 찍고 있었는데 3D로 변경하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정말 만들어보고 싶었다! (웃음) 촬영 중반부터 이 장면을 3D로 보여주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작비 문제도 있고 정해진 일정을 어길 수 없어 내심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파라마운트에서 내 의견이 맞는 것 같다며 시간과 돈을 더 주더라. 내가 3D 연출에 대한 명성이 제법 있지 않나. (웃음) 농담이고, 감사한 일이다. 관객에게도 다행스러운
“12살의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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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봐도 자연스럽다!” 제작자 로렌조 디 보나벤투라는 3D로 다시 태어난 <지.아이.조2>에 끝없는 만족을 표했다. 3D 변환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그의 입장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지난해 여름 개봉예정이었는데 먼 길을 돌아왔다. 굳이 3D 변환을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원래 처음부터 3D 제작을 염두에 두었지만 준비과정에서 제작비와 시간문제로 3D를 포기했었다. 하지만 촬영하다보니 3D에 욕심이 생겼다. 영화를 보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보여주고 싶고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3D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파라마운트에 요청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멋지게 만들려면 얼마가 더 필요한가?”라는 게 아닌가.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존 추를 감독으로 결정한 건 그의 3D영화 제작 경험 때문인가.
=실은
“이병헌은 부인할 수 없는 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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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에게 바비 인형이 있다면 남자아이들에게는 지.아이.조가 있다. 국내에선 1980년대 말 G.I.유격대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잠시 인기를 끌다가 이내 사라진 완구 시리즈 중 하나에 불과지만 북미 지역에서 지.아이.조 시리즈의 인기는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다. 1964년 유명 장난감 회사인 ‘하스브로’가 경쟁사 ‘마텔’의 히트상품인 바비 인형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지.아이.조 시리즈는 당시 남자아이들을 공략한 이례적인 상품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82년 마블 코믹스에 연재되며 인기에 더욱 탄력을 받은 이 특공대원들은 이후 80, 90년대를 주름잡으며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히트 캐릭터들을 남겼다. 출발은 아동용 완구에 불과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넓고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것이다. 늘 소재 고갈에 허덕이는 할리우드가 이제껏 놔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만큼 매혹적인 아이템이다. 2009년, 드디어 실사영화화되며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개막을 알렸던 지.아이.조가
3D로 부활한 액션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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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스필버그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에게 우편물을 한통 받았다. 그 우편물 안에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링컨의 재취임식 연설문을 직접 낭독한 것이 담긴 녹음기가 들어 있었다. “그건 링컨의 목소리였다. 그의 자손 세대가 추측해낼 만한 우렁찬 목소리가 아니라 마치 그를 직접 만나본 사람이 낼 수 있을 법한 목소리였다.” 스필버그는 우편물을 받자마자 대니얼 데이 루이스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구시죠?”
<링컨>을 보며 우리 모두가 던지게 되는 질문을 2년 전 스필버그도 했던 것 같다. 스크린 속에서 링컨처럼 말하고 링컨처럼 걸으며 링컨처럼 사람들을 회유할 줄 아는 저 남자는 대체 누구인가. 매 작품 자신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온전히 캐릭터의 모습을 채워넣기로 유명한 대니얼 데이 루이스에게 이 질문은 놀랍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데이 루이스에게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과제였음은 분명하다. <링컨>은
여기 링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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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링컨>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중 가장 대사가 많은 영화다. 그중 많은 분량이 미국사나 링컨이란 인물에 관한 ‘미국인’의 평균 지식 수준을 전제로 하고 있다. 뿐인가. 미국인도 잘 몰랐던 링컨에 관한 정보들까지 촘촘히 심어놨다. 그 모든 디테일을 할리우드의 거장 스필버그는 아무렇지 않게 한편의 영화로 압축해버렸다. 그래서 미리 참고해두면 좋을 관련 지식을 5가지 키워드로 풀어봤다. <링컨>을 더 잘 보고 더 잘 느끼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남북전쟁×노예제
1865년 1월, 4년 동안 지칠 대로 지친 남부연합군의 상태로 보아 북부의 승리가 확실했다. 하지만 막 재선에 성공한 링컨은 종전을 미루고 노예제 폐지안이 담긴 헌법 13조 수정안 통과를 서두른다. 노예제가 없어져야 전쟁을 완전히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링컨이 보기에 노예제를 둘러싼 남북간의 갈등의 골은 훨씬 깊었다. 당시 남부 경제는 노예 의존도가 높은
오바마가 힐러리를 중용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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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에 대해 좀 안다고 자부했던 관객도 <링컨> 앞에서는 당혹감부터 느낄 수 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잔혹 동화 <워 호스>의 연장선상에서 미국 신화의 한 조각을 베어낸 이 영화에는, 마치 링컨의 그것과 같은 노감독의 고집이 배어 있다. 링컨이 일궈낸 승리는 필히 남북전쟁에서 75만 병사가 흘린 피로 얼룩지고, 타협에 능했던 그의 온건한 메시지도 극히 비타협적인 영화적 만듦새로 수송된다. 이는 이제까지 그의 영화를 맘 편히 즐겨왔던 관객에게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 연유가 궁금해서 인터뷰를 모아봤다. 그는 왜 14년이나 <링컨>에 매달렸고, 왜 전과 다른 방식으로 <링컨>을 완성했는가. 명쾌한 답변은 요원해 보이나, 그 빈 괄호가 더 중요한 단서일 수도 있겠다.
-언제 처음 링컨에 사로잡혔나.
=5, 6살 즈음 삼촌을 따라 링컨 기념관에 갔었다. 한참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한 거
두려워해야 돌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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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각자의 이순신이 있듯이, 미국인들에겐 각자의 링컨이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비유는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국인들에게 링컨은 미국 그 자체의 동의어에 가깝다. 그가 노예제를 영구적으로 폐지한 13조 수정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면, 혹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면 미국은 지금 북부 중심의 합중국과 남부연합이라는 각각의 뿌리를 지닌 두 국가로 나뉘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링컨이 중대한 소명을 완성한 직후 피살당했다는 사실이 그의 국부(國父)적 지위에 순교자적 이미지를 더했을 것이다. 실존한 한 개인의 삶 자체가 건국신화가 된 드문 경우이며, 오늘의 세계에서 한 국가의 국민에게 그만한 압도적 무게를 지닌 인물은, 중국의 마오쩌둥을 제외한다면 거의 없을 것이다. 노골적인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가득한 D. 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4)에서조차, 링컨 피살 소식을 들은 남부인들이 그를 “우리의 유일한 북부 친구”라고 부른다.
2000년대
오! 숭고하고 더러운 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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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동시대 감독의 명단을 작성하라면, 우리는 주저없이 맨 위 상단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을 올리겠다. 지난 40여년간 철저히 관습적인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작업해온 그는 과거 미국 감독들이 남긴 시네마의 위대한 유산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찰해왔고, 2000년대 이후로는 그 성찰의 깊이가 더욱 심원해지고 있다. 그런 스필버그가 10년 동안 매달린 영화이기에, 나아가 그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신화를 다룬 영화이기에, <링컨>이 나오기만을 우리는 고대해왔다. 그리고 비로소 <링컨>이 나왔을 때 이 영화를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스필버그의 오랜 지지자 허문영의 왼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는 지난해 <워 호스>를 비롯해 우리가 최근의 스필버그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다. 그의 글은 우리가 놓쳤던, 그리고 심지어 지금도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스필버그의 행로의 변경을 더듬기에 훌륭한 안내문이 되어줄 것이다.
신화, 다시 태어나다